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악

王山岳

(? ~ ?)

고구려의 관료이자 거문고 제작자.

본래 둘째 재상(제2상第二相)이라는 관직에 있던 사람이었다.[1]

어느날, 중국 진(晉)나라 사람[2]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냈는데,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비록 그것이 악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 악기의 성음이나 그 것을 연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연주하는 법은 알려주고 줘야지!

때문에 고구려 조정에서는 악기의 음을 알고 연주할 수 있는 자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산악이 나서 칠현금의 본 모습은 유지하되 그 법식과 제도를 약간 고쳐서 개량하였으며, 100곡을 지어 연주하였다고 한다.

개량된 칠현금을 연주할 때에 검은 학들이 모여 들어 춤을 추었다고 하여 그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고 지었으나, 그 후로는 거문고(玄琴)라고 부르게 되었다.

김부식삼국사기에서 신라고기(新羅古記)[3]를 인용하여 왕산악에 대한 일화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워낙 간략한 기록만 남아 있어서 이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마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진(晉) 나라를 동진(東晉 316~419)으로 볼 경우 왕산악은 약 4세기 경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안악3호분· 무용총·장천1호분 등의 벽화에서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 사실 이 것이 관직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호칭인지도 확실치 않다. 관직이라고 해도 기록이 적어 그 역할을 제대로 알 수 없다.
  2. 서진이나 동진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겨진다.
  3.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참고한 역사서로 보이는데, 현재에는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