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궁

衍禧宮.

1 개요

조선시대 이궁(離宮)[1] 중의 하나. 뒤에 한자가 延禧로 바뀌었고 연희동(延禧洞)과 연남동(延南洞)의 어원이 된다. 연희란 명칭은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의 명칭에 스며들었고 뒤에 연희전문학교의 후신인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Severance 醫學專門學校)의 후신인 세브란스의과대학이 합쳐지자 앞글자를 따서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2]의 앞글자 연의 어원이 되었다.

2 역사

1420년 세종이 아버지 태종을 위해 지었다. 세종 본인도 잠시 머물렀지만 독사나 해충이 많단 이유로 대신들은 거처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세종은 뒤에 누에를 치는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고 서잠실(西蠶室)이라고 불렀다. 잠실과는 달리 서잠실이란 호칭은 지역명이 되지 않았다.

연산군에 이르러 1505년에 연산군이 연희궁을 연회장으로 꾸몄고[3] 그로 인해 이궁으로써 지위는 상실되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정문 옆에 비석만이 남았다.
  1. 궁궐 외에 별도로 왕이나 왕족이 머물기 위해 설치한 곳.
  2. 연희의 연은 이끌다란 뜻인데 세브란스의 본래 창설 때 돈을 낸 '세브란스'의 '세'지만 뜻 맞추기로 세상을 이끌다란 의미로 世를 끌어왔다.
  3. 당시에 여기서 파티가 자주 열렸는데 '연희궁 까마귀골 수박 파먹는듯 하다'란 속담이 생겼다. 뜻은 한 가지 일에만 푹 빠지는 걸 틋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