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네스트 사토

1 실존인물


Sir Ernest Mason Satow (1843~1929)

1.1 개요

일본에서 활동했던 영국 외교관. '사토'라는 성 때문에 일본인 혼혈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냥 영국인이다.[1] 막부 말기에서부터 메이지 유신, 러일전쟁까지 일본의 격동기를 모두 지켜 보았다.

1.2 상세

일본에 막 부임했을 때는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했으나 미국인 선교사와 도쿠시마 번사 등에게 일본어를 배워 곧 유창한 일본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1863년, 사쓰에이 전쟁 당시 영국 함선에 승선해 통역으로서 협상에 참가했고, 협상이 결렬된 후에는 영국 함대와 사쓰마 해안포대 간의 포격전을 목격하였다. 이듬해에 벌어진 시모노세키 전쟁에서도 조슈번과의 강화 협상에 참여하였으며, 시모노세키 전쟁으로 기존 영국 공사가 해임되고 새로 해리 스미스 파크경이 공사로 부임한 이후엔 수석 통역관이 되었다. 이후 영국 정부가 막부를 지원하는 프랑스에 맞서 사쓰마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사이고 다카모리 등과 교류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1866년, 사토는 그 유명한 <영국책략>을 The Japan Times에 익명으로 기고하고, 이를 그의 일본어 선생이었던 도쿠시마 번사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 국내에 널리 퍼뜨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다. 이 글에서 그는 쇼군은 주권자가 아닌 다이묘의 수장에 불과하며, 권력은 천황과 웅번연합에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사이고 다카모리 등 사쓰마의 유력자들이 이를 읽고는 영국의 공식 대일정책이라고 착각해 조슈와의 동맹을 결의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서기관으로서 메이지 천황 및 이토 히로부미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등의 신정부 고관과 영국 공사 간의 통역을 계속 맡아보았으며, 잠시 우루과이, 모로코 총영사를 역임한 후 주일특명전권공사로 일본에 돌아왔다. 이후 영일동맹을 추진하고 청일전쟁을 지켜보았으며, 이후에는 청나라 공사로 취임해 의화단 운동의 뒷처리를 맡고, 러일전쟁까지 지켜보았다.

일본을 좋아해 일본식 이름(사토 아이노스케(佐藤 愛之助))은 물론 시와 휘호도 썼으며, 일본 전국을 여행하면서 만난 일본 여자를 아내로 맞기까지 했다고 한다. 신사 참배도 해보았고, 일본 무사의 할복도 목격하는 등 일본에서 해보고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보고 본 유일한 외국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머나먼 시공 속에서5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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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ーネスト・サトウ

1을 모델로 한 머나먼 시공 속에서 5의 등장인물. 팔엽 중 한 명으로 천현무. 게임 시작 시 나이는 19세. 신장은 187cm. 생일은 6월 30일. B형. 상징색은 우스부도우(薄葡萄:엷은 포도색). 상징화는 라난큘러스. 성우는 시탄다 마이클.

영국 외교관 겸 통역가, 개국파(開国派). 부드럽고 온화, 명랑한 왕자님같은 청년. 다정해 보이는 외모과 나이 때문에 얕보이기가 쉽지만,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은 유능하다. 비아냥과 차별을 미소로 되받아쳐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신사지만...?

취미는 장서 수집, 독서, 음악 감상, 일기 쓰기, 일본에 대해 공부하기(단, 감추고 있다). 특기는 바이올린, 피아노, 플룻 등 악기를 연주하는 것, 식물학.

  1. 정확히는 독일인과 영국인 사이의 혼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