고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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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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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KIA 타이거즈의 좌완 파이어볼러!

KIA 타이거즈 No.35
고효준(高孝準 / Hyeo-Jun Ko)
생년월일1983년 2월 8일
출신지충청북도 청주시
학력서원초-세광중-세광고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2002년 2차지명 1라운드 (전체 6번)
소속팀롯데 자이언츠 (2002)
SK 와이번스 (2003~2016.7.31)
KIA 타이거즈 (2016.8.1~)
SK 와이번스 등번호 15번
박남섭(2001~2002)고효준(2003~2011)허준혁(2012~2013)
허준혁(2012~2013)고효준(2014~2016 7.31 )임준혁(2016.8.2~)
KIA 타이거즈 등번호 35번
임준혁(2012~2016.7.31)고효준(2016.8.2~)현역

1 소개

KIA 타이거즈 소속의 좌완투수. SK 와이번스 시절 사용한 등번호는 15번이다.
국내 최고의 롤러코스터 월미도 바이킹에서 광주패밀리랜드 바이킹 사장님으로[1] 이 시대 최고의 포수 참교육자

2 선수 생활

2.1 데뷔 후~2008 시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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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방출 후 SK에 입단한 2003년의 모습. (피부 보소..)

세광고 졸업 후 2002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를 밟았지만 고작 6경기에 등판하여 3이닝을 던졌다. 당시 백인천 감독은 볼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 그를 두고 '얜 선수도 아냐' 라고 드립을 했고, 롯데 구단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다는 결과가 나와 전력 외로 분류, 방출 수순을 밟고 만다.

다음 해인 2003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2004년부터 등판을 하기 시작, 주로 중간계투로 출전해 2005년 9이닝 당 삼진 10.46개라는 놀라운 구위를 보였다. 하지만 컨트롤 난조는 계속 이어져[2] 2006년까지 그저그런 투수로 있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상으로 1군 전력에서 증발, 김성근 감독이 취임한 이후인 2007년부터는 2군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여담으로 2007년 시즌 중 다시 친정 팀 롯데로 트레이드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1군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2군에 머물러 있던 고효준을 트레이드 카드로 쓰기 위해 롯데 내야수 유망주 추경식과 카드를 맞추었으나, 롯데 측에서 막판에 거절했다고 한다.

2.2 2009년

끊임없는 노력 끝에 날아오르다

시즌 시작 전, 2,700만 원이란 거의 신인이나 다름없는 연봉[3]을 받으며 선수로 활동하던 고효준은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 무릎을 꿇으며 다른 팀으로의 트레이드를 요청한다. 나이도 결코 어린 나이도 아니고 결혼까지 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당시의 연봉으로는 꾸려 나가기 어려운 집안 살림 때문에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 읍소한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그런 마음가짐 이라면 됐다'면서 고효준을 2009 시즌에 중용할 것을 약속하고 실천에 옮겨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쨍하고 해뜰날이 왔다.

3번째 출전 경기인 4월 10일 히어로즈 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잡아내는 호투 속에 무려 1,358일만에 선발승을 거두면서 수많은 야구 팬들에게 전율과 감동을 주었다.그리고 롯데팬들은 백인천을 깠다 보러가기 [4]

2009 시즌 동안 김광현, 채병용 등 주축 투수의 연이은 부상과 박경완이란 주전 포수의 부상. 마무리 정대현의 난조로 인해 덜덜거리던 SK 투수진 속에서 선발이면 선발, 계투면 계투로 닥치는 대로 전천후로 등판해 던졌다. 좌완이라는 강점과 왼손에서 나오는 빠른 직구와 타이밍으로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기 시작했고, 결국 2009 시즌 11승 10패, 탈삼진 152개, 평균자책점 4.33을 기록하며 10승 투수 대열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수위급 투수의 명성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채병용의 복귀로 선발 자리는 모르지만 포시에서도 불펜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그의 모습을 볼수 있으리라 예상되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때는 4⅔이닝 동안 1자책점만 내주며 그럭저럭 신뢰를 쌓나 했더니만,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올라올 때마다 "퐈이야!!"를 외쳤다. 마치 반대편 덕아웃에 앉은 한기주 보라는 듯이

한국시리즈 3경기 모두 등판했지만 잘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5] 때문에 1차전에선 등판하자마자 이용규에게 볼넷을 허용하더니 그 뒤 2아웃 잘 잡아놓고 볼넷 2개를 더 헌납하고(스트레이트 볼넷이 2개) 주자 만루상황에서 강판된다. 결국 윤길현분식회계를 하고 말았다.한국시리즈 동안 굉장히 안 좋아서 4⅓이닝 4자책점, 평균자책 8.30을 기록하고 말았다. 게다가 여기에 선행주자 승계실점으로 분식회계한 것까지 치면 한국시리즈에서의 성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덕분에 한국시리즈 내내 KIA팬들한테 사랑받았다.

