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城 | ||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
분류 | 고건축(古建築) | |
시대 | 진나라~명나라 | |
일련번호 | 5-442 | |
소재 | 중국 베이징 시, 톈진 시, 칭하이 성, 산둥 성, 간쑤 성, 산시 성, 네이멍구 자치구, 허베이 성, 산시 성, 닝샤 후이족 자치구 | |
등재 | 2001년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
이름 | 한글 | 만리장성 |
영어 | The Great Wall | |
프랑스어 | La Grande Muraille | |
국가·위치 | 중국 허베이, 베이징, 톈진, 산시, 네이멍구, 산시, 닝샤, 간쑤, 쓰촨[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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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7년 | |
등재기준 | (i)[2], (ii)[3], (iii)[4], (iv)[5], (vi) [6] | |
지정번호 | 438 |
萬里長城 (만리장성의 한국식 한자 표기)
長城/长城 (장성 - 중국 오리지널 표기)[7]
万里の長城 (만리의 장성 - 일본어)
Цагаан хэрэм (흰 성 - 몽골어)
Great Wall (거대한 누벽 - 영어)
Çin Seddi (중국 장벽 - 터키어)
Granda Ĉina Muro (거대한 중국의 벽 - 에스페란토)
목차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 |||||
만리장성 | 콜로세움 | 마추픽추 | 타지마할 | ||
페트라 | 치첸 이트사 | 거대 예수상 |
1 개요
파일:Attachment/만리장성/ma2-670x502.png
몽골인, 선비족 등의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국이 여러 시대에 걸쳐 북방에 건축한 거대한 성벽군이며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유적이다.
만리장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만 리[8]가 아니며,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장성"이라고 부른다. 동쪽 끝은 허베이 성의 산해관(산하이관)이며 서쪽 끝은 간쑤 성의 가욕관(자위관)이다.
하지만 남녀가 만나면 하룻밤 사이에도 쌓을 수 있다
2 역사
2.1 전국시대 ~ 진-한 시대
전국시대에 조, 연, 진 세 나라가 쌓은 장성을 진시황이 통일 후 연결해 지은 것이 시초. 하지만 이 장성은 진나라의 붕괴와 함께 한동안 역사의 유적으로 남게 되었다.
한무제가 그 후에 한번 더 대규모 공사를 해서 장성의 위치가 이전되었으며, 그 길이도 진나라 시절보다 길어진다. 그 이후 후한대 까지는 잘 유지되어 왔지만 후한말 이후 사회 혼란과 분열로 제대로 손질되지 않아 서서히 무너져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완성되었다. 현재 부르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대의 장성을 말한다. 진대와 명대 장성은 위치도 상당히 달라서 사실상 다른 장성. 현재에도 진-한 시대에 쌓은 장성의 유적이 남아있다.
진시황이 연결해서 지은 장성은 지금의 벽돌이 아닌 흙을 이용해 지은 토성의 형태였고 높이도 높지 않은 데다가 지켜야 할 영역이 워낙 넓다보니 감시도 소홀해서 사람이나 말이 맘만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곡괭이 등으로 성벽을 허문 다음에 우르르 몰려가서 만리장성 아래를 개박살 낸 적도 있을 정도.
