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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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7일, 충북 청주시에서 우암상가아파트가 붕괴되어 78명의 사상자를 발생하게 한 대형사고.

사건 자체는 아직 취임식 전, 즉 노태우 정부때의 일이지만 김영삼이 당선인 신분이라 사고공화국의 시발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 개요

1993년 1월 7일 새벽 1시 10분경 우암상가아파트에서 원인을 알수없는 화재가 발생하여 가스가 폭발, 붕괴되었다. 붕괴의 원인은 화재였으나 직접적인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무리한 설계 및 자금난으로 인해 3차례의 무리한 설계변경과 4층과 옥탑의 증축으로 기초공사에 대한 건물의 하중문제, 굵고 푸석한 황색 자갈 등의 불량 골재의 사용과 낮은 압축강도, 일부철근이 제대로 배근되지 않은 문제, 콘크리트 내에서 나무 조각 등의 이물질 다량 발견 등의 불량시공이 문제였다.
이 사고로 실종자 1명을 포함해 28명이 사망하였고 부상자도 48명에 이르렀다.참조
또한 9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하고 35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2 사망자 신원 확인

청주 우암상가아파트(당시 주상복합) 붕괴 후 사망자 수습 후 장례를 치르던 도중 고재인(20, 가동 501호)씨로 확인돼 대전 화장장에서 화장된 시신이 사실은 고씨가 아니라 그동안 실종으로 처리되었던 이상선(17, 가동 201호)군으로 확인되었던 사건으로 이후 신원 확인이 되지 않던 사체 1구가 고씨로 확인된 해프닝이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유가족이 시신 확인에 있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치아로만 사망자를 확인해서 발생했던 일이며, 이후 시신에서 발견된 유품으로 인해 화장된 시신이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하고 오열하였다.

3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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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2년만인 1995년 6월 1일 지하1층, 지상 8층의 평화상가아파트라는 주상복합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4 사고 후 책임 소재 논란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부실시공 및 관리 감독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시 당국보다 소방관들이 연일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당시 몇몇 소방관은 이 일을 계기로 사직하였다. 소방관들은 건물 붕괴가 자신들 책임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5 기타

구조활동을 하던 장현철 소방관은 당시 폐허 더미에 덮혀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으나 소방서를 떠나지 않고 재활 후 10년간 내근 후 2005년부터 소방 활동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