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궁

阿房宮/宫(간화자)

1 개요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세웠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궁궐. 한자 문화권에서 최고의 지위를 가진 건축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남아있다.

2 역사

본래 진나라의 수도에는 이미 여러차례 증축한 거대한 함양궁이 존재했었으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만 하더라도 계속 함양궁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후 자신의 거대한 무덤인 능묘와 만리장성처럼 새로운 큰 궁궐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방궁이다.[1]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동서로 500보(약 650미터) 남북으로 50장(약 115미터)이며, 위에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로는 2.5미터 가량의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진시황 생전에 완성되지 못해 2대 황제로 넘어갔고, 이후 진나라에 대한 반란이 대대적으로 일어나, 유방의 손에 함락되고 만다. 당시 유방이 입성 후 그 화려한 규모에 놀라고, 어머아마한 규모의 궁녀와 보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항우의 손에 떨어지자 항우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태워버리는데, 3개월 간이나 불타오르고도 열흘은 더 불타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즉, 아방궁이 전소되기까지 무려 100일이나 걸렸다는 이야기다.

진시황이 건립한 만리장성이나 능묘가 실존하는 만큼, 이 건물도 실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정작 아방궁지에서는 관련 유물이나 증명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는 출토되지 않아 실존을 의심하는 학자도 많은 편이다. 기사 이에 따라서 사실 아방궁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으며, 실재 항우가 불태운 것은 함양궁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이라면 베이퍼웨어

3 기타

중국 서안에 이를 재현한 테마파크가 있었다. 대개 유적지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당연히 유적지는 아니고 복원을 중점으로 한 세트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입장료는 38위안. 비록 유적은 아니지만 시안에 존재하는 큰 볼거리 중 하나였음에도 2014년 1월, 시진핑이 고향에 복원할 가치도 없는 흉물이 있다고 하여 철거를 지시했고, 2015년 현재는 완전히 철거되어 공터로 남아있다.

한자 문화권에서 (사치스럽다는 부정적 의미로) 호화찬란한 건물을 “마치 아방궁과 같다”고 하는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성남시청이라던가 용인시청이라던가 관악구청이라던가
  1. 함양궁은 증축을 거듭한 끝에 함양궁 위치의 지리적인 한계에 부딪혔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