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중국사대기서
삼국지연의수호전서유기금병매

三國志演義

1 개요

원나라 ~ 명나라대의 선비인 나관중이 저술한 역사소설로 흔히들 삼국지연의라고 부르지만 본래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삼국연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그냥 삼국지라고만 해도 역사책보다 본 항목의 연의를 가리킬 때가 더 많다.[1] 중국의 서적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서적 중 하나이며, 이른바 중국사대기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동아시아권에서 현재까지도 자주 읽히는 고전소설.

진나라 평양후 진수가 남긴 역사 전기를

후학 나관중이 순서에 따라 편집했다. (晉平陽侯陳壽史傳, 後學羅貫中編次.)”

삼국지연의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첫머리의 글. 세간의 오해와 달리 삼국지연의는 역사책도 아니요, 뜬금 없이 막 쓴 소설책도 아닌, 역사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책이라는 사실을 극명히 알 수 있다. 연의(演義)라는 말 자체가 "사실에 내용을 보태서 재미나게 설명한 책이나 창극"이라는 뜻이다. 즉, 제목을 의역하자면 "역사소설 삼국지"쯤 된다고 볼수 있다.

즉 실제 역사는 절대로 이와 똑같지 않다. 따라서 정사 삼국지자치통감, 후한서 등 정식 역사서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연의를 역사서로 받아들이면 엄청나게 잘못된 선입견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의 굵은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어느정도 참고가치가 있으며 "연의는 무조건 거짓이고 정사는 그 반대다" 라는 마인드로 추측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이론도 다소 있지만) 대개 한일 양국에서는 미국-유럽의 주요 명작작품들에 삼국지연의와 서유기를 추가하면 세계명작 시리즈가 완성된다고 보고 있다.

2 줄거리

3 상세

"천하의 대세는 오랫동안 나뉘어지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다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2]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 초한지의 배경이 되는 시황제 사후의 시기 다음으로 대대적인 난세가 일어난 말~초 까지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다. 일명 삼국지. 삼국지만 읽으면 그 시대에 유독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 쉬우나, 삼국지의 내용만 주목받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다. 중국이 난세가 되면 그 정도 숫자의 인재들은 항상 나타났다. 삼국지의 내용이 끝나고 바로 다음 시대가 되면 이민족들이 북쪽에서 떼거지로 내려온다. 물론 청나라의 고증학자인 조익[3]의 의견처럼 50년 남짓되는 시간에 많은 숫자의 인재가 몰려 '인재밀도'는 다른 시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그 시대의 인재라는 사람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력은 별 거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학문적으로는 훈고학, 경학의 시조로 꼽히는 정현, 논어의 주석을 남긴 하안, 노자의 주석을 남긴 왕필,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 춘추좌전집해를 남긴 두예, 해서의 개조로 꼽히는 종요, 문학에서 유명했던 조조, 조식, 중경신부를 만든 순욱, 정치적으로는 위나라서진을 건국한 조비사마염, 둔전제를 건의한 한호구품관인법을 제정한 진군, 사회적으로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 오두미도를 전파한 장로, 베트남과 관련해서 영향을 끼친 사섭 정도밖에는 손꼽히는 인물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으론 과도하게 삼국시대에만 몰린 관심(빠질)을 비판하는 의도야 이해하지만 후대에 준 영향만으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전국시대나 한국의 후삼국시대, 바로 앞 시대 중 하나인 초한전쟁시기를 살아간 사람들 중에서도 대단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 후대에 까지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인물은 많지 않다는 것. 문학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고 그 시대를 만든 삼국의 군주들인 유비, 손권이 조조보다 영향력이 못하다고 할 수도 없다. 제갈량 같은 인물은 저 중에 들어가지 못하는데도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이다.[4] 물론 역사학이라는 관점에서 삼국시대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시대는 아니었고, 삼국시대만 특별히 더 대단한 인물들이 활동했던건 아니므로 과도한 빠질은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무조건 별볼일 없는 시대, 별볼일 없는 인물들이란 시각도 지양해야 한다는 시각인 것이다.

또한 나관중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1천 년 후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관중이 당시 고고학이나 문화인류학의 전문가는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삼국지연의의 전반적 분위기는 후한 말 당시의 느낌보다는 원나라 말기의 느낌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조조의 백만 대군' 드립이나 관우가 송대 이후에나 등장하는 청룡도를 들고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원나라 말기 쯤 되면 중국에서는 민중봉기가 크게 일어나면 보통 규모가 수십만 명 정도였다. 말 그대로 대륙 스케일.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동양 최고의 고전이자 필독도서로 인정받는 소설이며[5], 그 덕분에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정사 삼국지와 연의를 헷갈리는 이가 많을 정도.

나관중 이전에도 삼국지 이야기는 인기가 많았고,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았던 인물도 많았다. 그 사람들의 대본을 묶은 것이 바로 삼국지평화.[6] 정사를 뼈대로 하되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담이나 설화등을 채용하여 재미의 추구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대략 7할의 사실과 3할의 허구라는 청나라 학자 장학성(章學誠)의 평이다. 대한민국 사극과 비교하면 이것만도 감사하다 관우 신앙의 기폭제가 되었고 촉한정통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현대 삼국지의 이미지를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소설. 다만 이 모든 것을 나관중 개인이 정립시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이미지를 채용했을 뿐. 삼국지연의의 기반으로 평가받는 삼국지평화에서도 이미 이와 같은 방향성은 확립되어 있었다.

