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테일러

  • 이 문서는 리즈 테일러(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제33회
(1960년)
제34회
(1961년)
제35회
(1962년)
시몬 시뇨레
(꼭대기 방)
엘리자베스 테일러
(버터필드 8)
소피아 로렌
(두 여인)
제38회
(1966년)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줄리 크리스티
(달링)
엘리자베스 테일러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캐서린 헵번
(초대받지 않은 손님)
DBE[1]
width=100%
이름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본명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 (Elizabeth Rosemond Taylor)
국적영국, 미국
출생1932년 2월 27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사망2011년 3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직업배우
활동1942년 – 2003년
종교크리스천 사이언스, 유대교
신장157cm
배우자콘래드 힐튼 주니어 (1950 – 1951)
마이클 와일딩 (1952 – 1957), 2남
마이크 토드 (1957– 1958), 1녀
에디 피셔 (1959 – 1964)
리처드 버튼 (1964 – 1975), 1녀
(1975 – 1976)
존 워너 (1976 – 1982)
래리 포튼스키(1991 – 1996)
서명x50px

1 개요


영화<자이언트>에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영화<젊은이의 양지>에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美)의 화신(The Beauty Incarnate)

The NY Times[2]
세기미녀[3]이자 미국 영화 협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7위.

출연하는 영화마다 대히트를 치며 30년[4] 가까이 명성인기를 한몸에 받은 톱스타

영국에서 태어난 미국전설적인 영화배우. 런던 햄스티드에서 미국인인 프랜시스 렌 테일러와 역시 미국인인 세라 비올라 웜브롯[5]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는 오빠 하워드 테일러가 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애칭인 '리즈(Liz)'로 자주 불렸다. 영국에서 미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 때부터 미국과 영국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다.[6]

제2차 세계대전 때 일가족이 미국 LA으로 귀국하였다. 어릴때부터 예쁜 외모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7] 1942년 10세 때 배우로 데뷔했으며 인기를 얻은 것은 <녹원의 천사>라는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 -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성우로 출연한 것까지 합치면 80여 편 - 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버터필드 8> 등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8] 받았으며 골든 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이기도 했다.

8번의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며, 2011년 3월 23일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중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실상 그녀의 사망으로 20세기 할리우드의 여신이라 불리었던 여인들(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캐서린 헵번) 대부분이 이제는 모두 역사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국내에서 전담 성우는 장유진, 송도영.

2 외모

20150929162351152.jpg

말 그대로 미녀대명사. 는 약 160cm였다는데, 그녀의 전성기 시절그야말로 리즈시절엔 그녀의 키 역시 미인의 기준[9]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1963년 개봉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인 리처드 버턴과 열연한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은 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 [10][11]

7c8bdad879.jpg

보라색 눈으로 유명하다.[12] '리즈의 눈, 먼로의 입술' 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로 평가 받는다. 또한 속눈썹이 두 겹으로 나서 더 예뻐 보인다.

3 인간관계

리즈 테일러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이혼인데, 힐튼 호텔의 후계자 콘래드 힐튼 주니어와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8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13], 사실상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세기의 미인 여배우라기보다는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 하는 돈많은 성형중독 아줌마(...) 결혼까지는 안 갔다 하더라도 그 외에도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녀와 결혼한 남자들의 목록(!)을 살펴보자면······.

