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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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やくざ, 일본범죄 조직. 중국의 삼합회와 더불어 아시아의 대표적인 깡패들.. 이들은 스스로를 극도(極道)라 칭한다. 80년대는 협객이라는 자칭도 많이 사용했다.

Japanese Mafia(일본 마피아)로 불린다.

일본 경시청조직범죄대책부 201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일본 내에 야쿠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약 53,500명 가량으로 추산되며 2010년을 기점으로 급감세에 있다.

60년대 중후반 벌어진 제1차 정상작전 이후 각지에서 군림하던 조직들이 해산과 재구성을 거듭하여 2015년 8월경 까지 전체 야쿠자의 절반 가량은 일본 야쿠자 3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스미요시카이(住吉会), 이나가와카이(稲川会) 소속의 하위조직이 되었고, 나머지 절반 역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야마구치구미 약 14,100명[1] , 스미요시카이 약 7,300명[2], 이나가와카이 약 5,800명[3]으로 3개 조직이 전체 야쿠자 세계 에서 절반 이상의 수와 세력을 과시해 가며 균형을 이뤘었지만 2015년 8월 6대 야마구치구미에 반기를 들고 독립해 나온 고베야마구치구미의 규모가 기존 3대 조직에 비견될 수준인 약 6,100명[4] 정도로 고베오사카를 비롯해 전국적인 세력을 갖추고 있어 기존의 야쿠자 세력도가 재편되게 되었다.

하지만 4대 야마구치구미의 분열 당시 규모가 현재의 고베야마구치구미 보다도 컸었던 이치와카이가 5년 정도의 항쟁후 다시 야마구치구미에 재흡수 되었던 사례도 있었기에 2016년 현 체제가 앞으로 어떠한 추세로 진행될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

2 명칭 유래

야쿠자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많은 설이 있으며, 그 중에서는 카부 도박 '쌈마이'의 필패수인 893 조합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쌈마이는 패 3장을 뽑아 숫자 합의 끝자리를 가장 높게 만드는 도박으로 카부 도박에는 '7 이상을 뽑으면 다음 장을 뽑지 않아도 된다'는 기본 규칙이 있다. 만일 첫 장을 뽑아 8, 둘째 장을 뽑아 9가 나오면 끝자리가 7이 되는 좋은 조합이다. 여기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손을 멈추겠지만, 비상식적으로 모 아니면 도를 고집하는 사람이면 한 장을 더 뽑아 좋아야 본전, 나쁘면 3을 뽑아 0을 만들고 자멸할 것이다.

이처럼 쓸모 없는 조합인 8(や), 9(く), 3(ざ)를 단어로 만들고 '쓸모 없는 존재, 인생을 무모한 도박처럼 살아가는 인간[5]'이라는 의미로 사용해왔으며, 나중에는 후자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들이 반사회적인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집단'으로 변하여 바쿠토를 일컫는 단어가 되었다는 설이다.

3 역사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지라 항목이 길어 분리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4 구성

야쿠자들은 자신들의 패거리를 XX구미(組) 또는 xx카이(会)라고 부른다. 가끔 구미나 카이 외에도 xx흥업(興業)이라는 간판을 내거는 조직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패거리에 명칭을 스스로 붙이는 순간 폭력단체 구성이라는 폭처법의 요건을 완벽하게 갖추게 되어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대한민국 폭처법에 의하면 폭력단체의 수괴는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우리가 잘 아는 XX파, OO파 하는 것은 경찰관들이 붙이는 별명이다.

공개적으로 이렇게 부르게 된 이유는 1884년에 '오카리코미(大刈込み)라는 도박단속법이 발표되면서 아쿠자들은 도박사업을 숨기기위해 곤고구미(金鋼組)처럼 건설회사 이름으로 쓰이던 구미를 자신들 패거리의 이름으로 썼고 이것이 구미의 시초가 된다.

야쿠자 구미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 쿠미쵸(組長)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폭력조직의 우두머리로 카이쵸(会長)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오야붕은 아버지 같다는막장부모 의미에서 부르는 일종의 애칭으로, 쿠미쵸가 아닌 조직원들은 쿠미쵸에 대비되는 쿠미잉(組員, 조원)으로 지칭하거나 자식이라는 의미의 꼬붕으로 부른다.
  • 샤테이가시라(舎弟頭) : 두목과 형제관계를 맺은 자들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 와카가시라와 비슷한 간부급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약간 거리가 있는 직책이다. 와카가시라가 실질적인 조직 운영을 담당한다면, 샤테이가시라는 쿠미쵸의 상담역에 가깝다. 엠블럼 TAKE2에서 '사제 총책임자'로 번역된 직책이 바로 이것.
  • 샤테이가시라 호사(舎弟頭補佐) : 샤테이가시라의 보좌 업무를 맡는다.
  • 와카가시라(若頭) : 두목보다 한 항렬 낮은 부하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 일본에서 한 마을 청년들 중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와카가시라는 쿠미쵸의 보좌/조직원과 동일한 꼬붕이며, 조직 차원에서 보면 부두목이다. 통상 조직의 운영은 와카가시라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가장 유력한 차기 두목 후계자이다.
  • 와카가시라 호사(若頭補佐) : 조직의 간부로 올라가면 맡게 되는 직책. 일반적으로는 쿠미쵸 및 와카가시라 예하 업무를 맡고, 소규모 조직에서는 행동대장의 업무를 맡는다. 업무 성격에 따라 혼부쵸(本部長)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와카슈(若衆) : 일반적으로는 행동대원의 역할을 맡지만 하위 조직이 존재하는 거대 조직이나 연합회의 경우 간부급의 위상을 갖추는 경우도 있다.
  • 쥰고세이인(準構成員) : 쿠미잉보다 아래에 있는 구성원으로 한자에서 보이듯이 아직 사카즈키 의식을 치른 정식조직원이 아니라 조직원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지 간보는 단계이다. 때문에 나갈때 손가락을 자른다던지 하는 의식 역시 없다. 야쿠자물을 보면 준구성원 단계를 거치지 않고 조직원으로 바로 받아 주는 것만 해도 파격적으로 본다.

부두목부터 조직원까지 모두 다 같은 두목의 자식들로 같은 항렬이지만 먼저 가입한 순서에 따라 연공서열은 존재한다.

요즘은 기업형으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간사라던가 이사라던가 하는 식의 일반기업의 직급도 차용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조직 야마구치구미도 1차 단체는 일반 기업의 직급을 차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야쿠자 조직들은 내부서열을 가족처럼 만들어 두는데, 우리가 잘 아는 두목의 별칭 오야붕(親分)은 원래 아버지에서 따온 말로 자기 졸개들을 꼬붕(子分)들의 아버지란 의미다. 꼬붕들 사이에서도 가입한 순서에 따라서 항렬이 존재하는데 먼저 가입한 조직원을 아니키(アニキ)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야쿠자 입단식인 사카즈키고토도 의부모 혹은 의형제의 의식이다.

여기서 가끔 조직원들이 야쿠자 두목이 되는 경우 원래 같은 항렬의 조직원의 순서가 꼬이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나온것이 사테이(舎弟)라는 조직원으로 쿠미쵸는 자기하고는 같은 항렬이라 오토우토붕(弟分)이라 부르고, 조직원들 입장에서는 숙부가 되기 때문에 오지키(オジキ)라고 부른다. 야쿠자는 보통 와카카시라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며 때문에 후계자도 와카카시라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번 사테이로 밀리게 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때문에 사테이들은 기존의 조직을 물려받을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이 뛰어난게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하위 단체를 만들어 쿠미쵸가 되거나 이마저도 안되면 상담역 등의 이름으로 실권이 축소된다

여기에 야쿠자 구미 사이에서도 상하관계가 존제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사테이들이 조직을 만들어 나갈때 원래 구미의 하부조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거대 야쿠자 조직은 그 조직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하부조직이 암세포처럼 뿌리깊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만화 엠블럼 TAKE2의 예를 들자면 광역지정 폭력단 칸토 핫슈미 타가미 연합회(1차조직) 內 타가미 우메자와 일가(2차조직) 內 제2대 카이에다파(3차조직) 內 토시오파(4차 조직) 부두목 에바라 싱고와 같은 말단 조직의 간부라는 긴 직함을 같게 된다. 실제 일본에서 이정도 대규모 조직은 3개 정도밖에 안 된다. 만약 상부단체의 두목이 된다면, 자신의 조직은 통상 부두목에게 넘겨 주고 승격한다.