한때 촉빠위까 움직임 때문에 많이 까였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오히려 나관중의 시각이 현대의 어설픈 이들보다 백 배 낫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리어 나관중은 숨겨진 촉까가 아니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번역본 등에서는 대부분 누락되지만 원본에서는 각 화가 끝날 때마다 드라마 마지막처럼 결정적인 부분에서 끝내면서 "그 다음을 알고 싶다면 다음 편을 보시오!"라는 문구가 나온다.[7] 이후의 연의 판본도 모두 이 방식을 빌리고 있으며, 이것은 황석영 삼국지에서 재현되어 있다. 심지어 쌀과 소금의 시대라는 대체역사소설에서는 서양 작가가 이 문구를 빌려오기도 했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에서도 이런 문구를 빌려썼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일단 유비다. 유비가 살아생전동안 쭉 유비로 주인공을 이어오다가 유비가 사망하는 시점에서 제갈량이 주인공으로 변경된다. 또한 그 상태에서 주인공인 제갈량사마의와 겨루게 되고 제갈량이 사망하면 주인공 자리를 강유에게로 넘기게 된다. 강유는 종회의 반란 직후까지 주인공으로 활약하다가 사망하며, 삼국지연의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사실상 종료된다. 까와 빠의 개념을 떠나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이렇게 변경된다. 사실 100년 가까이 되는 기간이 삼국지 시대의 흐름인지라 한 명이 주인공을 차지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기도 하다.[8]

그런데 대부분의 삼국지연의는 정비석 삼국지라든가 고우영 삼국지라든가 대부분 제갈량이 사망하면 완결된다. 연의의 시작이 184년 황건적의 난이고 제갈량이 죽은 건 234년으로 딱 50년이다. 제갈량 사후에 진이 삼국을 통일한 것이 280년이므로 실제로 제갈량의 죽음은 역사상에서 보면 중간 반환점 정도인 셈이다. 고우영 삼국지의 경우 제갈량이 사망한 후 사마염이 최대한 얌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씨, 조씨, 손씨들을 비웃는 장면 하나가 끝이며 사마염이 중국 전토를 도적질 통일했다는 한 마디만 나오고 완결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일본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번역한 것이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항목을 참고.

3.1 과연 연의는 촉빠인가

삼국지연의가 촉빠라는 설은 아무튼 송대 이후 지식인 사회에서는 촉한정통론이 대세였고, 제갈량이나 관우는 유교적 충신의 모범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촉의 인물이 높게 평가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많다(…).

일단 실제 역사서와 비교해 봤을 때 촉한의 인물들에게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으며, 이들의 행동을 미화하거나 업적을 날조 부풀리는 대목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교의 기준을 정사에 맞춘다면 연의는 다분히 촉빠적인 성향을 띄고 있으며, 이 사실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비교의 대상을 원대 이전 시대의 삼국지 관련 창작물, 단적으로 삼국지평화와 비교한다면 연의는 상당히 발전한 점이 많은 작품으로서 상대적으로 삼국시대의 세 세력을 균형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국지연의는 단순히 유관장 중심의 통속적인 영웅물이던 삼국지평화 수준을 뛰어넘어, 군상극적인 특성을 가진 복합적이고 비극적 요소를 갖춘 '군웅물'로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거지만 삼국지연의란 작품은 본래 나관중이 그런 내용으로 써서 사람들이 그렇게 알게 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관중이 그런 내용으로 쓴 작품이다. 흔히 보이는 촉까들이나 '촉빠 나관중의 고의 왜곡' 같은 거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잊고 있는(혹은 아예 모르는)것. 누가 왜곡을 해서가 아니라 애당초 그 작품이 태어난 땅에서는 민심 자체가 늘 촉한 쪽에 기울어 있었다는 이야기, 당장 삼국지평화의 묘사를 보면 연의는 그 시대 작품치고 굉장히 다른 세력을 우대한 작품이다.

삼국지연의는 이전과는 달리 조조를 "단순하기 짝이 없는 평면적인 악당"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연의의 조조는 군사적인 재능과 뛰어난 지략을 갖춘 영웅으로서의 외관을 갖추고 있으되, 내면적으론 형식적인 충심을 지녔으나 그 밑으로 끝없는 야망을 품고 있고, 의외로 인정많은 면을 지녔으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서슴없이 희생시키는 잔혹함을 동시에 갖춘 대단히 이중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반론이 있다. 물론 조조는 이미 예전부터 악인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정사 등에 표현된 그의 장점도 버리지 않고 표현했다. 조조가 죽는 장면을 보면 그의 과거의 악행의 응보를 받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조조 본인은 죽을 것 같자 신하들이 하늘에 제를 올려보자고 하자 "하늘이 정한 천명이니 제를 올려도 소용없다"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처첩들에게 스스로 살림을 해서 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조조가 죽고 난 뒤 삽입된 업중가에선 "지략도 뛰어나고 문장도 잘 짓고 부하들과도 사이가 좋고, 이만한 사람이 그냥 신하로만 있겠냐"고 얘기하고 무정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또 업중가의 마지막 구절은 죽은 사람 가지고 평하기 좋아하는 서생들을 무덤 속에선 비웃는다라고 얘기하며 끝난다. 단순 악역이라기엔 너무나도 당당한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보통 외면의 재능이 있으면 내면으로도 좋은 품성을 가지고, 외면이 찌질하면 내면도 찌질하기 마련인 고대 소설에서 이처럼 복합적인 인물은 찾기 어렵다. 물론 당시에는 "겉과 속이 다른 간웅"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컸겠지만, 이런 묘사는 "유교적 도덕성"에 둔감해진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조조의 평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거기다가 삼국지평화에서는 같은 장면이라도 조조를 악인으로 묘사하는 게 한두 장면이 아닌데, 일례로 관우가 유비를 찾아 떠나려고 하자 조조는 관우를 계략을 써서 잡으려고 하고, 헌제의 아들을 길가에서 참수시키는 등 완전한 악역으로 등장했다.

또 이전의 삼국지 관련작에서는, 조조를 제외한 위나라 인물은 지극히 비중이 적었다. 심지어 삼국지평화에서는 조조가 "나에게는 모사가 없다"라고 한탄하는 장면까지 있다. 사실상 창작물의 세계에서 위나라의 신하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왠지 장료가 모사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에 반해서 연의에서는 곽가 등의 위나라 측 인물에게도 어느 정도 존재감을 주고 있다.

