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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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소재지 / 별표는 특례시.,,|<#a9a8a2><-5><:> 충청남도 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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瑞山市 / Seosan City


서산시청. 주소는 충청남도 서산시 관아문길 1(舊 읍내동 492번지). [공식 홈페이지].


▲ 서산 중앙호수공원


▲ 서산시 옛 슬로건[1]


▲ 서산시 옛 마스코트인 우리와 도리. 청둥오리장다리물떼새를 형상화했다.[*A]


▲ 서산시 브랜드 마스코트: 해누리, 해나리

서산시
瑞山市 / Seosan City
국가대한민국
면적740.48㎢
광역시도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1 9 5
시간대UTC+9
인구174,049명
(2016년 9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225.23명/㎢
시장이완섭
재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대부분의 부모님이 땅을 가졌다는 그곳 서산 일굴귀와는 상관없다.


1 개요

충청남도 내포지방에 위치한 . 인구는 약 17만명으로 면적은 739.15㎢이다. 이전부터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기에 조선시대부터 한 고집 한다는 사람들(...)의 유배지로 이름높았고, 사실 누구나 아는 이름대로 서쪽에 있는 산이 아니라 상서로울 瑞 자에 뫼 山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서산테크노벨리와 여러 산업단지가 들어옴으로 인해 당진시와 더불어 계속해서 인구가 조금씩 느는 추세에 있다. 그에 따라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고, 포스코SK에너지 같은 대기업도 입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대표 경차 모닝, 레이의 고향이기도 하다.

서산만의 독특한 사투리로는 '시절' 이 있다. 의미는 대략 '바보, 한심한 놈'. 용법은 다음과 같다. "으유 이 시즐아, 이런 것도 못하냐."[2][3] 충청도 사람들은 서산을 스산이라 발음한다더라


2 역사

한강에서 중국까지 거리보다 서산에서 중국까지의 거리가 오히려 더 가깝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요충지 중 하나였다(중국하고 가까우면 일단 배시간이 줄어드니...). 선사 시대 유물들도 발굴됨은 물론이고, 마한이나 백제 시절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서산마애삼존불상과 보원사지 등이 있다. 하지만 백제 부흥 운동 당시 주축이었단 이유로 신라에 의해 초토화되었다.[4]

서산의 기원은 삼한 시대 마한의 54개국 중의 하나로 태안에서 이동 형성된 신소도국(臣蘇塗國)과 대산에서 형성된 치리국국(致利鞠國)의 2개 부족국가를 시조로 본다. 이후 백제 시대에 들어와서 지곡면에 위치했던 치리국국이 지육현(知六縣)이 되고, 해미면 지역에 여촌현(餘村縣)이 생겼으며, 비로소 부춘산 기슭에 오늘날 서산시의 모체인 기군(基郡)이 만들어졌다.

서산 지역[5]의 경우 통일신라 때(755) 부성군(富城郡)이라고 불렸으며, 고려 때(1284) 서산군이라는 이름을 처음 얻게 되었다. 그 후 1308년 서주목(瑞州牧)으로, 다시 2년 뒤에는 서령부(瑞寧府)로 바뀌었다가 조선 태종 때(1413) 다시 서산군으로 되었다.

해미의 경우 태종 때(1407) 정해현과 여미현을 통합해 해미현이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1418년 병영(兵營)이 덕산(현 예산군 덕산면)에서 이전했다. 성종 때(1491) 해미읍성이 축성되었고, 효종 때(1621) 호서좌영(湖西左營)이 설치되었다.


2.1 행정구역 변천사

일자변동사항비고
1895년 4월 7일23부제 실시에 따라 홍주부 산하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으로 편제[6]
1914년 3월 16일마산면과 화변면을 부석면으로 통합
1914년 4월 1일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태안군과 해미군을 서산군에 병합
1917년 10월 1일서령면을 서산면으로, 지성면을 해미면으로 개칭
1942년 10월 1일서산면을 서산읍으로 승격
1957년 11월 6일대호지면, 정미면을 당진군에 편입[7]
1973년 7월 1일태안면을 태안읍으로 승격
1979년A-B 지구 간척사업 시작
1980년 12월 1일안면면을 안면읍으로 승격
1983년 2월 15일고북면 대사리를 홍성군 갈산면에 편입
1989년 1월 1일서산읍이 서산시로 승격, 동시에 태안군이 다시 분군
1991년 12월 1일대산면을 대산읍으로 승격
1995년 1월 1일도농복합시 시행으로 인하여 서산시와 서산군이 서산시로 통합
2011년 7월 4일대산읍 독곳리를 독리(獨里)로 개칭함


2.2 문화유산

대표적 문화유산으로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있다. 그 외로는 2014년 이뤄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유명해진 [해미성지]와 해미읍성이 특히 가톨릭 신도들에겐 유명하다.


3 정치

서산시-
태안군
15대16대17대18대19대20대
변웅전/초선
자유민주연합
문석호/초선
새천년민주당
문석호/재선
열린우리당
변웅전/3선
자유선진당
성완종/초선[8]
자유선진당
성일종/초선
새누리당
김제식/초선
새누리당

인구가 적은 태안군과 함께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1차 산업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지역이라 과거엔 지역정당의 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15, 18, 19대 총선에서 모두 충청지역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2012년 지역정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보수화되는 것 아니냔 추측이 나왔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충남도지사로 출마한 민주당계 안희정 후보를 미는 등 캐스팅보트적인 선택을 보여주는 편이다.

다만, 지역주의가 있는지 서산·태안 출생이 아닌 정치인은 한번도 선출직에 뽑힌 적이 없다.(...) 이러한 지역주의는 좌우를 떠나서 서산의 아들로 내세울만한 인물을 밀어주는 형태를 띄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성완종 의원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자살했을 당시 '새누리당이 서산의 아들을 죽였다'는 반새누리 정서가 한동안 돌았었고, 이로 인해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성완종 의원의 동생인 성일종이 아니었다면 혹은 그가 야권에서 출마했다면 새누리당이 패했을거라는 시각도 많았다. 실제 성일종 후보는 39.1%의 득표율로 37.3%를 득표한 더민주 조한기 후보에게 1.8% 차이로 신승했는데, 보수성향의 무소속 한상률 후보가 표를 분산시킨 덕도 있다지만, 형인 성완종 회장의 명예회복을 내세운 것에 비하면 간신히 진땀승을 거둔 셈.