주 수입원은 보호비 갈취, 도박, 사채 등이다. 전후 혼란기의 도쿄 등 대도시의 조직들은 흥행사와 연계하여 싸구려 흥행사업을 벌이고, 해안지역 도시에 위치한 조직은 항만하역 등과 관련된 이권개입을 주 수입원으로 삼았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다오카 카즈오를 위시로 정치권에 개입하는 일도 있었으나, 거품경제의 붕괴로 야쿠자의 주수입원이 개박살나면서 현재는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이 급감한 상태이다.

연예계의 경우는 에도 시대의 바쿠토 시절에도 가부키나 순례공연을 후원했을 정도로, 일본 폭력조직과 연예계와의 결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메이저에 속하는 후원사가 있지 않는 이상, 공연 수입을 야쿠자와 나누는 일이 종종 있을 정도이다. 때문에 야쿠자 간의 내부투쟁[6]으로 인해 연예계 관계자가 부상당하는 일도 발생한다.

비교적 음지에 속하는 AV 사업에도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개중에서도 몰카, 투고류와 같은 일반인 대상의 리벤지 포르노노모를 주로 다룬다. 다만 아동 포르노등의 미성년자를 이용한 경우는 일본에서의 처벌 수위 역시 높은데다가 공급책도 마땅치 않고 거기에 그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감수해야 하므로, 오사카의 아주마구미처럼 아예 막 나가는 조직이 아니라면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불법 포르노도 마찬가지지만 왠만한 선진국급의 국가에서는 아무리 불법이라도 매춘이나 포르노에 대해 구태여 빡빡하게 굴지는 않는다. 아동 포르노의 경우 필연적으로 아동 학대를 수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마약의 경우는 야쿠자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다오카 카즈오가 생전에 거듭 마약만은 손대지 말 것을 강조한 관계로, 표면상으로는 마약에 손대지 않는 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다오카 카즈오가 말년에 정치에 입문할 당시에는 야쿠자 조직 자체를 우익 정치단체로 포장시킬 일에 주력하고 있을 당시 언론에 표방하여 이미지를 관리를 위한 접대용 멘트에 불과했다. 어느 폭력 조직이고 정계를 염두해 둔다면 대외적인 이미지를 엄청나게 관리한다. 과거 1공화국 시절 조폭들도 그랬고, 콜롬비아 카르텔들도 그러했다. 사실 다오카 카즈오의 이 발언은 이나가와 카이 항목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일종의 관동 진출의 교두보마련을 위한 꼼수성 발언에 가까웠다. 당시 다오카는 정치적 동맹관계인 다나카 세이겐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약유통근절동맹이라는 형식상의 기구를 설립, 관동지역에 인맥을 확보하고자 하였는데 마약을 손대지 말라고 이야기한 건 사실 이 시기에 주로 날린 멘트다.

이후 21세기에도 표면상으로는 어느 조직이든 "우린 마약만은 손대지 않는다"라는 멘트를 호기롭게 날리지만 하부조직에서는 알아서 다 판다. 다만 하부조직이 마약을 팔다 발각 당하면 상부조직에서는 "우린 모르는 일"이라며 하부조직에 파문장을 날리고 적당한 희생양을 골라 경찰에 자수시키며 도마뱀 꼬리 자르듯 빠진다. 혹은 언론매체나 개인이 야쿠자 조직을 취재할 때 "우린 마약은 안 만진다"는 대답을 곡해하기도 하는데, 마약은 우리 조직 사업이 아니라서 못 만진다는 의미를 협객이라서 안 만지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1969년 하타노 아키라(秦野章) 경시총감[7]"야쿠자가 마약을 안 만진다는 말은, 어부생선을 안 만진다는 말과 같다"며 다오카 카즈오의 발언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실제로 조직의 우두머리가 수하들에게 딱히 범죄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고, 윗대가리들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칠수록 조직 내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으며, 가장 효과적이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범죄인 것 뿐(…). 덕분에 돈이 벌리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지라 온갖 사업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 개중에는 비교적 합법적으로 돈을 굴리는 야쿠자들도 있는 편. 한마디로 조직의 상위단체들은 돈을 가져오라는 지시만 내릴 뿐 표면상으로 하위단체들의 사업내역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말단을 잡아내더라도 윗대가리까지 잡아넣기는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기면 하위조직을 파문해버리는 식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문은 원래 조직에서 큰 잘못을 하거나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꼴통을 쫓아낼 때 쓰는데 대개 "이놈은 우리 조직에서 쫓아낸 놈이니 이놈이 뭔 짓을 하든 우리 조직과는 상관 없습니다."는 취지의 통지문을 각 조직에 돌린다. 이렇게 조직에서 아예 내쫒는다는 의미고 더 이상 조직과 관련없다는 의미지만, 복권의 여지가 있는지라 이를 이용해 총기류 관련 사고 같이 하위 조직원이 위장파문을 당하고 출소 후 높은 지위와 함께 복권되는 경우가 많아 파문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의 조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두목이 직접 명령을 내리는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말을 하고 부하가 그걸 알아서 해석해서 실행하는 형식[8]을 취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두목과 부하들의 결연식을 할 때나 의형제의 의식을 맺을때 술잔을 나누는 의식을 치룬다. 이 술잔은 매우 중요하여 꼭 보관해야 하며, 잃어버리면 파문 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의형제를 맺으면 서로 나이나 세력을 따저 형,동생을 정하고 서로 위치가 비슷한 경우 그냥 교다이라 부른다. 한때 일본 제일의 조직이였던 야마구치구미 역시 과거의 영광을 잃고 지금은 후발 주자인 스미요시카이와 이나가와카이에 밀리는 등, 현대에 이르러서는 세간의 인식 변화와 폭력단 대책법의 영향으로 많이 쇠퇴한 편이다. 때문에 과거 주 수입원이였던 건설회사에 대한 입김도 많이 약해졌다.

재일교포부라쿠민은 야쿠자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공안조사청 조사 제2부 부장을 역임한 스가누마 미츠히로는, 6대야마구치 구미의 2인자인 타카야마 키요시로부터 야쿠자에서의 재일교포와 부라쿠민의 비중이 전체의 9할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본래부터 재일교포 같은 비일본계 비중이 큰 편인 관서계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2인자가 정보원인 만큼 어느 정도 걸러 들을 필요는 있다. 애초에 야쿠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수치적인 정확성을 바라는 것도 무리고(...)

야쿠자의 처벌 강도는 반성이 가장 약하고,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체벌이며, 그 다음에는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斷指)고, 그 다음이 파문, 그 위는 절연, 마지막이 처단이다. 파문과 달리 절연(絶緣)은 아예 복권의 여지가 없다. 평소 원한을 많이 산 인간이 조직으로부터 절연당하면 조직에서 더 이상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죽은 목숨이나 다를 게 없어진다.

서브컬쳐에서는 시라사야를 꼭 사용하는 것처럼 그리나, 실제로는 총과 폭탄, 유탄 등을 더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실제로 2013년 4월에 야쿠자 2명이 살인죄로 사형당한 일이 있는데 이들의 혐의는 다른 조직의 조직원 2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었다. 그리고 칼을 쓸 경우 시라사야 형태가 아닌 그냥 일본도를 사용한다.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일본도는 도검으로 분류되지 않으므로 이쪽이 더 낫다.