선수 생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를 겪어보는 투수에게 중요한 순간을 맡기는 건 분명 위험해 보였지만 김성근 감독이 다음년까지 바라보고 자신감을 키워주려 했던 건지 이승호정우람이 나와도 좋을 상황에서도 고효준이 마운드에 올라와서 던졌는데, 사실 실제로는 불펜 선수들의 과도한 기용으로 이미 기량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도 했다. 두산과의 역스윕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불펜진에 과부하가 걸려 제대로 올릴 투수가 없었다[6]

2.3 2010년

2009 시즌에서 전천후 투수로 입지를 확실히 닦아놓았기 때문에 2010 시즌에서도 중용되었다. 51게임 8승 6패 2세 1홀 101 탈삼진으로 선발, 중계를 오가며 투수진에 구멍이 날때 마다 메꾸는 역할을 해주며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으로만 보면….

스탯은 괜찮다 치더라도 경기 내용을 보면 이 남자 새 시즌을 맞이했건만 롤러코스터 제대로 탈 줄 안다는걸 볼 수 있다. 잘할 땐 잘하고 못할 땐 아주 그냥 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수준…. 제구력 뿐만 아니라 번트나 견제 상황에서의 1루 송구 실책, 위기시 폭투에 1점차 상황에서의 피홈런 등 안 좋을 땐 정말로 심각했다. 2009 시즌보다 조금 성적이 좋진 않지만 경기 내용상 2009 시즌과 기본적인 맥락에서 평가가 비슷하다. 제구력 부족, 정신력 부족, 컨디션 난조시 큰 실책과 피홈런 등.

결국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도 못했고, 그를 대신해 문광은이 들어와 우승반지를 닌자(…)했다. 컨디션 난조가 엔트리 미포함의 이유로 기사화되었는데, 여기서 짚어볼 점은 그의 성적은 2010시즌 팀 내 승수 3위(!?)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트리 미포함이란 것은 그의 경기 내용에서의 문제를 대변한다. 또한 수치면에서 106⅔이닝에 탈삼진 101개는 높게 평가해줄 수 있는 수치로서 그의 구위와 변화구 등으로 인한 우수한 탈삼진 능력도 그의 이제까지의 평가를 납득시킨다.

2.4 2011년

1월 24일 시속 200km로 달리는 광란의 폭주족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기사가 떴다.[7] 그런데 막상 고효준은 근처에서 아내 운전 연수차 한적한 도로를 찾았을 뿐이고, 그 와중에 신호 위반 정도의 경범죄를 저지른 것은 맞지만 우연찮게 폭주 차량들 틈에 휩쓸렸을 뿐 폭주족 사건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SK 전담 기자까지 해당 사항으로 먼저 기사를 쓴 것도 모자라 트위터질까지 하고 나서야 프런트가 해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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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해외 출국이 허용되는 나이를 넘겨 버렸기 때문에 시즌 대비 해외전훈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국내에서 훈련을 혼자 하게 될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중요 자원이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1:1 코치까지 붙여주려고 했는데, 부탁한 사람이 충공깽. 결국 좌완 인스트럭터를 구해서 2월까지 문학 - 제주를 오가며 맨투맨 과외를 받게 되었다. 아아 고효준 그는 좋은 롤코였습니다. 고효준이 무슨 죄를 졌다고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무실점 호투해서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했으나, 결국 3월 17일 KIA 타이거즈와의 시범경기에서 볼넷으로 출루시킨 1루 주자 박기남삼연속 폭투로 홈까지 불러들이는 다이내믹한 투구를 선보인 후(…) 바로 강판당했다. 아 롤코…. 이것이 바로 상치 매직! 이거슨 한도세에 비견되는 한폭세! 고효준 포수 뒤 홈런!

