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

1 고스톱/맞고에서 광이 다섯개 모인 상태

한 플레이어가 광을 다섯 개 모두 모았을 때를 지칭하며, 15점의 점수를 부여한다. 다만, 액면의 점수는 15점이나 타 플레이어에게는 자동으로 광박이 걸리게 되므로 실질적으로는 30점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오광을 할 정도면 고(Go)의 단계도 높고 다른 패로도 점수가 많이 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매우 높은 확률로 엄청난 대박판이 된다.

우선순위가 높은 패인 광을, 다섯 개 모두 싹쓸이해야 하므로, 하루종일 밤새도록 고스톱을 친다 해도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

2 진승 · 오광의 난의 주도자

吳廣
(? ~ B.C. 208)

진 말기의 농민봉기의 주도자. 자는 숙(叔).

양하 사람으로 기원전 209년 7월에 만리장성의 건설에 동원되어 공사처로 향하게 되어 진승과 함께 둔장을 맡았으며, 큰 비 때문에 900명이 함께 고립되어 기일에 맞춰 도착할 수 없게 되자 이대로는 엄격한 법 집행으로 목이 날아가게 된 처지라서 진승이 이왕 죽을 바에 한번 뒤집어보고 죽자고 하자 오광도 옳다고 여겼다.

진승의 지시로 주둔지의 나무 숲에 있는 신사에 가서 야밤에 장작불을 피운 후에 여우로 위장해 초나라를 크게 흥하게 할 왕인 진승이라고 외쳤으며, 이로 인해 병사들이 이 일을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진승은 주목받게 되었다. 오광은 평소에 사람들을 잘 돌봐주어 수졸들은 대부분 그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오광은 도망가자고 떠벌려 일부러 수졸을 통솔하는 장위[1]를 화나게 만들었다.

장위가 검을 빼어들려고 하자 오광은 검을 빼앗고 장위를 죽였으며, 진승이 봉기하자 오광은 도위, 부왕에 임명되었다. 오광은 형양을 공격했지만 이유의 방어로 함락하지 못했다. 전장은 오광이 거만하고 횡포하면서 병권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형양에 있는 것보다 정예 병사를 모두 이동시켜 진나라의 군사와 싸우는 것이 좋다고 여겼는데, 진승의 명령을 위조한 전장에게 살해당했다.

3 후한 말의 인물

吳匡

생몰년도 미상

자는 백강(伯康).

오반의 아버지, 오의의 족부.

젊은 시절에 관리로 일할 때 민첩하면서 일 잘하는 것으로 이름났으며, 시어사를 지내면서 황경과 함께 청하왕 유산의 일을 도왔다. 문서를 빨리 작성해 유산이 오광의 뛰어남을 칭찬했으며, 후에 제남상에 임명되었고 황경이 사공이 되자 오광은 여러 번 추천되어 상서가 되었다.

오광은 조서로 농사일에 힘쓰도록 하면서 민지현을 지나다가 황경이 죽은 소식을 듣고는 상을 당했음을 알리고 상복을 입었으며, 그러면서 병이 났다고 보고해 수레를 타고 관부로 돌아왔다.

하진 휘하의 부곡장으로 평소에 하묘가 하진과 마음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을 원망하면서 하묘가 환관과 통해 모의한 것으로 의심했는데, 하진이 혼자서 궁궐로 들어갔다가 거목에게 살해당했다. 장장과 함께 하진이 살해된 것을 알고 궁을 공격했지만 궁문이 굳게 닫혀 들어갈 수 없었다.

원술과 함께 궁문을 부수려고 했고 환관들이 병사를 동원해 진입을 저지했는데, 궁문을 부수고 들어가면서 대장군을 죽인 자는 하묘라면서 대장군의 복수를 하자고 했다. 오광은 대장군부의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동민과 합세해 하묘를 공격해 죽였다.

이후 하진, 하묘의 부대가 동탁에게 귀속된 것을 보면 동탁 휘하의 부대로 귀속된 것으로 보인다.

4 사해용왕 중의 하나

敖廣/敖光

사해용왕 중 맏이로, 동해용왕.
  1. 인명이 아니라 관직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