어쨌든 옆동네 조직폭력배와는 달리 도 거리낌없이 잘 사용한다. 참고로 어떤 일본 서브컬쳐물에서든 야쿠자가 권총을 들고 설친다면 그 권총은 아주 높은 확률로 TT 권총중국제 카피인 54식 권총이다. 정식명칭보다는 흑성권총이라는 통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것도 그냥 은어로 부르는 일이 더 많은 듯. 일본에서도 총도법이 시끄럽기 때문에 중국산의 카피를 또 카피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명중율이나 신뢰성같은 건 전혀 없다. 워낙에 야쿠자들이 자주 사용했던 탓에 테러리스트의 상징인 AK-47이나 마피아의 상징인 톰슨 기관단총과 비슷한 취급. 요즘에는 레드 마피아와의 연계로 본토마카로프 권총이나 2006년 이후로는 필리핀콜트 M1911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2014년 시점에서는 거의 필리핀제 복제총기가 점령해서 중국의 54식이나 러시아 토카레프가 희귀해진 편이다.

물론 이들이 밀수했다가 걸린 무기를 보면 권총만 있는 게 아니다. 기관단총, 자동소총, 유탄 발사기, 심지어 로켓 런처 까지 밀수했다가 걸렸다. 참고로 해당 링크의 사진이 포함된 실제 사건의 기사는 순서대로 2012년 후쿠오카의 키시라 켄고(岸良研吾)와 2011년의 간 마사토모(菅正知), 둘 다 야쿠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한 조직으로 악명 높은 쿠도카이 계열이고, 마지막 1장은 2006년 요코하마의 이나가와카이 계열 하부 조직 보스 마츠다 타다시(松田真知)의 사례이다.

5 폭력단 대책법

위키피디아

법령번호 헤이세이 3년(1991년) 5월 15일 법률 제77호
다른 형벌과의 경계선, 본법은 이하의 행위를 금지한다.

  • 입막음료를 요구하는 행위
  • 기부금이나 찬조금 등을 요구하는 행위
  • 하청 감가 등을 요구하는 행위
  • 경호원 대동을 요구하는 행위
  • 고금리의 채권을 징수하는 행위, 빚의 면제나 빚반제의 유예를 요구하는 행위
  • 부당한 대출 및 어음의 할인또는 부당한 주식의 매입을 요구하는 행위

(이하 생략)

폭력단대책법이 개정될 때를 대비해 열심히 열공 중, 햄버거 값 8천원을 안냈다가 두목에게 청구서가 날아간 사례

폭력단(야쿠자) 미니강좌근데 일본어 해석할 수 있다면 들어가 봐라

여담으로 폭대법이 처음 등장했을때 1호로 가장 먼저 지정된 조직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된 3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회, 이나가와회다. 괜히 이들이 3대 야쿠자조직이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6 폭대법의 영향

야마구치구미, 이나가와카이, 스미요시카이 등 22개의 폭력단이 본법을 따르는 지정폭력단이 되어 일본 경찰공안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혹시라도 야쿠자가 괜한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반드시 일본 경찰에 신고하자. 바로 일본 경찰이 족친다. 당신의 신변보호 역시 해준다.

결과적으로 조직원 수가 줄어들고[9], 전국 각지의 사무실이 철거되었으며, 야쿠자 간의 내부투쟁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부투쟁이 일어나더라도 예전과 달리 최대한 깔끔하게 끝내게 되는 등 야쿠자는 전체적으로 위축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도 항쟁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 두셋씩 죽어나가는 건 변함이 없다.(...)

일본 국내에서의 불법적인 주 수입원이 줄어든 관계로 일부 조직은 일반 기업 등으로 나서거나, 해외로 진출하는 등 야쿠자의 판도가 바뀌게 되었다. 이 점은 한국 조폭도 비슷하다.

7 재일교포 야쿠자

재일교포 야쿠자조직은 주로 야쿠자 조직 내에서도 핵심적인 행동대장의 역할을 주로 맡아왔기에 조직 내 영향력도 크지만, 동시에 여러가지 면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그 비중이 매우 크다 보니 재일교포 출신이 오야붕이 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게 이나가와회의 5대 두목 신병규(키요타 지로). 귀화를 하지 않은 재일교포들은 일본국내법상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경우 국외추방을 당할 수 있어서, 대신 몇 년 살고 나와서 조직의 대접을 받는 그런 게 힘든 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 와선 아예 귀화하는 부류도 많고 아직도 그 비중은 확실히 무시 못 할 정도.

야마구치구미 사상 최강의 전투군단이라 불리던 구성원 대다수가 재일 교포인 야나가와구미는 전성기에 2차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작전 당시 10대 광역폭력단에 유일하게 포함되었었고 해산 당시 산하73단체 사카즈키를 한 조직원만 1,700명 가량 이었다. 여기에 준구성원을 포함하면 최소 2,800명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해산 이후 야마구치구미 본부로부터 절연당한 야나가와구미 초대 구미쵸인 야나가와 지로(양원석)과 야나가와구미 2대 구미쵸인 타니가와 코우타로(강동화)는 야마구치구미 본가의 비공식 고문 역 및 픽서로 활동했으며 야나가와구미 4천왕이라 불리던 노자와 기타로, 이시다 쇼로쿠(박태춘), 카네다 산슌 (김삼준), 후지와라 테이타로가 이끌던 각 조직은 3대 야마구치구미 2차단체로 승격하였고 나중에 초대 타쿠미구미 부조장이 되는 쿠라모토 히로후미, 쿠로사와구미 부조장이었고 코쿠세이카이 초대 카이쵸가 되는 마에다 카즈오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일교포 조직원들은 야마구치구미 계열의 타 조직으로 흡수 되어 핵심 전투력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일본 최대 야쿠자인 야마구치구미를 비롯해 각 지역 조직에서 큰 세력을 이룰 수 있던 여러 요인 중 가장 큰 요인은, 전후부터 90년대까지 지속 되던 한일 간의 마약커넥션에서 찾을 수 있다.

전후 미군정 통치기 미군정의 묵인하에 각도시의 암시장을 삼국인들이 장악하던 시기 구렌타이계열 한국계 야쿠자들은 당시에도 큰 돈이 되던 히로뽕[10]을 한국에서 구하기 시작한다.

그 당시 한국에는 전쟁기간 동안 히로뽕제조에 징용되었던 조선인들이 제조기술자가 되어 대거 귀국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싼값에 순도가 높은 히로뽕의 밀조가 쉽게 이뤄질 수 있었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조업을 가장한 한국 어선 등을 이용해 손쉽게 입수할 수도 있었다.

마약 유통으로 목돈을 만지기 시작한 재일교포 야쿠자들은, 이후 깡패들의 전통적인 돈벌이인 마약[11], 도박[12], 섹스[13], 흥행[14], 정치[15] 산업 대부분을 하나둘 차지해 가며 엄청난 자금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각 조직의 결속 강화 확대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야쿠자 세계에서 높아져가는 위상을 이용해 한일협정시에는 정건영의 토세이카이를 필두로 한일양국의 정보원 및 브로커로써 큰 활약을 해가며 부관폐리 사업권 등 한일간 진행되던 사업 이권들을 얻어내며 야쿠자 세계에서 더욱더 강력한 지위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역대 한국 군사정권과는 김대중 납치 사건 등 백색테러에 참여하며 결탁해 신뢰를 쌓아 대한민국 훈장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 6,70년대 일본 내 스포츠행사에 참가한 한국국가대표팀의 체재 비용 지원,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등의 대형 국가행사에 자금원조 및 각종 장학재단에 기부등으로 훈장의 명분은 만들었다.