물론 다음날 경기에서는 잘 막아줬지만 고효준의 다이나믹하던 폼이 시망이 되 버린 덕에 팬들은 양상문을 깠다. 이 걸 소재로 불암콩콩코믹스에도 출연.

결국 정규 시즌 개막 이후 난조를 보여 2군으로 내려갔다. 김성근 감독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인스트럭터로 양상치를 붙이시질 말았어야죠

4월 29일 1군에 올라와 당일 경기인 두산전에 선발 송은범의 뒤를 이어 올라와 3이닝 동안 무실점 호투하다 4이닝 째부터 볼질을 시작해서 결국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 다음 등판인 5월 6일 KIA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3⅔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내려가긴 했는데 볼넷과 삼진의 비율이 1:1을 보여주는 등[8], 여전히 롤코의 기질을 보였지만, 그래도 팬들은 기대한 것보다 낫다며 위안을 삼았다.

6월 8일 목동 넥센전에서 엄청난 일을 해내고 만다. 선발 송은범이 일찍 무너지자 1사 만루 상황에서 구원등판하여 코리 알드리지를 깔끔하게 병살로 처리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부터 삼진을 잡을 때는 삼구 삼진, 볼넷을 내줄 때는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롤코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그러나 곧 위기가 찾아오고, 2루수 정근우의 포구 실패, 몸에 맞는 공 등으로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비는 심하게 와서 변화구 자체가 미끄러지는 상황. 김성근 감독은 우천중단을 원하는 눈치였으나, 심판은 받아들이지 않고 속행했다. 그리고 무사 만루에서 대타 송지만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그 다음 타자는 내야 플라이, 다음 타자 삼진. 그렇게 유유히 무사만루를 지 손으로 막아내고, 승리 투수가 됐다. 그것도 시즌 첫 승, 우와앙 효느님!! 근데 미미하게 묻혔다

6월 1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5이닝 동안 93개의 공을 던지면서 5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 1실점 비자책점의 호투를 펼치며 시즌 첫 선발승과 시즌 2승을 올렸다.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4차전에서 윤희상의 맹활약으로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대구 원정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3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다가 4회말에 급격히 난조를 보인 끝에 3⅔이닝 59투구수 3피안타 2사구(死球)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신명철의 홈런에 삼성이 매티스 대신 차우찬을 내놓는 1+1 선발 전략을 내놓아 2번째 투수로 등판한 차우찬의 역투에 막혀 팀이 스코어 0:2로 지는 바람에 고효준은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 경기가 고효준의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의 유일한 등판 경기가 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친 후 고효준은 팔꿈치 부상이 발견되어 뼛조각 수술을 받았고, 이 때문에 재검에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2.5 2014년

2011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2012년 4월 30일에 입대하면서 2014년 초까지는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공익근무요원 복무 기간인 만 2년을 채우고 2014년 4월 29일에 소집 해제되었고, 5월 1일 한화와의 3군 경기에서 첫 등판을 했다. 페이스가 빠르다고 한다. 복무할 때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윤희상이 손가락 골절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이만수 감독이 5월 20일에 그를 1군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23일에 선발투수로 예고되었다. 소집해제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걸 감안하면 복무하는 동안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한 것으로 보였다.

5월 23일 LG와의 4차전 문학 홈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962일만에 1군 경기를 치뤘다. 팀이 스코어 5:3으로 지던 2회초 무사 2, 3루 상황에서 전유수로 교체되었는데 전유수가 첫 타자이자 3번타자인 정성훈에게 희생번트, 다음 타자 이진영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여 고효준은 이날 1+이닝 41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3볼넷 1탈삼진 7실점 7자책점을 기록해 패전 투수가 됐다.

6월 8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출장하여 기대(?)와는 달리 굉장히 호투하였다.이날 기록은 5.2이닝 4피안타 1피홈런 1볼넷 6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였고, 고효준 개인은 호투하였지만 팀 타선의 힘이 딸리며 패전을 기록하였다.비록 패를 기록하긴 했지만 볼넷도 1개밖에 주지 않았고 김성현의 클러치에러만 아니었어도 꽤 오래 이닝이팅을 기록해볼만한 상황이었다.팀의 입장에선 부상자들이 많은 가운데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뤘다고 할수있다.

