ルーズ戦記 オールドボーイ
1 소개
1997년 출간된 스릴러 만화. 총 8권. '동창생'이라는 숙어로서의 영어 뜻과 '나이든 소년'이라는 직역으로서의 영어 뜻 모두 통하는 내용이다. 스토리 작가는 츠치야 가론(土屋ガロン), 만화가는 미네기시 노부아키(嶺岸信明)다. 폭력 조직이 운영하는 사설 형무소에 이유도 모른 채 10년 동안 갇혀 있던 고토란 남자가 자신을 가둔 원흉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범인은 그 동안 쌓아두었던 돈과 인맥으로 고토의 주변을 장악하고 그를 자기 뜻대로 휘두른다. 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가 매우 유명하다.
영화가 워낙 잘 만들어졌고 크게 히트했다 보니 만화 원작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없지 않은데, 주인공이 감금을 당하는 이유나 갈등을 풀어나가는 전개 등은 영화판에서 크게 강화되고 완성도가 높아진 것이 사실이나, 층과 층 사이에 존재하는 감금조직 설정이나, 어린 시절 동창과의 사건에 의해 감금당하나 후에 풀려나 '왜 감금당했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주인공이나, 최면술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 마지막에 자살하는 범인, 등 작품의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만드는 큰 뼈대 설정들은 거의 이 만화 원작에서 먼저 등장했던 것들이다. 이외에 주인공 중 한명의 전학[1]이라는 설정과 주인공들의 나이도 같은 또래로 볼만큼 비슷하다.[2]
주인공의 능력이 좀 과장되게 묘사되고[3][4] 사건 전개의 개연성이 좀 부족한 부분이 있다. 특히 주인공이 감금당하게 되는 동기가 한국 독자들에게는 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박찬욱 감독도 이 때문에 '이유'를 영화판에서 크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가장 큰 차이라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는다는 설정이었지만, 원작 만화에서는 군만두도 먹지만 다른 중국 요리도 하루에 3그릇씩 주고, 군만두는 추가로 주는 듯이군만두는 서비스 나온다.[5]
일본이나 한국이나 인기는 많이 얻지 못해서, 오죽하면 한국측에서 작품의 영화화 판권을 사갈 때 후타바샤 측은 2만 달러라는 헐값에 대충 넘겨버릴 정도였고 일본에서도 이런 걸 영화로 만든다냐? 라는 평까지 있었다. 물론 후타바샤 측은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했다는 후문이 있다. 차후 영화화되어 일본으로 역수출되면서 지불하게 된 로열티는 그 100배가 넘었다고...
영화의 팬이라면 한번 쯤은 봐둘 만하다.
한국에서의 이만화의 평가는 결말을 제외한다면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등 평가가 괜찮았으나
결말이 많은 대중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는 결과로 나와 누구나가 납득하는 영화판에 실망스러운 결과라 평가한다
2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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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범인인 카키누마가 고토를 가둔 까닭은 그가 왕따였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음악 수업시간에 부른 노래를 듣고 같은 반이었던 고토가 눈물 한 방울을 흘렸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비참하고 추한 심연'을 보았던 것이 이유인 것이다.[6]
카키누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중간에 전학을 와서[7] 반에서 어울리지 못해 이지메 당하는 왕따였고[8], 고토는 키도 크고 남자답고 싸움도 잘해서 남녀학생 모두에게 인기 많은 친구였다.[9] 카키누마는 괴롭지만 짧은 시기이니 당하는 동안에도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려 하며 신경쓰지 않는 척하려 했고, 견디고 졸업하고 나면 '그 반 구성원들을 그대로 중학교에서 만날 일은 없으니 됐다' 하는 정도의 생각으로 버텨 넘기려 했고, 실제로 겨우겨우 버티며 졸업을 한다.[10]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 후, 그들은 다른 학교로 가서 만날 일이 없게 되고, 카키누마는 왕따 당할 때건 아니건 공부는 원래 잘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도 계속 최상위권 성적을 거두고 일류대학[11]도 들어가서 졸업한 뒤, 1980년대 당시 일본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시기에 주식과 부동산 등 투자 성공으로 큰 돈을 번 뒤, 자신만의 특유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병적인 예민함과 지능으로 버블이 터져버리기 직전 시점을 파악하여 모든 부동산과 주식을 팔아버려 현금으로 환수하였고, 그 이후 버블이 터진 일본 전체가 거대한 디플레이션을 겪자, 카키누마는 그냥 부자가 아니라 거의 준재벌급[12] 대부호가 되어 버린다.역대급 슈퍼 개미[13] 그 후 큰 투자는 하지 않고 한두 개 기업에만 조금 투자하고, 있는 돈으로 적절히 사치스럽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쉼없는 투자로 젊은 날을 집중하다가 그만 두고 나니 그 긴장이 풀려버린 그에게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엄습하고 말았다. 자신이 6학년 B반 음악 노래 수행평가 시간에 노래를 불렀던 순간의 모욕감이 떠오른 것이다. 