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요

위서 「종요화흠왕랑전(鍾繇華歆王朗傳)」
종요화흠왕랑

鍾繇
(151~230)

1 개요

후한 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원상(元常).

영천군 장사현 출생으로 영천에서 유명한 명사인 종호[1]의 증손자. 아들은 종육, 종회. 아내는 장창포. 외조카는 곽원.

2 생애

본래 후한에서 상서복야(尙書僕射)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후에 조조와 제휴해 건국 후에는 3대를 섬겼다.

본래 어린 시절에 낙양에 갔다가 관상 보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이 말하기를 "후에 크게 될 인물이지만 물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데 그런 말을 한지 10리도 못가서 진짜로 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그에 종요와 같이 있던 그의 재당숙 종유는 그 모습을 보고 '이놈 진짜 크게 되겠는데?' 하고 생각하고 그의 공부 비용이나 생활비를 전부 대주어 학문에 힘을 쓰도록 하였다.

후에 종요는 음수에게 천거받아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각곽사가 한참 분탕질을 벌이고 있었다. 때마침 조조가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자 뜬금없이 배알이 꼴린 이 두 명이 조조의 사자를 잡아서 가둘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종요가 나서서 그러지 말라고 해서 말리게 되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종요의 칭찬을 여러번 들은데다 이런 일이 생기자, 종요를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다.

이각, 곽사의 분탕질은 갈수록 절정에 다다르고, 황제 일행은 궁궐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때 크게 공을 세운 사람이 종요였다.

조조가 황제를 모시게 되고, 이번에는 마등한수가 으르렁 대면서 싸우지 조조는 그 불똥이 튈까 염려하였는데 이를 순욱에게 상담하자 종요를 추천하였고, 조조는 종요에게 관중의 군벌들을 관리하라고 명을 내리게 된다. 종요는 장안으로가 마등과 한수에게 편지를 보내 싸우는걸 말린다.

그 후 조조는 원소와 대치하며 관도대전을 벌이게 되는데, 종요는 말을 2천필이나 조조에게 지원해준다. 그러자 조조는 소하에 비견하여 종요를 높이 칭찬하였다.

흉노선우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걸 진압하던 중, 원상이 임명한 곽원[2]이 하동으로 오자 그 세력이 몹시 강해졌다. 모두 하동을 버리고 달아나자고 말하는 중 오직 종요만이 싸우자고 주장하였다. 이 곽원을, 장기마등을 설득해 마초가 군사를 끌고 옴으로서 전부 때려 부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곽원 항목 참조.

그 후 위고, 장성, 장염 등의 반란을 진압하던 종요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진 낙양 주변으로 여러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개발시켜 폐허가 된 낙양일대를 재건하게 된다. 조조가 관중정벌에 나설때 가장 큰 힘이 된게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위나라가 건국되자 종요는 상국 벼슬에 이르게 된다. 위문제대에 이르러선 '모든 관료들의 모범'이라는 칭찬까지 받을 정도...

그러다가 위풍의 반란이 발생하고 위풍을 추천했던 종요는 관직을 박탈당하고 집에서 놀게 된다. 이후 조비가 황제로 즉위하고 태위로 복귀했다.

위씨춘추는 종요 말년의 노망에 가까운 행적 한 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가 종회의 생모인 장창포를 총애해 원래 정실인 손씨와 이혼했을 때, 이것을 도덕적으로 못 마땅하게 여긴 무선황후 변씨가 조비를 통해 저지하려 했다. 조비가 이혼한 아내와 재결합하라고 명하자 종요는 화가 나서 짐독으로 자살하려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였고, 초(椒)를 한꺼번에 먹어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이러한 땡깡(...)을 본 조비는 뜻을 꺾었다.

조예때에 이르러도 종요는 황제를 보필했는데, 나이가 많아 일어나기가 힘든지라 화흠과 더불어 수레를 타고 조회에 참가하는게 허락되었다.