의 경우도 이전의 삼국지 관련작에서는 단순히 손견이 잠시 출연하거나, 적벽대전에 이름을 올리거나, 관우의 죽음이나 이릉 전투에서 약간 등장하는 정도였지만, 연의에서는 오나라의 성립이나 멸망까지 잘 묘사하고 있다. 단, 손권 말년의 후계자를 둘러싼 삽질과 황실 내부의 암투가 빠져버리고, 마지막 황제 손호의 막장 행각도 대충 넘어가 실제역사보다 나아 보이게 되었다. 아마도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강남에서 일어나 천하를 차지한 명대에 쓰여진 소설이라 같은 강남 기반의 오를 까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삼국지는 군담소설이다보니 대놓고 쌈박질하거나 메인 플롯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만큼 굳이 다뤄야 할 필요를 못 느낀 나관중이 그냥 빼놓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삼국지연의를 보면 위나 오의 인물들이 명백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짤막하게나마 많다[9]. 이런 부분에서 위나 오의 인물들은 각자 용기와 지혜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어 그 전의 삼국지평화와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주인공은 촉이되 다른 세력도 최소한 자신들의 에피소드에서만큼은 주인공으로서 그리고 있다.

유비의 경우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조에 버금가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으며, 군략에도 뒤지지 않는 효웅으로 평가받는데 반하여 연의에서는 전장에서의 활약은 전부 관우, 장비, 조운이 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전략적인 면은 죄다 제갈량의 뛰어난 지혜덕인 것으로 바꿔 놓아, 아무 활약이 없는 무능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제갈량이 기용되기 전의 승리조차 제갈량 기용 후로 슬그머니 옮겨 가며 공로를 빼앗겼다.[10] 게다가 툭하면 울거나 신세한탄이나 늘어 놓아, 현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찌질이로 보일 지경이다. 거기다가 정사에서는 유비군도 적벽대전에 참전했고(연합군 병력도 유비군 2만, 손권군 3만으로 별로 밀리지도 않는다) 주유의 남군 공략도 도와줬는데도 불구하고 연의에선 적벽대전은 강건너 불구경하다 퇴각하는 조조군 뒷치기나 하고, 남군은 주유가 부상입으면서 필사적으로 싸워 조인을 몰아내자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성만 낼름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손권이 계속 형주 돌려달라고 하는게 정사보다 연의가 더 정당성있어 보일 지경. 이 정도까지 오면 나관중이 위빠라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조조는 희대의 영웅으로, 유비는 인덕인덕 거리기만 하고 능력 없으며 최대한 찌질하게 보이도록 해놨다.

나관중유교수호지의 영향을 받아, 유비를 무보다는 문에 치중하는 유학의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잡은 데다가, '스스로 나서기 보다는 호걸들을 조정하는 역'인 수호지의 송강과 비슷한 인물상으로 그리려 하다보니 현대 독자들의 눈에는 찌질하게 보이게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11] 이렇게 인덕을 강조하기 위해서 유비의 묘사는 팔이 길고, 귓볼이 두툼한 등 부처의 81상과 닮은 모습을 제법 보인다.

그러나 인덕이 강조되었다고 하지만, 근대 이후 유비는 중국인들에게조차 무능하지만 음흉한 인물로 여겨지니[12], 이렇듯 유비의 묘사는 소설을 위해서 많이 달라진 감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정리하면, 유불도 삼교의 조화를 중심으로 한 중국 정서에서 보자면 그들에게 가장 완벽한 군주는 , 임금이다. 즉 '무위의 치'[13] 군주는 자비로움과 포용의 태도로 모두를 감싸안을 뿐 마구잡이로 군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사의 유비는 능력과 결단성도 뛰어난 편이나 이러한 면들이 연의에서는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전대의 한고제 유방과도 상당히 비슷한 경우, 유방 역시 정치적인 능력, 식견, 인용술, 야심, 군사적인 능력 모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초한지 등 창작물에서는 군림하지 않으며 한발짝 뒤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부하들을 쓰는 모습만 강조되며 그리고 이후 토사구팽까지 무능력하고 음흉해 보이는 것과 같은 경우.

단, 나관중의 원작에 모종강 부자가 주석을 달면서 점차 친촉/반위적인 내용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나관중의 관심이 "영웅 쟁패"였다면, 모종강 부자의 그것은 "권선징악"에 가까웠다.[14] 또한 루쉰이 정리한 차이점에 따르면 나관중 본은 촉에 불리하거나 덜 멋진(...) 부분이 많다. 오랜 떡밥이던 "안량이 유비에게 관우에 대한 얘기를 듣고 말을 걸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은 나관중 본에서만 나오며 모종강 본은 삭제되어있다. 또한 손부인이 유비의 패배 소식을 듣고 자살하는 것은 모종강 본에서 추가된 것이며 심지어 나관중 본은 제갈첨이 등애에게 항복할까 망설이는 부분까지 있다. 한 마디로 나관중은 촉의 인물들도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 등을 묘사했지만 모종강 본에 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촉이 되는 것이다. 모종강의 인지도가 나관중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나관중이 자신과 관계 없는 부분까지 욕먹는 것.

제갈량의 북벌도 촉이 크게 패한 건 1차 북벌 한 번 밖에 없고 나머지 북벌에서 일어난 전투는 거의 다 이기거나 큰 피해없이 후퇴했는데 연의에선 진창에서 학소가 제갈량을 완벽히 발라버리고 사마의도 위수에서 한 번 제갈량의 작전을 간파해 큰 피해를 입히는 걸로 바뀌었다. 정작 정사에서 진창 전투는 좀 찔러보다가 안 되니까 그냥 물러난 것에 가깝고 사마의는 전투로는 제갈량을 한 번도 못 이겼다.

끝으로 정사를 참고하면서도 진나라 사관이었던 진수가 차마 건들 수 없었던 사마씨의 찬탈이나 기전체 사료의 특성인 뒤죽박죽한 부분들(예컨데 합비전투)을 나름대로 매끄럽게 정리함으로서 정사보다도 서술이 낫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도 없진 않다. 당대에 이런 민담 수준을 뛰어넘는 고퀄리티의 역사 소설을 남길 수 있다는게 놀라운 지경. 현대 사극 작가들은 반성하도록 하자

3.2 형성에 관하여

작가 나관중은 "민담"을 많이 인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삼국지연의를 그 이전 시대의 삼국지 관련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의외로 민담의 비중은 적고, 많은 부분이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창작 과정을 거쳐서 구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본이 되는 삼국지평화의 내용 자체가 삼국지 연의의 총량중 10% 수준이다. 마개조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사실상 재창작.

