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초

위서 「만전견곽전(滿田牽郭傳)」
만총전예견초곽회

牽招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로 자는 자경(子經). 안평군 관진현 출신으로 견홍의 아버지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정사에서만 나오는 인물이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10살 때부터 악은 밑에서 공부해 악은이 하묘의 장사가 되자 따라가지만 189년에 십상시의 난으로 악은이 죽자 문하생 사로와 함께 악은의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가는 도중에 도적을 만나자 사로 등은 모두 흩어져 도망갔다. 도적이 관을 쪼개 못을 뽑으려 하자 견초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 줄 것을 빌자 이를 의롭게 여긴 도적은 그를 살려주어 돌아가게 했으며, 이 일로 견초는 이름을 떨치게 된다.

2.2 원가 휘하에서

원소의 천거로 등용[1]되어 독군종사, 오환돌기로 임명되었으며, 이 때 원소의 사인이 법령을 어기자 죽였다가 보고했지만 원소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처벌하지 않았다. 202년에 원소가 죽자 이어서 원상을 섬긴다.

204년에 조조가 업을 포위할 때 병주의 상당에 가서 군량을 감독해 수송하는 역할을 맡지만 그가 돌아오기 전에 원상은 격파되어 중산으로 달아났으며, 이 때 견초는 고간에게 원상과 힘을 합할 것을 건의하지만 고간은 듣지 않고 오히려 견초를 죽이려하자 견초는 샛길로 몰래 달아난다. 원상에게 합류하려고 했지만 따라잡지 못해 조조에게 귀부했다.

2.3 조조 휘하에서

조조가 기주를 다스리게 되자 견초는 종사가 된다.

조조가 원담을 공격할 때 오환이 원담을 돕는 것을 막기 위해 원소의 대에 오환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견초가 유성에서 그들을 막았으며, 견초가 도착하자 소복연[2]이 5천의 기마를 원담에게 보내려고 하고 있었는데 마침 공손강도 한충을 소복연에게 보내 선우의 인수를 전하러 왔기에 소복연은 한충과 견초를 불러 모두 한 자리에 모이게 해 견초에게 묻는다.

예전에 원소가 천자의 명을 받았다고 말해 나를 선우로 임명했소. 그런데 이제 조조가 다시 천자에게 아뢰어 나를 진짜 선우로 삼는다 말하고 요동의 공손강 또한 선우 인수를 가지고 왔소. 사정이 이와 같으니 셋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요?

이에 견초는

예전에는 원소가 승제(承制)[3]해 임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공이 중간에 잘못을 범해 천자께서 조공에게 명해 이를 대신하게 했고, 조공이 말하길 응당 천자에게 아뢰어 다시 진짜 선우로 삼아야 된다 하셨으니 이것이 옳습니다. 요동은 황제에게 속한 아래의 군이니 어찌 함부로 참칭해 배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들은 한충 또한 지지 않고 말하길

우리 요동은 창해의 동쪽에 있어 백만 군사를 끼고 또한 부여, 예맥을 부리고 있소. 당금의 형세는 강한 자가 우선이니 어찌 조조만 유독 옳단 말이오?

이 말은 들은 견초가 한충을 꾸짖으며 말했다.

조 공은 진실되고 공손하며, 명철하고 천자를 보좌하고 떠받들어 모시며 반란자는 치고 복종하는 자는 어루만져 사해를 편안하고 고요하게 했다. 너희 군신이 어리석고 간사해 지금 지세가 험하고 멀다는 것을 믿고 왕명을 위배해 함부로 임명하면서 황제의 존엄를 모욕하니 바야흐로 도륙되어야 마땅한데, 어찌 감히 대인(조조)을 업신여기고 헐뜯는가?

라고 말하자 한충의 머리를 땅에다 박고 칼을 뽑아 목을 베려고 했으며, 이에 놀란 소복연이 견초를 껴안으면서 한충을 용서해달라고 하자 곧 견초는 자리로 돌아가 소복연에게 앞으로 천하가 어떻게 될지를 설명해 소복연은 한충을 돌려보내고 원담을 구원하기 위해 준비한 기병을 해산했다.

205년에 조조가 원담을 토벌하면서 견초는 임시로 군무연에 임명되었다가 207년에 오환을 공격하는 것에 종군해 유성에 도착해서 호오환교위로 임명된다. 요동의 공손강이 원상과 원희의 목을 보내자 조조는 말 시장에 높이 매달아 그를 위해 곡을 하는 자는 목을 치겠다고 말했는데, 견초는 비통해하면서 곡하고 장례도구까지 가져와서 제사를 지냈으나 조조는 이를 불문에 부치고 오히려 견초를 의롭게 여겨 무재로 천거한다.

215년에 한중을 칠 때 종군해 한중을 점령하자 중호군으로 임명되어 그 곳에 남다가 업으로 돌아와 평로교위로 임명되어 청주와 서주의 제반 군무를 도독해 동래의 적을 토벌한다.

