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ッツ島血戦勇士顕彰国民歌
1943년 곡으로 육군성보도부와 아사히신문의 공모전에서 선정된 노래이다.
노래가사 소개 전에 애투 섬 전투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 전투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 전쟁 말 노래를 부르던 옥쇄가 본격적으로 선전되게 한 계기이기 때문.
앗츠 섬은 알류샨 열도에 있는 에투(Attu) 섬을 일컫는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키스가 섬과 함께 점령하였다가 1943년에 미군의 탈환작전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
당시 애투 섬에는 야마자키(야마사키라고도 함) 야스오 山崎保代 대좌(전사후 소장으로 특진)가 지휘하는 2900여명의 일본군(제 303 독립보병대대, 100여명의 해군요원, 공병과 종군기자)이 주둔하고 있었다.[1]
1942년 12월 미국은 알류샨 열도를 탈환할 계획을 세우며 키스가 섬과 애투 섬을 수복하려 하였는데, 키스가 섬에 몇 차례의 공습을 실시했으나 실적이 저조하고 키스가 섬은 방어태세가 더욱 엄중하여 상륙 시 희생이 클 것이라 판단, 먼저 애투 섬을 공격하기로 한다.
정작 애투 섬 탈환전에서도 미군은 많은 난항을 겪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미군은 에투 섬의 지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애투 섬 근방은 연무가 심하여 선박의 항행에 위협이 되었기에 미 해군은 애투 섬 4km 근방의 수로로 항해하는 것을 금지했고 가장 최신의 애투 섬 지도는 1934년 애투 섬에서 0.9km 정도 떨어진 해안에서 측량하여 만든 지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애투 섬에는 원주민인 알류트 족이 수십명 정도 살았으나 이들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고 땅이 물렁하여 측량을 위한 탐사도 힘들었기 때문에 내륙의 지형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어쨋거나 초기의 시원찮은 상륙을 끝내고 미국은 막강한 화력을 등에 업고 일본군을 탈탈 털었다. 다만 겨우 18일간의 전투에서 3천도 안되는 일본군과 붙어(실제 전투병력은 2600여명에 불과) 600의 희생자(공식기록에는 549, 참전자의 증언으로는 대략 600)를 낸 미군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한다.
일본군의 최후는 처참했는데, 2600의 전투병력은 순식간에 800명으로 줄었다. 결국 5월 28일 오후 일본군은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기로 결정(실제 28일 오후 대본영에 보낸 전문에는 "지금까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옥쇄를 각오하였다. 부상병은 모두 처리했으며 이 전신을 마지막으로 무전기는 파괴하겠다"라 하였다.), 부상자들에게 자결을 요구하고 남은 전투식량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리고 미군 진지로 돌격하는데 야전병원이고 군 막사고 뭐든 닥치는 대로 광분하며 공격하다가 미군이 미리 구축한 화망에 걸려 패퇴하고 결국 다음 날 잔존병 몇몇이 도망치다가 수류탄으로 자폭하면서 포로로 잡힌 29명을 제외, 3000여 일본군은 전멸했다. 대본영은 5월 28일까지 애투 섬의 일본군을 철수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다음 날 함락 소식이 전해지면서 포기하고 키스가 섬의 일본군을 전원 철수시키기로 결정한 후, 애투 섬의 일본군 전멸을 옥쇄라 미화하며 선전하였다. 이 노래도 국민들에게 애투 섬의 옥쇄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키스가 섬 철수작전은 알다시피 성공적으로 전원 철수하였다).
가사에 깨알같이 전투 과정을 설명해 두었는데...
내용에 거탄이 떨어진다... 이 내용은 당시 잉여화된 구식 전함 - USS 네바다, 펜실베니아, 아이다호 등이 잉여롭게 진주만에서 인양, 수리 후 캘리포니아에서 정박하면서 미운 오리, 연료만 축내는 잉여 취급만 받다가 애투 섬 탈환전에서 미군의 화력지원을 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후 미군은 구식전함을 각종 상륙전의 화력지원용으로 혁혁히 사용한다.