실제로 가정본(1522년의 판본) 삼국지통속연의의 서문을 써준 장대기는 나관중이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연의를 편차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다만 현대의 연구에서는 정사 삼국지를 직접 참조하였다기보다는 자치통감의 축약본을 직접적인 자료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사 삼국지는 기전체라서 구조가 복잡하여 자료로 쓰기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편년체 형식인 자치통감이 이야기를 만드는 자료로서는 더 나았을 것이다.

지난 원나라 시대에는 민간에 전해지는 역사를 바탕으로 평화를 만들어 이야기꾼에게 구연하게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류가 많고 너무나 저속하여 교양있는 사군자들이 대부분 싫어했다. 그래서 동원 땅 출신의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신중하게 취사선택하여 편찬하고 삼국지통속연의라 이름했다. 그 문장은 심오하지 않고, 말투는 그다지 속되지 않으며, 사실을 기록하여 역사 본연의 모습에 접근했다. 독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 가정본 《삼국지통속연의》 서문 / 부산대 삼국지문화기행 교재에서 인용

오히려 삼국지연의 이후 시대에 발생하는 민담이나 파생작품들은 대부분 삼국지연의에 기초하여 연의를 일부 변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4 비극적 주제

삼국지연의는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 작품이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謀事在人成事在天, 모사재인성사재천) - 제갈량

사마염이 중국을 통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은 결국 유비, 조조 등 모든 영웅들의 노력이 대부분 허사로 끝났음을 보여주며, 뒷사람들 탄식하며 공연히 가슴 설레네!(後人憑弔空牢騷)[15]라는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허무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처음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허무하게 사라지고 실패하는 영웅들의 최후를 보면 "재수없는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야말로 인생무상.

실제로 유비의 촉은 명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어 망해버리고, 조조의 위는 힘은 강했지만 (소설상으론)찬탈로 건설된 나라인만큼 신하였던 사마씨에게 무력하게 찬탈당하며[16], 오나라도 결국엔 세력이 밀려서 멸망한다.

한 서양 학자(피터 R. 무디 주니어라는 교수의 "The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and Popular Chinese political thought"는 이 엔딩과 전체 구성을 보고 시니컬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아니 실제 역사가 그런 걸 어쩌라고 단, 이건 문학에 드러난 심성에 대한 평가이지 이것만 보고 서양학자라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평하는건 무리다. 기본적으로 무디 교수는 중국 현대 정치사상사 전공이긴 하지만 엄연히 중국정치를 전공한 학자다. 그런 사람이 삼국시대의 역사가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모른다는건 어불성설이다.

이는 애초에 동양의 군담과 서양의 기사 이야기들은 그 테마가 좀 다른데서 기인하는 평가로, 삼국지에 대해 서양식 기사 이야기를 일컫는 단어인 Romance를 붙여 번역하긴 하지만[17] 서양식 기사 이야기가 강적, 특히 이교도와 맞서 싸우며 기사도를 지켜내는 절대선에 가까운 용사를 칭송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동양식 군담은 대개 권력다툼과 영웅들의 활약이 긴 역사 안에서 갖는 본질적인 허망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악 대립에 익숙한 서양인들이 선악의 구별이 희미하고 선도 악도 세월 속에서 스러져버리는 동양식 세계관을 염세주의적이라고 느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예 인생무상을 아주 잘 나타냈다고 평가받는 명문으로 시작하는 헤이케모노가타리나 괜히 뒷사람이 영웅들을 추억하는 쓸쓸한 이야기라 강조하며 시작하고 끝나는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인 예시.[18]

5 일관성이 없는 부분들

삼국지연의는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삼국지연의에서 구전 화소들을 상당부분 채택한 결과이다. 개개의 구전 화소들이 덕지덕지 붙다 보면 역사적 사실이라든지 다른 화소들과 비교할 때 일관성이 없을 수밖에 없다.[19] 그래서 현대의 삼국지를 다루는 매체들은 이 부분을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도 꽤 많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의 동남풍 드립은 사실 천문을 유심히 관찰해서 타이밍에 맞춘 쇼맨십이었다던가.

  • 장각이 과거에서 떨어졌다고 서술이 나오는데, 실제로 과거제수나라때부터 나온다.
  • 정원의 관직은 병주자사이며 형주자사가 아니다.(낙양입성 직후 집금오에 임명) 참고로 형주자사로 유명한 유표는 동탁 집권기에 형주자사로 임명된 사람이다.
  • 관우의 천리행을 지도에 그려보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빙빙 돌면서 가고 있다.
  • 서서가 계책으로 조인을 물리치던 시점에 조인이 뜬금없이 번성에 주둔하고 있다. 번성은 유표의 거점인 양양의 바로 이웃에 있는 성인 만큼 유비가 주둔한 신야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길도 하나뿐이라 조인이 신야를 우회해 번성으로 가서 주둔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불게 하여 이 동남풍을 이용하여 화공을 사용해 조조군을 격퇴시켰다고 묘사되었지만 그런 능력을 장합이나 사마의에게는 써먹지 못했다. 심지어 안개가 낄 것을 예측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북벌중에는 소나기가 내릴 것도 예측 못해 상방곡에서 거의 다 잡을 뻔한 사마의를 놓치기도 한다.
  •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화공을 받은 직후 패주하다가 복병을 여러 번 만나는데[20] 연의 내용을 보면 조조는 남군 강릉으로 가기 위해 남이릉 길을 택하는데, 하늘에 기도를 해 동남풍을 불게 하고 유비 진영으로 귀환한 제갈량이 조운에게 형주/남군 가는 길 중 형주 가는 길을 막고, 장비에게 남이릉/북이릉 가는 길 중 북이릉 길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퇴각하던 조조는 조운을 만나 털리고[21], 남이릉 길로 가던 중 장비에게 습격당한다(...)
  • 적벽대전 이후 주유가 남군성을 공략하는 도중에 유비군에게 강릉, 양양, 남군을 스틸당하는데 그중 양양은 어느새 관우가 형주공방전으로 공격할때 어느새 조조의 땅으로 나온다.
  • 조비가 5로 침공전에 남만에게 촉을 공격하라고 애기하는데, 낙양과 익주의 거리가 멀고 가는 길이 험하고, 사신이 남만에 도착한다고 해도 최소 1년이 걸린다. 그럼 맹획에게 도착한 사신은 등애급인 등산가인가? 실제로 5로 침공은 허구이며, 맹획의 거병은 손권의 명을 받고, 사섭의 권유로 통해 옹개가 끌어들여서 한것이다.