4 도시구조 및 지리

4.1 지리

지리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한 글은 해동지도[9]의 서산군에 대한 해제이다.

산세가 읍치를 둘러싸고, 바다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0]

충남 서해안권 중 서북부 해안권의 지역중심도시이며, 북동으로는 당진시, 동측으로는 예산군, 서측으로는 태안군, 남측으로는 홍성군에 접하고 있으며 해수면상으로는 북서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경기도 안산시와 접해있다. 운산, 해미, 고북을 지나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며, 국도 29호선(보성-대산)32호선(만리포-대전)이 대상지를 각각 남북과 동서로 관통한다.


4.1.1 지형

산은 동에 가야산, 서에 팔봉산, 남에 도비산, 북에 부춘산(옥녀봉)이 있으며, 바다는 북으로는 가로림만, 대호포, 남으로는 적돌강(積乭江), 사장포(沙長浦),천수만이 있다.[11][12]

대부분의 높은 지형은 동쪽에 있으며, 북쪽으로 해서 구릉지를 타고 산맥이 서쪽으로 간다. 따라서 지형은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표고 100m이하인 부분이 전체면적의 약 86.5%를 차지하고 있고,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사도가 10% 미만인 저산구릉지대이다. 산세가 비틀거림에 비해 비교적 평야가 많이 형성되어 있고 동고서저, 북고남저형을 띄는 지형을 갖고 있다.

서산읍 지역에는 서산면 지역의 명지천[13], 인지면 지역의 둔당천, 음암면 지역의 청지천이 흐르며, 이 모든 개천은 자기 자신만의 저수지를 갖고 있었다. 명지천은 중앙저수지[14], 둔당천은 풍전저수지, 청지천은 잠흥저수지를 갖고 있다.

해미읍 지역에 흐르는 대부분의 하천은 도당천을 중심으로 한 지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큰 지류는 도당천 지류와 해미천, 신장천이다. 도당천 지류는 다시 동암천, 반양천, 홍천천과 삼송천, 대교천과 태봉천, 가좌천, 중곡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미천은 산수천과 황락천을 지류로 갖고 있으며, 신장천은 단일지류이다. 도당천과 해미천은 각각 저수지를 갖고 있다. 이외의 하천은 신상천, 도간천, 기포천, 소정천이 있는데, 이 중 유일하게 소정천에만 저수지가 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세운반선이 태안군 서쪽을 가로질러 오다가 풍랑에 가라앉는 일이 많아[15]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 인종때 굴포운하라고 하여 가로림만과 굴포를 잇는 운하를 뚫으려고 했으나, 화강암 암반을 지녀 무려 500년간 갖은 작업을 통해 7km 중 4km만 뚫고 무산되었다. 대신 조선 인조때 물살이 조금이라도 덜 거세게 안면곶을 안면도로 만드는 판목운하를 뚫었다고 한다. 이곳도 희대의 난공사라 (애초에 바로 옆이라 암반은 같다! 다만 길이가 짧을뿐)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거센 물살을 줄이는데 나름 도움을 줬다고 한다. 문제는 태안 서쪽을 그대로 거쳐가야 한다는게 문제지...


4.1.2 기후

아시아계절풍지역, 대륙의 동안에서 부는 계절풍의 영향권에 속하는 곳이다. 겨울철에는 북서풍이, 여름철에는 남풍이 분다. 바다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해안지방에 난지성 식물인 동백이나 사철나무가 자란다. 따라서 이전에는 대나무의 북방 한계선 자락이었으며, 실제로 죽림같은 지명이 많다.

상대습도가 높지만 일조지수와 증발량이 많은 편이며, 연교차가 크게 나타나고 바다쪽이 내륙보다 기온이 높다. 바다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북서풍이 불기 직전인 10월이 11월보다 더 건조하며, 이로 인해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다설지는 아님).[16]


4.2 도시구조

도시구조는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은 전형적이고 전통적으로 시내 한가운데부터 발전된 도시의 구조를 갖고 있다. 즉, 백제시대 이후의 국가들의 수도로부터 멀어 버려졌고, 애초에 백제 이후 신라에 의해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어 그 이후엔 오직 자생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실은 조선 시대 왕자의 난으로 인해 이방간은 현재의 서산시 지역으로 유배를 왔으며[17], 조선시대 다른 유배자들도 이곳에 꽤 많이 왔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유배를 어디로 보내는지만 생각해도 감이 온다. 더군다나, 실제로 박정희가 시찰을 오기 전 까지 서산에서 서울을 편도로 가는 데에 5시간에서 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 이전에 적혀있던 "충청도에 있던 듣보잡 시"라는 표현이 제일 잘 어울릴 거다. 애초에 기차도 안들어오고 유의미한 도로도 안들어오는 도시였는데 어떻게 듣보잡이 아닐까? 괜히 멘트가 살기 좋은 서산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사람이 순하고 정신이 맑고 착하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속해있는 행정구역 중 이전엔 서산읍(현 서산 시내)보다 해미면이 오히려 컸었기 때문에, 오히려 해미 중심이 아니라 서산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 이상하다. 하지만 해미는 조선시대 이후 퇴적으로 인해 점차 해양에서 멀어져 해양도시로서의 역할을 잃어 점점 역량이 서산으로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A-B 지구 방조제 건설 이후 해미는 오직 공군 군사거점지 역할 정도를 제외하면 이름과 달리 바다와 연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락했다. 6.25 전쟁 당시 해미읍성에 있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서 그렇다는 지역 주민의 말도 있다.[18] 다만 가까운 곳에 내포신도시가 개발되고 난 다음에 어찌 될지는 미지수. 애초에 서해안고속도로에 접근성이 굉장히 좋고[19] 다만 홍성과는 달리 산으로 막혀 있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태안 같은 경우에는 좀 특이한게, 분명 다른 지역임에도 서산 주민들이나 태안 주민들이나 모두 다 서산 산다고 한다. 1914년부터 1989년까지 오랫동안 태안이 서산의 일부로 있었고, 모든 인프라가 서산 중심으로 깔린지 오래라 굳이 분리할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보는게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4.2.1 1980년대까지