  •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 (Conrad Hilton Jr.) (1950-1951) - 힐튼 호텔의 경영자의 아들. 테일러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폭력(...) 기사
  • 마이클 윌딩 (Michael Wilding) (1952-1957) -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출산했다.
  • 마이크 토드 (Mike Todd) (1957-1958)- 영화 제작자. 매우 재능있는 사람이었지만 '테일러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 딸 한명을 출산.
  • 에디 피셔 (Eddie Fisher) (1959-1964) -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팝 가수. 이 시기부터 테일러의 막장행보가 시작되는데, 에디 피셔는 유부남인데다 마이크 토드의 친구였고 그의 부인인 영화배우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의 친구였다. 즉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 막장 드라마가 부럽지 않다. 이 때, 아들과 참석한 파티에서 에디 피셔가 그의 아들에게 리즈 테일러를 가리키며 '저 여자 죽이지 않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교황청에서도 이 불륜에 대해 비난했다. 그러나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 출연 중에 상대 배우인 리처드 버튼이랑 눈이 맞아서서 이혼했다.[14] 사실 에디 피셔도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심지어 여기저기 사생아를 만들다보니 헐리우드 파티에 참석한 에디 피셔의 아들이 이상하게도 유난히 끌리는 여자가 있기에 작업을 걸었는데 그 여자가 '우리 이복남매사이예요.울 아빠도 에디 피셔'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사람의 이 유명한 스타워즈레아 공주역을 맡은 캐리 피셔. 참고로 캐리 피셔는 테일러의 딸은 아니다. 테일러와 이혼한 에디 피셔는 슬럼프에 빠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가 죽기 직전 병문안을 가서 화해를 했다고 한다.
  •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 (1964-1975, 1975-1976) - 당대 최고의 터프가이로 유명한 웨일즈 출신의 배우.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맡아 테일러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사랑에 빠졌다. 버튼은 다혈질적인 성격에다가 알코올 중독까지 있어서 테일러와 엄청나게 싸웠지만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15] 테일러는 죽은 후에 이 사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웠으며, 이 때 버튼이 테일러에게 선물한 3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가 유명했다. 딸 머리아 버튼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남.
  • 존 윌리엄 워너 (John William Warner) (1976-1982) - 정치인. 테일러와 결혼한 이후 그 후광으로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5선까지 당선. 해군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 래리 포튼스키 (Larry Fortensky) (1991-1996) - 20살 연하(!)의 건설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 마이클 잭슨의 농장인 네버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턴과 이혼하고 워너를 만나기전, 주미 이란 대사인 아르데시 자헤디와도 염문을 뿌렸지만, 당시 이란 국왕 레자 팔레비의 압력으로 헤어졌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이던 워런 비티와도 사겼다. 하지만 같은 바람둥이인데도 '사랑하면 결혼해야한다.'는 테일러와 '사랑해도 결혼은 최대한 미루자'는 워렌 비티의 결합은 곧 깨어진다.

michaeljacksonliztaylor-450x600.jpg

마이클 잭슨과 절친한 친구 사이[16]여서 잭슨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을때 그의 편을 들었으며 잭슨 또한 그녀를 위해 곡을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잭슨의 자녀 3명의 대모가 되었다.(대부는 맥컬리 컬킨)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어서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원래는 취임식때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암투병 때문에 방문이 무산되어 마이클 잭슨이 대신 그 친서를 전달해주었다고.

article-2243470-165D11C5000005DC-401_634x534.jpg

아직 에이즈가 더러운 게이병, 창녀나 마약중독자나 걸릴 병이라 매도되던 80년대 시절, 오랜 친구인 록 허드슨[17]에이즈 투병을 고백했을 때, 편견없이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 몇 안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4 그 외

  • 상당히 지병이 많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녹원의 천사>에서 승마하는 연기를 하다가 척추를 다쳤다. 이후 이 고질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말년에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한 뇌종양에 걸려 고생했고, 결국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AIDS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는데, 1992년에는 이를 주제로 한 영화로 상을 받기도 했고 사망 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에이즈 협회'라는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18]
  • 2000년, 영국 신년 서훈명단(2000 New Year Honours)에서 대영제국 훈장 여성 2등급(DBE)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대영제국 훈장의 2등급은 받으면 호칭(Sir/Dame)이 따라붙는 '작위급 훈장'이다.[19] 남성의 기사작위(Knight Bachelor)와 동급인 특전인 것이다. 이에 따라, 리즈 테일러는 이때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여사(Dame Elizabeth Taylor, DBE)' 로 불렸다.
  • 몇 편의 애니메이션에 성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심슨매기 심슨역을 맡기도 했는데, 매기가 했던 유일한 대사인 "Daddy"는 이 사람의 목소리이다. 또한 캡틴플래닛에서 앤드루스 부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 2011년 12월에 테일러의 보석 컬렉션이 화제가 되었다. 낙찰 총액이 무려 115,932,000달러에 달했다고. 위에서 언급한 3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는 한국이랜드그룹에게 낙찰되어 대구의 테마파크 '우방타워랜드' '이월드'에서 전시될 예정. 이 외에도 테일러는 진귀한 보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리처드 버턴이 사준 것이었다. 버턴은 성격이 기분파였고 보석을 고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테일러에게 불쑥불쑥 보석을 많이 선물했다고 하는데, <타지마할>의 주인공인 무굴 제국의 왕비가 소유했던 하트 모양의 다이아몬드나, 윈저 공작부인이 소지하고 있던 보석, 펠리페 2세메리 1세에게 선물했던, 500년 전 파나마만에서 한 노예가 건져올렸던 '라 페레그리나 진주'가 달린 목걸이[20]등이 있다.
  • 생전 테일러가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였고,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호의적이었다는 이유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에서 "잘 죽었다" 팻말을 들고 테일러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교회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굳이 장례식장에서 하는 것과 고인드립으로 악명 높다. 한편 장례식은 비공개로 거행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정많은 의리 있는 성격에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힘쓰고 동물을 무척 사랑했던 스타로 유명하다고 한다.