자금력이 권력이 되는 것은 야쿠자 세계에도 변함이없어 자금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각 조직의 최상층부를 차지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

일례로 오사카에서 대형캬바레를 운영하던 한록춘은 다오카 카즈오에게 거액을 상납하고 그 댓가로 샤테이 사카즈키를 받아 후지카이를 결성해 야쿠자 생활을 시작 야마구치구미가 오사카에 확실히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재일교포 구렌타이계 야쿠자인 메이유카이와의 항쟁 후 해산한 메이유카이 조직을 거의 그대로 흡수하며 오사카에서 야나가와 구미와 더불어 큰 세력을 지니게 되었다.[16] 현재 후지카이에서 개칭 된 잇신카이의 초대 오야붕이었던 한록춘은 꾸준히 야마구치구미의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 공개된 재산만 한화 1조5천억원정도로 추정되는 오사카 중심부 도톤보리 등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거품경제 형성 시기 경제 야쿠자로 조직의 변모를 꾀하던 각조직들은 허영중 등을 포함한 한국계 야쿠자들에게 의지를 많이하였고[17] 이런 변화 속에 타카야마 키요시 등의 한국계 야쿠자들은 또 다른 재력을 손에 넣으며 야쿠자 리세션의 첨병역할을 하였다.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꺼지고 한국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된 90년대 이후 한국산 히로뽕 밀조가 거의 사라진 후로는 한국계 야쿠자들은 일본 시중은행들의 저금리 대출과 오랜기간 구축해온 한일정재계와의 인맥을 통해 한국 사채 시장에 침투해 조국에서마저 동포들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으며 부귀영화를 누리고있다.

여담으로 폭대법에 의해 지정된 22개의 지정 폭력단 중 2016년 현재 5개의 조직이 한국계가 오야붕으로 있으며 과거 오야붕이었던 경우까지 합치면 절반에 가까운 9개의 지정폭력단이 한국계가 오야붕으로서 관계가 있다.

관동지역 지정폭력단 5개 중 스미요시카이를 제외한 마츠바카이, 쿄쿠토카이, 소아이카이, 이나가와카이는 한국계가 오야붕이었거나 현재 오야붕이고, 큐슈지역 야쿠자조직은 김인순의 후쿠하쿠카이와 박정호[18]의 나미카와카이를 비롯해 전통적으로 재일교포세가 강하며, 칸사이의 오사카 교토 츄고쿠의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추부의 나고야 역시 재일교포세가 막강하다. 덧붙여 6대 야마구치구미 내 최대파벌 고도카이 2대 카이쵸 이자 6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타카야마 키요시 등의 한국계를 포함하면 거의 모든 전국구 조직의 핵심을 한국계 야쿠자가 차지하고 있거나 차지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이다.

특히 2015년 야마구치구미와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분열은 6대째가 되며 조직 넘버2인 와카가시라[19]넘버3인 통괄위원장[20] 넘버4인 총본부장[21] 등의 핵심요직에 집권하며 조직 내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나고야계 재일교포 야쿠자조직들의 기존 파벌들에 대한 차별이 3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5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쵸를 배출하며 야마구치구미의 적통이라 자부하던 야마켄구미를 포함한 타쿠미구미 등 기존 고베계 파벌들의 응집 및 반발이 원인이 되었다는 추정마저 존재한다.[22]

그와 대비해 2011년 일본 경시청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일본내 야쿠자의 98.5% 정도가 일본 국적이며 한국국적 및 조선적은 1.5% 이하라고 한다. 이는 조직의 간부급을 제외한 행동대원 급의 한국계 야쿠자의 상당수가 이미 은퇴 및 귀화를 한 영향이 크며 신규로 유입되는 한국계 야쿠자는 이미 일본으로 귀화해버린 케이스가 대부분이고 재일교포의 일본 내 위상이 상승하며 더 이상 범죄에 가담하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음을 알수있다.

그 대신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인 야쿠자들이 수 백명 이상이라고 경시청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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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에서는 의리를 중시하고 잘못한 놈이 할복을 하는 등 사무라이의 후손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사무라이의 후손이 야쿠자가 되려면 몇대째 등성조차 못하고 극도로 몰락, 낭인이 되거나 대죄를 지어 할복이 아닌 참수형을 당해 폐문쯤은 당해야 가능하다. 야쿠자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는 설은 일본의 각종 매체에서 몰이해로 인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다.

걸핏하면 손가락 잘라대는 유비츠메 의식이 있는 건 사실이다. 손가락 하나를 모두 자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 한마디 씩 자르는 의식이다(...). 보통 왼손 새끼 손가락 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야쿠자 하면, 드럼통에 넣어서 바다에 빠뜨린다카더라 전설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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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렇게 처리한다고 한다. 아니 공구리쳐도 안전빵인데 굳이 저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일단 3,000도라고 하면 단순히 '뜨겁네' 라고 인식할 수준이 아니다. 3천도 라는 온도 자체가 산업에서 거의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 내기 힘든 초고열이다. 그냥 가스레인지 켰다가 끄듯이 만들 수 있는 온도가 아니라는 것. 저만한 온도를 내기 위해서 드는 시간만 해도 오래 걸리고, 식히는 데는 더 오래 걸린다. 한번 쓰고 마는 것은 말도 안되는 극심한 비효율이다. 해당 온도를 견디기 위한 용기 또한 내열성 벽돌을 써야하는데 애초에 3천도를 버티는 내화물 자체도 드물 뿐더러 엄청나게 비싸다. 알루미늄으로 용기를 만들면 3천도에서 녹는게 아니라 끓는다. 보글보글 참고로 알루미늄 녹는점 600도, 철 녹는점 1,500도. 3천도면 텅스텐쯤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온도는 어떻게 유지할건가? 3천도면 가스레인지로는 못 만들고, 포스코같은 제철소에서 쓰는 전기 고로를 가져와도 어렵다. 참고로 전기 고로도 3천도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아스팔트는 200도 가량에서 만들어진다. 이걸 만든 놈은 문과같다

미국에서 이 야쿠자를 영화계로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우후죽순으로 야쿠자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버트 미첨의 <야쿠자>마츠다 유사쿠블랙 레인 등등 말이다. <블랙 레인>은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서 마츠다 유사쿠를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어줬다. 그 전에 마츠다 유사쿠는 야쿠자 영화의 주연이나 조연으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블랙 레인>이 개봉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대로 야쿠자를 쓰레기로 보면서 야쿠자의 현실을 은근히 꼬집던 일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는 1992년 영화 <민보의 여자>에서 호텔 경영을 두고 야쿠자들을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묘사해 실제로 야쿠자들에게 폭행당했다. 그 이후로도 야쿠자들의 압력으로 온갖 고생을 하다가 1997년 어처구니없는 불륜으로 휘말려 사회적 매장을 당했고 자신이 억울함을 증명하겠다면서 스스로 투신하여 64살로 자살했다. 그런데 이 자살이 여러가지로 굉장히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지금도 곧잘 재조명된다. 외국 저널리스트 중에는 아예 자살이 아닌 야쿠자에 의한 살인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대표적 인물로 음모론 전문가 겸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이 있다.

덕분에 일본 만화에서도 야쿠자가 악랄하게 나오면서 그래도 좋은 놈도 있다고 넌지시 조금이나마 좋게 나오는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분석까지 있다.

일본 만화 가면전사 아쿠메츠를 보면 폭대법을 만들어 야쿠자를 조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말단 부하가 잘못하면 조직의 간부, 심지어는 보스에게 책임소재를 묻는 법으로 보인다.