[한국전쟁 직전의 지도] 및 [한국전쟁 이후의 지도][20]를 참조하면, 시내 및 주변지역은 무려 한국전쟁때, 혹은 그 이전과 다를게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2010년대에 들어 시내의 사이즈는1979년의 4배가 넘게 커졌지만, 애초에 기초적인 시설은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그리 다를게 없는 현실을 알려준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수도권의 유행이 3년이 지나야 서산에 온다.는 말도 있었는데, 실제로 이러한 발전없는 실상 때문에 이는 당연한 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 대통령이 서산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에서 서산에 오는 길은 오지게 빡센 길(..)이었고[21]따라서 육군 공병대가 현재 서산터미널 앞을 지나가는 안견로와 서산의료원 앞을 지나가는 서해로의 일부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가장 큰 길이었던 649번 지방도(서령로)[22]를 제치고 시에서 가장 넓은 도로이자, 각각 국도 29번과 32번의 연장이 되었다.

1980년대 말 시내에 흐르던 하천인 청지천(석림천)이 복개되고 양유정은 일개 공원이 되었다. 안습. 다만, 명지천(청지천, 석림천)이 1950년대 서울의 청계천같이 하수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6.25 동란 이후 이미 양유정은 아름다운 별경 같은 의의를 상실했다...만서도, 그래도 지금도 고목공원도 남아있고 다 그런데.

당시에는 남쪽에 가려면 현재의 모아슈퍼 앞 삼거리를 지나서 가야 했고, 서울에 가려면 현재의 서령고등학교 앞을 지나쳐 가야 했다. 현재도 두곳 모두다 2차선인 채로 남아있으니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주민이라면 가서 구경해보자. 특히 모아슈퍼 앞 삼거리는 30년 전과 바뀐게 간판밖에 없으며, 서령고등학교의 정면만은 개교 당시와 똑같다. 2010년대 지어진 아파트가 보이지만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지울 수 있다.

참고로 서산초등학교 근처의 경우 증언에 따르면 1930년대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건물 높이도 똑같다고. 실제로 바로 앞에 시장 가는 길을 보면 낙후되어있음이 온눈에 보인다. 서령고등학교 가는 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난개발이 많이 이루어져 지도에서 보기보다 상당히 낙후되어 보인다. 실제로도 서령고등학교 근처를 제외하면 버려진 시가지급...으로 사정이 좋지 않다.


4.2.2 1990년대

시청에 있는[아파트 현황]을 연도별로 정리해서 보면 실제로 단지형 아파트들이 대부분 1990년대초부터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는 대산 석유화학단지가 운영을 시작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에 대산은 방금 생긴 단지이기 때문에 편의시설 등이 부족하여 근로자들은 가까운 도시인 서산에서 집을 구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 서서히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교통상황이 매우 안좋았기 때문에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때문에 이때부터 석림사거리 앞부터 정체가 시작되었다. 1992년부터 본래 대산과 이어진 도로[23]가 아니라 새로운 도로[24]를 착공해서 1995년5월에 완공되었다. 이로 인해 거미줄 모양의 도로를 갖게 되었다. 90년대 초 현재의 터미널을 시내버스터미널로 삼고, 현 서령종합상가 지역에 시외버스터미널을 세우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시장 상인들 및 지주의 농간으로 인해 서령종합상가 지역의 개발을 포기하고 그 당시 도로를 만들면서 충의로와 안견로 사이의 공간을 제외하고 충의로 남쪽부터 개발을 강행했다. 이 당시 버려진 부지는 2000년대 초 주상복합으로 개조되어 만들어지려다 현재까지도 폐건물 상태로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다.

이 당시의 시내 모습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남아있는 곳이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모습이 똑같은 현재의 부춘초등학교 지역, 부춘중학교 지역, 80년대 말에 매립되어 개발된 양유정 지역(다만 여기는 1800년대 모습도 남아있는 곳이라..), 명지천 유역 후반부(현 옛날치킨 및 GS25, 로마관광나이트가 있는 곳.) 안견로 따라 가면 있는 대신증권빌딩 근처 건물들이 주로 90년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신증권 인근의 상업시설의 건물들은 대부분 90년도 전후 생겨난 건물들이지만 삼일상가 사거리에서 부터 서산경찰서까지 이르는 길 안쪽으로 자택들의 경우 60~70년대 지어진 자택들이 그당시 모습 그대로 살고있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1990년대에는 터미널부근의 동부시장과 당시 서부시장(현 서부상가지역)을 중심으로 그 사이에 위치한 길들의 골목상권이 발달하였었다. 해당 위치는 현 서산시 동문동 KT서산지부 부근이다(구 서산전화국)
서부시장 지역의 상권이 몰락하고 새로운 아웃도어 브랜드의 옷가게들이 (광장과 서산초등학교) 사이를 잇는 중앙로에 입점하게 됨에 따라 90년대 끝자락즈음부터 상권의 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4.2.3 2000년대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의 완전개통으로 인해 서울 가는데 4시간이 걸리던 거리가 1시간대로 좁혀졌으며, 때맞춰 열린 2002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로 인해 태안이 관광지로서 각광받게 되었다. 당시 교통량이 너무 늘어나 2차선이었던 태안-서산간 도로를 4차선으로 늘리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에 당시 나름 면 읍내급의 상가를 갖고 있던 공림삼거리는 서산시내에 기능이 흡수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제 주말마다 도로가 헬게이트가 되었다. 당시 낙후되어있던 시내외의 컨텐츠들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이 진행되었으며, 시 외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안견로와 충의로 사이의 빈 지역을 주로 개발하는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를 보조하기 위해 한 시내버스 노선은 마트 앞[25]과 한 아파트 단지[26]를 직결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때 시내에 그린필백화점이 생기면서, 제20전투비행단으로 인한 고도제한 때문에 높은 건물을 못짓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시장상인들의 농간이었음이 알려지기도 했다[27]. 그 이후 시내에 고층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8]
하지만 다른의견도 존재하는데 고도제한의 경우 건물을 계획하게되면 당연히 제한이 받는지 안받는지 알수있는데 공무원들이 콩밥먹고싶지 않은이상 허위로 못짓게 할수는 없다. 또한 비행기로 인한 고도제한의 경우 성남같이 아주 근접한 도시의 경우 4~5층 건물밖에 지을 수 없지만 수십km 떨어진 서산시내는 그정도는 아니였고 오히려 수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제대로된 고층건물은 드물거나, 폐건물 상태이다.
2000년대 전반과 후반을 비교할때, 후반에 전반을 비교하면 거의 네배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사실 시가지의 사이즈가 갑자기 커진 것도 이 시기[29]이다. 이때에 들어서야 일부 부춘중학교 인근과 시내 인근을 제외하면 거의 버려진 안견로 주변 땅이 개발되기 시작한것[30]도 주요한 이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호수공원 개발사업이다. 1990년대 시도했던 서부상가 개발 사업에서 똥방죽중앙지 개발 사업을 따로 따서 호수공원으로 만들고 그 주변을 개발하기로 시도한것이 결국 2005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8년 완공]되었다. 상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며 아직 전체 개발이 안되었음에도 기존의 중심지 기능을 하던 먹자골과 터미널을 한산하게 만들 정도로 붐비기 시작했다. 다만 계획과 살짝 틀어진 탓에 호수공원 준공 이전에 예천주공 1-2단지가 준공되었다. 때문에, 도심 한가운데가 뻥 뚫린것 처럼 농지로 가득한 상황이 잠깐동안 있었다. 물론 동문동 일대는 아직도 그렇지만.