5 어록

  • 나는 항상 남편과 아이들을 원했지만, 가정주부로서의 내 삶은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자리는 관객들이 봐주는 영화속이다.
  • 당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웨이트리스가 될 뿐이다. 당신은 절대로 존경받지 못할 것이다.
  • 세월과 체중과 주름과 싸우는 것은 여배우의 숙명이다. 나는 언제나 아름답고자 노력할 것이다.
  •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것 뿐이었다.
  •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 리처드 버턴과 이혼하면서..나중에 나훈아-김지미 커플도 이 말을 써먹는다
  • 성공은 탈취제 같다. 과거의 향기를 다 앗아가 버리니까.
  • 나는 많은 남편과 보석을 얻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삶은 그저 발생했다.
  • 나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잔 적은 한번도 없다.
  • 당신이 스캔들에 휘말릴 때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 아름다움 - 아카데미 시상식 후 피로연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꼽으라고 했을때의 대답
  • 내가 아는 이탈리아 단어는 오직 불가리(이탈리아 최고의 보석상, 리즈는 불가리의 뮤즈였다.)뿐.
  1. DBE를 받은 배우는 히치콕 <가스등>의 고전여배우 앤젤라 랜즈베리, 줄리 앤드류스, 헬렌 미렌, 매기 스미스, 주디 덴치뿐으로 다섯 손가락 내외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히 드물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기사 준 등급 보다 높으며 남성 기사 작위 KBE를 받은 찰리 채플린과 동등한 정식 2등급 기사 등급이다.
  2. 마릴린 먼로는 섹시함의 여신(sex goddess)이였고, 그레이스 켈리는 얼음 여왕 (ice queen) 이였으며, 오드리 헵번이 영원한 사랑스러운 말괄량이(eternal gamine)였으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미의 화신 (beauty incarnate)이였다. -뉴욕 타임즈.
  3. 흔히 많은 미의 상징이된 미녀들 중,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절대미의 배우라고 말한다. 다른 미덕들은 차치하고, 이상적인 외모 자체를 타고났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당대 의 표본. 누구보다 사진을 잘 받는, 어느 각도에서 촬영해도 결점이 없는, 가장 포토제닉한 등의 수식어가 붙는 아름다운 비율(比率)의 이목구비와 완벽한 얼굴로 평가 받는다.
  4. 40년대~60년대. 10살부터 아역으로 타고난 연기자였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번이나 수상한 뛰어난 연기력까지 갖춘 완전체 여배우. 알 사람은 아는 필모그래피와 연기력이지만 미녀배우들이 그렇듯이 외향보다 대중들에게 쉽게 연기파 배우로 조명되지 않는다. 미의 기준으로 군림했던 당시 그녀의 헐리우드에서의 존재감을 알 수 있다.
  5. 세라 비올라 웜브롯은 엄청난 극성엄마였다. 이름을 그다지 날리지 못한 무명 배우 출신이라, 무명시절 컴플렉스가 작용하여 엘리자베스를 스타로 만들려고 혹독히 키웠다. 또한 매일같이 엘리자베스의 사생활, 연인, 유명세 등등의 문제에 사사건건 난입하여 집착 증세를 놓지 못했다. 자신이 포기한 연예인의 꿈을 딸의 성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전형적인 케이스라 볼 수 있겠다.
  6. 당시에는 영국도 현재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적 속지주의를 채택하여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영국 영토 내에서 태어난 신생아에게는 자동적으로 영국 국적을 부여하였다. 물론 현재는 국적법이 속인주의로 개정되어 영국에서 태어났다고 자동으로 영국 국적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7. #
  8.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여배우는 10여명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 메릴 스트립(2011년 기준), 조디 포스터, 힐러리 스웽크 등이 있다.
