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오의 역대 황제 | |||||
3대 경황제 손휴 | ← | 4대 말제 귀명후 손호 | → | 서진 무제 사마염 |
시호 | 말황제(末皇帝) |
연호 | 원흥(元興, 264년 ~ 265년) 감로(甘露, 265년 ~ 266년) 보정(寶鼎, 266년 ~ 269년) 건형(建衡, 269년 ~ 271년) 봉황(鳳凰, 272년 ~ 274년) 천책(天冊, 275년 ~ 276년) 천새(天璽, 276년) 천기(天紀, 277년 ~ 280년) |
성 | 손(孫) |
휘 | 호(皓) |
자 | 원종(元宗) |
생몰기간 | 242년 ~ 284년 |
재위기간 | 264년 ~ 280년 5월 1일 |
1 개요
자는 원종(元宗), 호종(皓宗). 별명은 팽조(彭祖). 삼국시대 오의 마지막 황제. 말제 손호라고 불린다.
아버지는 손권의 셋째 아들이며 황태자였던 손화[1], 어머니는 하희, 아내는 등방란.
2 생애
2.1 즉위 이전
손화가 승상 손준의 명령으로 자결한 후, 적모 장씨도 손화를 따라 죽었으므로, 생모인 하희에게 양육받았다.
경제 손휴 시대에 오정후(烏程侯)에 봉해졌다. 서호의 백성 경양이 손호의 관상을 보고는, 매우 고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손호는 속으로는 기뻐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수신기에 따르면 오나라 손량 오봉 2년 5월에 양선현의 이리산에서 큰 돌이 저절로 섰다. 이는 손호가 허물어졌던 선조의 가문을 계승하여, 다시 그 지위를 복위할 때임을 알려준 것이다. 오나라 손휴의 영안 4년 안오현의 평민 진초가 죽은 지 이레 만에 다시 살아나 무덤을 뚫고 나왔다. 오정후 손호가 망하였던 자신의 가문을 이어 받아, 왕위에 오를 징조였다.
손휴가 죽을 때, 촉나라는 멸망 직전에 교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 국가가 혼란스러웠기에 사람들은 훌륭한 군주를 얻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만욱은 손호의 옛 친구였는데 만욱은 손호가 총명하다며 복양흥, 장포 등과 협의하여 손호를 제위에 올리길 희망했다.
복양흥과 장포는 손휴의 아내, 주부인에게 손호를 후사로 삼도록 하라고 권유하였다. 주부인은 "나는 지아비를 잃은 과부인데, 어찌 사직의 걱정을 알겠습니까? 단지 오나라가 멸망하지 않고 종묘가 의지할 곳이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호를 제위에 올린다. 황제가 될 당시 손호는 23세였다.
2.2 폭군이 되다
손호는 즉위 초에는 선정을 베풀어서 현명한 임금으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이게 3개월도 못갔다.
손호는 폭군이 되어 보천의 건의로 건업에서 무창(우한)[2]으로 천도하고 토목공사를 자주 일으키며 주색잡기에 빠졌다.
그가 죽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복양흥, 장포 : 손호를 제위에 올린 것을 후회했다가 손호에게 주살당하고 삼족이 멸해진다.
- 서소 : 항목 참조.
- 주부인, 손만, 손공 : 265년 7월, 손호는 손휴의 아내였던 주부인을 핍박하여 죽였다. 주부인의 시신을 정전에서 장사지내지 못하게 하고는 병들어 죽은 것처럼 꾸몄다. 또한 손휴의 네 아들을 오의 작은 성에 몰아넣고, 나이가 많은 순으로 둘을 죽였다.
- 이욱, 서존 : 270년에 이욱과 서존이 교지를 정벌하러 가는 길에 건안 길이 불편하다고 풍비를 죽이고 돌아오자 하정은 이 일을 손호에게 알려 이욱과 서존의 가족들까지 모두 사형시키게 한다.
- 장준, 손분, 손봉 : 270년에 손호의 좌부인 왕씨가 죽자 손호가 너무 슬픈 나머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손호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손분(손권의 오남)과 손봉(손소의 아들) 둘 중 하나가 뒤를 이어야 한다는 풍문까지 돌았다. 장준은 이 말을 믿고 손분에게 미리 잘 보이기 위해 손분의 어머니의 묘를 청소했는데, 이 일이 손호한테 알려지면서 장준의 삼족이 멸족되었다. 또한 손분, 손분의 다섯 아들, 손봉도 주살되었다.
- 만욱[3], 유평, 정온 : 271년에 만욱, 유평, 정봉이 손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들끼리 정무를 보기로 약조했는데 이 발언이 손호의 귀에 들어가서 272년 연회에서 만욱과 유평에게 독주를 보내는 등 죽게 만들었다. 이 시점에서 정봉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 아들 정온이 대신 처형당했다.
- 왕번 : 항목 참조.