4.2.4 2010년대

호수공원은 이제 새로운 중심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했고, 기존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진 학교들은 이제 지근거리에 아파트 같은 대규모 주거지를 맞대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과 교육시스템 자체의 적용이 달라지고 있다. 서산여중-서산여고 아래의 양열로는 00년대부터 이미 태안으로 인해 시의 주 도로인 충의로가 정체가 되자 그 정체를 막기 위해 세운 도로인데, 이게 다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시내 도로는 00년대 이전 수준으로 교통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서산시 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기존의 안견로-충의로-양열로 순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들처럼 거미줄로 만들어지는 도로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도로명을 고려한다면 이 도로들의 이름은 각각 둔당로와 남부순환로가 될 예정이다.

2000년대까지 서산시내에 편의점은 단 몇군데밖에 없었지만 2010년대 들어오면서 상당히 많은 곳에 편의점이 생겼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2000년대와 2010년만 비교해 보더라도 생각외로 시내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급변하는 곳은 2000년대 후반에 이어 계속 예천동 쪽이다. 계속 아파트가 들어섰고, 들어서고 있고, 더 들어설 것이 분명한 곳 중 하나이기 때문. 당분간은 충의로와 양열로-서해로 사이를 메꾸는 데에 주로 개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입지적으로 봐도 상당히 좋은 곳이기도 하고. 아직 개발 안된 새로운 중심지 근처의 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중에는 다른 도시들처럼 이곳을 신도심으로, 현 터미널 근처를 구도심으로 부르지 않을까 하는 말들도 있다.
특히 호수공원 인근/ 테크노 밸리 주변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오히려 내포신도시보다는 서산시가 더 발전할 거라는 의견들도 있다. [1] [2][31]


4.2.5 종합

sosan.gif
왜 지도랑 위성사진이랑 섞여있나요[32]
다이나믹한 성장을 거치고 있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대한민국끝난 뒤에 뒤늦게 성장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사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것이 나온 것이 2000년대 후반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백제 시대 이후 이렇게 발전한게 드물다고 할 수 있을 정도. 현재 발전하는 지방 소도시들 중에선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편이다. 혹자는 천안이나 수원의 20여년 전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했고, 제 2의 울산 소리가 2000년대 초반에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자뻑인걸 아는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있다.


4.2.6 트리비아 : 범죄율

도시가 커져서 즐길거리가 늘어난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게 현실인게, 시내가 크게 확장된 다음부터 치안이 안 좋아졌다는 소리가 떠돌고 있다. GTA 서산 시내 확장 전에 오히려 인구가 몰리고 그랬어야 정상일 듯 싶으나, 실상 늘어난 것은 1만명인데 강력범죄(특히 언론에 뜰 만한 사건)은 자주 벌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규모 공동체에서 자정이 일어나다가 외부 유입으로 자정이 불가능한 인원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인 듯. 아니면, 오히려 작은 사회였기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고 덮인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큰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원주민들이 느끼기엔 확실히 이전엔 말로만 해도 되던 일들을 처리하기 힘들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서산시의 공무원(소방, 경찰, 시청 등)들이 대부분 서산 출신으로서, 다른 민간인과 선후배 하는 사이로 대부분 사건을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하는 측면도 있었으나, 외지인이 현지인과 싸우거나 하면 편을 들 수는 없다 보니까 사건이 예전에 비해서 커지는 거....[33]


5 교통

우선, 보통 시 급의 지자체에 놓여지는 철도존재하지 않는다. 본디 일제강점기[34] 철로 부설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취소되고[35], 그 뒤로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 자체가 거론되지 않는다. 지역민들의 열망 중 하나. 서해선 마저도 서산을 빗겨간다. 서해산업선이 승객수송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현재 서산과 울진을 잇는 중부권 동서내륙철도 착공이 추진중이다.

[뉴스 제목]에 집중해서 보자. 서산에 철도 들어온다.

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29번 국도, 서해로, 38번 국도, 45번 국도가 있다. 최근 당진영덕고속도로의 대산 연장이 국회 예비 타당성이 통과되었다. 2022년 완공 예정.

버스 터미널은 서산공용버스터미널이 있다. 항목 참조.