  9. 당시 미국 여성 평균키는 저거보다 컸다. 그녀는 당시 미국 여성 중에서도 왜소한 편이었던 것. 그랬는데도 닥치고 키 큰 거 좋아하는 미국에서(당시에도 키 170 이상 여자연예인들은 많았다.) 저런 얘기가 농담으로라도 나왔다는 것은 그녀의 인기 임팩트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10. 하지만 영화는 쫄딱 망했다. 당시 역대 최대규모인 약 4,5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으나 흥행수익은 겨우 2,600만 달러(사실 그 해에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거둔 영화긴 하지만, 제작비가 워낙 엄청난지라...)로 제작사인 20세기폭스사의 재정을 휘청이게 했다. 4,500만 달러는 2013년 기준으로 약 3억 5,000만불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근데 영화제작비가 이렇게 천정부지로 뛴 데는 테일러의 잘못이 크다. 대형세트를 짓고 엄청난 엑스트라를 동원해 영화를 찍다가, 남자주인공인 리처드 버튼과 사랑에 빠지자 감독과 제작사에말도 없이 촬영을 중단하고 밀월여행을 떠나버린 것. 결국 영화 제작 기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뛰어버렸고, 당대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히던 조셉 L. 맨키위즈 감독(영화 '이브의 모든 것'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및 감독상을 수상하는등 아카데미 감독상만 2번 수상)의 커리어도 그대로 끝나버렸다
  11. 다만 테일러의 책임이 100%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테일러 자신도 너무 아팠고-이때 사경을 해메는 수술을 한 탓에 목에 흉터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촬영이 여러번 중단되었고 영화 자체도 몇번 엎어졌다 재촬영한 부분이 많다. 더군다나 감독과 배우의 요청으로 런던에서 이집트 장면을 찍는 바람에 사막의 이집트에서 입에 김이 나는 장면도 나올 정도이니 몇번의 재촬영을 겪은 것. 내용 자체는 그냥 세익스피어 연극의 극화 정도니...
  12. 사실 서양인들은 단순히 '파란 눈'이라고 적혀있지 않는 이상 눈의 색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게, 빛의 방향에 따라 녹색 눈이 회색으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이는 안타깝게도(?) 최고 기록은 아닌데, 자자 가보 라는 여배우가 무려 9번이나 결혼을 하였었기 때문이다. 이 중 여덟번째 결혼은 단 하루만에 끝난걸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자자 가보의 언니인 마그다 가보는 6번의 결혼을 하였고, 동생인 에바 가보는 다섯 번의 결혼을 하여 세 자매가 한 결혼 횟수를 모두 합하면 무려 20회라는 횟수를 자랑하는데... (...) 뿐만 아니라 자자 가보의 세 번째 남편 이었던 조지 샌더스는 나중에 마그다 가보와 다시 결혼하고 1년 만에 이혼 하였다. 자매덮밥 이들 자매의 엄마인 졸리 가보도 세 차례나 결혼하였던 전력이 있다. 모전여전 패리스 힐튼과는 혈연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자자 가보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콘래드 힐튼이 패리스 힐튼의 증조부이기 때문에, 항렬로 따지자면 패리스 힐튼은 자자 가보의 그녀의 증손녀 뻘인데 그래서 페리스 힐튼이 한창 막장 행보로 이름을 날릴때 자자 가보와 비견 되기도 하였었다. 1917년생인 자자 가보는 2011년에 과거에 당했던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감염으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사경을 헤맸었지만 99세가 된 2016년 까지도 여전히 생존해 있다. 다만 워낙 고령의 나이인지라 오늘 내일 하고 있다. 자자 가보의 유일한 딸이었던 프란체스카 힐튼은 2015년 1월 어머니에 앞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링크한 기사 내용대로, 자자 가보 보다 무려 26세나 어렸던 자자 가보의 마지막 9번째 남편 안 할트와 프란체스카 힐튼은 사이가 엄청 좋지 않았었다.
  14. 클레오파트라 촬영장 근처 호텔에서 머물 때, 테일러는 피셔에게 자기를 안고 계단을 올라가달라고 요구했지만, 피셔가 비틀거리자 터프가이인 버튼이 피셔에게서 테일러를 빼앗아 계단을 올라갔고 피셔는 다음 날 역기를 샀다는 일화가 있다.
  15.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과는 이혼 후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16. 심지어 이 사람과도 염문설이 돌았다. 26살 차인데. 젊은 남자와도 염문설이 도는 마성의 여인네(...) 잭슨이 리즈 테일러에게 청혼했다는 얘기는 있으나 둘은 끝까지 친구로 남았다.
  17. 두 사람은 영화에서 부부역할을 했었다.
  18. 92년에 역시 에이즈로 사망한 프레디 머큐리 트리뷰트 공연에 나와 에이즈와 관련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19. 3등급 CBE, 4등급 OBE, 5등급 MBE는 그것만 받아서는 호칭이 따라붙지 않는 일반 훈장이다.
  20. 테일러는 이 목걸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선물한 버턴의 성격이 워낙 지랄같아 말도 못하고 한 층 전체를 차지한 스위트룸의 카페트를 일일이 발로 밟아가면서 몇 시간을 끙끙거리며 찾다가 키우던 개의 입속(!)에서 찾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