데즈카 오사무대부의 아들이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여기서는 야쿠자의 아들과 친구를 한 주인공 데즈카의 이야기, 약골 데즈카를 보호해주고 체력을 단련시켜주고 대신에 데즈카가 그린 미소녀 만화를 받게 되는 이야기이다. 조폭관련 이야기인데 아련하다. 특히 마지막에 야쿠자 아들은 카미카제의 이슬이 되고 성장한 데즈카는 그것을 회상하는 장면이 명장면. 야쿠자의 아들은 특공하는 순간에도 데즈카가 준 그림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참고로 이거 진짜 실화다(!)

야쿠자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를 더 가치에 둔다고 한다. 노래도 "인협의 세계에서는 인정보다는 의리~"라는 노래도 있다. 물론 수틀리면 서로 죽이고 죽는 세계라서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 문화에서 본격적으로 야쿠자를 리얼리즘에 기반하여 다루게 된 것은 영화 의리없는 전쟁 이후다. 그 전까지는 다소 낭만적으로 그리는 풍조가 있었는데, 이 이후 오히려 리얼하게 그려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야쿠자 세계"를 묘사했다며 야쿠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 영화가 역으로 영향을 준 사례도 꽤 있다고 한다.

일본의 공산주의 계열 학자인 미야자키 마나부는 야쿠자의 아들이지만, 전공투에 참가하여 투쟁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쓴 야쿠자 관련서적인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에 의하면, 재일교포들 중 일부는 야쿠자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사실이다. 실제 야마구치구미가 관동에 진출하는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 당시 관동지방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던 재일교포 야쿠자 조직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사실 1960년대 일본 청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야쿠자 영화다. 특히 좌익 학생운동가들이 야쿠자 영화를 많이 봤는데, 자기들만의 룰, 의리, 파벌간의 대립, 배신, 음모,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우정같은 것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묘하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전공투 시대의 학생운동가들은 서브컬쳐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야쿠자 영화도 많이 봤다고 한다.

9 전문지

야쿠자를 다루는 전문지는 실화시대가 있다. 야쿠자들이 직접 발행하는 잡지도 있다. 극동회(물론 깡패)의 <한없는 전진>이나 야마구치 구미에서 발행하는 <야마구치 시보> 등이 있다. 다루는 내용은 깡패짓에 관련된 법률과 조직원들의 중2병 스러운 포엠 시(詩)같은 걸 싣는다.

10 대중문화에서의 모습

  • 흔히 양복 옷깃에 조직을 상징하는 배지를 대놓고 달고 다닌다. 물론 실제로도. 그래서 종종 "네가 그 금배지만큼의 가치가 있다 생각하냐? 국회의원 나으리 보고 있나?"라는 식으로 배지 운운하는 대사가 많다. 또한 엠블럼 TAKE2의 작중 설명에 의하면 "배지는 자존심, 목숨과도 같은 것이기에 어떻게든 뺏기면 안 된다"라고 한다.
  • 도박판에서 기모노 입은 여성이 상의만 벗고 등의 문신을 보여주며 설치는 건 <일본여협전>[24]이나 <일본 협객전>을 패러디한 거로 보면 된다. 그런데 여기 한 항목에 말하는 이유는, 배우만 다르고 내용이 전부 똑같은 야쿠자 영화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25] 심지어는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만화 타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했다.
  •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미이케 타케시의 <풀메탈 야쿠자>의 오마주
  • 대만 조폭들이 'VS 일본 야쿠자'구도로 나온다. 보통 화해해서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십중팔구 몰살당한다고 보면 된다. 엠블럼 TAKE2에서 해당 에피소드를 다룬 바 있다.
  • 오사카와 자주 관련된다. 그런데 오사카는 재일동포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오사카 출신의 예능인들이 야쿠자를 많이 다루긴 한다. 미이케 타카시나 니타 타츠오 등.
  • 야쿠자식 인사라고, 무릎을 벌려서 자세를 낮추며 선다. 그리고 왼손으로 무릎을 짚고, 오른손바닥을 펴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소속 조직이나, 이름을 말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26] 안녕하십니까! 동성회 소속 마지마조 4대 조직원 XXX입니다!"라든가. 그리고 별 상관없는 워스트에서도 등장. 얘네 인사하는 거 보면 영락없는 야쿠자다.
  • 조연이나 졸개로 등장할 때는, 흰 양복에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기거나 흉터가 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는 경우도 있다. 수염을 잘 기른다.
  • 자신을 지칭할 때, "와시"라고 부른다.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한 주고쿠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는 1인칭으로 야쿠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야마구치구미가 바로 고베에 본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이미지다. 그 외의 지방에서는 화자의 연령이 고령임을 암시한다. 픽션에서는 노인, 박사, 권력자(남성)가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 사무실까지 있으며, 한자 글씨 같은 걸 액자에 넣어서 건다. 주로 오뚜기 달마(한쪽 눈 그리는 그 달마)가 있다.
  • 경찰이 쳐들어오면, 조직원들이 핸드폰을 부수거나 없애버린다.
  • 마을축제에 노점상으로 주로 참가한다. 마을축제는 야쿠자의 주요수입원 중 하나로서 자리세부터 시작해서 몫좋은 자리는 대부분 야쿠자가 가져간다. 일본어로는 '데키야'라고 부른다. 블랙라군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 야쿠자들도 의외로 인간적인 것처럼 그려진다. 인간적 애환이라든가…이것 역시 야쿠자 미화로, 실제 야쿠자들에게도 사람인 이상 이런 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인간적인 면이 부록으로 첨부된 거지, 실제로는 흉악한 종자들이란 걸 생각해야 한다.