도로는 그냥 헬게이트이다. 시내버스 터미널 근처는 지방 소도시 주제에 소위 강남대로급 정체를 볼 수 있으며, 출퇴근 시간이 되면 시내의 모든 도로의 통행량이 수용량에 근접하는 기염을 토한다. 휴가철에는 이게 더 심해지는데,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태안이 관광지로서 힘을 얻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특히 안면도 꽃 축제 등)으로 인해 주말만 되면 그 빨라진 접근성(1970년대 5시간 20분 항목을 다시 보고 지금 인터넷 지도에서 시간을 찍어보자. 몇 시간 차이가 나나?)으로 인해 도로가 막히며, 심하면 그냥 주차장이 되어버린다. 롯데마그넷 서산점(현 롯데마트)가 2002년 3월 21일에 오픈한 이래 그곳으로 쇼핑을 가는 시민들과 겹쳐서 더 난장판이 되었다. 신작로조차도 지방 소도시라 6차선이 아니라 4차선으로 지었기에 더 미스. 게다가, 본디 외곽도로가 1970년대 박정희가 시찰 온다고 허겁지겁 넓힌 게 4차선이라 더더욱 미스.

이 문제는 태안을 가려면 반드시 서산을 지나야만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여름철이 되면 서산시의 외곽도로는 헬게이트 오픈. 따라서 시에서 1990년대 말부터 짓기 시작한 새로운 외곽도로를 통해 통행량을 줄이려고 했지만, 공사가 진전되지 않다가 비로소 2014년 말에 서해로 지선 - 양열로란 이름으로 개통. [36] 그러니까 대천역처럼 여름 한때만 따져도 좋으니까 기차 좀 제발

다만, 이 도로 개통이 실제로 효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본디 서해로와 충의로를 확장+신작했을 때에도 기존 시내 지역을 비껴서 건설했지만, 단 몇 년만에 초토화가 되어버려서...

2010년 3분기 드디어 전체 버스의 노선번호가 생기고[37], 12월 1일 무료환승제가 도입되었다. 시 치고는 꽤 늦은 편이다. 항목 참조
시내버스 요금은 다음과 같다.

종류성인청소년어린이
현금1,400원1,120원700원
교통카드1,350원1,070원650원

교통카드 결제시 50원 할인 적용.

이 시내버스 요금이 천안시 시내버스랑 같다. 그러니까, 전국에서 가장 비싼 시내버스요금.

대부분 시내권에서 터미널까지 걸어서 10분 내외의 거리이기에 시내버스라는 개념이 없었고, 대부분 시내버스라고 하면 인지, 부석, 대산 등 시 외곽을 주 노선으로 하기에 특별히 버스노선이 필요치 않았다.

지방 중소도시이다 보니, 버스정보시스템(BIS)이 없어 승강장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고선 버스를 탔었다. 그러다 최근 부천시 시설관리공단과 서산시 버스정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올해 안에 서산 시내 각 정류장에 설치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것을 의도한건지는 몰라도 최근에 지어지거나 규모가 큰 정류장에 가보면 버스정보시스템 관련 단말기가 설치가 되어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상작동중인 것은...

시외버스의 경우 2000년도 초반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모든 노선이 국도 우선시라는 개념이 있었다.[38] 일례로 서울을 가려면 남부터미널노선이 당진 경유는 남부터미널-안성IC-안중-아산만방조제-삽교천방조제-당진-서산으로 2시간 30분 소요 되었으며[39] 해미 경유 노선이 서산 - 천안까지 국도를 이용하고 천안 - 서울은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보통 3시간 정도 소요되었으며 전라도 방면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 서울까지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한다. 서산터미널에는 경상도 또는 전라남도 쪽으로 한 번에 가는 노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서울 또는 수도권을 종점으로 노선이 배차되고 있는 실정.

유사 이래 해미공항이 생긴 직후부터 해미에 있는 서산비행장을 민간 국제공항으로 사용하려는 구상이 있다. 충청권 공항이라고 있는 청주공항은 서해안권에서 너무 먼 상황에서, 서산과 당진, 내포신도시의 기업수요와 태안·보령의 관광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직은 사업성이 낮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일단 충남도청에서도 2016년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서[40] 몇 년 내로 서산공항에서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운용되고 있는 현재 군용 공항중 가장 큰 공항이기 때문에 (한때는 아시아 최대의 군기지 소리도 나왔었다!) 어쩌면 대형 항공기도 이착륙이 가능할지도 모른다.[41] 그렇지만 운용되고 있는 주체가....


6 교육

학구열이 매우 높은 도시이다. 부춘초등학교 앞에 있는 모 학원은 2000년대 가히 서산의 종로학원이라고 불리었을 정도...(멸치 원장이 이끄는 서산 특목고 등용문) 물론 이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이기때문에 그런것도 꽤 있지만 대산산업단지에 다니는 근로자들의 영향도 없지않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들의 경우 학력 수준이 높은편이라 자연스레 자녀들에게도 교육을 많이 시킨다. 특히 사원아파트가 몰려있는 대산지역은 그 정도가 서산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는다.[42]


6.1 초등학교

학교명개교일지역
1서산초등학교1911. 07. 05동문동
2오산초등학교1936. 04. 01오남동
3서령초등학교1948. 09. 01죽성동
4부춘초등학교1956. 05. 08읍내동
5서동초등학교1964. 04. 01동문동
6서림초등학교1992. 03. 02석남동
7학돌초등학교2001. 09. 01읍내동
8서산석림초등학교2004. 03. 01석림동
9서산예천초등학교2008. 03. 01예천동
10서산동문초등학교2009. 04. 22동문동
11대산초등학교1922. 07. 01대산읍
12명지초등학교1956. 05. 09대산읍
13서산대진초등학교2004. 03. 01대산읍
14인지초등학교1931. 06. 16인지면
15차동초등학교1959. 05. 10인지면
16부석초등학교1922. 07. 10부석면
17강당초등학교1947. 12. 01부석면
18가사초등학교1949. 09. 30부석면
19팔봉초등학교1927. 04. 04팔봉면
20부성초등학교1930. 06. 16지곡면
21성연초등학교1931. 09. 01성연면
22음암초등학교1929. 06. 20음암면
23동암초등학교1956. 04. 09음암면
24운산초등학교1921. 09. 01운산면
25운신초등학교1941. 10. 01운산면
26해미초등학교1912. 05. 10해미면
27언암초등학교1949. 09. 30해미면
28고북초등학교1930. 06. 16고북면

1970, 80년대 세워진 학교가 한개도 없다.