야사이지만 육씨이림[3]과 세설신어에서도 종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종요가 몸이 수척해지자 어떤 사람이 연유를 물었는데 그것은 매일 밤마다 나타나는 귀부인과 동침을 하여 그리 된 것이라 하자 이를 들은 그 사람이 종요에게 말하길, 그 여자는 필경 귀신일 것이니 퇴치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밤 종요가 칼로 귀부인의 다리를 베자 귀부인이 도망갔고, 다음날 아침 그 핏자국을 따라 쫒아갔더니 왠 큰 무덤이 있었고 그 관 속에 다름아닌 그 귀부인의 시신이 들어있었다는 호러틱한 이야기다.

요화, 여대, 내민 등과 더불어 삼국시대에 장수한 인물 중에 하나이다. 종요는 75세에 27세인 장창포와의 사이에서 종회를 낳을 정도로 건강했다.

진군전에 따르면 진군과 함께 시대를 앞서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도 왕랑에게 까여 실행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차라리 사형시켜 주는게 감사할 따름으로 사형대신 코와 발뒤꿈치를 절단하는 형벌을 주장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형벌로 인해 신체가 훼손 된 경우 죽음보다 더한 수치로 봤기 때문이다.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태평어람》 권464에 인용된 위략에 따르면 엄한은 《춘추공양春秋公羊》에 밝았는데, 종요鍾繇는 《공양公羊》을 싫어하고 《좌씨左氏(=춘추좌씨전)》를 좋아했다. (종요는) 《좌씨》를 태관太官(=궁중의 요리를 담당한 관직)에, 《공양》을 떡장수에 비유하였다. 그래서 자주 엄한과 논쟁하였는데, 종요는 기민하여 논지를 잘 폈으나 엄한은 어눌하여 막상 아무 말도 못하였다.

3 해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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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에서는 그냥 조조 막하에 널려있는 유능한 관료 A(...) 정도의 위치로 등장하는지라 별로 일반인에게 관심받는 인물은 아니지만 서예사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으로, 지금 우리가 정자체로 알고 있는 해서체(楷書體)를 확립한 사람이다.

그가 쓴 선시표(宣示表)가 해서체의 정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4] 글씨를 보면 지금의 해서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표문은 황실 창고에 보관되어오다, 8왕의 난때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이후 동진이 건국되면서 보관하고 있던 관리가 진상하면서 행방이 밝혀졌다. 해서첩 중에 가장 오래된 본으로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복각한 부본들만 남아있지만 왕희지는 당대에 실물을 보고 해행(楷行)을 비롯한 자신의 자체를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종요가 살던 삼국시대에는 해서라는 말이 없었고, 종요의 글씨도 해서와 예서의 과도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서예계에서 해서의 시조는 종요로 본다. '해서를 종요가 창시했다'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예서에서 해서로 서체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해서의 형태를 확립한 인물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듯.

왕희지가 존경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왕희지로 말할것 같으면 당시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던 해·행·초의 3체를 예술적인 서체로 완성하여 서예의 지위를 확립한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흠좀무한 사람. 이런 흠좀무한 사람이 존경했던 인물이라고 한다면 종요가 가지는 서예계에서의 위치는 두말 할 것이 없을 것이다.

여담으로 종요와 비슷한 케이스가 채옹.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냥 동탁 시체앞에서 곡하다 끔살당한 할아버지(...)지만 서예사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

천자문에도 나오는 인물. 더 나아가 천자문의 저자라는 설도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천자문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은 후대의 인물인 주흥사. 지금 남아있는 천자문도 주흥사의 것이라고 한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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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를 여러번 해보았으면 능력치도 좋고 이름은 눈에 익지만 정확히 무슨 활약을 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적다. 관료의 일을 열심히 했던것도 그렇지만 관중지방에서의 활약같은게 중심 스토리와는 한참 벗어난 사이드 스토리인지라... 대체적으로 정치는 90을 넘는 능력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지력도 대체적으로 70대 후반~80대는 유지하고 있다. 일종의 내정&등용 셔틀. 무력이 낮긴 해도 통솔은 시리즈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을 찍기도 한다. 마초가 쳐들어 올 때 장안을 수비하기도 했고.