6 조선전래 및 유행

대략적으로 연의가 조선에 들어온 시기는 16세기 초중엽 쯤으로 추정되는데 2000년대에 16세기 중엽 판본으로 추정되는 삼국지연의의 금속활자본이 발견된 적이 있다.해당기사, 이후에도 적벽가 등에서 보듯이 어느 정도 조선만의 독자적인 삼국지 관(?)이 형성되었던 듯 하다.

비슷한 시기 조선왕조실록에도 잠깐 언급되는데, 선조 2년(1569년)에 기대승이 선조 임금 앞에서 '삼국지연의라는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라고 이런 책이 인출(印出, 인쇄)되기까지 했다며 개탄하고 연의와 함께 초한지, 전등신화태평광기까지 싸그리 모아서 깐다. 이 말 이전에 선조가 '장비의 고함에 만군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연의에는 있다고 들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어쨌거나 임금인 선조도 연의가 유행한 것을 주위에서 들었을 정도로 금세 알려진 책이던지, 아니면 선조도 실제로 봤는데(...) 대놓고 봤다고 하면 좀 그러니까 그렇게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해당 실록기사 어쨌거나 유학자의 입장에서, 실제의 역사가 아닌 창작물이 그럴싸하게 회자되는 세태가 우려되었던 듯 하다. 근데 솔직히 그만큼 재미있긴 하다. 온갖가지 오락물이 넘쳐나는 지금도 수많은 삼덕후가 양산될 정도인데, 조선시대 사람에게 이게 얼마나 흥미진진했을지는 알 만하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자료를 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삼국지 문화는 현대에 별로 전달되지 못했다. 후일 문체반정을 일으켰을 정도로 문체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정조는 삼국지를 잡스러운 책이라고 나는 삼국지(연의)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는 이순신을 칭찬하면서 '제갈공명과 싸워도 누가 이길지 모른다'고도 했다지만 애시당초 조선이 성리학 국가였고 그 때문에 촉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경우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진짜 역사서만 보고 연의는 안 봤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홍재전서를 보면 어떤 신하가 연의의 오로침공전 에피소드와 제갈량 거문고 공성계(...)[22]를 얘기했는데 그냥 넘어갔다. 이런 걸 보면 진짜로 안 봐서 지적을 못 한 걸 수도 있다.[23]

7 번역

현대에 들어서도 한국에선 월탄 박종화, 김구용 등 많은 작가들이 삼국지 번역을 시도했으며, 근래에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등이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문학적 가치를 높였다 하여 유명해졌다.[24] 하지만 의미를 올바르게 번역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본 삼국지, 정원기 교수의 정역 삼국지, 그리고 박기봉의 완역 삼국연의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삼국지 통속연의라는 제목으로 에도 시대에 널리 퍼졌다. 근대에는 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번역한 판본(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이 널리 읽혀졌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국내 삼국지 번역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우영 삼국지 등 만화로 번역되는 경우도 많다. 대상 연령층을 낮게 잡은 것이 많으며[25]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미없을 것 같거나 만화로 표현하기 적당치 않은 부분을 뭉텅 잘라먹는 경우가 많다. 심할 경우 왜곡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입문서로는 쓰되 맹신하지 말자.

한국 삼국지연의의 번역본에 관해서는 삼국지/관련 작품 항목 참조.

7.1 조루 현상

삼국연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번안 과정에서 조루 현상을 일으킨다. 작가들은 초반부에는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적극적으로 섞어가면서 맛깔나게 창작한다. 이 때는 자신이 나관중을 능가할 수 있다는 패기가 느껴진다. 이 패기는 일반적으로 적벽대전까지 지속된다.

하지만 적벽대전이 끝나고 나면 모든 작가들은 이 마귀 같은 대하소설에 손 댔다는 것을 후회하며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 듯. 그도 그럴 것이 적벽대전을 지나도 아직 삼국이 형성되려면 한참 멀었다(...). 원판 연의에선 삼고초려가 37화에 펼쳐지고 화용도가 50화인데, 추풍오장원이 104화다. 즉, 적벽대전은 절반에 살짝 못 미친다.[26] 추풍오장원까지만 쓰더라도 지금까지 쓴 만큼 더 써야 한다.

서천 정벌 이후 관우, 장비, 유비차례대로 죽고, 메인 악역인 조조마저도 죽어버리는 84화의 이릉대전, 85화에서의 유비의 사망에 이르게 되면 처참한 비극에 작가 스스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의욕을 상실한다. 그렇다고 이릉대전이 오가 대활약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이후 오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 뒤로는 어떻게든 한시라도 빨리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급히 본래 연의의 내용에 따라서만 적당히 진행하게 된다. 다행히도 제갈량이 있어서 아직은 버틸 수 있다. 이제부터는 제갈량 원톱이다![27]

남만 정벌은 개그 캐릭터 맹획타사대왕, 올돌골 같은 정겨운 남만 이민족들의 도움으로 근성있게 버텨나간다. 사실 이미 판타지 소설이 되었으나 작가들은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다(…). 바로 전의 이릉대전이 줄초상인 걸 감안해 남만 정벌은 특별히 죽는 네임드 캐릭터 없이 가볍게 진행된다.

그리고 제갈량의 북벌. 드디어 최종보스사마의가 등장했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치열한 대결이 벌어지자 가까스로 작가들은 남만의 독기에서 빠져나와 그나마 제정신인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 상대가 조조의 뒤를 책임질 "지장 스타일의 적"인 사마의라서 제갈량과 계략을 주고 받으며 싸운다. 조조와 유관장 시절 만큼의 간지폭풍 전개는 아니더라도 군담다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전의 이야기들이 호쾌한 활약으로 앞날이 기대되는 희망찬 전개였다면(특히 삼고초려-적벽대전-서천정벌로 이어지는 유비군 전성기.) 북벌은 그 잘난 제갈량이 나섰는데도 온갖 사건사고로 발목 잡히고 조운도 세상 뜨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속 터지는 전개다(...).

