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르날도 오초아의 부상과 몰락
2 오초아 재판
오초아가 체포된 혐의는 마약거래였다. 쿠바는 미국에 의해 봉쇄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산업에 필요한 부품들을 밀수를 통해 공급해야하는 경우가 잦았다. 쿠바 정부는 이를 위해 파나마 등지에서 소규모 회사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초아는 그 책임을 맡고 있었다.
오초아가 관리하는 회사들은 변질의 가능성을 우려하여 내무부에서 엄격하게 통제하였지만 오초아는 점차 내무부의 통제를 넘어 임의적으로 예산을 운영하였고 이 과정에서 돈이 되는 마약 거래업자들과 접촉하게 되었다.[2] 문제는 이 마약 커낵션이 쿠바 국가 자체를 마약 관련국으로 고발당하게 만들 수 있는 중대사안이었다는 것.
오초아의 불법적인 계좌들이 탄로나고 이어서 콜롬비아 카르텔과의 커낵션은 물론 심지어 앙골라 파병기의 불법행위까지 드러나면서 공화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오초아는 허망하게 추락해버렸다. 국가평의회 31명 전원이 오초아의 사형에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오초아 등 공범자로 지목된 4명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총살형에 처해졌고, 이어서 공범자로 지목되어 기소된 내무부 장관 호세 아브란테 등의 협력자들도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정계에서 지워지게 되었다.[3]
3 숙청과 사형 논쟁
한편 오초아 사건으로 오초아를 비롯한 주범들에게 사형이 집행되면서 너무 가혹한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이 사건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대표적인 정적 숙청 사건으로 조명하는 시각도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쿠바에서 정치범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긴 했어도 사형까지 가는 경우는 없던 상황에서[4] 오초아 사건이 정말 정적 숙청을 목적이었다면 그 의미와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오초아 사건은 쿠바의 정적 탄압과 사형제 폐지 논쟁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의 전직 경호원은 카스트로의 호화생활과 비리를 폭로하면서 오초아 사건이 카스트로의 비리를 오초아에게 뒤집어 씌워서 숙청한 것이라 주장하였다.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