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태

尉仇台
생몰년도 미상

부여의 왕. 후한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부여왕을 동일인물로 치기 어려운 것이 168년 현도군을 공격한 부태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뭐 장수한 왕들 문서의 왕들을 보면 장수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워낙 기록이 없으니...

1 《후한서》의 부여왕

부여의 역대 국왕
??대 시왕??대 위구태왕??대 부태왕

이쪽은 이름이 그냥 구태(仇台)라는 설도 있다. AD 120년 후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AD 121년과 AD 122년에는 고구려가 현도군을 공격하자 2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현도군을 지원해 5백명을 참수하는 공을 세웠다. AD 136년에 부여왕이 한나라를 방문한 바 있는데, 이 때 부여왕이 정황상 위구태일 가능성이 높다.

2 《삼국지》의 부여왕

부여의 역대 국왕
??대 부태왕(?)??대 위구태왕??대 간위거왕

공손도(?~204)의 종녀를 부인으로 맞이해 당시 요동지역의 군벌인 공손씨와 유대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주변의 선비족과 고구려에 대한 견제로 파악된다. 언제 요동지역 군벌 공손씨와 유대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204년 한충-견초의 대화에서 한충이 '부여'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아 적어도 204년 이전에 유대한 것으로 보인다.

3 차이점

1.의 인물과 2.의 인물 사이에는 약 70년 정도 되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167년에 현도군을 공격한 부여왕 부태(夫台)가 확인되기 때문에 두 위구태왕이 서로 다른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적지 않은 역사책에서 두 인물을 섞어서 기록했다. 위구태왕이 죽은 뒤 간위거왕이 즉위했는데, 이 인물이 1.의 아들인지 2.의 아들인지는 불명확하다. 보통은 2.의 아들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