결국 제갈량은 가을 바람 타고 세상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기에서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자신도 한계를 느껴 붓을 꺾고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죽여라 사마의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어도 사마의는 후반부에 툭 튀어나온 감이 있고, 상대하는 캐릭터들이 기껏해야 조상 정도라 길게 진행하기가 힘들다. 이미 최강 캐릭터인 제갈량과 맞수로 싸웠는데 그의 상대로 던져줄 캐릭터가 마땅치 않다.

나관중도 제갈량 사후는 지루했는지 1권으로 압축했다. 제갈량이 죽는 부분이 연의 104화인데, 나머지 10여 화가 그 후 50여 년을 다룬다. 시대 전체로 보면, 제갈량이 사망한 시점은 삼국지에서 다루는 시기의 중간 쯤이다. 연의가 총 백여년의 역사를 다루는데, 제갈량이 사망한 시점이 딱 오십년 쯤 흘렀을 때이다. 역사적으로 분량을 제대로 맞추려면 제갈량이 죽었는데 지금까지 쓴 만큼 더 써야 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그 1권의 비중도 편차가 심하다. 대부분이 제갈량이 사망한 뒤 촉이 멸망하는 30년 정도만 크게 다루고 위의 멸망부터 진이 오를 정벌하여 천하통일하는 부분은 119화 마지막 몇 장 정도와 120화로 압축되었으며[28] 1권의 20분의 1 분량에 불과하다.

물론 후반부에도 강유등애 등 흥미를 끌 수 있는 인물들은 많으나, 그 전 세대의 인물들이 워낙에 캐사기급 포스를 가지고 있어서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무엇보다도 제갈량 사후의 삼국은 전쟁을 일으키는 횟수가 많지 않았다. 제갈량 사후는 촉도 다시금 내정에 힘썼고 타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국이 개국 초기의 혼란기를 지나 안정기에 들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전만큼의 재미난 장면-전쟁, 암투-이 많이 나올 수도 없다. 애초에 강유나 등애[29] 또는 그 외의 인물들이 자신의 포스를 발휘할 무대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아예 재미나게 쓰기가 힘든 부분이다.

그래도 나관중은 조방의 폐위와 사마소의 위왕 시해, 제갈탄의 난 제갈각, 손준의 분쟁 등 위나라와 오나라의 중요 사건들도 한 둘씩 다루며 어떻게든 결말을 맺었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은 여기에서 근성이 다 떨어지며 제갈량 사후는 다룰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삼국지 관련 창작물들이 제갈량의 죽음을 삼국지의 종료로 취급하고 있다. 책에서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영웅 삼국지, 드라마 삼국은 제갈량이 죽고 다음 화에서 사마의가 쿠데타에 성공한 직후 사망하며 끝난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역시 전 60권 분량 중 제갈량 사후 내용은 마지막 60권, 딱 한 권 뿐이다. 그나마도 촉이 멸망하는 시점까지만 다룬다.

한국의 판본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요시카와 에이지본을 원작으로 한 고우영 삼국지, 장정일 삼국지 등은 원작대로 제갈량의 사망과 함께 작품이 끝나고, 이문열 평역 삼국지는 제갈량 사후 부분이 나오기는 하지만 원본에 비해 4분의 1 정도의 분량으로 축약되어 있고 작가가 직접 축약하겠단 뜻을 밝히는 구절이 있다. 즉 1/4권만 할애하고 바로 사마염의 통일. 참고로 제갈량 사후의 비중은 자치통감에선 1/4, 모종강 본 삼국연의에선 1/8 정도라 알려져 있다.

한국의 삼국지 번역 가운데 그나마 조루 기운이 없는건 비교적 원본에 충실한 박종화 삼국지(여섯 권 중 마지막 권 전체가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다.), 본 삼국지, 정원기 정역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 정도. 본 삼국지와 정원기 삼국지야 괜히 창작 같은거 안 넣고 연의를 그대로 번역했으니 당연한 이치고 황석영 삼국지도 그나마 나관중본 중심 번역이라 제갈량 사후 부분에 한 권 반(15%) 정도의 분량을 할애하니 이 정도면 연의에 비해 조루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상당수는 강유에게 할애되어 있는데, 위와 오를 다룰 만 하면 다시 촉으로 넘어가고 강유가 나타나는데 사실 연의도 뭐 비슷하고.

이 조루 현상을 깨고 정상적으로 삼국지 정사와 연의를 섞어서 후반부를 풀어나간 창작물이 2010년대에 하나 나오긴 했다. 바로 웹툰 삼국전투기. 작가 최훈제갈량 죽었으니 삼국지 끝이라는 독자 앞에서[30] "아직 삼국지 1/4이나 더 남았는데"라고 말하는 컷을 그렸으며, 실제로 1/4을 채우고 결국 에필로그로 황건적의 난을 그려 삼국지 100년을 모두 묘사하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제갈량 사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재평가의 바람도 불고 있다. 여담으로 독발수기능의 난 등을 표현할 때는 오히려 정사 삼국지를 넘어서 진서 자료에서 구해서까지 쓰며, 최소한 삼국전투기만큼은 그의 작품 중에 조루 작품이라 불리지 않을 만큼의 입지를 쌓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미를 위해 연의와 정사를 혼합한 만화이니만큼 있는 그대로 사실적 역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삼국전투기 문서에도 나오지만 삼국지 후반부의 조명을 잘했다는 점은 칭찬받을 만 하지만 작가 스스로도 미숙한 점을 후기에 인정했을만큼 비판도 많이 받은 작품이다. 사실 삼국전투기도 아주 조루가 없었던 건 아니고 시즌 2는 제갈량사마의의 대결로 구성한다고 해 놓고는, 정작 제갈량은 이도 저도 아닌 색기담당으로만 굴려지다 오장원 전투에서 허무하게 죽어 지각을 기다리며 매주 챙겨 본 독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고...여러가지로 중간에 쉬는 기간도 있었고 악명높은 지각연재에 결국 10여 년을 끌어서 간신히 완결시킨거니...최훈이 삼국전투기 후기에 이 작품을 그리려고 참고한 서적들이나 애시당초 연의에 정사 섞어서 쓰려고 했던게 실책이었다는 후기의 토로만 봐도 창작물에서 삼국지 관련 매체 다루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삼국전투기 후기