  • 도박장을 운영하는데, 주사위 도박[27]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여기서는 야쿠자 구성원들[28]이 전부 옷을 거의 벗고 있다(바쿠토). 이는 도박을 하는 데에 아무런 속임수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 그리고 일본식 부적[29]을 하나같이 목에 걸고 있다. 사실 이건 행운을 부른 물건으로, 전세계를 막론하고 폭력조직의 두목급이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대부3>에서 헬기에 의해 수많은 패밀리 두목들이 몰살할 때 어떤 마피아가 자신의 '행운의 코트'를 붙잡느라 총알을 못 피하고 죽었다.
  • 야쿠자들은 폭력단 대책법을 들먹인다. 이 법이 만화속의 야쿠자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야쿠자의 부하가 무슨짓을 저지르면 폭력단 대책법에 따라 두목'도' 가둔다는 내용도 있다. 상술했듯 야쿠자들은 두목이 직접 명령을 내리는게 아니라 부하에게 암시하는 말만 하고, 부하가 그걸 알아서 해석해서 실행하기 땜에 이 법이 정당한건 맞다. 그래서 이 대책법 때문에 야쿠자 대부분이 합법기업화되었다. 물론 뒤로는 여전히 나쁜 짓을 많이 하겠지만. 여튼 이 법은 말 그대로 야쿠자를 잡는 법으로, 이 법이 집행되자 야쿠자들은 사회나 주위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듯 약해졌다.
  • 익(益)보다 의(義)를 중요시하며, 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건다. 조폭미화물에서는 이런 장면이 반드시 나오나,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 파칭코와 관련된 걸로 나온다. 일본 내 파칭코 사업의 대다수는 재일교포와 야쿠자가 점유율을 다투고 있다.(…) 조총련계열은 돈을 북한으로 송금한다고 하는데, 알 수는 없지만 재일조총련들이 북한에 가면 환영받는 건 사실이다. 그들 돈으로 골프장도 짓는다. 쌀 안사고 잘하는 짓이다
  • 재일중국인, 재일한국인들이 자주 나온다. 재일한국인의 경우 야쿠자 전성기 초창기부터 활동한 주요한 세력이며 재일중국인은 8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다수 유입되었다. 이들의 역할은 대부분 행동대장 이런 재일 야쿠자들은 주로 신주쿠나 가부키초 같은 유명한 유흥가에서 활동한다 카더라…재일중국인 야쿠자는 주로 청룡도를 쓰며 잔혹한 걸로 알려져있다.
  • 박용건의 장편 소설 <태양의 제국>에서는 20세기 중후반에 "다카마쓰 료헤이스케"라는 듣보잡야쿠자 오야붕이 권력에 너무 맛을 들여서 자신이 가진 쇼미더머니 파워로 전국의 수재들을 지원하여 그 수재들을 정재계 등에 진출시켜서 일본판 애국자들을 창설했다는 설정이 있다. 야쿠자 주제에 말이다.(…)
  • 위와 비슷한 예로 서양 쪽 매체에서는 가끔 남미 어딘가의 마약 카르텔 수준으로 충공깽한 조직[30]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일례로 히트맨 2: 사일런트 어새신 에 타겟으로 등장하는 하야모토는 아예 개인 소유의 성을 하나 통째로 가지고 있으며 개인 소유의 닌자 부대(...)까지 있고, 심지어는 미사일 유도 시스템까지 가지고 있다(...).
  • 레인보우 식스: 테이크다운의 주적도 야쿠자들인데, 테러리스트 때려잡는 게임에 왜 야쿠자가 적으로 나오냐 하면 이 빠가들이 압수당한 엑스터시 회수를 위한 양동작전이랍시고 국제 테러조직을 매수해서 미군 장성을 인질로 잡는 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하는 희대의 병크를 벌였기 때문(...). 당연히 미군 현직 장군이 인질로 잡히는 사태가 터져 레인보우 팀이 파견되고, 테러조직이 박살난 이후로도 이후에 추가로 터질 테러 위협 때문에 조직이 소탕될 때까지 존 클라크가 레인보우 팀을 그대로 한국에 잔류시키겠다고 해서 결국 조직은 완전히 망했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세계관에서는 "온모라키 구미"라는 야쿠자 조직이 겁대가리 없이 암살단 오사카 지부를 레이드 가서 오사카 지부의 멘토를 제거하는 짓을 벌였으나 뒤이어 멘토 부인을 필두로 한 분노의 암살단원들의 역공으로 조직 자체가 암살단에 하부조직으로 먹혔다(...).
  • 스트라이크 백 시즌 5에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태국에 근거지를 둔 야쿠자가 적으로 등장하는데....이상하게 총질하는 조직원들을 구렌타이라고 부른다. 구렌타이는 주로 청소년으로 구성된 깡패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 케인 앤 린치 : 데드맨에서는 서양 게임에서 흔치 않게 아예 주적으로 등장해서 케인과 린치에게 탈탈 털린다(...). 재미있게도 케인 앤 린치의 제작사는 위에서 언급한 <히트맨 2>를 제작한 회사인데 야쿠자들에 대한 묘사에 과장이 상당히(...)들어간 <히트맨 2> 때와는 달리 합법적인 기업으로 위장하는 등 그나마 현실에 가까워 졌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위에 나온 내용들은 상당수가 미화된 것이다. 이들 야쿠자들도 조폭들처럼 공권력이 제대로 개입하면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무너진다. 물론 이들이 정치권이나 사회, 경제에 상당한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정치인, 사법부, 경찰들에게 뇌물을 바치며 조직안전을 보장받는 수준이고, 경제나 사회 면에서도 정당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공권력 행사자들이 야쿠자들의 도움이 자신들에게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그날로 조직 해산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조직도 있으나 이들의 사업과 조직 운영 과정에 필요한 자금은 언제나 불법적인 돈이 주원천이며 당연히 이 합법적인 사업들도 공권력이 개입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조직 해산이다. 일부 영화나 만화에서는 야쿠자가 마음대로 구타,살인,강간, 밀수, 폭력, 납치를 저질러도 일본 경찰은 물론 일본 정부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절대적인 무법자, 그 반대로 돈, 여자, 마약, 권력보다는 마치 의리를 위해 목숨도 버리고 약자를 보호하고 경찰들이 해결 못하는 치안을 유지하는 존재로 나오나 현실은 시궁창인 것을 명심해라. 야쿠자는 존재 자체만으로 불법이고 일본은 멕시코마냥 치안과 공권력이 허술해서 폭력조직 하나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막장 국가는 전혀 아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마음대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공권력을 능가하는건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이라는걸 명심해야 한다.