6.2 중학교

학교명개교일지역
1서산여자중학교1927. 05. 01석림동
2서산중학교1946. 12. 16석남동
3서령중학교1955. 06. 01동문동
4서산부춘중학교1994. 03. 30읍내동
5서산석림중학교2004. 04. 27석림동
6대산중학교1957. 07. 01대산읍
7서산명지중학교2004. 04. 29대산읍
8해미중학교1952. 01. 23해미면
9부석중학교1954. 09. 08부석면
10성연중학교1971. 03. 10성연면
11고북중학교1971. 03. 09고북면
12음암중학교1976. 03. 10음암면
13인지중학교1985. 03. 08인지면
14대철중학교1958. 03. 08운산면
15팔봉중학교1971. 03. 13팔봉면
16서일중학교1979. 03. 07지곡면


6.3 고등학교

이 문단을 서술하실 때에는, 충청남도 서산시는 고교 비평준화제를 채택하고 있기 떄문에 고등학교 간에 실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하고, 서로의 차이, 특히 공부나 실력의 차이최대한 줄여 서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령고등학교(서산시 동문동) : 서산시에 존재하는 유일한 남고이자 과학중점계열 고등학교이다. 이과 경쟁률이 매우 뛰어나며 서산시 출신 남중생들의 입학목표 1순위(간혹 당진시태안군 등 주변지역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2004년 3월 17일에 도전 골든벨에서 38대 골든벨이 탄생했다. 사립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산에서 대입 수준이 가장 높은 학교이다.

서산여자고등학교(서산시 석림동) : 서령고가 남고라면 여고 포지션에 있는 고등학교. 마찬가지로 웬만한 여중생들의 1지망. 서산여중에서 서산여고로 진학하는 여중생들의 비율이 많다. 서산에서 여고라고 한다면 100% 서산여고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상업계열 반과 인문계열 반이 나뉘어 있었으나 현재는 상업계열과가 폐지되었다.

서일고등학교(서산시 지곡면) : 자타공인 2지망 고등학교. 서령고, 여고가 안 된다면 일단 찍고 보는 고등학교. 1975년 지곡 고등학교였으나 2001년 서일고등학교로 바뀌었다. 사립 고등학교이다. 하지만 교통편이 아주 개판이다. 입학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하교시간무렵 서일고 앞에 길게 줄선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아날 듯.날만 장날이면 2대 정도 꽉 채워 보내고도 차례가 안오는것도 가능하다.

대산고등학교(서산시 대산읍) : 서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선 2008년 5월 1일 개교로 가장 늦게 개교했다. 초기엔 대산중, 명지중 학생들이 진학했으나 기숙사의 건축과 신축고등학교답게 좋은 시설을 겸비하고, 이에 맞는 학생 지원을 늘렸다. 또 농어촌전형이나 특별반 제도 등을 만들어 서산지역 입학생들을 많이 늘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요즘은 그냥 평타 정도만 한다고 한다. 서산의 고등학교중 가장 해발고도가 높다;;

서산중앙고등학교(서산시 동문동) : 본디 서산농공업고등학교였으며, 농공고, 농고라고 불렸었다.[43] 레저원예조경과, 바이오식품가공과, 생물산업기계과, 일반계열(인문계)[44]로 구성되어있다. 서산시내 최고 크기의 교지를 가졌으며, 일단 무지막지하게 넓다.

부석고등학교(서산시 부석면) : 인지중학교/부석중학교 출신들이 재학생의 80%를 차지하는 학교. 초성이 ㅂㅅ이라 학생들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 입학수준은 중학교 땡처리한 학생들도 원서만 내면 들어가는 수준이었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꽤 나아진 수준. 학교의 모든 예산이 윈드오케스트라로 집중된다. 밴드부와는 간단히 몇백배 차이가 날 정도.

서산고등학교(서산시 해미면) : 이름만 봐서는 서산시내에 가깝게 존재할 것 같지만 겁나게 멀리 떨어져있다. 사실 원래 교명은 해미고등학교인데 1999년에 서산고등학교로 개명을 하였다. 학교의 대부분이 IT쪽으로 편향교육되어 있으며 그에 맞게 졸업생들이 자격증 한두개는 우습게 들고다닌다.

운산공업고등학교(서산시 운산면) : 인근에 있는 만리포고등학교의 소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화장실에 두명이 들어가서 세명이 나온다는 풍문이 들리는 고등학교 중 하나(?). 물론 운산공고가 정말 그런 고등학교인 것은 아니다. 운산이 서산 시내와 당진 시내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기 때문에 당진에서 지역 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운산공고를 다니기도 한다. 때문에 당진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내 버스 중에 운산공고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그리고 운동장에 패튼이 있다.

6.4 대학교

한서대학교 : 4년제 일반대학교


7 스포츠

서산테크노벨리 내에 한화 이글스 2군 구장인 서산 야구장이 지어져서 서산 시민들도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대전에서 서산까지 거리가 1시간 30분이라 좀 그렇지만 그래도 2군 구장 없이 훈련하던 2군 선수들에겐 환영할 만한 일이다.


8 특산물

주 특산물은 육쪽마늘, 논마늘, 밤마늘과 생강, 어리굴젓 등이 있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서산 팔봉산 감자가 등록되어 있다.[45]


9 상권

상권으로는 크게 터미널(중앙통 포함), 먹자골, 호수공원으로 나눌 수 있다. 서산의 경우 터미널 바로 근처에 전통시장(서산동부시장)이 있다. 전통적인 서산 중심 상권지역이라서 예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최근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이나 터미널 리모델링을 했다고는 하나 낙후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았으나 호수공원이 생긴 현재는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동부시장 옆으로는 중앙통이 위치하는데 1호광장에서 구 한림병원 사거리까지의 구역을 말한다. 큰길을 중심으로 옷가게가 있으며 골목골목에도 옷가게와 각종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 다음은 먹자골로 동문현대아파트와 구주공아파트가 있는지역을 말한다. 먹자골이라는 이름에 맞게 음식점들 위주로 구성되어있으며 이곳에 롯데시네마(구 CNB멀티플렉스)가 있다. 이곳역시 호수공원이 생기기 전만하더라도 차댈 곳이 없을정도로 매우 복잡하던 곳이였으나 지금은 상권이 호수공원쪽으로 이동해서 꽤 한산하다.