6월 15일, 잠실 LG 트윈스경기에서는 1회말부터 선두타자 박용택에게 홈런을 얻어맞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하더니 3이닝 7피안타 1피홈런 4볼넷 9실점으로 또다시 탈탈 털렸다. 그래도 그 뒤는 여건욱이 잘 막아주었지만 그 후속투수인 작가 양반이 아웃 카운트 하나 못잡을 동안 5실점하는 대서사시 방화를 저지르는 바람에 팀의 추격의지 자체가 꺾이고 말았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선발로 등판해 대량 실점하며 무너진 경기가 모두 자신을 고인으로 만든 인스트럭터로 와서 장단점을 모조리 파악하고 떠난 양상문이 감독으로 들어와 있는 LG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양상문 감독은 고효준 선발 등판경기를 앞둔 날에는 자신이 직접 모의훈련 상대로 직접 LG 타자들 앞에서 공을 던져준다고 할 정도.

6월 28일, 다시 LG 트윈스를 만났으나, 이번에는 타자들을 공략을 잘하면서 5이닝 1자책으로 선방해 승리투수가 되었다. 무려 1017일 만의 선발승.

7월 5일엔 지난번 등판해서 좋은 기억이 있는 롯데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5회 정훈에게 적시타를 맞아 1실점했고 6회 시작부터 손아섭에게 솔로 홈런을 맞아 2실점하고 교체되었다. 이 날 기록은 5이닝 2실점. 팀도 오랜만에 돌아온 김상현의 홈런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9회에 박정배가 탈탈 털리면서 역전패를 해 이 날 ND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 날 김상현과 고효준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2.6 2015년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김용희감독의 알수없는 시스템 야구의 원칙에 의해 지는 경기는 거의 다 출장했다. 그러나 고무적인건 작년보다 많은 스탯들이 좋아지고 있어 올 시즌 2009년에 버금가는 성적을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으나.......

트래비스 밴와트의 부상으로 인해 땜빵 선발로 나설 수 있었지만, 베테랑 채병용과 신예 박종훈의 호투로 인해 여전히 보직은 패전조이다. 5월 21일 한화전에서 시즌 첫 선발등판했지만 1회에만 6점을 내주는 등 5이닝 7실점으로 부진하며 시즌 두번째 패전과 동시에 팀은 7:1 대패를 당했다.

그 이후 계속 패전조나 좌완 원포인트로 등판하나 구위와 제구 모두 좋지 않은 탓에 장타를 자주 얻어맞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이다.

계속된 부진에 팔각도를 내려 스리쿼터로 투구폼을 변경하는 모험까지 단행했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부진이 계속 되고있다. 8월 6일 삼성전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해 마우스피스까지 끼고 역투했으나 홈런한방을 포함해 2실점하며 1이닝만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고,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9월 확장엔트리로 인해 콜업되었고 9월 8일까지 5번의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0을 찍었다. 9월 5일엔 7타자 5삼진을 뽑기도 했다. 이 시기 등판에는 팔각도가 다시 올라온 폼으로 투구하였다.

9월 12일 NC전에서 시즌 2번째로 선발로 등판하였다. 2.2이닝 4실점 1홈런 3사사구 1삼진으로 조기강판 되었고 시즌 3패를 기록하게 된다.

30경기(2선발) 3패 6.18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을 패전조로 뛰었으나 개인적인 기록은 작년보다 훨씬 좋아졌으며, 내년에는 5선발 경쟁에도 뛰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7 2016년

4월~7월 : 롤러코스터 내려갑니다.
8월~ : 고효율준

자세한 내용은 고효준/2016년 항목 참고.

3 플레이 스타일

최고 구속 140km/h대 중반의 포심과 낙차 큰 커브, 예리한 슬라이더로 상대를 흔드는 스타일.

특히 커브는 김성근 감독도 극찬하며 만약 김광현이 고효준 정도의 커브를 던진다면 20승은 거뜬하다고 할 정도로 위력적이며 각도도 수준급. 또한 좌완으로써 몇 안되는 포크볼 투수이기도 하다.

