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테베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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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어 프랑스 139편 납치사건

1976년 6월 27일 12시 30분경 이스라엘의 로드(Lod) 공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 소속 에어버스 A300 여객기 AF-139편이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 내렸다. 아테네 공항의 보안은 허술한 편이어서 금속탐지기에 모니터링 요원도 배치되어있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56명의 승객을 태운 AF-139편은 이륙 3분 만에 피랍되었다. 승객들 가운데 테러범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1]

이 여객기에는 254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중 3분의 1이 이스라엘 국민이었다.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은 모두 4명으로, 2명은 혁명분파 소속의 독일인 테러범이었고 2명은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소속의 아랍 테러범이었다. 특히 독일인은 남녀 커플로, 남자는 빌프리트 뵈제(Wilfried Böse)라는 유명한 청부 테러범이었고, 여자는 브리기테 쿨만(Brigitte Kuhlmann)이었다. 아랍 테러범은 자엘 나지 알 아잠(Jael Naji Al Azam)와 파예즈 압둘라힘 자베르(Fayez Abdur-Rahim Jaber).

이스라엘 정부는 여객기 피랍을 예상하고 최고 정예부대인 사예렛 마트칼(Sayeret Matkal)에 출동대기를 명령했다. 이스라엘의 특수부대에는 사예렛이라는 명칭이 붙는데 사예렛은 히브리어로 정찰대라는 뜻이다. 사예렛 마트칼은 부대 명칭 그대로 말하면 합동참모본부 직할 ‘정찰부대’이지만 실제로는 대테러부대로, 1958년 영국의 SAS를 본따 창설되었으며 전략정찰, 직접타격, 대테러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특수부대다. 사예렛 마트칼이 가장 많이 수행하는 임무는 전략정보의 수집으로, 조직 편성상으로도 사예렛 마트칼은 군 정보부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테러범들은 종종 이스라엘로 여객기를 몰고 와서 정치적인 요구를 하는 습성이 있었다. 1972년 아랍 테러범들은 벨기에의 사베나(Sabena) 항공 여객기를 납치하여 로드 공항으로 몰고 와서는 국제 언론 앞에서 요구사항을 열거한 바 있었다. 똑같은 상황을 예상한 이스라엘은 사예렛 마트칼을 로드 공항에 대기시키고 인질구출작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피랍기는 이스라엘로 향하지 않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리비아의 벵가지(Benghazi)에 기착했다. 사예렛 마트칼은 다시 기지로 돌아가 추후 명령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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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가지에서 7시간 반을 대기하던 피랍기는 재급유를 받고 이륙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사예렛 마트칼은 다시 출동대기 상태에 들어갔으며 피랍기가 로드 공항에 내리는 즉시 구출작전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자정이 되자 놀랍게도 피랍기가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시 피랍기는 우간다의 엔테베(Entebbe) 공항에 내렸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테러범 3명이 납치범들에 합류했다.

2 엔테베 작전

승객들은 피랍된 에어 프랑스 여객기가 엔테베 공항에 착륙하고도 무려 9시간이나 더 기내에 억류되었다. 그리고 6월 28일 월요일 정오가 되자 테러범들은 승객들을 공항 구청사의 승객 로비에 감금했다. 그날 늦은 오후 우간다의 대통령인 이디 아민은 승객들에게 자신이 직접 테러범들과 인질협상을 하고 있으며, 우간다 병사들이 승객의 안전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민은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범과 협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9일 15시 30분경 ‘페루인’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테러범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발표했다. 서독, 프랑스, 스위스, 케냐, 그리고 이스라엘에 투옥된 테러범 53명의 석방을 요구했던 것이다. 만약 이들이 석방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시각으로 7월 1일 14시에 피랍 승객들을 살해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재빨리 대응책을 계획하였다. 일단 협상을 통해 데드라인을 7월 4일로 연기시킨 이스라엘군은 사예렛 마트칼을 우간다로 출동시켰다. 우간다와 적대관계인 케냐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의료지원팀을 태운 보잉 707 한 대를 대기시키고, 특공대가 탄 수송기의 케냐 영공 통과를 허락받았다.

7월 4일 밤 11시경, 사예렛 마트칼 대원 100명은 3대의 C-130 허큘리스 수송기에 분승하고, 전자전기로 개조된 이스라엘 공군 소속 보잉 707 한 대가 동반하여 엔테베 공항을 급습했다. 엔테베 공항 측에는 투옥된 테러범들을 석방해 오는 것이라고 속여 C-130의 착륙 허가를 받았다. 첫 번째 C-130이 착륙하자 화물칸에서 이디 아민의 전용차와 똑같이 보이도록 개조된 메르세데스 벤츠 1대가 나와 우간다 공군부대 쪽으로 향했는데, 여기에는 선발된 흑인 특공대원들이 타고 있었다. 우간다 경비병이 아민의 방문으로 알고 부대 게이트를 열어주자 뒤따라온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우간다 공군부대를 제압하고 추격을 막기 위해 MiG-17 전투기 11기 및 관제시설을 파괴하였다. 한편 인질 구출조는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곧장 공항 건물로 밀고 들어가 납치범 전원과 20여 명의 우간다 군인들을 사살하였다. 이스라엘측의 인명 피해는 현장에서 인질 3명, 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숨진 인질 3명은 총소리에 놀라 일어났다가[2]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사살당했고, 이스라엘측 전사자는 바로 작전을 진두지휘한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3]이었다. 작전에 성공한 대원들은 인질들과 함께 C-130에 타고 이륙, 의료지원팀이 있는 나이로비에 들러 일부 부상자들을 치료한 뒤 이스라엘로 귀환했다.

한편 인질 중 도라 블로흐라는 75세 할머니 인질은 건강상태가 나빠지자 아민이 선심을 써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구출되지 못했는데, 우간다군도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 된 아민은 광분해 이 할머니를 끌어내 처형해버렸다. 그리하여 총 인질 사망자는 4명이 되었다.

그동안 군사 이론상으로만 논의되었던[4] 대규모 인질 구출작전이 실제로 성공적으로 가능함을 증명하였고, 그 후 세계 각국에서는 인질구출작전을 위한 대테러부대 양성과 대테러작전 수립 붐이 불었다. '엔테베 작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습적인 군사작전을 가리키는 관용구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1976년작은 앤서니 홉킨스, 버트 랭커스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1977년작은 제국의 역습의 감독 어빈 커슈너가 감독한 작품이다.
  1. 이 비행기에는 한국인도 1명 타고 있었다.
  2. 사예렛 마트칼 대원들이 진입하면서 히브리어로 "엎드려!"라 외쳤고, 이스라엘인 인질들의 행동에 덩달아 다른 인질들도 엎드렸는데 이들만 예상과 반대로 일어났다고 한다. 이들 3명 모두 유럽 출신이어서 히브리어를 잘 모르지 않았나 추정된다.
  3. 후일 이스라엘 총리가 되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친형이다.
  4. 당시까지 업계인(?)들은 이런 대형 인질극에서 인질 1/3은 희생된다고 가정했고, 대부분 구하기는 말그대로 '이론'일 뿐이라 여겼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