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분(삼국지)

王紛/王芬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기주자사로 185년에 허유, 주정, 진일, 양해 등과 함께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하려는 시도를 했고 조조에게 이를 권유했지만 거절당했으며, 화흠도구홍에게도 이를 권하였다. 도구홍은 가담하려 하였으나, 화흠이 만류하자 그만두었다.

영제가 하간을 순행하려고 할 때 이를 틈타 흑산적에게 공격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켜 달라고 했다. 그러나 북방에 붉은 기운이 있어 동서로 하늘에 멀리 퍼지자 태사가 북쪽으로 가는 것을 말리면서 영제는 가지 않았고 영제가 군사들을 해산시키면서 소환하자 왕분은 두려워하면서 자살했다.

그와 관련된 비석으로 수구성 안민산에 세워진 기주자사왕분비가 있는데, 수경에 따르면 187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왕분보다 한 세대 이전 사람으로 보이는 기주자사왕순비라는 것이 있어 홍괄은 이에 대해 분(紛)을 순(純)으로 잘못 썼다고 했는데, 기주자사왕순비에 따르면 왕순은 161년에 죽었기에 서로 생몰년도가 달라서 이와 같은 지적은 맞지 않는다.

2 창작물에서

삼국지 천도의 주인에서는 황건적의 난 때 기주에서 장보가 이끄는 황건적과 대치했으며, 흑산적의 난 때 허유를 보내 유성에게 역모를 일으키도록 권유하면서도 유성이 역모를 일으킬 수 밖에 없도록 조정에 역모를 일으킨다고 알렸는데, 유성은 낙양으로 가서 자신의 무고를 밝혀 혐의에 벗어나고 왕분은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드라마 영웅조조에서는 진탐과는 사제지간으로 영제의 부름을 받고 황궁으로 오자 몇 달간 기주에게 메뚜기를 출몰해 어렵다면서 구휼금을 조달해 백성을 구제해달라고 하며, 영제는 하간의 고향 집으로 간다면서 이를 위한 준비를 해달라는 명을 받는다.

영제를 찾아가 조조를 동군태수로 임명한 것에 대해 묻는데, 건석이 조조에 대한 탄핵 상소를 보여주면서 이 시기에 사직을 청한다면서 꾀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자 왕분이 잠자코 있어야 미움을 덜 산다면서 나서봐야 원한만 더 산다는 이치를 조조가 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