고효준의 강점은 탈삼진 능력으로, 2009 시즌 기록한 152개의 탈삼진은 류현진, 조정훈에 이어 리그 3위. 더욱 대단한 것은 류현진이 189이닝에서 188개의 탈삼진, 조정훈 182이닝에서 175개의 탈삼진을 잡은데 비해 126이닝을 던져서 152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다는 점. 이닝당 탈삼진율은 12.06으로 독보적인 1위다. 손시헌 빈볼 당시 SK의 안티들은 이 탈삼진을 근거로 류현진급 투수로 묘사하며 까기도 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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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점으로는 다이내믹한 투구 폼. 김광현도 다이나믹하지만 고효준도 장난이 아니다. 막 뿌려대는 듯한 폼과 함께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노련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효준이 고전하는 이유인 결정적인 단점이 있으니, 바로 들쑥날쑥한 제구력이다. 평소에는 스트라이크 존에 꽉찬 공을 선보이지만, 긴장하면 릴리즈 포인트를 잘 찾지 못해 볼을 남발한다. 또한 주자가 나가면 쉴새없이 흔들려서 제구가 무너지고 볼넷이 많아지는 피칭을 보인다. 제구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 포수 박경완이 '자신이 겪은 제구가 안 되는 투수 중 세 손가락안에 든다'라거나, "김영수가 방출되니까 고효준이 들어오더라"라며 말한 바 있다. 이런 스타일의 대표적인 투수가 김정수였다.

이 불안한 제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는 9월 6일 문학에서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전이다. 첫타자 김주찬에게 홈런-김민성 삼진-홍성흔 홈런-이대호 삼진-카림 가르시아 홈런으로 홈런 다음 삼진, 삼진 다음 홈런을 내주는 불안한 피칭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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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5명 모두 2016년 현재 다른팀에 있다는건 넘어가자

또 다른 예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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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서 정리하자면 롤코끼가 굉장히 다분해서 그렇지 구위, 변화구, 탈삼진 능력 등 투수로서의 자질은 우수하다는 것. 하지만 원래 롤코 매니아(…)들이 다 그런데 잘할 땐 잘하고 못할 땐 못해서 팀내에서도 팬들 입장에서도 애매함을 느꼈고 결국 나중에는 팬들도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특히 솩갤에선 못하면 내려가고 잘하면 올라가는 타임이라면서 고효준 등판 시 '내려간다 안전바 잡아라 ㅋㅋㅋ' 같은 드립을 치며 롤코짓을 즐기는(?) 변태 갤러들까지 등장했다. 던지는 구종 상 바운드되는 공도 많은데다 제구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고효준과 배터리 호흡을 맞추는 SK 포수들은 고효준이 긁히지 않는 날엔 블로킹을 하느라 생고생을 겪으면서 강제로 수비력을 강화하는(…) 실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2군행이나 트레이드 떡밥 내지 방출감으로 평가하기엔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에이스 반열에 끼기엔 위와 같은 아쉬운 점이 너무 부각되었다.[9] 그래도 우수한 투수 자원들이 병역이나 FA 등으로 계속 유출된 SK에선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었다.

4 기타

별명은 기복이 심해서 고롤코.[10] 2010시즌엔 좌완이라 우롤코가 재활 후 복귀했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서 좌롤코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롯데에서의 심장 해프닝으로 생긴 뉴하트, 배우 김수로를 닮았다고 해서 고수로. 그리고 양상문이 개인코치로 임명된 후 추가된 별명인 故효준(…), 그 외에도 항상 등판할 때마다 껌을 씹어서 껌효준이라는 별명이 있다.[11] KIA로 트레이드 이적후에 긁히는 날이면 그 어떤 좌완투수도 부럽지 않다며 고쇼. 심지어 고효율준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양상문 매직에 힘입어 3월 17일, 시범경기에서 '사실상 최초의 진기록'을 작성한다. R.I.P. 고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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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비춰진 모습으로 미루어 과자에 대한 징크스가 있는 듯하다. 홈런볼은 싫어하고 에이스를 즐겨 먹는 듯.

2009년부터 병역 수행 전까지 동안 선발, 불펜을 오가면서 3년 연속 100이닝을 넘게 소화했으나 2009년은 팀이 준우승하는 바람에, 2010년에는 고효준 본인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를 못하는 바람에, 2011년에 팀이 또 준우승하는 바람에 우승반지를 껴보지를 못했다.

여담으로 롤코를 타면서도 삼성만 만나면 준수한 활약을 하는 덕에 삼성전에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절정이 2005년. 삼나쌩?!