호수공원은 서부상가 앞에 과거 똥방죽으로 불리던 저수지를 개발한 곳으로 2000년대 후반 개발이 끝난후 최근 뜨고있는 지역이다. 이쪽에 왠만한 음식점 프랜차이즈나 카페 등이 다 있고 주거지역 역시 옆에있어 유동인구가 장난아니다. 바로옆으로는 서부상가(유흥가)가 존재하고있어 밤에도 삐까뻔쩍하다....


10 산업

대산 쪽은 석유화학산업, 지곡, 성연은 자동차 관련 산업들이 입지해있다. 석유화학, 자동차 등등 굵직한 업체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46]

기아자동차모닝, 레이가 잘 나가면 서산도 잘 나간다는 듯 하다. 이유는 OEM 업체인 동희오토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기업이 주민들한테도 인식이 영 좋지 않다. 이유는 항목 참조.

농업에서 주요 하천에서 먼 관계로 자주 가뭄 피해를 겪고 있다. 그러나 간척을 통해 확보한 담수호의 물의 활용을 넓히는 방안을 고안[#]하고 앞으로 진행되는 사대강 2탄이라는 이유로 취소되었지만, 가뭄이 심각해지자 부랴부랴 시작하는 지류사업으로 인해 앞으로는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2013년은 피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보령댐의 수위가 지속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절수 권고 이후 절수가 지켜지지 않자 제한급수를 실시중이다. 제한급수 항목 참조.


11 군사

제20전투비행단이 위치한터라 해미면의 공군력이 한국 공군력의 30%를 차지한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지만, 전쟁나면 서울특별시창원시급으로 가장 먼저 공격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계룡시는 어쩌고? 또한 공군 기지에서 매일 나서는 탐색 및 국가위기상황 시의 출동시에는 상당히 시끄럽다. 공부가 안된다. 야! 신난다! 정작 주민들은 아무렇지도 않아한다. 선생님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 계속 하신다. 밀덕들에게는 좋은 곳인데, 따로 에어쇼 등을 가지 않아도 전투기가 편대 비행을 하면서 날아가는게 심심치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창밖을 보면 비행기 서너대씩 날아다닌다.[47]

20전비 별도로 공군 레이더 기지와 32사단 예하 대대도 존재한다. 이것들은 서산시내 산이나 외곽 섬들에 있다. 특히 산 위에 통신용 안테나가 있으면 약 2~30% 확률로 민간...읍읍. 국방과학연구소 무기시험장, 공군비행장(한국공군력의 30%를 차지한다), 대산 석유화학단지 등이 위치한 군사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또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밀입국 또는 간첩 사건이 심심치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외부와 단절된 곳이란 인식이 있었으며 수많은 해안으로 인해 밀입국 루트로는 최적이다.(...)[48] 그로 인하여 해안가를 중심으로 해안경계부대가 매우 많았었다. 특히 대산읍 지역의 경우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레이더기지와 함께 경계부대가 밀집해 있었다. 지금은 공단개발로 인하여 경계부대가 사라지거나 규모가 축소되었으나,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지역이 워낙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에, 어딘지는...


12 이야깃거리

태안군과 생활권을 공유하다보니 대형마트도 2개이고 주요 공공기관도 몰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신 문물(?)에 대한 구매력 또한 엄청난데 그 예가 맥도날드 입점이다. 2015년 11월경에 예천사거리에 맥도날드 서산점(구 전자랜드 21자리)에 생겼는데 오픈 후 이틀 매출이 5천만원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게 전국 1위 오픈 매출이다. 2012년에 이마트가 처음 생겼을때도 오픈매출 전국 1위를 찍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구매력이 엄청나게 막강한 도시이다. 산업단지가 있어 근로자 소득도 높은데다가 지방 중소도시로 인한 각종 문화, 기반시설 부족으로 인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다만 물가가 지방 중소도시치고 매우 비싼 편에 속한다. 집값도 지방 중소도시치곤 비싼 편이며(32평형 신축아파트가 2억 후반) 전체적인 생활물가가 비싼 편이다. 시내버스 요금도 비싼 편으로 천안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꽤 비싼 편이다. 원주민들은 잘 못 느끼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한소리한다. 특히 대산지역은 물가가 거의 뭐... 헬게이트 수준이다. 전체적인 체감물가가 서산 시내보다 더 비싸다.[49]


13 사건사고


14 하위행정구역

서산시/행정 항목 참조.


