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칙 스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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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크 아르딜라와 더불어 꽃다운 나이에 사고로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동남아시아의 스타

말레이시아의 가수. 그룹 스핀과 듀오 아칙 & 나나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였다.

1 생애

1982년 느그리슴빌란에서 "압딜라 무라드 빈 모하마드 샤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사실 흔히 알려진 이름인 "아칙 (스핀)"은 예명. 위키백과에서는 본명을 문서 이름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흔히 알려진 예명으로 문서를 만들겠다. 그렇지만 본명으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는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어 했는데 1998년 학교 동창들과 함께 스핀이라는 그룹을 결성했고 바로 가수로 데뷔했다. 바로 이듬해 학교 후배였던 시티 노르디아나를 만났는데 서로에 대해 깊은 인연을 맺었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공유했으며 2000년 아칙 & 나나라는 듀오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1]

아칙은 스핀 그룹의 리더라기보다는 시티와의 듀엣으로 더 잘 알려져 왔다. "Memori Berkasih", "Resepi Berkasih", "Paling Comel"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아칙의 경우는 20대 전후 정도로 뭐 그렇다 치지만 시티의 경우는 10대 중후반 정도였고, 어린 나이부터 가수를 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보니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여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 활발하게 활동했던 많은 가수들이 뒤안길로 사라졌는데 반해 시티는 지금도 매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여하튼 2000년대를 장식하던 이 듀오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2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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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실제 사진이며,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관련 없는 사진이 절대 아니다.

2010년 4월 17일 카장-스름반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던 중 갑자기 차가 도로를 벗어나 어딘가에 크게 부딪혔다. 뭐 이래도 살아나지 않을 수 있나 하겠지만... 추돌사고와 함께 차가 불길로 뒤덮혔고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27세.[2] 그의 죽음은 그야말로 큰 충격을 주었고, 그가 활동하던 그룹은 이로서 사실상 해체되었다.[3] 이웃나라 인도네시아니크 아르딜라와 더불어 사고사로 인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대표적인 불운의 아티스트로 기록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은 날은 폴란드의 대통령 레흐 카친스키와 아내가 죽은 지 정확히 1주일(!) 되는 날이었는데, 점쟁이라면 이걸 갖고 고인드립을 할지도 모르겠다. 뭐 어디까지나 우연일 뿐...

시티하고 결혼한 적은 없으나 둘의 활동을 보면 사실상 부부와 다름 없었고, 때문에 시티는 사실상 미망인이 되었다. 물론 이듬해 시티의 진짜 남편마저도 세상을 떴다.

3 트리비아

생전에 단 한 번도 솔로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룹, 듀오 활동을 했었지 실제로도 찾아보면 솔로 활동 경력은 찾아볼 수 없다.

4 앨범

4.1 아칙 & 나나

5 각주

  1. 이 때문에 종종 아칙과 시티가 부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엄연한 잘못이다. 아마 이러한 배경이 와전된 모양인데, 실제 아칙의 아내는 로즈 자이툴이었고 시티의 남편은 모하마드 파이잘 유수프였다. 물론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2. 만 나이. 참고로 말레이시아 나이로는 28세.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되 한국 나이처럼 새해가 되면 한 살 먹는 식이다. 다만 생일 전에는 'unofficially ** years old'라는 식으로 하여금 '아직 완전한 **세는 아니다'라고 하다가, 생일이 되면 'officially ** years old', 즉 '완전히 **가 되었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여기서는 만 나이로 기재.
  3. 아직 해체를 선언하지는 않았으므로 해체된 것은 아님. 다만 하필이면 리더가 죽었으니 해체된 거나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