실제로 진나라 다음 왕조인 전한 시기만 봐도 한 고조 유방부터 한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북방의 흉노에게 개 관광당하기에 바빴고, 삼국시대와 서진시대를 거쳐서는 북방이 전부 북방민족의 손에 넘어가기에 이른다. 그 이후에도 요, 금, 원 등 숱하게 황하 이북을 북방민족에게 넘겨줬던 시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것의 효용성 자체에는 큰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도 많다. 사실 정말 방어의 목적만으로 만리장성을 지었다면 그만한 놀부심보도 없는데, 당장 해자를 비롯한 온갖 방호시설로 떡칠을 하는 본격적인 성도 함락되는판에 달랑 성벽 한겹으로 본격적인 군대의 공격을 막아내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이 시기 만리장성의 용도가 북방 기마민족의 남침에 대한 방어선이 아니라 동서 교역을 하는 상단을 보호하는 가도와 역참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유목과 농경을 나누는 경계선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화북과 몽골고원은 지형적으로 적절한 방어선이 부족한 편이며, 이 때문에 인위적인 경계선을 만들고 그것을 기준삼아서 유목과 농경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만리장성을 돌파하기는 용이하였으나 대군이 통과할 길목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마치 강과 같은 방어능력을 보여준 것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강을 방어선으로 삼은 조선이나 로마의 국경이 자주 뚫렸다고 강 방어선의 효과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동일한 것이다. 중국은 단지 그 역할을 할 자연적 지형이 부족해서 인위적이나마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적으로 명청교체기 당시 이미 청은 만리장성을 넘나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경우 후방고립의 문제상 작전기간은 제한적이었고, 중국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항복하여 산해관의 통제권을 얻은 다음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길목을 통제하고 대규모 적의 침공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역할로 만리장성은 그 가치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장성의 역할이 다른 성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채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장성이 없었다면 화북은 유목민의 침공 및 약탈에 더 시달렸을 것임이 자명하다.
2.2 명-청 시대
명대에 이르러 가정제때 몽고족에게 베이징이 포위되는 사건(경술의 변)이 일어난 후 몽고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융경제 때가 되어서야 현재와 같은 벽돌을 이용한 장성의 형태로 굳어졌다. 하지만 명의 영역이 기존 한의 영역보다 상당히 남쪽으로 축소되었으므로 사실상 장성을 신축해아 하는데다가 공법의 변화까지 겹쳐서 장성의 재건설은 장기간에 걸쳐서 천천히 지속되었다. 그리고 장성의 수축은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역 지휘관의 재량에 따른 판단으로 임의적으로 수축된 것이고 그래서 성벽의 재료도 지역마다 달랐다. 벽돌로 지은 곳도 있고 바위로 쌓은 곳 흙벽돌로 쌓은 곳 등등, 일부 구간은 결국 명이 멸망당하는 시점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구간은 완성돼서 상당한 방어력을 부여받았으며, 대표적인 곳이 산해관이다. 실제로 명대 만리장성은 청군이 돌파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가 반란군에게 망한 사실을 안 오삼계가 반란군을 토벌할 때 지원군으로 청군을 사용하기 위해 협약을 맺고 그냥 문을 열어줘서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시대쯤 되면 공성기술이 상당히 발달되었으므로 설령 만리장성이 석조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양상은 전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산해관같은 강력한 점방어가 가능한 몇몇 지역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성벽 한겹인지라 대군으로 밀고오면 뚫렸다.
청의 경우에는 북방의 몽골까지 지배하는 상태였으므로 당연히 만리장성의 효용가치가 없어서 북경 근처의 일부 구간만 약간 보수하는 선에 그쳤다.
2.3 근현대
아이러니 중 하나지만, 만리장성이 마지막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것은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의 열하침공 때이다. 북경을 점령하려는 일본군과 방어하려는 중국군이 북경 근처의 만리장성과 산해관에서 격전을 벌인 것. 결국 1933년 1월 30일 산해관이 함락되고 만리장성이 돌파되면서 북경이 함락되었다.
현재 전체 장성 중, 50%는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이 집 지을 돌을 마련하느라 장성을 파괴(...)하고 관광객에게 만리장성의 돌을 판매(...)했기 때문이라고. 오오 대륙의 기상 오오. 거기에 아직도 각종 개발사업으로 파괴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국 역시 무너진 성돌을 빼와 집의 주춧돌이나 축대로 삼는 일이 적지 않았다. 아니면 무너진 읍성을 집의 담벼락으로 삼는다거나... 1904년 대구읍성을 허물 때는 (잘 다듬어진) 성돌을 업자들에게 팔았다고 하니 성돌을 '활용'하는 것은 단지 중국만의 일은 아닌듯. 사실 문화유산이니 보존하고 관광용으로 개발하자는 의식 자체가 생긴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도 성 보존 운동 일어나기 전에는 죄다 무너트렸다
게다가 일부 지역의 장성은 댐 공사 때문에 심지어 수몰된 장성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산맥을 따라 성곽을 쌓더라도 강 주변이나 주요 평야지역을 지나가려면 장성의 위치도 낮아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느낌상 아이러니.