- 하소 : 항목 참조.
- 위소 : 항목 참조.
- 장상[4] : 항목 참조.
- 누현, 누거 : 항목 참조.
- 차준, 장영 : 항목 참조.
- 웅목 : 항목 참조.
그가 총애했던 간신들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손호에게 죽었다.
- 잠혼 : 연의에선 환관이지만 정사에서는 아니다.
- 장숙 : 손호에게 죽었다.
- 하정 : 손호에게 죽었다.
- 진성 : 손호에게 죽었다.
- 조보 : 육개의 상소에서만 언급되는 간신.
- 하희 : 손호의 모친. 등부인전에 따르면 모친 하씨(하희)가 손호를 항상 좌우했다.
- 하식, 하홍, 하장 : 손호의 외가족으로 권세를 믿고 교만하고 방자하게 굴어 백성들이 근심했다.
화핵과 육개같은 자들이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 상소문 수백장을 올렸지만 모두 무시했으며, 육개는 육항이 외지에서 많은 병사를 이끌고 있어 어찌하지 못했지만 육개와 육항이 연달아 죽자 그의 가족을 모두 귀양보내고 화핵 또한 얼마 못가 면직시킨다.
후궁은 수천 명이나 되었는데 궁안으로 물살이 센 물을 끌어들여 궁녀들 가운데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모두 죽여 그 물로 흘러가도록 했다. 또한 사람의 가죽을 벗기거나 사람의 눈을 뽑는 형벌을 내렸다.
이 시기가 얼마나 막장이었으면 설영 같은 경우는 손호 정권에서 높은 직위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진수에게 의심스럽다는 평을 받았을 정도.
2.3 오나라 멸망 후
결국 280년에 사마염의 진(晉)에게 대공격을 받아 오나라는 멸망한다. 낙양으로 잡혀간 손호는 귀명후(歸命侯)의 작위를 받았다.
그래도 진에 끌려가서도 바보짓만 한 유선과는 다르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예를 들면 낙양에 끌려가 사마염 앞에 무릎을 꿇은 손호에게 사마염이 '짐이 이런 자리를 만들어놓고 그대가 오기를 기다린 지 오래다'고 하자 손호는 '신도 남쪽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놓고 폐하를 기다렸었습니다'고 받아넘겼다. 오오 패기 오오!
또 가충에게 왜 사람 얼굴을 벗겼냐는 조롱을 받자 "남의 신하가 되어 그 임금을 해치려드는 무리는 그같이 벌해야 마땅하다"고 쏘아줬다고 한다. 이는 위나라 황제 조모가 사마소를 토벌하기 위해 궐기했을 때 가충이 이끄는 병사에게 조모가 살해당했던 사건을 은근히 암시하는 것으로 우회적으로 가충을 공격한 것이다.
일설에는 이것을 질문한 자가 가충이 아니고 왕제라고 하며 사마염과 왕제가 바둑을 둘 때 질문한 것이라고 하는데 왕제가 손호에게 "듣기로 당신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사람의 발꿈치를 자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왜 그런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손호가 대답하길 "신하가 군왕에게 무례하면 그것은 낯짝이 없는 짓이다. 그래서 그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것이 가장 적합한 벌이다." 그리고 당시 왕제의 두 발이 곧게 펴져서 사마염에게 닿을락말락 하니 그것도 추가로 조롱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또 한번은, 사마염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연회를 베푸는데, 가무로 흥을 돋구고 있었다. 이때 손호에게 "듣기로 너희 오나라의 음악이 괜찮고, '이여가(爾汝歌)'[5]를 즐겨 부른다는데, 귀명후(손호), 그대가 한 수 불러주면 어떤가?" 그때의 가치관으로 보자면 손호는 항복했음에도 일국의 군주였으니 배우처럼 노래하게 시키는 것은 모욕적인 일. 하지만 손호는 정말로 노래를 부른다.
옛날에는 너와 이웃이었는데, 지금은 너의 신하다. 너에게 술 한잔을 올리니, 너는 만수무강하라.(昔與汝爲隣, 今與汝爲臣, 上汝一杯酒, 令汝壽萬春)
사마염이 원래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으나 너무나도 무례한 내용이다. 하지만 손호의 이 대응을 좀 더 해석하자면 너 사마염은 스스로 짐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너를 너(汝)라고 부르겠다. 이건 네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니[6], 너의 잘못이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면서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 수 있는 뛰어난 대응으로,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모로 대비되는 촉과 오의 최후 군주스러운 일화들이다. 유비의 겸손함과 손견의 깡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말을 잘하는데 정치는 왜 그따구니
그렇지만 낙양으로 간지 4년만인 284년에 죽었고 북망산에 묻혔다. 그리고 그의 무덤 바로 옆에는 훗날 백제의 의자왕이 묻히게 된다. 공교롭게도 이 묘역은 멸망한 나라의 왕들만 모아서 묻어놓은 곳이다. 중국 역사도 아닌 한국 역사의 왕이 중국에 묻힌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한 부분 중 하나다.
