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희

陸喜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문중(文仲).

육모의 차남이자 육엽[1], 육완[2]의 아버지이며, 육손의 조카.

경전을 섬렵하면서 인륜에 대한 토의를 좋아했으며, 육모와 함께 군에서 벼슬해 명망이 있었다. 손호가 즉위하자 선조상서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280년에 두예가 이끄는 진나라 군의 공격으로 오나라가 멸망하자 서진에서 산기상시가 되었다.

고사전의 육완별전에는 육영(陸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육희가 차남이기 때문에 위에는 형이 있지만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설영이 오의 인사 가운데에서 제일이라 마땅하냐고 하자 설영은 4 ~ 5위 정도라면서 첫째는 그 몸을 침묵하는데 두고 숨어서 쓰이지 않은 사람이 첫째, 높은 자리를 피하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녹방을 받는 대신 밭을 가는 사람이 둘째, 강직하게 나라 사정을 몸으로 느끼면서 올바른 일을 잡고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셋째, 이러한 시절에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짐작해 조그만 이익이라고 내려고 공헌한 사람이 넷째, 온화하고 공손하면서 자기 몸을 닦고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아첨하며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사람이 다섯째로 이를 넘어서는 다시 세어볼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저 윗길에 드는 인사들은 대부분 몰락해 후회하고 인색한 일을 당해 멀리 가버려 중간 정도의 인사들도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가 화와 재앙을 입었으며, 설영이 처신한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어째서 제일이냐고 했다. 이 얘기는 인사다운 인사는 다 없어져 설영은 결국 살아남았으므로 인사다운 인사 축에 들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홍대용의 담헌서의 사론 부분에서는 육희가 손호에 대해 말한 것이 나온다.

손호는 무도한 사람인지라 이럴 때는 침묵을 지키고 세상에 나서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높은 지위는 피하고 낮은 지위에 처하면서 녹봉으로 농사를 대신해 의식이나 해결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성의를 다해 나라를 바로잡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며, 시세를 참작해 수시로 조그마한 이익을 나라에 이바지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온순하고 공손하며 조심하고 삼가서 아첨을 부리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인 것이며, 이외의 일은 족히 말할 것이 없다라고 했다.

라고 했으니 이 말은 출처에 대한 의의를 깊이 깨달은 것으로 어지러운 나라에 살거나 혼란한 세상에 처하는 자로서는 이런 의의를 몰라서는 안될 것이라고 기록했다.

  1. 자는 사광(士光). 서진을 섬겨 차기장군, 의동삼사를 지냈다.
  2. 자는 사요(士瑤). 서진을 섬겨 시중, 상서좌복야, 상서령, 사공 등을 역임했으며, 죽은 후에는 태위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