하여간 이런 이유로 인해 예전 명, 청 시기의 장성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지역은 20%에 불과하다고 하며, 현재 만리장성 중 관광지가 된 구역은 마오쩌둥이 복구 공사를 진두지휘한응? 곳이 상당수다. 마오쩌둥이 복구도 했나?
만리장성이 길기도 길기 때문에 일부 베이징에 가까워 관광지로 개발된 '포인트' 부분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조금만 멀리 나가면 다 바스러져가는 성벽인 구간이 많다. 만리장성의 특성상 쭈욱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장성을 따라 수십 km를 걸어가보기도 하고,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금지이지만 만리장성 외곽지역의 인적이 드문 성벽 위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면서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있다.
또, 일부는 복구를 했는데, 하필 시멘트로 복원해놓기도 논란이 되었다. # 설상가상 만리장성 바로 밑에 고속철도 역을 건설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
3 역사 왜곡 논란
흉노족을 튀르크의 옛 조상들중 하나라고 보는 터키에서는 만리장성이 튀르크족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보고 있다.[9] 몇몇 터키의 극우 성향의 사학자들은 흉노를 매우 강하게 과장하기 위해서 만리장성의 위치나 길이를 왜곡하는데, 심할 경우 만리장상의 동단 기점을 연해주로 왜곡하기도 한다.
몇몇 자료에서는 고구려성을 장성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박작성 유적을 만리장성 동쪽 부분의 시작 지점으로 삼겠다는 몇몇 사학자들의 주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지듬 단동에 위치한 산해관이었으며, 고구려의 박작성으로 비정되는 호산산성은 장성의 동단 기점이 아니었다. 물론 고지도에는 현 요동 반도 지역에 벽돌로 쌓은 장성 대신 목책과 보를 표시하고 있어서 이를 장성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중국에서 펴낸 장성에 관련된 연구 서적을 살펴 보면 '목책은 장성으로 볼 수 없다.'고 당당히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책과 보를 중심으로 쌓은것을 장성이라고 주장하고 이는 것이다. 또한 장성의 정의를 방어 목적으로 길게 이어 쌓은 성이라 말하는데도 요동의 목책은 장성처럼 길게 이어 설치한 것이 아니라 주요 군사 지역 주변에 드문드문 설치한 것이라 이러한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해당 주장의 요지는 여러 고지도에서도 표시되지 않는데도 '장성의 석축'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련 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보고서가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의외할지도 모르겠지만, 환빠들 중에서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작자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민족이 살던 영역은 하북, 요동 반도 인근인데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몰아내고 만리장성을 세운거라고 한다.
2012년에는 만리장성의 길이가 기존의 두 배 이상 늘어난 21196.18km라고 발표했다. 21196.2km이면 서울에서 시카고나 토론토까지의 거리의 두 배,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우루과이 접경지대까지의 거리보다 길다. 서울에서 시카고는 10500km, 토론토는 10700km,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19400km, 몬테비디오까지는 19600km다. 기사를 살펴 보면 중국의 발표는 진나라 및 한나라, 명나라의 장성 유적뿐만 아니라 그외 기타 왕조에서 건설된 다양한 장성을 조사한 것으로 그것을 모두 합산하여 만리장성의 길이가 연장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보면 여러 왕조의 장성들을 구분 없이 합산한 중국과, 보통 진나라 때나 명대의 장성만을 만리장성으로 여기는 한국 언론의 오해가 빚은 일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4 이야깃거리
4.1 우주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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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빌딩 꼭대기에서 길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보인다고 하는 말과 같다.
만리장성은 사실 길이는 길지만 폭이 좁으므로[10]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저 위의 사진도 줌기능으로 당겨서 본거지, 본래 사진을 보면 그냥 안 보인다.
