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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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ios Papadopoulos
(그리스어: Γεώργιος Παπαδόπουλος, 1919년 5월 5일 ~ 1999년 6월 27일)
표정에서 패기가 넘쳐보이는 것은 기분탓이다.

"나는 조국을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냈다."

1 개요

그리스의 독재자이자 학살자. 1967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고 독재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미국 지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미국의 힘으로 정권을 잃고 쫓겨난 점도 다른 친미 독재자들과 비슷하다.

2 생애

그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카이아에서 태어났다. 파파도풀로스의 아버지는 교사라고 하며 그에게는 두 명의 형제가 있었다. 파파도풀로스는 중학교를 마친 후 그리스 육군 사관 학교에 입학했고 1940년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그리스가 패배하여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그는 1944년 초에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를 떠나 중동으로 가서 중위로 승진했으며, 1944년에는 다른 우파 장교들과 함께 우파 준군사 조직 IDEA의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1946년부터 1949년 동안 벌어진 이른바 그리스 내전에서는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공산주의자들과 전쟁을 했고, 그는 극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었고 그리스의 우익 청년 장교들의 비밀 단체에 들어가서 그리스를 군대가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현시키려고 했다.

1965년에 콘스탄티노스 2세에 의해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1세 총리가 해임되자, 그리스는 그리스 좌파와 우파간의 다툼이 심각해졌다. 그래서 그리스의 국왕이 종종 수상을 지명해도 그리스 의회 내의 반국왕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총리로 지명되는 사람을 불신임하는 일이 반복되며 그리스 정치가 점차 꼬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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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쿠데타 군의 아테네 주요시설을 점거한 그리스군

이에 1967년 4월 당시에 그리스의 육군대령이던 파파도풀로스는 좌파의 승리가 예상됐던 그리스 총선 직전에 쿠데타로 집권한 뒤 무자비한 독재정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그리스 내의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반정부 인사를 비롯한 수천명을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렇게 쿠데타 직후 계엄선포와 군사재판소 설치로 고작 며칠만에 그리스인 1만명 이상이 체포됐고 6천명이 에게해의 야로스 섬으로 추방됐다. 파파도풀로스는 `기독교적 가치, 순수혈통, 조국'을 방어한 다는 명목으로 정치활동을 일절 금지했고 국민의 모든 생활을 감시했으며 비밀경찰에 의한 반정부인사체포와 고문을 자행했다. 훗날 그리스 야당이 낸 통계자료에 따르면 수천명이 무자비한 고문으로 고통 받았으며 3천200명이 중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1967년 12월 파파도풀로스의 독재에 대항하는 국왕 지지파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진압당해 국왕은 이탈리아로 망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국민들의 저항은 계속돼 1968년 야당 지도자 게오르기 파판드레우의 장례식동안 50만명 이상이 참가한 대규모 민주화 요구시위가 있었고 1973년에는 해군에 의한 쿠데타 시도도 있었는데 이 때에는 또다시 그리스 국왕의 지지자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파파도풀로스는 계속 눈에가시 같던 군주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당시에는 군주제였던 그리스를 공화국으로 바꾸고 헌법개정을 통해 1973년 6월 엄청난 권한의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그해인 1973년 11월 디미트리오스 요안니디스장군에 의해서 대통령 자리에서 쫒겨났고 결국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1974년 국가반란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훗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그는 1996년 8월 암 치료를 위해 라이코 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 아테네의 코리달로스감옥에서 복역했고 결국 1999년 암에 걸려 80세로 감옥에서 죽었다. 근데 그는 죽을때까지도 자기가 빨갱이들로부터 조국을 구했으며 결국 빨갱이들한테 패배해서 이런 신세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1]

3 기타

마리아 파란두리, 미키스 쎄오도라키스 같은 음악가들을 자신에게 반대한다며 추방시키고 자신의 반대자들은 모조리 공산당으로 몰아서 섬에 유배시키고 고문하고 죽인 게 이 사람이다.

여담으로 그리스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것도 이 독재자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의 뒤를 이은 사회당 정권이 군사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20년간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1. 정작 그를 쫒아낸 디미트리오스 요안니디스는 비밀경찰 장관, 즉 그의 심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