2.4 이민족 격파

220년 조비가 황제가 되자 사지절, 호선비교위로 임명되어 창평에 주둔한다.[4] 그는 창평으로 가서 유민들과 선비족으로 배반한 자들을 귀순하도록 해 이들을 모두 본래의 군으로 돌아가게 했으며[5], 또 선비족 10여만 락을 회유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6]

수도에서 오나라를 칠 대군을 정비할 때 견초를 수도로 불렀다가 일이 취소되자 우문중랑장, 안문태수로 임명되어 다시 지방으로 갔으며, 견초는 안문으로 가서 백성들에게 진법을 익히게 했다. 오환 5백여 가의 조세를 면제하도록 표를 올려 기마병을 육성해 이민족이 요새를 침범할 때마다 물리쳐 격파하면서 백성들의 담력과 기백이 날로 날카로워지고 이민족끼리 이간계를 통해 내분하도록 유도해 황야에 근심거리가 없게 되었다.

이 때 그의 이간책으로 가비능과 틈이 벌어진 보도근설귀니가 3만여 가를 이끌고 견초에게 귀부하자 견초는 그들을 타일러 가비능을 공격하게 했으며, 그 전투에서 가비능의 동생 저라후와 오환의 왕동, 왕기를 죽이자 서로 큰 원한을 맺게 되어 그들이 배반하지 않게 되자 견초는 스스로 출병해 가비능을 대파한다.

하서의 선비 부두[7] 등 10여만 가와 연결해 옛 형북의 상관성을 수리하면서 안팎을 제압하자 수많은 자들이 귀순해 모반한 자들은 친척이라도 숨기지 못해 견초에게 보냈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이 들에 거주하면서 늦게 성문을 닫을 수 있었다. 국경을 침범하는 외적이 자취를 감춰 견초는 재식을 갖춘 자를 태학으로 보내자 그들이 다시 돌아와 서로를 가르쳐 몇 년 사이에 학교가 흥했으며, 또한 광무에 단물이 없어 물을 떠올라 7리를 걸어야 하자 견초는 지세를 보고 산릉의 적당한 곳을 이용해 수원을 파고 수로를 열어 성 안으로 물을 끌어들였다.

226년에 조예가 즉위하자 관내후로 임명되었으며, 228년에 전예가 가비능의 군대에게 포위되자 견초에게 서신으로 구원을 청했는데, 병주자사 상헌이 막았지만 스스로 표문을 올리면서 곧바로 출행해 그들의 본거지를 칠 계획을 적에게 알려 포위를 풀고 물러나게 한다. 가비능군이 다시 공격하자 그를 대파했으며, 견초가 그 때 가비능이 곧 제갈량과 연결해 침공할 것이라고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모두 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진짜로 제갈량과 연계하자 조예가 견초에 가비능을 공격하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가비능이 사막 남쪽으로 돌아간 뒤라 병주자사 필궤와 의논해

호로는 옮겨다니는 것이 무상해 만약 군대를 피로하게 하면서 멀리까지 추격한다면 속도가 느려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만약 몰래 습격하려고 해도 산과 계곡이 험난해 물자와 군량 운반을 은밀히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신흥, 안문의 두 아문을 지키면서 형북으로 나가서 주둔하고, 밖으로는 진무해 안으로는 군사들에게 둔전하게 하면서 물자와 군량을 쌓아두었다가 가을과 겨울에 말이 살찌면 주군의 군사를 합쳐 적의 빈 틈을 타서 정토하는 것이 반드시 완벽하게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라고 말해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지만 실행하기 전에 병사했다.

3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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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정사에서만 나오는 인물이기 때문인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쭉 등장하지 않다가 정사 인물들이 제법 추가된 삼국지 11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11에서 비록 잉여 특기인 친오를 가지고 있지만 능력치가 무력 빼고 전부 70대라(통솔력 72/무력 69/지력 73/정치력 75/매력 73) 다용도로 굴리기 좋다. 시나리오 초반에는 원소군 소속이라서 큰 도움이 된다. 삼국정립 시나리오부터는 조조군 소속으로 속한다.

삼국지 12에서는 짤렸으나 PK에 추가되었다. 무력이 79로 상향되어서 고람 뒤에 버금간다.

삼국전투기에서는 무적의 실버호크의 삼손(원판명은 Steelwill)으로 패러디 되었다.
  1. 정확히는 벽소(辟召)라고 표현된다. 이 시기의 특수한 용어
  2. 초왕을 자처하다가 원소가 공손찬과 싸울 때 인수를 줘 선우로 임명한 일이 있었다.
  3. 황제의 명령인 제(制)를 받들어 행한다는 뜻으로 황제의 권한인 관작봉배 따위를 임의로 행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4. 자치통감에는 221년의 일로 나와있다.
  5. 그 중에는 건의중랑장 공손집도 부곡을 이끌고 귀순했다.
  6. 정확히는 관새(款塞)라는 표현으로 나와 변경 요새로 찾아와서 요새의 문을 두드리면서 귀순하거나 교역을 청한다는 뜻으로 주변 민족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7. 사람 이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