당시 그를 괴롭히던 다른 아이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내며 조롱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하였고, 그들의 왕따를 묵인하던 선생님도 모른 척 그냥 그의 노래를 듣기만 했었고 자신도 대충 노래 부르고 끝내려 했는데, 고토 혼자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깊은 고독과 비참한 심연을 느끼고 그 기분을 공감하며 눈물을 한 방울[14] 흘려 버린 것이다. 이는 카키누마 본인이 자신도 모르게 진짜 자기 감정, 즉 외로움과 고독함을 담아 노래한 것에 대한 충격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건 아무도 그의 마음 따위에 관심도 없을 거라 생각한 그에게 고토가 공감을 하여 눈물을 흘린 것으로, 인생 최대의 충격이며, 개인적으로는 모욕이자 굴욕이 되어 버린다. 당시 카키누마의 유일한 자존심은 '그들이 아무리 나를 무시하고 괴롭혀도, 누구도 내 깊고 추한 외로운 아픔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수준의 인간들 뿐이야. 저들에게 당하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고독해서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한 추악한 내 마음만 들키지 않으면 돼'였는데 그걸 눈물 한 방울로 산산히 깨버리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반 학생들 중에서 가장 섬세하다고 생각지도 않았던 고토가 자신의 예상보다 몇 단계 위에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셈이니 그 타격이 어마어마했다.[15] 마치 고토가 자신의 모든 본심을 꿰뚫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시점에서도 참
애매모호한데 고토는 카키누마의 노래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최면상태에서 기억을 되살리자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발언에 의하면 그 기억으로 인하여 가능하면 카키누마에 대하여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라는 결과를 보면 납득돼는 말이다.
이 점은 나아가 후에 경제인으로 성공한 그의 완벽주의적인 과거 지우기의 최고 걸림돌이 된다.
왕따의 가해자들이야 원래 자신이 한 짓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 적 장난 정도로 자기합리화하며 잘 잊어버릴 것이고, 선생님 또한 어차피 당시에도 자기가 휘말리기 싫어 일부러 애들이 괴롭히는 걸 알아도 신경쓰지 않고 묵인하려 노력한 걸 봐왔기에 그들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제대로 보존할 리 없다고 생각한 카키누마였지만, 그들과 고토는 카키누마 입장에서 달랐다. 자신과 공감을 해버렸다는 것에 그 기억을 갖고 살아 왔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고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사회에서 완전무결하게 성공한 경제인이어야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인 잡지든 신문이든 TV든 자신이 나오게 되는 일이 생겨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완벽주의의 끝인 카키누마의 입장에서 당당한 척하는 자신을 비웃는 사람이 분명 일본 내에 한명은 존재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나오는 사실에 의하면 오히려 카키누마의 왕따 사실을 기억한 건 괴롭히던 애들도, 고토도 아닌 그 선생님이었다. 자신에 대한 폭력들을 묵인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카키누마는 선생님이 방과후 학교 건물 근처에 잠시 서 있을 때 고층에서 몰래 화분을 던져 위협 혹은 테러하려고 한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어차피 그 선생님 역시 그 사건으로 인해 "걔가 지가 못나서 왕따를 당한 불만으로 나한테 테러하려 한 적이 있었다."[16] "무서웠다. 카키누마는 어두운 아이였다" 정도의 나쁜 기억들만 생겼을 뿐, '괴롭힌 애들이 나쁘다던가, 카키누마가 불쌍하다던가, 왕따를 묵인한 내가 선생으로써 나빴다' 같은 생각을 한 건 전혀 아니었다. 대신 선생도 나름 예민한 사람으로써, 카키누마의 희한한 아웃사이더적 정신상태를 '왼손잡이'라는 그의 속성과 연결시켜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그 상황을 참을 수 없던 카키누마는 일단 사람을 시켜 고토를 찾아 본다. 사실 카키누마는 고토의 어릴 적 인기있고 멋지던 모습을 생각하고 어느 정도는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성공을 거둔 인간이 되었을 거라는 예상도 하였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고토는 대충 사는 인생에 큰 빚도 있는 실패한 청년이었던 것. 그러니 딱히 그 과거를 기억할 여지도 없어보이고 기억하더라도 별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겠으나, 그걸 떠나 허접한 모습으로 사는 고토 자체에게 더 화가 난 카키누마는 10년간 감금시켜버려서 고통을 느끼다가 미쳐 버리는 상황을 유도하기로, 즉 폐인을 만들기로 결심하고[17] 감금 전문조직과 계약하여 감금시킨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갇힌 고토는 오히려 그동안 대충 살던 인생의 태도를 버리고, '누군지 모르지만 언젠가 나가면 꼭 복수할 거고, 그러기 위해 잘못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 남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10년 동안 자기단련을 하고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기분을 TV를 보며 버텼고 폐인이 되지 않은 채 풀려 난다.
