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본대한민국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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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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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本大韓民国民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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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지부 사무실의 모습

대한민국의 광복 직후의 좌우대립 과정에서 재일동포들 중 좌익 세력이 조총련을 세우자[1] 우익 세력이 이에 대항해서 1946년 10월 3일에 세운 조직. 목적은 조총련에 대항하면서 재일동포의 권익을 옹호하려는 데 있었다. 본부는 도쿄 미나토아자부주반역 근방에 위치해 있다.

처음엔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으로 출발했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약칭은 '민단.' 사실 재일동포 야쿠자와도 관련이 있는데, 한국에서 훈장까지 받은 다카야마 도쿠타로(본명은 강외수는 재일동포로 민단과 인연이 있다. 그리고 송진우의 암살범인 한현우는 최서면의 신원보증으로 일본에 입국한 뒤 민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조총련을 상대하는 데 일조했다. # 그는 나중에 표창도 받는 등 정권의 비호를 받았다. # 물론 송진우의 죽음에는 조금도 반성을 안한다(...)

회원수는 약 60만 명 정도다. 하지만 재일동포 2, 3세들이 아예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조직세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전까지는 대립이 심했던 조총련과의 교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민단의 두드러진 활동으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조총련계를 포함한 성묘단의 모국방문사업이다. 이를 통해 조총련계의 세를 약화시키고 민단의 세를 불리는 성과도 거두었다.

대한민국은행과는 의외의 접점이 있는데, 신한은행이 민단 측 자본을 끌어서 세워진 것이다. 신한은행이 각종 은행들을 인수/합병하며 지금의 콩라인규모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민단의 자본력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

현재 신한은행의 사외이사 중 3명을 진출시켜 놓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 통계도 만드는 등 재일동포에 대해 애정을 많이 쏟는다. 직업통계 되시겠다.민단소식지

참고로 폭력단과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김용환은 폭력단을 민단에서 추방하고자 했다. 그래서 양원석(야나가와 지로)의 조직인 유천회(야나가와카이) 소속 최재수가 추방되었는데, 그 보복으로 회의장에 난입해서 김용환을 참살했다는 무서운 일화가 있다(...)

현재도 햇볕정책같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의 대북정책에 상당히 비판적이며, 종북 같은 단어를 자주 쓰는 이다. 때문에 젊은 재일 동포들에게 민단 지도부 인사들이 과거 남북대결 시기의 극우적 사상을 버리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2] 재외투표소에서 민단 관계자가 한국어에 서투른 어르신들에게 "1번으로 하시라"라며 종용했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으며, 선관위는 이를 부정했다.

2 민단 강령

  •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시를 준수한다.
  • 우리는 재일동포의 권익옹호를 기한다.
  • 우리는 재일동포의 경제발전을 기한다.
  • 우리는 재일동포의 문화향상을 기한다.
  • 우리는 세계평화와 국제친선을 기한다.

3 흑역사

조총련북한과의 연계로 인해 일본 공안당국의 중점 감시를 받았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들도 일본 공안당국의 감시 대상이었다. 앞서 말했듯, 일본 내 차별과 경제적 격차 문제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야쿠자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단 자체가 애초부터 반공주의극우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조총련의 대항마로서 발족된 단체이기 때문에, 반 조총련 활동에 지나치게 많은 역량을 쏟아붓던 시절도 있었다. 앞서 말했듯 한현우와 최서면을 비롯한 백의사 출신의 테러범들이 민단 초기부터 유입이 되었기 때문에, 이는 피할 수 없는 노선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총련과의 투쟁 중, 직접 사무실에 쳐들어 가서 현피를 뜨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일본재일동포들의 좌우합작 조직이었던 한민통(훗날 한통련이 되는) 사무실에 짱돌을 던지고 테러를 감행하는등, 여러모로 폭력적인 면을 많이 보였기 때문에 일종의 파시스트 단체로 언론에 알려진 시절도 있었다. 또 재일교포 출신 야쿠자들을 결집시켜 우익단체화시켜 조총련을 견제하는데 쓰기도 하였다.

참고로 민단과 조총련은 화해할 뻔했으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골수 우파 논객인 조갑제의 저서가 이들의 화해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조갑제는 대한민국의 반독재 민주 언론인으로 일본에 알려져 있는데, 조갑제의 저서(김대중 전 대통령의 종북주의 의혹과 여러 카더라 통신을 엮은 것)가 일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자 갑자기 딥 빡침을 느낀 민단 내 우파가 일제히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

1980년대만 해도 반공 드라마에서 좋은 존재(물론 조총련은 무조건 악의 축)로만 나오고 이런 역사는 감춰졌다. 그리고 괴수급 친일파 박춘금이 1950년대에 도쿄 민단 중앙본부 고문을 맡은 적도 있다. 게다가 1950년대 말, 조총련계의 재일교포 북송 사업에 반대하여, 니가타일본 적십자센터를 폭파하려 계획했다가 발각되어서 개망신을 당한적도 있다(...). 이 사건은 니가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으로 불린다. #.

심지어, 삼무사건에도 일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1. 사실 조총련은 민단보다 훨씬 뒤인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되었다. 원래는 1945년에 재일본조선인연맹(약칭 조련)이라는 재일 한국인 단체가 있었는데, 민족주의 세력(우익)과 공산주의 세력(좌익)이 모여있었던 조련이 공산주의 세력 주도로 좌경화되자 우익 세력이 이에 반발하여 조련을 나와 세운 단체가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 즉 현재의 민단이다.
  2. 뜬금없이 남한에 종북이 활개친다고 주장한다거나, 전교조를 비난하기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