魏嬿婉
1 소개
궁녀->위관여자->위답응->위상재->영(令)귀인->영빈->영비
거주지 : 영수궁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효의순황후 위가씨. 정황기 포의 출신의 궁녀였다. 야심만만하고 구밀복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격이며 작중 최강, 최고, 최악, 최흉의 또라이다.
외모가 오라나랍 여의와 약간 닮았다.
2 작중행적
의복을 관리하는 사집고의 궁녀로 시위인 릉운철과 좋아하는 사이였고 운철이 여의에게 받은 돈으로 아가소에 배치해 주었다. 그러나 홍력이 여의와 약간 닮은 외모 때문에 눈길을 주자 운철을 차버리나 해란이 여의와 닮은 연완을 불편해 하여 화방으로 쫓아냈다. 화방에서 고생하자 운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운철은 연완을 여의에게 소개시켜주었고 여의는 황후에게 꽃배달하라고 시켰는데 여의와 닮은 외모 때문에[1] 황후파의 눈에 띄었고 랑화가 그녀에게 앵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옥연에게 시녀로 준다. 옥연은 랑화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녀를 폭행하였는데 여의에 의해 홍력이 그 모습을 보게 된다.[2]
이후 원하는 대로 가장 총애받는 후궁 중 하나가 되었으나 출신이 낮고 교양이 없어 다른 후궁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몇년이 지났는데도 회임이 안 되자 릉운철을 유혹하여 아이를 가지려하나 운철이 애 생기면 날 죽이려고 할 게 아니냐며 넘어가지 않아 실패한다. 어머니는 아들 밖에 모르고 딸은 돈 바치는 기계 정도로 취급하며 빨리 회임해야 한다고 하는 등 친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의에게 호의적이었으나 자격지심과 여의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비교당하고 홍력에게 총애를 받은 데다 여의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에 여의와 해란을 적대하게 된다. 여의랑 안닮았다면 총애받을 일은 없었을텐데? 옥연이 여의를 모함한 죄로 연금당하자 자신을 학대한 김옥연에게 복수하기 위해 9황자 영성을 죽게 만들고 릉운철이 눈치채자 이게 다 여의를 위해서이며 우리는 죽마고우니 봐달라고 한다.[3] 릉운철은 결국 말하지 않았지만 홍력과 늘 붙어있어 불안하여 그에게 누명을 씌어 죽이려는 악행을 저지른다.[4] 회임을 하고 싶어 몰래 태의원에 홍력이 서비 의환에게 준 임신약과 똑같은 것을 지어 달라고 하나 회임은 계속 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의환과 여의가 아이를 가지자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그녀들에게도 알게 해주고 싶어 산파를 매수해 아이는 그대로 두고 자궁에 손을 써 다시는 회임하지 못도록 지시했다.[5] 악행은 계속되어 의환의 음식에 신장을 약화시키는 약을 넣어 탈모증에 걸리게 하고 의환의 아들인 영모가 병에 걸리자 여의가 태의 강여빈을 보냈는데 연완은 역참을 매수해 강여빈을 막아 치료를 지연시키고 영모가 죽은 후엔 의환에게 임신약이 사실은 난임약임을 까발려 자살하게 만들었다. 태후가 연완이 의환 모자를 해친 사실을 눈치채고 심문하자 연완은 이미 태후가 모든 걸 알고있기에 줄줄 불며 의환이 죽을 지 몰랐다고 한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태후는 연완의 죄를 눈감아주었다.
이후 생일 때 홍력이 술에 취해 젊은 시절의 여의를 닮았다고 하고 자신은 영비라고 부르면서 여의는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여의에 대한 질투가 폭발한다. 김옥연의 개를 광견병에 걸리게 한 후 어화원에 풀어놔 5황녀 경시를 다치게 하여 죽게 했고 임신 중이었던 대미약이 충격으로 조산하게 만들었고 그 죄를 옥연에게 뒤집어 씌었다. 그러나 여의와 해란이 정황상 옥연의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해란의 조카를 매수해 해란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으나 실패하여 자신의 어머니에게 뒤집어 씌운다. 어머니가 사사당한 충격으로 조산하여 7황녀 화정공주 경완을 낳았으나 영빈 파림씨가 대신 양육한다. 여의를 싫어하는 화경공주와 동맹을 맺어 총애를 회복하고 14황자 영로, 9황녀 화격공주 경운을 낳았으나 임신환약[6]의 부작용으로 점점 노화되고 있다.
3 실제 역사
파일:Attachment/위연완/Empress XiaoYi.png
내청룡 청태의 딸. 건륭 4년에 입궁하고 건륭 10년에 위귀인으로 책봉되었다. 건륭 21년에 7황녀 고륜화정공주를 낳은 후 14황자 영로, 9황녀 화석화격공주, 15황자 가경제 옹염, 16황자, 17황자 영린을 낳았다. 계황후가 폐위된 후 영황귀비가 되어 육궁을 총괄하였다. 건륭 40년에 49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영의황귀비(令懿皇貴妃) 위가씨로 추존되었다. 가경제가 태자로 봉해지면서 효의순황후(孝儀純皇后)로 추존되었다.
1928년 건륭제의 유릉이 도굴당했는데 유릉 안에는 효현순황후와 효의순황후 그리고 숙가, 철민, 혜현 세명의 황귀비가 합장 되어 있었고 그 중 효의순황후만은 죽은 지 153년이 지난 후였음에도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4 기타
안릉용과 비교되나 연완의 행보가 너무나 노답스럽기 때문에 안릉용이 재평가 되는 분위기다(...)
포스가 너무나 막강하기에 여의가 페이크 주인공이고 연완이 진주인공화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나온다.
특기는 곤곡
작가가 인터뷰에서 연완은 황제에게 죽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