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여강시(리장시)에 대해서는 리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呂强
(? ~ 184)
후한 말의 인물. 자는 한성(漢盛).
하남 성고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환관으로 소황문이 되었고 중상시로 승진했으며, 청렴하고 충성스러워 나라를 위해 힘썼다.
영제 때 도향후에 봉해졌다가 이를 사양했으며, 중상시 정황의 모함을 받은 채옹의 무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영제가 이를 듣지 않아 채옹은 삭방으로 유배되었다. 영제가 뇌물을 많이 모아 보물들을 거둬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상소를 올렸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184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영제가 시행해야 할 것에 대해 묻자 좌우의 간신들을 주살하고 당인들을 대사면해 관리로 뽑아야 한다고 했으며, 이에 영제가 당인들을 사면시키자 여러 상시들이 물러나길 원하면서 각자 주군에 있는 종친, 자제를 불러 돌아오게 했다.
이로 인해 중상시 조충, 하운 등이 여강이 당인들과 함께 조정을 의논하고 곽광전을 읽어 역심을 품었으며, 여강의 형제가 있는 곳은 모두 탐욕스럽고 더럽다고 모함했다. 영제가 여강을 부르자 여강은 자신이 죽으면 난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국가에 충성을 다하길 원했는데, 어찌 옥리를 대할 수 있겠냐고 말하다가 자살했다.
여강이 죽자 조충, 하운 등이 바깥에서 자살했으니, 간사함이 있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모함하자 여강의 종친은 체포되고 재산이 몰수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채옹을 돕는 것이 나오지만 모종강본에서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