한편, 중화권(홍콩)에선 또 하나의 삼국지 만화가 제갈량 사후 사마의의 사망까지 그리려 하고 있는데 바로 화봉요원이 그것이다. 연의와 역사적 사실을 섞은 비교적 가벼운 그림체로 그린 삼국전투기와는 달리 작가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한 플롯과 각종 고전들을 인용해가면서 극화체로만 삼국전투기에선 나올수 없었던 대규모 전투신을 묘사해가면서 그려가고 있는데 15년 연재하고도 이제야 유비의 형남 4군 평정을 그리고 있으니 갈 길이 멀다. 더군다나 최훈과는 달리 이 작품의 작가 진모는 진짜 성실하게 그리면서 60여 권 가까이 그렸는데도 아직도 완결까진 한참 남았으니 가히 창작물에서 삼국지를 다루는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코에이삼국무쌍 시리즈도 이런 면을 보였지만 6편에선 이 점을 해결하고자 했는 지 사마사, 사마소 등 최후반기의 인물도 등장시키고 있다.

7.2 정사드립 주화입마

삼국지연의를 개역하다가 흔히 빠지는 함정. 작가가 정사드립을 치기는 하는데 훈련이 제대로 안 된 나머지 주화입마에 걸리는 현상을 뜻한다.

정사랍시고 인용은 했는데 기전체의 특성을 잘 모르고 정사의 일부만 참조하여 다른 부분에 나온 기사를 보지 않고 "이런 일은 실제로 없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예.

정사와 연의를 뒤죽박죽으로 뒤섞어서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연의의 인물상을 중심으로, 정사의 에피소드를 끼워넣어서 캐릭터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예. 이렇게 되면 흔히 자기가 좋을 대로만 정사를 끼워넣고, 또 자기가 좋을 대로만 연의를 인용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 이런 현상을 흔히 볼 수 있어서 욕을 먹었는데, 사실 전문적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실 조선시대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다. 기대승이 삼국지연의를 까면서 선조가 했던 말을 인용하는데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링크폭파됨 조선왕조실록 링크

라고 했는데 실제로 비슷한 장면은 정사에도 있다. 물론 정사에선 고함쳐서 만군이 달아난 건 아니고 장판파에서 장비가 버티고 서서 '내가 장익덕이다! 나와 생사를 가름하자!'라고 일갈해 조조군이 못 쫓아온 정도였지만.

8 관련 작품

9 기타

워낙 대작인 터라 이에 얽힌 야사도 많은데, 나관중이 이걸 쓰는 동안 반쯤 미쳐서 돌아다녔다든가(뭘 묻기만 하면 소설 내용을, 그것도 앞뒤가 안 맞게 이야기했다는 정도로), 사실은 처음에 관우를 신나게 까다가 진짜 관우가 내려와버려서 놀라 다시 썼다든가(…)하는 이야기 등이 전해내려온다. 물론 이는 그만큼 나관중이 이 작품을 잘 썼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연의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중국의 모든 시기를 따져도 역사와 소설을 혼동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 사실 삼국시대가 정작 역사적으로는 시기가 짧고 비중도 적은 시대인 주제에 소설만 무지하게 유명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더 커지는 것이다. 웬만큼 배웠다는 사람도 자주 혼란을 일으키며, 정사 삼국지를 조금 읽은 사람은 무슨 마공인지 주화입마에 빠져서 연의와 정사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돼버리는 건 예사다. 예를 들면 낙봉파[32]에서 방사원을 어쩌고하는 시를 지었다가 소설가지고 시짓는다고 바로 깨갱하는 사태 등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졌다.

이걸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전문 연구가나 골수 삼덕후들 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들도 가끔 혼란을 일으킨다(…).

작품 내에서 상대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이끌고 온 군주가 오히려 적은 수의 적군에게 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관도대전의 원소, 적벽대전의 조조, 이릉대전의 유비 등), 사실 대군이 패배한 경우가 묘사가 많고 임팩트가 크게 남아서 그렇지 실제 연의에서는 대병력에 발리거나 항복하는 약소군주가 훨씬 많다. 유대, 교모, 한복, 여포, 원술, 유표, 마초, 장로, 맹획, 공손연 등 이외에도 대군에게 발린 경우가 수도 없이 많고 유비조차 조조의 대병력에 숱하게 박살나며 초창기의 조조 역시 서영의 대병력에게 박살난다.

기본적으로 군담소설이기 때문에 문신들은 비중이 공기에 가깝다. 제갈량이 굳이 군사의 포지션이 된 것은 후반부의 주인공인 그가 역사대로 문관이 되면 혼자 비중이 적어지기 때문일지도. 그런데 이것마저도 그나마 문신들이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해석은 알아서.