15 관련항목


16 출신인물

  1. 해당 사진은 현재 서산시에선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2. 서산 발음 그대로 표기하였다. 표기대로라면 "어유 이 시절아, 이런것도 못하냐."
  3. 정확히 하면 내포 사투리라고 해도 되겠지만, 대부분이 서산과 관계가 있던 지역 사람들만 쓰기에 서산 사투리로 기재한다.
  4. 여기까지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많다. 즉, 발굴에 의한 추측, 후대(신라~고려 시대) 기록, 혹은 구전에 의한 것이므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5. 현재 서산 시내를 포함한 서북부 지역 및 태안군 지역
  6. 양력은 1895년 말부터 썼으나 굳이 양력으로 표기함.
  7. 그런데 이는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게리맨더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대호지면과 정미면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서산 시내(구 서산읍)보다는 당진 시내(구 당진읍)와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당진군으로 넘어가는 게 낫다고 볼 수도 있다.
  8. 14.6.26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
  9. 보물 1591호
  10. [이곳]에서 그 해제를 볼 수 있다.
  11. 지워진 곳은 현재 간척으로 인해 없어졌다.
  12. 왜 이면이냐면 서쪽 면은 현재 태안군이 갖고 있다. 현재로서는 태안군이 3면이 바다인 셈.
  13. 현 석림천. 1980년대 후반 복개되어 현재 양유정1로, 읍내3로 밑을 따라 흐르고 있다. 실제로 호수공원 개발 전까지는 중앙저수지로 직결해 들어갔다. 양유정(量柳亭)은 이 개울가에 있던 정자이다. 1927년 당시 명림표향, 양유소연이라는 서산8경의 주요 요소 중 하나였다.
  14. 현 호수공원
  15. 태안군 항목에도 있지만 이 때문에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16. [39페이지 참조].
  17. 그 후손들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
  18. 실제 서산시청의 경우 기존 관아가 있던 곳에 그대로 지었고, 舊 서산성내(현재 읍내동, 부춘동 지역)의 경우 무려 고목들이 남아있을 정도로 해미보다는 온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의 경우 아예 정전 이후 재축성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정도. 하지만 그럼 왜 서산읍성은 안남고 해미읍성은 남았냐고 따질 수 있는 겨를이 남아 있다. 도시 확장하면서 걸리적거리니까 헐어버렸겠지
  19. 직선거리상 가장 가까운 인터체인지이다. 두번째는 홍성IC.
  20. 79년도로 추정된다
  21. 조선시대 이곳은 괜히 유배지가 아니었다. 1970년대 기준 서울행 버스가 5시간 반정도 걸렸다고.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전까지 쭈욱 유지되었다. 특히 추석, 설날같은 대이동때에는 답이 없었다. 지금은 빠르면 1시간에 끊을 때도 있으니 정말 격세지감.
  22. 서령고등학교 앞을 지나 부석으로 가는 도로
  23. 현 부춘중학교 뒤로 난 대산방향 길, 안견로
  24. 현 예천현대방향 대산방향 길, 충의로
  25. 구 마그넷, 현 롯데마트. 구 8, 10번 노선
  26. 읍내현대아파트. 구 9번 노선
  27. 물론 그린필백화점은 개망...
  28. 그 예 중 하나가 [이 건물]인데, 문제는 아직도 폐건물 상태다. 이것이 개장 못하는 이유도 시장 상인들의 농간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29. 정확히 하면 읍내동 현대아파트의 건설(2001)부터
  30. 사실 아직도 서령고등학교 일대는 개발이 지체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31. 물론 성장의 척도가 집값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32. 한국의 항공사진 특성상 [이렇게] 구매를 해 사용해야 한다. 구매해 추가할 능력자가 추가바람.
  33. 위의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이게 과연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도록 하자.
  34.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1945년 가을에 착공 예정이었다고 한다.
  35. 이 때문에 일본이 핵맞고 지들 말하듯이 옥쇄해서 버텼어야 한다고 하는 어르신들도 계신다. 그럼 뭐해 몰락 작전
  36. 홍성에서 A.B지구 방조제를 통하여 가는 방법도 있지만, 거기도 원래 서산A.B지구 방조제.. 하지만 안면도보령 대천을 잇는 연륙교가 완공된다면 더 이상 서산을 거쳐서 태안을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울, 경기에서 쏟아지잖아? 안 뚫릴거야 아마
  37. 그 전에도, 노선 번호란 개념은 존재했다. 대표적인 노선이 10번, 인지면으로 해서 청구아파트로 돌아 나오는 노선이 있고, 9번 노선이 있었다.
  38. 국도 우선일수 밖에 없었던것이 당시에는 근처에 고속도로가 전혀 없었다. 당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경부고속도로 천안 IC까지만 해도 서산-천안IC거리가 천안IC - 남서울 터미널 보다 멀다.
  39. 소요시간이 2시간을 넘는 관계로 아산만 방조제 근처의 국도 휴게소에 정차하였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며 고속도로 경유 노선은 소요시간이 2시간 안쪽으로 들어오며 휴게소에는 정차하지 않는다.
  40. 충남도청에서 서산비행장까지는 길이 안 좋은 지금도 자가용으로 40분 정도면 가능하다. 청주공항까지는 무려 2시간. 인천공항 가는 고속버스가 뜰 정도니 말 다했다.
  41. 애매하게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군 기밀사항이기 때문이다. 비교하고 싶다면 공항 크기가 공개되어 있을 도구를 이용해 비교해볼 수는 있을 것이지만... 알려서는 안될 것이다.
  42. 조그만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과외가 판친다... 요즘이야 많이 약해졌지만 2000년대 중반 사원아파트에 사람이 많이 살던 시절에는 자녀를 주말마다 서울로 과외보내고 그랬었다. 아니면 아버지만 회사에 남고 남은가족은 서울,대전, 일산 등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도 간혹가다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학생의 대부분이 사원아파트 자녀들로 이루어진 서산명지중학교의 경우 2005년경 충남 도내 학업성취도평가에서 1위를 먹은적도 있었다.그러나 최근 들어 뭔가 시들하다... 후배들아..... ㅠㅠ
  43. 사실 이 시기 농고 보다는 농공고로 더 자주 불렸다. 실제 재학생 조차도 농공고로 부르고 다니고 있으니까.
  44. 물론 시내에 있는 인문계 중 2위이다, 시 내에 있는....
  45. 서산 육쪽마늘도 4호로 등록되어 있었으나 취소되었다.
  46. 웬만한 대기업 계열사들은 다 있다.
  47. 실제로 서산 주민의 입장에서는 심각할 정돈 아니지만 전투기나 수송기 등이 자주 지나다녀서 시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 곳에 사는 학생들이라면 해미 공군 스페이스 챌린지 인원수의 약 40%(...)을 차지하며 나갈 수 있기에 거의 입상권이라고 봐도 무방. 뭐 실제로 인원 수도 거의 없다.
  48. 1970년대 말~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공 분야에서 관리하던 탈북자와 밀입국 시도가 많았다.(어선을 이용하여 북한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밀입국시도), 또한 197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군용선으로 보이는 배가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다고 한다. 당시에는 돛을 단 배가 절대다수였는데, 규모가 큰 배가 자주 보였다는 주민의 증언으로 보아 훈련을 위한 배였거나 위에 서술했던 것처럼 밀입국선이나 간첩선이였을 것이다.(...)
  49. 짜장면 한그릇에 기본 5천원한다. 에? 6000원 아니었어??
  50. 정식 명칭은 Seosan Airbas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