본래 이 말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유명한 천문학 책인 코스모스에서 '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실은 오늘날 지구를 선회하는 인공 위성에서 식별할 수 있는 지구의 유일한 거대 (인공)지형지물이다'는 문구가[11] 달로 와전된 경우로 보인다. 당연하지만, 중국인 최초로 유인 우주선에 탄 양 리웨이는 지구 바깥에선 그 어느 건물도 그 어느것도 안 보였다고 말하면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4.2 대중문화에서의 만리장성
- 각종 창작물에서는 중국의 상징 중 하나라 그런지 중국인 캐릭터들의 홈 그라운드로 많이 애용되기도 한다.
- 대항해시대 3에서도 등장하며, 성도, 개봉, 북경, 항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북경 북쪽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발견 직후 도적단과 시비가 붙어 전투가 발생하기 때문에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12] 발견 이후에는 증거품으로 청룡상을 얻는데, 부가 능력치가 해상전시 사격 위력 1.5배 증가 및 반란 억제 등 쓸만한 것이어서 함선에 달아두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인식 11랭크, 고고학 13랭크에 발견할 수 있는 사적 발견물이다.
- 바람의 나라(게임)에서는 중국 남부인 광동성, 복건성, 강서성, 도삭산을 가기 위해 거쳐가는곳이였으나, 패치 이후로 한번에 부여, 고구려에서 중국 남부로 갈 수 있게 되어서 아무도 안지나다닌다...
-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도 단골로 나오는 불가사의. 문명 3에서는 자국 도시에 건설된 성벽의 효과를 2배로 높여주는 기능이었고, 문명 4에서는 야만족이 자국 영토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꽤 유용한 원더기 때문에 꽤 효과가 좋다[13]. 문명 5에서는 건설된 국가의 영토 내에서 적의 행동력 소모를 두배로 만들며, 다이너마이트 개발시에 효과가 사라진다. 문명5에서 기술개발로 효과가 사라지는 유일한 불가사의인데, 그만큼 효과가 뛰어나서 멀티에선 기본으로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문명 6에서는 슬프게도 중국의 고유 시설로 강등당했다는 소문이 있다.
- 요리왕 비룡의 리액션에 등장하는 그 곡의 제목이 만리장성(万里の長城)이다.
오오! 이 맛은!만화책에선 만리장성을 이용해 요리도 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판다리아엔 사마귀족의 침범을 봉쇄하기 위해 천둥왕 레이 션이 쌓아놓은 용의 척추가 있다. 볼 것도 없이 진시황과 만리장성의 오마쥬.
- 스타크래프트 2에서 공성전차 행성요새 미사일 터렛 벙커 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 테란전술도 만리장성이라고 부른다.
- 롤러코스터 타이쿤 2에 만리장성 주변을 개발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역시 대륙의 시나리오답게 돈이 무한이다.
- 중국의 유명한 문화유산이자 상징적 아이콘이다 보니 해외 스타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꼭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스타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곧잘 방문하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그 가족들도 중국 방문시 만리장성에 오른적 있다.
4.3 기타
거리가 거리인 만큼 만리장성을 걸어서 정ㅋ벅ㅋ하는 것은 중국 내에서도 대단하다고 보도되는 일이다. 사람이 있는 관광구역이야 당연히 관리가 잘 되지만,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관리가 안되어 무너질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위험한데다 인가도 없고 각종 야생동물과 독초가 득시글대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어지간한 등산보다 험난해서 조난 사고도 많고, 2012년에는 폭설로 인해 만리장성 등산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 3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단지 완성된 성을 따라 걷는 일만도 이러한데 그 비탈지고 긴 거리를 따라 성을 축조한 당시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올 노릇이다.