11 조직 일람


일본 전국 지정폭력단 지도

  • 야마구치구미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2014년 포춘지에서 야마구치구미 연간 수익이 66억 달러로 전세계 범죄 조직 중 2번째로 큰 수익을 낸다는 기사를 냈다.
    • 고도카이 - 야마구치 구미 산하 최대 파벌이다. 6대 회장 시노다 켄이치가 여기 출신이다. 한국계가 다수파인 산하의 타카야마구미가 고도카이를 넘어 6대 야마구치구미의 중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노다 켄이치 이후 7대 야마구치구미 조장 후보로 3대 고도카이 회장이자 타카야마구미 2대 조장인 타케우치 테루아키가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 야나가와구미 - 재일교포 양원석이 1958년에 구성해 1969년에 해산한 조직으로 대표적인 구렌타이계열 야쿠자조직이다. 제3대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로, 야마구치구미의 전성기를 여는데에 있어서 행동대장격 역할을 맡았다. 조직의 별칭이 살인 군단일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성으로 유명했으며 전성기에는 2차단체면서 조직원수만 1,700명에 달했다.[31] 더 무서운건 야나가와구미는 1차단체도 아닌 2차단체면서도 1964년 제1차 정상작전 당시 광역폭력단으로 지정된 전력이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는것이다. 야나가와구미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고베-야마구치 구미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야마구치구미 분열사태로 인하여 고베의 야마켄 구미를 중심으로 야마구치구미를 이탈하여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였다.
    • 야마켄구미 - 야마구치 구미 산하 2대 파벌이자 다오카 카즈오의 오른팔이었던 야마모토 켄이치가 만든 조직. 2015년 야마구치 구미 분열 사태를 주도하며 조직을 탈퇴해 새로운 조직 고베-야마구치 구미를 창설하였다.
    • 타쿠미구미 - 5대 야마구치구미의 부두목이었던 타쿠미 마사루가 만든 조직으로 이번 분열사태에서 야마켄구미와 입장을 같이 하였다. 여담으로 타쿠미 마사루는 버블시절 금융과 부동산으로 2,000억엔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자금력을 배경으로 5대 야마구치구미를 실질적으로 운영했고 야마구치구미의 금고지기라는 별명이 있었다. 한국계로 알려져 있는 현2대 조장 이리에 타다시는 6대 야마구치구미 소속 당시 샤테이카시라로 실질적 서열3위였으며 탈퇴 후 고베야마구치구미 부조장이 되었다.
  • 스미요시카이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야쿠자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 이나가와카이 - 국가공안위원회 지정 주요폭력단 고다마 요시오의 비호아래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해 현재에 이른다. 현 5대 회장이 재일교포 키요타 지로(신병규)이다. 4대째부터 조직이 분열될 조짐을 보였으나 5대째가 되며 한국계 야쿠자 조직인 야마카와일가가 중핵조직이 되어 조직을 장악한 상태
  • 아이즈코테츠카이 - 참고로 여기 4대 회장은 재일인 타카야마 토쿠타로이다.
  • 도세이카이(토우아카이) - 한국어 발음으로는 동성회. 설립자가 재일교포 마치이 히사유키(정건영) "긴자 호랑이" "맹우(화난소)"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고다마 요시오의 오른팔 격이었던 인물이다. 이나가와회의 역사에도 나오지만 본래는 도쿄 긴자를 중심으로 날리던 조직이었지만 부하가 제대로된 삽질을 벌이는 바람에 장건영은 손가락과 거금을 잃고 조직도 야마구치구미의 산하단체가 되어 관동진출의 교두보가 된다. 이후 토우아카이로 최종 개칭해 롯뽄기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야마구치구미와는 대대로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역대 회장들은 야마구치구미에서 와카가시라보좌급의 최고간부 대우를 받는다. 1차 정상작전 당시 지정된 10개의 광역폭력단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폭대법에 의해 지정된 지정폭력단에 지정되지 않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운영한 부관페리 사업은 가장 규모가 큰 히로뽕 밀수 루트였다.
  • 교세이카이 - 히로시마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조직으로 영화 의리없는 전쟁의 텐세이카이의 모델이다.
  • 도진카이 - 큐슈에서 가장 큰 조직으로 두목 승계 문제를 두고 분리해나온 큐슈-세이도카이와 큰 전쟁을 치뤘으나 결국 승리하였다.
  • 쿠도카이 - 북큐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으로 무투파가 많기로 유명한 큐슈 야쿠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할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일삼는 조직이다. 위에서 스미요시카이와 대립한 도우진회와는 다른 큐슈의 야쿠자조직인 타이슈우카이 쿠마모토카이와 함께 사사회라는 동맹을 맺고 있다. 민간인에게 테러를 거침없이 저질러대는 조직으로 2000년대에 와서 많은 조직들이 항쟁이나 폭력사건을 자제하고 돈으로 해결을 보는데에 반해 2010년 이후에도 자동소총, 로켓 런처 같은 물건을 들여오거나 야쿠자반대운동 관계자들을 암살하는 등 무식한짓을 계속하고 있는 조직이다. 이에 따라 개정폭대법에의해 유일하게 특정위험지정폭력단에도 지정되었다. 2016년 7월 일제 검거를 피해서 한국으로 도피한 재일교포 출신 간부가 필로폰과 일본에서 쓰던 토카레프 권총을 가지고 도망쳤다가 부산에서 검거되었다. (日 야쿠자 중간 간부, 부산서 권총 갖고 은신하다 검거 뉴스 영상)
  • 사카우메구미 - 야마구치구미의 입김이 쎈 오사카에서 아주마구미와 함께 독립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바쿠도계 지정폭력단. 3대 조장 마츠야마 쇼지로 시기에는 다오카 카즈오와 5분(동등한)형제 관계를 맺을 정도의 위세를 가졌으나 2014년 경에는 조직원이 약 40명 으로 추정될정도로 세가 상당히 약해져 있다. 1993년 오사카공안위원회에 의해 지정폭력단으로 지정되었고 6대, 7대, 8대 조장이 한국계였으며 특히 7대 카네야마 코자부로(김재학)은 1988년 11월 칠성파 이강환과 6부 4부 사카즈키 의식을 치뤘다. 이 때 축하금으로 동생이 되는 이강환에게 준 1억엔의 사용 문제가 발단이 되어 부두목급 김영찬이 신칠성파를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만들어 칠성파에서 갈라져나오게 된다.
  • 코우다 일가 - 시모노세키를 비롯해 야마구치 현 전역에 세력을 갖고 있다. 현 7대 총재가 스에 마코토(김교환)이다.
  • 쿄쿠도카이 - 일본 최대의 데키야계 폭력단으로 두목이 마츠야마 마코토(조규화)란 재일이다.
  • 마츠바카이 - 자민당과의 연계로 세력을 불린 도쿄의 조직. 2009년 5대회장 마키노 쿠니야스(이춘성)의 은퇴 후 주류파와 반주류파로 대립해 조직이 둘로 분열 되어 있다.
  • 쿄큐류카이 - 오키나와 유일의 지정폭력단으로 여러번 분열과 항쟁을 거치다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전쟁 당시 흉폭한 사건이 많아 폭대법이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정폭력단에 속하기는 하지만, 본토 야쿠자들과 여러모로 다른 면모들이 많기 때문에 똑같이 '야쿠자'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 나미카와카이 - 도진카이에 반발해 독립한 큐슈세이도카이가 나미카와카이의 전신 조직으로 도진카이와 자동소총과 수류탄등의 중화기를 동원한 항쟁으로 유명. 카이쵸 나미카와 마사히로(박정호)는 타카야마 키요시를 능가하는 현역 야쿠자 중 최고의 재력을 가진 것 으로 알려져있다. 2016년 3월 29일에 있던 고베 야마구치구미의 관동회합이 그가 소유한 토쿄 타이토쿠 있는 빌딩에서 열리는 등 이번 야마구치구미 분열사태의 향후 행방에 큰 영향을 끼칠 인물로 주목 받고있다.

..등등

일본은 조직을 결성하기만 해도 폭처법으로 처벌받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결사의 자유를 인정해서 조직의 존재 자체는 허용하고 있다. 그 중 소위 '지정폭력단'이라해서 세력이 크고 강한 조직들을 지정하여 감시,관리하고 있다. [32] 물론 이 조직들 외에도 군소규모의 조직들 혹은 큰 조직의 방계조직들이 굉장히 많다. 또 서로 다른 조직이라해도 사카즈키 의식을 통해 의형제를 맺어 친척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서로 유대를 다지고 있다. 개중에는 중국이나 한국 쪽 폭력조직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12 관련 인물

  • 야마구치 하루키치
야마구치 구미의 초대 보스.
  • 다오카 카즈오
야마구치 구미의 3대 보스. 조직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일본 이름은 야나가와 지로. 피비린내는 유혈극을 많이 일으켰다. 야마구치 구미 산하 조직 중 하나인 야나가와 구미 초대보스로 잔인하고 흉폭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대조직의 업소 개업일에 100여명이 모인 곳을 훈도시만 입은 샌드위치맨으로 위장 돌입 8명이서 피바다를 만들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있어도 야나가와 구미에 피비가 내리지 않는 날은 없다"는 얘기가 만들어 질 정도 그의 일대기가 "구름을 부르며 바람을 재우며"라는 논픽션으로 1990년에 나오기도 했다. 앞서의 일화는 허영만의 들개이빨이라는 작품에서도 차용 되었다.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고베 등지에서 고용살이, 자전거 직공, 탄광갱부, 토목 노무자 등 육체노동으로 전전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야쿠자 거물로 성장. 일본 중의원 2번 당선
박춘금과 아울러 상애회 등 야쿠자 거물로 성장. 위키백과 이기동
  • 츠카사 시노부(시노다 켄이치)
야마구치 구미의 6대 보스
야쿠자와 일본 우익 정계를 연결시킨 인물이다. 항목참조.
코다마 요시오와 함께 야쿠자와 정계를 연결시키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전후의 괴물이라고도 불린 인물로 극우 아시아주의 성향을 가지고 반공전선의 상징적 역할로 막대한 인맥을 가졌으며[33] 극우의 자금줄을 담당하기도 했다. 코다마 요시오가 주로 관동계 야쿠자조직과 이어져 있었다면 이 인물은 야마구치 구미의 다오카 가즈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3 야쿠자와 관련된 작품 및 등장요소들

