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邑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문도(文都).
양주 북지군 경양현 출신으로 185년 또는 186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위유관비의 건립에 참여했다.
195년에 삼보의 난 때 헌제가 안읍현에 있을 때 하동태수를 지내면서 곡식, 육류, 옷감 등을 바쳐 열후의 작위를 받았다고 하며, 이후 종요는 두기를 새로 하동태수로 임명해 인수를 넘기도록 했지만 종요의 뜻에 반대해 직접 조정에 나아가 인수를 넘겼다. 종요는 왕읍이 인망이 두터우면서도 조정에 대해서 공적이 있는 인물이라 처벌을 요구할 수 없어 대신 자신을 처벌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조칙으로 각하되었다.
한자도 동일해서 동일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213년에 헌제가 사지절 태상, 대사농, 안양정후 왕읍을 시켜 제벽, 비단, 현훈, 명주 5만 필을 업성으로 보내 조조의 여식들을 들이게 했다. 또한 214년에는 행 태상사 대사농 안양정후로 있으면서 헌제의 명령으로 종정 유애와 함께 부절을 지니고 호위무사 5명을 거느리면서 묶은 비단과 네 필의 말을 가져가 급사, 황문시랑, 액정승, 중상시 2명으로 조조의 봉국에서 2명의 귀인을 영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