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위(삼국지)

1 劉偉

(? ~ 219)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유이의 동생.

219년에 관우가 이끄는 촉군이 번성을 포위하고 이를 구원하려는 7군을 전멸시키면서 번성이 더욱 위급해지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이 때 유위는 송충의 두 아들, 왕찬의 두 아들, 장천 등을 포함한 다수의 인물들과 함께 위풍과 친분이 있었는데, 위풍이 위나라 전복을 목표로 업성을 기습하는 쿠데타를 꾸민 것이 발각되면서 그 사건에 연루되어 조비에게 처형되었고 이로 인해 유이도 연좌되어 처형되어야 했지만 춘추시대양설힐양설호의 죄에 연루되지 않았던 것을 들면서 유이를 사면해 책임을 묻지 않았다.

위풍의 모반에 대해 상세한 것이 알려진 바가 없어 실제로 모반에 가담했는지, 억울하게 참살된 것인지, 의도적으로 엮어서 참살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1 창작물에서

창천항로에서 위풍의 반란에 가담해 위풍을 포함한 다른 이들과 함께 허도의 궁전으로 진격했지만 사전에 조비가 반란을 알아내면서 오히려 포위당했으며, 위풍이 조비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왕이 사망한 뒤에 그 가혹했던 국정에 불만을 가진 인사들이 일거에 분출이라고 말할 때 모습이 나오고 위풍을 제외한 다른 이들과 함께 화살을 맞고 죽는다.

2 劉衛

(? ~ 184)

광양태수로 광양군의 황건적에게 공격받아 사망했다.

2.1 창작물에서

삼국지 천도의 주인에서는 한나라의 황족으로 한명제 슬하인 진경왕의 현손이며, 마흔 쯤 되는 나이로 후덕하고 인자한 외모를 하면서 예의 바른 태도를 갖추고 있다.

유비가 계현을 공격하려는 황건적을 격파하자 연회를 베풀어 환영하고 황족이라는 사실을 알자 자신을 형이라 부르게 했으며, 유비에게 곽훈이 의용병에게 못마땅해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백성들에게 구휼하려고 했지만 곽훈의 눈치로 관가의 창고는 열지 못하고 녹봉을 털어 호족들에게 도움을 받아 약간만 구휼했으며, 곽훈이 죽고 도겸이 유주자사로 부임하면서 유주를 수습하던 도중에 탁군, 광양에서 급히 조달한 병력을 이끌고 왔다.

흑산적의 난 이후에 유성이 순욱을 기주자사로 천거하면서 유성이 유위는 대세를 따르지만 비루하지는 않고 황친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고 민초들을 아낄 줄도 안다면서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실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록태수로 천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