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석

(야나가와 지로에서 넘어옴)


청년기 모습 밤에 보면 무섭다


노년의 모습

1 개요

梁元錫. 柳川次郎(야나가와 지로). 1923~1991. 재일동포이자 야쿠자이다.

2 생애

이 사람은 폭력면에서는 엄청났는데, 굉장히 흉악하고 잔인했다. 야나가와카이) 보스로 이권이나 이익을 위해서는 같은 재일동포도 참살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왔는데,가족들은 돌아갔지만 자기는 남겠다고 해서 남았다. [1]오사카에서 세력을 떨치다가 고베의 고위 폭력단 야마구치구미의 산하로 들어가 야마구치구미가 전국구로 세력을 떨치는데 앞장 섰다. 1968년 아이치현 민단에서는 폭력단을 추출하기로 했는데, 민단 지부장 김용환은 최재수에게 피살되었다. 최재수는 양원석의 야나가와 카이의 부하였다. 1975년에는 한국에 TV 100대를 기부하는 쇼를 했다(...)당시 기사,당시 사진.

1976년에는 스모선수 타카노하나의 한국 방문을 주선했다. 타카노하나는 미야자와 리에와도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2] 일본 최대의 폭력단 야마구치 구미의 전투군단이 그의 야나가와카이였다. 당시 칼럼에 의하면 키토우구미와 이권다툼을 했고, 메이유카이를 처부수는데 앞장섰으며, 관서가 주무대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조직폭력단 해체작전인 정상작전의 결과 조직을 해산했는데 야마구치구미로부터 본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멋대로 해산하였다 하여 파문되었다. 다만 부하들이 모두 야마구치구미의 직계로 들어가 활약한걸로 보면 어느정도 야나가와 카이를 희생양으로 해서 겉으로만 해산하는 방식을 취했다는게 중론이다. 1988년에는 미야기현 민단 지부장이 되었다. 이후 조용히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1. 해방후 시모노세키에서 한국으로 출항하는 연락선을 타려던중 일본불량배들과 싸움에 휘말려 배를 놓치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2. 이 타카노하나는 앞에 나온 타카노하나의 아들. 아버지 타카노하나는 50년생이고 아들 타카노하나는 72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