그 다음 가사에 남쪽에서 다가오고 북쪽에서 공격한다...이것은 당시 미군은 상륙지점을 애투 섬 남과 북쪽 양쪽에서 진행하여 치차고프 항으로 몰고 들어오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를 나타낸 것이다.
참고로 가사에는 적 6천을 도륙했으나...라 되어 있으나 이건 허풍이다. 실제로 미군은 600여명이 전사, 1100여명 전투 중 부상, 2100여명이 날씨가 좋지 않아서 - 동상이라던가 - 로 인해 후방으로 전환의 피해를 입었다.
가사
刃も凍る北海の 御楯と立ちて二千余士
精鋭こぞるアツツ島 山崎大佐指揮を執る
山崎大佐指揮を執る
칼도 얼어붙는 북쪽 바다의 방패[2]로 선 2천여 무사
정예병 모인 앗츠 섬 야마자키 대좌 지휘를 맡는다
야마자키 대좌 지휘를 맡는다
時これ五月十二日 暁こむる霧深く
突如と襲ふ敵二万 南に邀へ北に撃つ
南に邀へ北に撃つ
때는 5월 12일 새벽의 안개 짙은
돌연히 습격한 적 2만 남쪽에서 맞아 싸우고 북쪽에서 친다
남쪽에서 맞아 싸우고 북쪽에서 친다
陸海敵の猛攻に わが反撃は火を吐けど
巨弾は落ちて地を抉り 山容ために改まる
山容ために改まる
육지 바다의 적의 맹공에 우리 반격은 불을 토하더라도
거탄은 떨어져 땅을 찌르고 산의 모습도 이에 바뀐다
산의 모습도 이에 바뀐다
血戦死闘十八夜 烈々の士気天を衝き
敵六千は屠れども 吾また多く喪へり
吾また多く喪へり
혈전 사투(이어진) 열여덟 밤 열렬한 사기 하늘 찌르고
적 6천을 도륙했으나 우리 역시 손실이 크구나
우리 역시 손실이 크구나
火砲はすべて摧け飛び 僅かに銃剣、手(て)榴弾
寄せ来る敵と相搏ちて 血汐は花と雪を染む
血汐は花と雪を染む
화포는 전부 망실하여 약간의 총검과 수류탄(을 가지고)
밀려드는 적과 서로 만나 피는 꽃과 눈을 물들인다.
피는 꽃과 눈을 물들인다.
一兵の援、一弾の 補給を乞はず敵情を
電波に託す二千キロ 波頭に映る星寒し
波頭に映る星寒し
한 명의 응원군, 하나의 탄환 보급을 구걸하지 않고 적 정세를
전파에 맡기는 2천 km 물결에 비치는 별 차갑다
물결에 비치는 별 차갑다
折柄拝す大御言 生死問はぬ益良雄が
ただ感激の涙呑む 降りしく敵の弾丸の中
降りしく敵の弾丸の中
마침 그때 받잡은 폐하의 말씀 “훌륭한 장부들의 생사를 묻지 않겠다"[3]
이에 감격의 눈물 삼키고 떨어지는 적탄 가운데
떨어지는 적탄 가운데
他に策なきにあらねども 武名はやはか穢すべき
傷病兵は自決して 魂魄ともに戦へり
魂魄ともに戦へり
이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사의 명예 설마 더럽히겠는가
부상병은 자결[4]하여 혼백으로 함께 싸운다
혼백으로 함께 싸운다
残れる勇士百有余 遥かに皇居伏し拝み
敢然鬨と諸共に 敵主力へと玉砕す
敵主力へと玉砕す
남은 용사 백여 명은 멀리 궁성에 요배하고
감연히 함성과 함께 적 주력에게 옥쇄하였다.
적 주력에게 옥쇄하였다.
ああ皇軍の神髄に 久遠の大義生かしたる
忠魂の後受け継ぎて 撃ちてし止まむ醜の仇
撃ちてし止まむ醜の仇
아아, 황군의 정수에 영원의 대의 살린
충혼의 뒤를 받아 이어서 쏘아 쓰러뜨리리라 추악한 원수
쏘아 쓰러뜨리리라 추악한 원수
이 가사만으로도 충분히 광기를 느낄 수 있지만 더욱 충격인 것은 이 노래의 어린이용 버전(...)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