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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잉글랜드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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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 에드워드 5세 (Edward V of England) |
부친 | 에드워드 4세 |
모후 | 엘리자베스 우드빌 |
생몰년도 | 1470년 11월 2일 ~ 1483년(추정) |
재위기간 | 1483년 4월 9일 ~ 1483년 6월 26일 |
1 개요
본격 영국의 단종.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잠시 네덜란드에서 망명 생활 할 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태어났다.
2 즉위 및 폐위
1483년 4월 에드워드 4세가 죽자 12세의 나이로 즉위했으며 숙부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섭정이 되었다. 하지만 실권자는 그의 모친 엘리자베스였으며 이러다 보니 우드빌 가문과 리처드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 분쟁은 엘리자베스의 남동생 앤서니 우드빌과 에드워드 5세의 이부 형[1] 리처드 그레이를 체포하고 죽이면서 리처드의 승리로 끝났다. 잠깐 설명이 필요하자만 에드워드 4세는 평민출신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했는데 그녀의 미모와 재산을 노리고 한 결혼이었다. 추밀원에서도 이미 결혼했기에 유감 표명은 했으나 왕이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무효까진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에드워드 4세는 자신의 옹립공신 네빌가문은 똥친 작대기 수준으로 팽하고 우드빌의 형제들과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죽은 전남편 소생들에게 작위와 재산을 퍼주면서 친위세력을 형성했고 네빌은 프랑스에 망명하여 에드워드 4세의 동생들 클러렌스 공작과 글로스터 공작(리처드 3세)를 부추겨 반란을 일어켰다가 클러렌스 공작과 나란히 처형되고, 글로스터 공작은 망하기전에 형에게 이중첩자짓을 해서 살아남게 된다. 에드워드 4세는 주색잡기에 빠져 일찍 세상을 뜨게되고 남은 어린 자식들은 위험한 처지에 있었다. 어쨌든 글로스터 공작은 왕의 숙부이기 때문에 섭정이 되어 에드워드 5세의 신병을 확보하고 안전을 이유로(?) 런던 탑에 처소를 마련하고 왕의 동생 요크공까지 불러들인다. 그리고나서 이야기꾼들을 동원하고 사제들에게 뇌물을 먹여서 런던 시내에 방방곡곡 에드워드 4세의 방탕한 사생활과 에드워드 4세시절 평이 나빴던 첩과 왕에게 아내를 진상한 남편을 처형하며 에드워드 5세의 사생아설을 널리 퍼뜨렸으며[2], 한편으론 에드워드 4세시절 우드빌 가문에 원한이 많은 귀족들과 연합하여 공공연히 우드빌 가문을 탄핵하고 전 왕비를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그 해 6월 26일, 영주들과 평민들이 연 의회에서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을 무효이고 따라서 그의 자식들은 적자가 아니라는 리처드의 주장이 받아들어졌고 리처드는 리처드 3세로 즉위했다. 얼마 뒤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리처드는 런던 탑에 갇혀 다시는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