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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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윌리 킬러 (William Henry Keeler)
생몰월일1872년 3월 3일~1923년 1월 1일
국적미국
출신지뉴욕 주 브루클린
포지션우익수
투타우투좌타
소속 팀뉴욕 자이언츠(1892~1993)
브루클린 그룸스(1893)
볼티모어 오리올스[1](1894~1898)
브루클린 슈퍼배스(1899~1902)
뉴욕 하이랜더스(1903~1909)
뉴욕 자이언츠(1910)
1897,9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제시 버켓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2]
→윌리 킬러
(볼티모어 오리올스)
→에드 델라헨티
(필라델피아 필리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윌리 킬러
헌액 연도1939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75.55% (4회)

1 소개

Killer가 아니다!
Wee Willie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189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타자다.키가 163cm[3]로 매우 작아서 Wee Willie[4]라는 별명이 붙었다.

2 선수 시절

1872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윌리 킬러는 1892년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데뷔 초에는 팀의 백업 멤버로서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으나 189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위에서 말했듯이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에 입단하면서 팀의 주전으로 뛰게 된다.

풀타임 첫 해,윌리 킬러는 타율 .371 219안타 94타점을 기록했다.윌리 킬러의 활약 덕에 전 시즌까지만 해도 8위에 그쳤던 오리올스는 창단 이후 첫 리그우승을 치지했다.이후로도 윌리 킬러는 꾸준히 활약하며 오리올스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거,1897년과 1898년에는 타격왕을 차지했으며1897년에는 타율 .424로[5] 4할 타자가 되는 등 맹활약했다.또한 1896년 최종전과 1897시즌을 걸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속 안타 2위인 45경기 안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6] 조 디마지오가 경신하기 전까지 계속 최고기록으로 유지됐으며 디마지오가 이를 경신할때 "디마지오가 윌리 킬러 기록을 깼다"는 게 미국내 큰 화제였다.

1899년 브루클린 슈퍼배스로 이적한 윌리 킬러는 1901년까지 200안타를 치면서 메이저리그 130년간 전무후무한 8년 연속 200안타를[7] 기록했다.이후 1903년 볼티모어 오리올스[8]로 이적해 1906년까지 3할을 기록하며 15년 연속 3할을 치며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하지만 1907년 개인 최저 타율인 .234를 기록하는 등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다가 1910년을 마지막으로 39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이던 윌리 킬러는 1923년 1월 1일 세상을 떠났다.향년 50세.

윌리 킬러는 죽은 뒤인 1939년에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 ↑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는 전혀 관계없다.
  2. ↑ 현재는 사라진 내셔널리그 야구팀.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3. ↑ 사실 미국은 20세기 세계인 체격 대성장 시대에도 국민 신장이 많이 커지지 않은 나라로, 당시 미국인 평균키는 다른나라처럼 지금과 큰 차이가 나거나 하지 않으며, 현재 한국인 평균키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운동선수임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 시대의 일반인치고도 상당히 작았던 것. 한국으로 치면 김선빈이 리그 최고의 스타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4. ↑ Wee는 작은,조그마한 이라는 뜻이다.
  5. ↑ 메이저리그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6. ↑ 1위는 1941년 조 디마지오가 기록한 56경기 연속 안타.
  7. ↑ 이 기록은 약 100년 후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 소속으로 2001년~2009년 9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할때까지 신기록이었다. 이치로는 2010년에도 200안타이상을 기록해 현재 MLB기록은 이치로의 10년연속 200안타이다.
  8. ↑ 현 뉴욕 양키스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