믿기지 않겠지만 2009년 시즌이 끝난 후 전지훈련에서 당시 전력분석원이던 김정준과의 제구력 내기에서 승리해 6000엔을 땄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2010년 시즌도 제구력은 폭망.. 어쩌면 자기가 못던진다에 돈을 걸었을 수도 있다.[12]

등판 시, 마우스 피스를 착용한다. 어금니 꽉 깨물고 던질 때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자마자 충격(!!!)과 공포(??)의 패러디 짤이 만들어졌다...(...) a.k.a. 트롯효준... 사실은 가짜를 가장한 진짜라 카더라...(...) 그리고 확인사살까지...(...)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2롯데 자이언츠6300000.0000.005013102.000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3SK 와이번스1군 기록 없음
20043145⅓21000.6675.96455473735301.831
20051957⅔44000.5003.59282636727231.301
2006142302000.0009.39201362224242.304
200711⅔00000.0005.402102111.200
20081100000.0000.000011001.000
200939126⅔1110210.5244.33981295152
(3위)
69611.413
201051106⅔86210.5715.15106166610168611.566
201135105⅔58000.3854.26874758955501.476
2012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3
2014215125010.2869.186711434057522.059
2015305103000.0006.18618354337351.804
KBO 통산(14시즌)248572⅔3239430.4515.30519604625573743371.605
  1. 고효준의 제구를 보고 SK팬들이 '월미도 바이킹 제구'라고 부른적이 있었다
  2. 던진 공이 난데없이 뒷그물로 총알같이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3. 당시 최저 연봉은 2,000만 원이었다. 2010~2014년까지 2,400만 원, 2015년부터 2,700만 원.
  4. 하지만 이 영상은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점수를 내는 모습만 나오고 고효준이 삼진 잡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5. 김성근 감독이 코시를 앞두고 고효준을 키 플레이어로 지목했었다.
  6. 시즌 말 승리의 수호신이였던 전병두의 엔트리 제외, 정대현의 팔꿈치 이상, 윤길현의 피로, 김원형의 노쇠화 등 가용할 불펜 인원이 굉장히 적었다. 대부분 경기가 선발이 5이닝 정도를 막으면 나머지 4이닝 중 1, 2이닝을 이승호가, 1이닝 정도를 정우람이나 윤길현이 먹었는데, 나머지 이닝은 고효준이나 여차하면 채병용, 카도쿠라 켄같은 선발 요원으로 돌려막는데 급급했던 게 현실이었다. 더군다나 KIA의 타자진은 후반에 특히 불을 뿜었다.
  7. 서울 및 근처 수도권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무더기로 검거된 폭주족들 중에 현직 야구선수도 있었다는 기사가 떴고, 곧이어 "폭주족 야구선수 고모씨(27)" 라고 성씨와 나이까지 알려졌다. 그런데 고씨가 흔한 성씨가 아닌지라 시간이 남아도는 네티즌들이 수도권 구단의 비슷한 나이대 고씨들을 탈탈 털어서 용의선상에 올려놨다. 고효준도 그중 한명.
  8. 사실 말이 좋아 무실점이지 폭투성 공도 꽤 있었다. 이날 디시 솩갤에서는 하나같이, 그걸 다 잡아낸 로즈마님를 동정했다(…).
  9. 롯데의 장원준도 똑같이 롤코매니아로 유명하지만 그의 경우 2010시즌에 에이스로 표현되곤 하는데 결과적으로 나온 높은 승수(타격지원도가 높다)와 롯데 투수들 내에서의 상대적인 입장상 그렇다는거지 원래 롤코라고 별명 지어질 정도즘 되면 에이스라고 부르기엔 부족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10. 심할 경우 공 단위로 롤코를 타는 경우가 있다. 위에도 기술했던 제구력 문제 때문. 롯데시절부터 쭈욱 그랬다는 걸 보면 만성 불안증인가? 거기다 롯데에는 같은 고씨에 롤코도 잘 타는게 비슷한 투수가 있다 이제 걔는 두산으로
  11. KIA 담당 기자인 나유리 기자 피셜에 의하면 해태 아이스쿨이라고.
  12. 그렇다고 김정준의 제구력을 무시하지 말자. 김정준은 내야수중에서도 송구거리가 상당히 먼 유격수 출신이었다.물론 프로에선 송구도 못하고 포구 1실책으로 아버지에게 1승 조공 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