수나라의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2대 대공사 작품이라고 하지만, 대운하는 당시부터 오늘날까지도 진짜진짜 유용하게 잘 쓰이는 것에 비해[14] 만리장성은 청대 이후 기능이 거진 장식화되었고 오늘날엔 그냥 관광자원일 따름이다. 영토가 북쪽으로 크게 확장됐으니 당연하다
참고로, 현재까지의 천문 관측에 의하면, 우주는 텅 빈 공간을 거대 은하단들이 마치 벽처럼 채워놓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구조를 만리장성(great wa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족으로 남녀가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을 비유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민화의 내용 줄거리는 "길가던 행인이 날이 저물어 어느 여염집에서 하룻밤 묵게 해줄것을 청하였는데, 그 날 밤 집 여주인이 행인과 하룻 밤을 함께 보내며 만리장성에 노역을 나간 남편에게 편지를 전해달라 부탁하였고 마침 행인이 그곳을 지나갈 참이라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행인은 만리장성에 도착하여 그곳 감시관에게 편지를 전하였는데 편지의 내용인 즉슨, 이 사람이 남편과 교대하기로 한 사람이오니 남편을 집으로 보내주시오 하는 내용[15] 이었고 행인은 노역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내용." 이것이 "하룻밤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어원이라고 한다. 헉
전승에 따라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남편 대신 하루만 일해달라고 해놓고는 부부가 야반도주해서 평생 돌 나르게 됐다는 내용도 있고, 지나가던 손님이 아니라 감시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인이 워낙 절세미녀라 자발적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만리장성 쌓으러 갔다는 버전도 있다.
베이징 근처 4개 구역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중 서양 사람들은 주로 거룡관 코스를 선호하고 한국인들은 팔달령 코스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인즉 서양 관광객들은 진짜로 등산하듯 아래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며 즐기는 경우가 많고,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은 케이블카로 얼른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진 찍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물론 패키지 관광의 콩나물시루같은 일정도 한몫 하겠지만 그런데 저렇게 등산하듯 올라가던 서양 관광객 중 몇 사람이 10월 말 불어닥친 이상한파와 폭설로 인해 장성 중간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동사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있다.
슬라이딩카를 타게 되는 위키러가 있다면 성수기일 경우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으니 대기시간을 반드시 확인하자.
현재 만리장성의 벽의 80% 정도가 훼손되어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이름낙서. 만리장성의 벽은 기본이고 케이블카의[16] 벽과 유리 부분에 낙서가 많이 되어있다고 한다. 심지어 낙서를 칼로 판 후에 판 곳을 화이트 등으로 채우는 등신같은짓을 해서 복구도 힘들게 한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유산이기 전에 세계문화유산이어서 개인이 훼손시 최소 160만원에서 최대 8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어있다. 그러니 낙서하면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망신에 집안망신이므로 절대 하지 말자. 자기나라의 유산에 누군가 낙서하면 기분좋을 사람이 있을까?
- ↑ 명대의 주요한 장성 기준
- ↑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 ↑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 ↑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 ↑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 ↑ 중국에서도 만리장성이라고 부르는 줄 아는 사람들이 꽤 많다.
- ↑ 만 리는 약 4000km이고, 만리장성의 길이는 6350km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만 리의 약 1.5배가 된다.
- ↑ 이쪽에서는 아예 만리장성을 뜻하는 Çin seddi를 상대방을 관광보냈다 혹은 따먹었다 정도의 은어로 쓰는중이다.
- ↑ 만리장성의 전체적인 길이가 8000km 정도 되는데 폭은 고작 10M도 안된다.
- ↑ 한국어판에서는 119P
- ↑ 일기토나 지상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 ↑ 덤으로, 문명 3까지는 단순히 해당 원더가 지어진 도시의 배경에 만리장성이 세워진 모습만 보여준데 비해, 문명 4에서는 진짜 메인맵상의 자국 국경 전체를 성벽으로 감싸는 비범한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
- ↑ 하지만 그것을 실현한 수양제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폭군으로 욕먹고 있다. 그나마 대운하 덕에 자기 이름만은 역사에 확실히 각인시켰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 ↑ 그리스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편지가 등장한다. 벨레로폰 참조
- ↑ 케이블카의 색깔이 하얀색이라 한다.
- ↑ 실제로 현지에서 만리장성 벽돌이 하나당 한화 5천원 선에서 팔리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