하지만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연의를 반영함에 따라 마초에 맞서 장안을 수비한 적이니만큼 악역으로 많이 바뀌는데 특히나 마초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로 간주된다. 거기다가 종요에 대한 재평가가 없었던 탓에 연의에서 마초에게 장안을 빼앗겼다라는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군사적 재능을 대폭 깎아먹혔다.

시리즈에 따라서는 연의의 마초의 복수에서 마초가 장안을 함락시킨 부분과 중첩해서 마등과 한수를 화해 시켰다는 부분까지 존재한다. 연의와 정사가 구체적으로 다른 것은. 정사 기준으로 종요가 마등과 한수를 자연스레 합병시켰다는 부분인가 혹은 연의 기준으로 이각/곽사에게 관직을 수여받은 것으로 한에 대한 반감을 무마시켰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진삼국무쌍6 시리즈에서는 마초와 방덕이 조조군의 협력자로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종요가 합병시킨 것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재평가되어 등장한다.

삼국지 2에서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폄하되었다. 지력/무력/매력 순으로 79/16/24... 아들인 종회의 이미지 때문인지...

삼국지 4에서도 정치력은 높은데. 야망수치가 높아서. 반동탁이나 조조군의 태수로 있을때. 구호탄랑으로 배반이 쉬운 녀석중 하나이다.

삼국지 5에서는 정치력이 92이다. 인사담당관으로 배치하면 삼국통일까지 두 자릿수의 인재를 물어다 준다. 근데 무력이 8....... 이 게임 최약의 무력.

삼국지 6에서는 기본공적이 높게 책정되어 고위직 장군으로 자주 임명되는 탓에 야전에 종종 등장한다. 물론 종요 단독이면 18,000명도 한 턴에 썰릴 수 있다...

삼국지 7에서는 전투 76 지력 81 정치 88 매력 78이라는 충공깽급의 만능 능력치를 달고 나온다. 참고로 제갈량도 이 작품에서 전투 78이다 다만 일기토 특기가 없어서 일기토 할 땐 불리한 편(..)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0/15/77/95. 병법이 전투에 끌고 나가기에는 다소 부족해서 내정용으로 쓰게 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0/26/78/92/72에 특기는 9개. 농업, 기술, 치안 특기는 내정셔틀로 써먹기에 충분하다.

삼국지 11에서는 능리특기를 가지고 나와 병기셔틀이 되었다.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아들이 독립군주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조조군에 속해 있다. 방덕의 아들인 방회도 위나라에서 활약했음에도 마등군에 있는 것과는 대조적.

삼국지12에서는 여전히 정치력이 매우 높지만 위나라의 내정 머신답지 않게 상재는 없고 경작과 명사만 가지고 있다. 군사 특기도 없어서 대우가 미묘하게 좋지 않다. 전법은 전군색적.

삼국전투기에서는 최유기현장 삼장으로 등장한다. 아들 종회최유기손오공로 설정됐기 때문에 삼장으로 설정된 듯한데, 종회 등장부분이 한참 뒤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준의 밑밥깔기... 최훈의 정사 재조명 경향에 따라 관중 일대를 안정시키고 군사적인 활약을 하는 부문이 강조되었다. 연의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장기와 함께 여러 부분에서 등장한다. 평범한 문관으로 비춰지는 연의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신선한 부분.
  1. 鍾皓, 생몰년도는 87 ~ 155년으로 자는 계명(季明). 영천 장사 사람으로 임려의 장에 제수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며, 같은 영천 출신인 순숙(荀淑), 한소(韓韶), 진식(陳寔)도 유명했다.
  2. 종요의 외조카다(!)
  3. 삼국지 배주에 인용된.
  4. 내용은 특별한게 없다. 일반적인 표문으로 남방의 손권을 견제하여 잘 대처해야 된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