13.1 야쿠자물을 주로 그리는 사람들

13.2 야쿠자 세계를 비중 있게 다루는 작품

13.3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야쿠자 집단과 가문

13.4 야쿠자와 관계 있는 설정의 캐릭터

  1. 2015년말 기준 구성원 약 6,000명 준구성원 약 8,000명.
  2. 2015년 12월 기준 구성원 약 3,200명 준구성원 약 4,100명.
  3. 2015년말 기준 구성원 약 2,700명 준구성원 약 3,000명.
  4. 2015년말 기준 구성원 약 2,800명 준구성원 약 3,400명.
  5. 코드 기어스 드라마 CD에서 이 의미대로 쓰인 적이 있다. 오뎅집 자영업하는 나나리를 혼자 두고 매일매일 도박이나 유령회사 매입매수 등 확률 게임에만 미친 듯이 달려드는 를르슈에게 "이 야쿠자 같이 사는 썩어빠진 근성을 고쳐주겠다"라고 한 것이 그 예.
  6. 일본에선 '항쟁'(抗爭)이라한다. 한국에서 '항쟁'은 주로 압제자, 외세에 맞선 민중의 투쟁이란 뜻으로 쓰지만 일본어에선 야쿠자, 무장정치조직 안의 무력투쟁도 항쟁이라 표현한다.
  7. 후일 일본 법무상까지 역임했던 인물로 말년에는 방한하면서 개인자격이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를 반성한다고 밝혔다. 2002년 별세.
  8. 사실 이건 야쿠자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적 현상이다. 당장 임팔 작전도조 히데키가 직접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유사시 작전을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는 의미의 준비명령 형식으로 내린 지시였다. 이후 무타구치 렌야와 가와베의 밀당 연애질만 봐도...
  9. 폭력단대책법 시행 10년째인 2011년 현재 일본 경찰은 야쿠자 전체 숫자가 약 6,000여명이 감소한 걸로 추산하고 있다. 무한팽창하던 야쿠자 조직이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
  10. 일본 현지에선 가쿠세이자이 즉 각성제라 흔히 부르고 은어로는 '샤부'라고 많이 부른다.
  11. 히로뽕 유통 ( 2000년 기점으로 히로뽕 밀수루트가 중국과 북한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각성제관리법 위반으로 검거된 외국인 중 한국국적이 40%정도를 꾸준히 차지한다 )
  12. 빠칭코운영 보호비갈취 경품교환소 운영
  13. 한국으로의 기생관광 중계업, 일본 현지에서는 한국인접대부를 고용한 윤락 유흥업소 운영 및 보호비 갈취 (2000년대 중반 까지도 가부키쵸와 아카사카 일대에만 10명이상 접대부를 고용한 한국크라브가 100업소 이상이었고 도호쿠 대지진 후 많이 줄었다지만 2016년 아직도 일본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수의 업소가 한국인 여성을 고용해 운영 중이다)
  14. 연예흥행사업 및 연예기획사 운영, 프로레슬링 ,야구, 권투, 스모등의 스포츠도박 및 흥행사업(야쿠자를 은퇴한 양원석은 일본IBF 초대 커미셔너로 활약하며 일본 복싱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고 연예계에선 미소라 히바리, 사이조 히데키 등과 스포츠계에선 역도산, 타카노하나, 장훈 등의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두각을 내며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
  15. 전후부터 6,70년대 안보투쟁시기까지 일본 좌익의 본산이 되던 조총련을 향한 백색테러, 민단장악
  16. 메이유카이 사건 당시 24명이 구속되는 큰 희생을 해가며 활약한 야나가와구미는 당시의 활약을 인정받아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로 승격하며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다진다.
  17. 전후 상당기간 제도권 금융 대출이 힘들던 대다수의 재일교포들의 사채이용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배경으로 일본 사채 및 부동산 시장에서 재일교포 큰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금확보 및 사채회수에 한국계 야쿠자들이 많이 이용되어 왔기에 총회꾼, 불법대출, 주가조작, 한일 커넥션을 통한 자금세탁에 활용되기에도 유리하였다.
  18. 도진카이에서 회장 승계문제로 갈라져 나와 야쿠자 항쟁에 유래없을 중화기들을 동원해 항쟁을 벌였던 재일교포계 조직인 큐슈세이도카이의 2대 카이쵸 였으며 항쟁 후 해산하였다가 나미카와무츠미카이로 재결성해 개칭한 나미카와카이의 회장
  19. 고도카이 총재 타카야마 키요시
  20. 쿄쿠신렌고카이 회장 하시모토 히로후미(강홍문) / 3대 야마켄구미 와카가시라 였고 2003년부터 3대 야마켄구미 조장대행을 하며 실질적으로 야마켄구미를 이끌던 강홍문은 2005년 야마켄구미 4대구미쵸가 이노우에 쿠니오로 승계될 당시 자신의 쿄쿠신렌고카이를 이끌고 야마구치구미 2차단체로 독립 직계 단체로 승격한다.(야마켄구미 산하단체 였을 당시에도 웬만한 직계단체 보다 큰 세력을 가진 무투파 유력단체였다.) 2015년 4대 야마켄구미를 중심으로 고베 야마구치구미를 구성해 6대 야마구치구미를 독립할 당시 강홍문은 야쿠자 은퇴를 고려하였으나 6대 야마구치구미 구미쵸인 츠카사 시노부의 회유와 압력에 야마켄구미와 거리를 두게되고 고베야마구치 구미 분열에 가담하지 않게된다. 쿄쿠신렌고카이는 야마구치구미 내에서 독보적인 연예계 커넥션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기간 일본 최대 게닌 사무소인 요시모토 흥업을 비롯 연예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시마다 신스케의 은퇴 역시 깊은 관련이 있다
  21. 오하라구미 구미쵸 오하라 히로노부(윤광희) / 초대 타쿠미구미 샤테이카시라보좌 및 본부장이었다. 1989년 타쿠미 마사루가 5대 야마구치구미 와카가시라 취임 시 독립 직계단체로 승격한다. 항쟁에 적극적으로 앞장 섰던 무투파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분열사태에 타쿠미구미와 입장을 달리 했다.
  22. 고베 야마구치구미 간부 요직과 산하의 야마켄구미와 타쿠미구미 이케다구미 마사키구미 등 역시 내부를 들여다보면 예전에 해산된 야나가와구미 출신들 및 한국계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23. 그러니까 메이지, 다이쇼, 쇼와 초기
  24. 여자 야쿠자가 설치는 것
  25. 참고로 타카쿠라 켄은 단골로 출연했다.
  26. 척-자세 잡는 소리
  27. 친치로라든가
  28. 특히 "딜러" 역할
  29. 목걸이 형태가 많음
  30. 조직원들이 하이테크 무장(복합 돌격소총 같은...)을 하고 나온다거나 닌자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31. 준구성원을 포함하면 2,800여명. 이정도면 그냥 1차단체 규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엄연히 야나가와구미는 야마구치구미의 2차단체였다. 즉 야마구치구미의 무식한 규모를 짐작하게하는 대표적인 사례.
  32.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러한 지정폭력단이 폭력배를 국가적으로 용인하거나 키우는게 아니다. 조직이 지정폭력단에 지정되면 경찰의 감시가 매우 심해지고 조직원들의 범죄에도 두목이 연대책임을 물어서 배상을 해야하며 심지어 자동차를 자기 명의로 거래할 수 없거나 은행거래가 안될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야쿠자들은 이 법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명의를 쓰는 방법으로 요리조리 피해가지만 걸리게 될 경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된다. 즉 야쿠자들에게 상당히 제약을 가하는 제도인 것이다.
  33. 쇼와 덴노를 시작으로 당시 역대 일본의 주요 수상들뿐만 아니라 해외로는 하이에크나 등소평과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한 인물이다.
  34. 이 사람은 일본의 김성모라 불러도 될 정도. 물론 시대극도 그리지만, 시대극을 그려도 야쿠자화된다. <수라가 간다> 시리즈가 유명.
  35. 사무소 자체는 야쿠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업무 특성상 연계플레이를 많이 한다.
  36. 이쪽은 평범한 집안이었다가 야쿠자와 엮이게 되었다.
  37. 코단샤와 함께 야쿠자 조직명에 자기네들 회사 이름을 쓰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치죠 라쿠 항목 참고. 소라치 히데아키 양반이 은혼 단행본에서 했던 "슈에이샤는 야쿠자구나"라는 발언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38. 카케로의 경우 스스로를 야쿠자라고 칭한 적은 없지만, 도박장을 관리하던 인물이 조직을 세워 작중 현재까지 계속 그 일을 한다는 점에서 야쿠자의 기원과 유사하다. 쿠라라 파야 빼도박도 못할 야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