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백순

柳伯淳(? ~ 1420)

1 개요

고려조선 초의 인물. 본관은 서산, 호는 위촌(葦村)이며, 유방택(柳方澤)의 아들이자 유백유(柳伯濡)의 동생이다.

서산 사람으로 이색 문하에서 공부했고 1376년에 병진방의 병과 3위로 합격했으며, 이후 성균사예로 있다가 1391년에 순녕군 왕담과 함께 나라를 비방하는 말을 꾸며낸 죄로 국문을 받았으며, 죄를 시인하지 않다가 고문당하자 위화도 회군을 한 장수들은 군사를 되돌렸으니 오히려 공로가 없는데도 포상을 받았다면서 그들이 왕씨를 가로막고 창왕을 세운 것도 형세가 그리된 것이라 했다.

또한 자신을 투옥하면 무신정권 때의 변란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면서 정도전 등은 나라의 권력을 농단하는 음모를 꾸미고 과거와 같은 변란이 벌어지면 우리들이 그 화를 입을 것이라 했다.

결국 장형에 처해진 후에 기주로 유배되었으며, 이후 조선에서 1406년에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1407년에 주역, 춘추 등을 강론했으며, 시독관으로 이수를 천거했다. 1408년에 생원 시원, 좌사간대부를 지냈고 안속이 태종의 기분을 상하게 해 파직되자 이를 용서해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조대림 사건 때 조대림을 속여 역모를 꾀한 목인해의 사형을 늦출 것을 상소로 올렸다가 순금사에 갇혔다.

1419년에 인녕부윤, 행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다가 1420년에 사망했으며, 그가 죽자 세종이 부의를 보냈다. 그는 성품이 굳세면서 곹았고 경전에 밝고 역사에 통달해 오랫동안 국학의 장관이 되어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으르지 않았으며, 후학들을 교육시키고 문사들이 그의 문하에서 많이 나왔다고 한다.

2 드라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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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에서 잠깐 등장하였다. 배우는 서병덕. 극중에서는 정몽주가 유백순을 사주하여 정도전을 비난하는 상소문을 쓰게 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극중에서 정몽주는 모르는 척 그를 엄히 문초하여 귀양을 보낸 뒤, 동시에 이를 빌미로 정도전에게 도의적 책임을 물어 평양부윤으로 좌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