충무공 이순신이 애독했던 책이기도 하다.
  1. 심지어 삼국지 항목에도 역사책에 관한 서술과 연의에 관한 서술이 함께 있다.
  2. 후한말-위촉오시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로그라인 명문으로 꼽힌다. 다만, 의외로 국내외 삼국지 평역 작품들 중에 이 문장이 그대로 인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래도 서두에 해당하는 지라 작가마다 개인의 감상을 적어 넣기 때문인 듯.
  3. 이십이사차기라는 서적을 지어 청대까지 남아있는 정사서 22종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비판을 남겼다.
  4. 달리 말하면 관우, 제갈량처럼 아예 신으로 섬겨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유관장 등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후대의 온갖 서적에서 이런저런 대조를 위해 회자되는 이러한 인물들이 후대에 사회/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장각 등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나관중 등의 필터링을 거친 형상이긴 하지만. 당장 현대에도 동아시아 3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유비, 조조, 공명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5. 반대로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이와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말도 있는데, 그러니까 아무하고도 상대를 하지 말란 말이다 삼국지에 워낙 온갖 교활한 술수와 책략과 사기질(…)이 넘쳐 흐르다보니 삼국지를 3번이나 열독한 사람이라면 그만큼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6. 다만, 삼국지평화를 읽어보면 삼국지연의와 얼마나 다른 지를 알 수 있다.
  7. 이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이전의 삼국지평화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있다는 증거로 이해된다. 강담사들이 다음 번에 또 들으러 오라고 절단신공을 구사한 흔적이기 때문.
  8. 참고로 보통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184년부터 오가 멸망하는 280년까지를 삼국지 배경으로 삼는데 이 기간 중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은 사마부(180년 ~ 272년)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태어나서 서진 건국까지 보고 죽었다.
  9. 일례로 조조가 여포, 원소등과 싸우는 부분이나, 손책이 강동을 정벌하는 부분이나, 혹은 합비공방전
  10. 연의에서 제갈량의 첫 활약이었던 박망파 전투는 사실 유비의 작품이다. 유비가 복병을 설치해, 하루아침에 자기 병영을 불사르고 거짓으로 달아나니 하후돈 등이 이를 추격하다 복병에게 격파당했다.
  11. 수호지의 작가 시내암은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12. 중국 속어중에는 유비가 아두를 땅에 던진 것은 인심을 매수하기 위해서라거나 유비는 울어서 강산을 차지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속담들은 연의의 유행 이후 등장한 것이다.
  13. 물론 중국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나 도교 단 하나만이 아닌 유불도 삼교를 모두 이해해야만 하며, 무위의 치 개념도 따라서 유교도교 양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도교적 해석의 무위의 치는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즉 순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정치를 말하고, 유교적 해석으로는 공자가 요순에 대해 평가했듯이 공손하게 자신의 몸을 낮추고, 자신의 몸 가짐을 바르게 하며, 어진이들을 불러 모으는 정치를 말한다. 그러므로 요순 시대를 극찬하던 것도 공자이기도 하고 여기서의 무위의 치 개념은 도교라기보다는 유교적 개념에 가깝다. 다만 그렇다고 도교와는 전혀 관련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물론 아니다. 노자공자의 대화... 혹은 대화했다는 전설이라던가 초기 유교도교 개념들은 상당히 겹치는 것들이 많다.
  14. 본디 나관중본은 위/촉/오의 구성이 비교적 평균적이라 어느 소속이든 슬기롭고 충성스러우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관중본의 경우는 관우의 죽음도 그냥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것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이를 적토마올가미에 걸려 넘어져 관우가 붙잡히고, 손권 앞에서 영웅적 최후를 맞는 것으로 각색한 것은 모종강본이다.
  15. 삼국지연의의 결말은 연의 전체를 되돌아보는 고풍이라는 장편 시가 장식하는데, 이 시의 마지막 수이다.
  16. 실제 작중 묘사를 보면 헌제가 한을 빼앗기는 모습과 비슷하게 묘사된다. 아예 사마소가 "너희도 한에게서 찬탈했잖느냐"면서 빈정거릴 정도.
  17. 삼국지뿐만 아니아 동아시아권 고소설들은 대체로 로망스라는 단어를 써서 설명하는 편이다.
  18. 다만 보통 역사 군담 소설이 이런 경우고, 창작 군담 소설(유충렬전 같은)들은 서양식 기사 이야기와 비슷하게 볼 수 있는 면도 꽤 많다.
  19. 구비 문학으로 시작한 문학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를 나관중, 모종강 같은 이가 정리한다고 해도 개개의 화소들이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지라 통일성을 해친다고 무작정 쳐내지는 못하니 앞뒤 안 맞는 서술들이 남게 되는 것.
  20. 이 부분도 허구. 실제로는 복병을 만나기 전에 조조군이 무사히 퇴각하고 이후 뒤늦게 도착한 유비군이 불을 질렀다고 한다.
  21. 이 부분은 조조가 최초에 형주/남군 중 어느 쪽으로 가는지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조조가 형주 길로 가던 중 조운의 복병을 만나 패주한 후 남군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도 있다.
  22. 이 공성계가 연의의 창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배송지가 인용한 제갈량과 관련된 '곽충오사'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배송지 본인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며 신빙성을 대놓고 의심하는데 왜 주석으로 달아놨는지는 불명(...).
  23. 근데 재밌는 부분은 정작 정조가 칭찬한 이순신은 삼국지연의를 봤다는 점이다(...).
  24. 어째서 한학이나 중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이들 작가들이 삼국지를 번역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을 텐데, "삼국지연의" 원문은 대략 "맹자" 원문을 읽고 이해할 정도의 한문 해독 능력을 갖추었다면 어렵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한자학, 중국어문학, 역사학 등 전문적인 배경 지식을 갖고 번역된 게 아니므로 이들 작가들의 번역본에는 대개 '평역'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25.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있다. 일단 고우영 삼국지부터가.
  26. 아동용 삼국지 중 5권으로 편집된 판본들에선 대개 적벽대전이 4권 쯤에 벌어진다. 엄청난 분량 삭제를 볼 수 있는 부분. 이런 삼국지들은 대개 촉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다시 말해 촉 하나만 중심으로 해도 5권이나 되는데, 위, 촉, 오 전부 다루려면 분량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다.
  27. 연의에서 제갈량이 유독 띄워진 건 후반의 재미를 책임져야 할 원 톱 캐릭터라 그런 걸 지도.
  28. 118~119화의 강유의 한복~종회의 난과 맞먹는다.
  29. 이들은 그나마 진태와 더불어 강유의 북벌 장면에서 활약하기라도 한다. 그 외에는 모조리 지못미.
  30. 여담으로 이 소리를 하는 독자는 최훈이 야구친구와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그렸던 최민규 캐릭터와 똑같이 생겼다.
  31. 사실 삼국지연의는 삼국지평화나 당시 떠돌던 민담, 정사 등을 섞었기에 2차 창작물이라기보다는 3차 창작물에 가깝다.
  32. 낙봉파라는 지명 자체가 허구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는 삼국지의 허구 지명들이 속속 다 생겨있다. 제갈량의 거처인 융중을 자처하는 곳도 여럿이고(이쪽은 실존했던 지명이지만). 이게 다 관광객들 대상으로 하는 돈벌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