이를 10년 간 지켜본 카키누마는 그 허접하던 인간이 결국 미치거나 폐인이 되어버리지 않은 것에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나를 꿰뚫어 봤던 능력자니 역시 그냥 허접한 놈은 아니었나' 싶은 마음도 들며 애증의 감정이 쌓이기도 한 걸로 보인다. 그래서 풀려난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알아 오면 나를 죽일 기회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 후 고토가 그에 대해 조사하는 동안 중간중간 계속 힌트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고토가 조사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여러 에피소드들을 거쳐 정답을 맞춰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고토는 "네가 노래부르던 날, 내가 너를 불쌍해 하며 슬퍼했다." 정도의 애매한 답을 내놓는다. 사실 고토는 노래에 대해서도 당시 주변인들이나 당시의 정보를 찾아다니다가 겨우겨우 기억해 낸 거지, 그 눈물까지는 정말 기억도 못했고, 당시 상황상 잠시 딴 생각하다가 순간적으로 카키누마의 애절한 노래를 듣고 마음이 흔들렸을 뿐, 대단한 느낌도 아니었으며 그냥 "내가 왜 이러지?"하고 눈물닦고 말았던[18]나도 감성적인 사람이니, 그럴 때도 있던 것뿐이야 수준의 상황이었으니 시간 좀 지난뒤에는 완전히 까먹어서 기억도 당연히 못한다.
결국 카키누마는 그런 추상적인 답은 틀렸다며, 당시 눈물을 흘린 상황을 설명한 뒤 총을 꺼내 고토에게 겨눴다가 이내 자신에게 쏴서 자살하여 죽는다.[19] 카키누마가 총을 쏘자마자 경찰들이 거의 바로 온 것으로 보면, 총소리 나자마자 올 수 있게 미리 계획했다는 것..오히려 고토가 답을 맞춰서 자신을 쏘고 경찰에 잡혀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여기까지 와서 자살하다니..[20]
고독에 빠져있던 자신의 감정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카키누마의 충격. 반대로 눈물을 흘렸다는 게 창피해 그 기억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고토. 아주 사소한 일이 한 사람을 통째로 바꿀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듯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차라리 '영화 올드보이' 같은 이유의 원한[21]이라면 당하는 입장에서도 최소한의 이해는 될텐데, 이 '만화 올드보이' 내용 같은 이유로 내 인생을 망쳤다면 그냥 어이가 없을 수준이다. 자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던 것도 학교를 그만둔 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고독을 공감했다는 게 원한의 이유라니 납득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만화 속 주인공 고토는 어느 정도 이해한 듯 보인다. 다른 나라에서는 납득이 안 되어도 '일본 문화' 정서상의 공감대는 존재할 수 있는 듯.근데 일본에서의 인기가 시원찮은 것을 봐서 일본에서도 공감했을지는...
- 여담으로 감금조직 설정의 재미있는 점은 한국영화 올드보이에서 감금조직은 남의 의뢰만으로 인해 잡혀가는 것으로 되어 있고 자신이 왜 잡히는지도 모르고 갇히게 하는 공포스러운 느낌인데, 반대로 만화 속 일본 감금조직은 그런 이유로 갇히는 사람들은 주인공을 포함해 오히려 예외급 소수고[22], 대부분 큰 범죄를 저질러 도피를 하거나 야쿠자 내부에서 배신을 했거나 권력 싸움에 죽게 생긴 야쿠자들이 몸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고 몇개월 은신을 하기 위해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 그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은신하기 위해 감금되는 것이 주목적인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금으로 돈 일부를 내고 들어왔다가 중간에 외부 자금줄이 잔금을 공급해주지 못해 쫓겨나는 야쿠자도 있다고 되어 있다. 영화 설정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나 좀 가둬줘요'하는 게 주류라는 점.[23] 상식적으로 봐도 재력과 힘이 있는 사람에게 복수할 사람이 있으면 청부살인을 하던지, 잡아와서 고문을 하게 하던지, 하다 못해 정신분열증 환자로 조작해서 정신병원에 넣던지 같은 더 효율적인 방법이 많음에도 일부러 자기 돈을 1년에 10억씩이나 내고 그 사람 숙식도 해결해 주면서 '달랑' 가두기만 하라는 건 일반적으로 복수할 상황에서 가성비가 나쁜 어리석은 짓에 속한다. 영화의 이우진이나 만화의 카키누마가 특이한 경우라서 그렇게 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