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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울리세스 포이리에르 푸엘마 (Ulises Poirier Puelma) |
생년월일 | 1897년 2월 2일 |
사망년월일 | 1977년 3월 9일 |
국적 | 칠레 |
출신지 | 킬로타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165cm / 68kg |
등번호 | -[1] |
소속팀 | 라 크루스 발파라이소(1916-1933) |
국가대표 | 16경기 / 0골(1919-1930) |
1 생애
포이리에르의 조부모는 프랑스인이었지만 칠레에 정착하였다. 그는 킬로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는 비냐 델 마르에서 다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1916년부터 라 크루스 발파라이소에서 활약하였다. 한편 국가대표팀에서도 1919년부터 활약하였다. 1919년 대회를 포함하여 1920, 1922, 1926. 4차례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였다.
초대 월드컵이 그에게는 마지막 A매치가 되었는데 멕시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축구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비냐 델 마르의 카지노에서 일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Gringo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칠레 축구 초기의 최고 스타 중 한 사람. 기예르모 수비아브레와 칠레 대표팀의 주축이었다.
빠르면서 강하고 민첩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기준으로 기술적으로도 뛰어나서 무결점의 수비수였다고 한다.
3 뒷이야기
- 라 크루스 발파라이소의 원 클럽 맨이기는 하지만 1927년에는 콜로콜로의 투어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럽 투어 당시 클럽의 창립자이자 주장이던 다비드 아레야노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남은 시합에서는 그가 주장 완장을 달았다.
4 사생활
라파엘라 카르모나와 결혼하였고 6명의 아이를 두었다.
5 수상[2]
5.1 클럽
- 발파라이소 리그 우승 8회: 1916, 1918, 1922, 1923, 1924, 1925, 1929, 1930
- 스포르팅 컵 우승 2회: 1917, 1923
- 라 크루스 컵 우승 1회: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