3 평가
오의 멸망에 있어서 손호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으로 평가받으며, 배송지는 손권 최악의 뻘짓인 이궁의 변에 대해서도 어차피 태자인 손화가 제위를 물려받으면 그 다음은 손호니까 오의 멸망은 정해져 있었음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다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시각일 뿐이고 진나라 사관인 진수가 정당성을 위해 폭군으로 날조했을 가능성도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7] 그러나 손호 시기에 수많은 신하들이 어처구니 없이 죽임을 당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날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진수가 기록하지 않은 조모의 살해 과정의 경우 배송지가 다른 사서를 인용해가면서 내용을 추가하여 비판했지만 손호에 있어선 그런 것도 없었다. 즉위 석달만에 복양흥과 장포 같은 공신들을 죽이고 삼족을 멸하는 스케일의 사건을 날조할 수 있을리는 만무하고, 나라 꼴이 개판인데 5천명의 궁녀를 두는 등의 막장 행각도 검증이 된다는 사실[8] 또한 감안해야 한다.
다만 위 항목에서 보이듯 손호의 성격의 형성에 부모의 억울한 죽음이 어느정도는 작용했음을 감안하면[9] 애초에 손권이 이궁의 변이라는 병크를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정상적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연산군??? 결국 손제리가 만악의 근원인 거다.
은근히 동정론이 있는 유선과는 달리 손호는 평범한 폭군으로 취급된다. 유선은 비록 무능할지언정 유선 자신이 직접 나라를 말아먹진 않았다는 점에서[10] 둘은 암군과 폭군의 차이를 설명하기 좋은 예시 중 하나다. 폭군보단 차라리 암군이 낫다는 예시이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코에이 삼국지에선 유선보다 손호가 더 좋다.
나름대로 나라를 중흥시키려고 노력했다는 평도 있지만,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이 때 오나라는 그냥 헬게이트였다. 이 시기 일어난 반란이 적지 않았으며, 특히 교주같은 경우는 아예 진나라 쪽으로 넘어갔었던 적도 있었다.[11] 잦은 토목공사, 자주 바꾼 연호, 여러 번 이루어진 천도, 많은 숙청 등으로 보았을 때, 황제로서의 중앙 집권이나 권위에 다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중신 육개나 정봉 등이 손호를 폐출하려는 시도나 손호를 빼고 정무를 보자고 담합을 했다는 것[12]은 이 인물이 황제로서 멀쩡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9,10,11 |
삼국지 12,13 |
6탄까지는 능력치가 조금 구린 정도였지만 7부터 능력치는 백하팔인 중 하나에 낄 정도로 안습이 되었다. 그런데 12탄부터는 다시 쓸 만하다(!)
촉한이 멸망한 이후인 264년에 즉위하기 때문에 시리즈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최대 263년까지의 시나리오만을 다루는 삼국지 시리즈의 특성 상 손호가 초기부터 군주로 등장하는 시나리오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단 9탄은 제외.
삼국지 3에서는 다른 능력들이 다 허접이지만 무력이 70대. 기본적으로 장군이 될 수가 없지만 수상전에서 좀 굴려주면 장군이 될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만은 반장과 비슷한 능력치이다. 그러나 후반부 인물에게 박한 코에이답게 작은 할아버지인 손익보다 모든 능력에서 밀린다. 육69/수23/무70/지62/정51/매46로 요구 육전지휘 및 수전지휘는 56. 빡세다.
삼국지 6에서 그나마 무력과 매력이 70대 후반으로 무기 좋은거 하나 껴주면 거의 90 가까이는 상승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0/31/40/10. 혼란과 매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당해줄까. 몽충이 있으니 후반기 시나리오, 영웅집결에서 배셔틀이나 시키자.
삼국지 9의 if 시나리오 중 하나인 264년 서촉동란 시나리오에서 손호가 군주로 등장한다. 진나라와의 규모, 인재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무엇보다 이 때가 되면 S급 장수들은 육항빼고 모두 사망한 상황에다 새로 등장하는 장수들은 B급인 모경, 육경, 양직 3명 뿐이고, 발탁 무장마저 군주의 의리과 야망를 그대로 이어받는지라 오 입장에서는 망했어요.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3/28/30/5/4로 백하팔인의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총합 80은 유선보다도 낮을 정도.(물론 유선은 총합 85 중 매력이 64로 매력빨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특기는 2개 있지만 일제 특기는 통솔이 13인 손호에겐 진주목걸이일 뿐이고 나머지 하나는 폭군답게 주호
삼국지 11에서도 백하팔인의 자리를 지켰으며, 능력치 중 정치와 매력이 각각 6, 3이다. 당연히 특기도 없다.
삼국지 12에선 짤린 줄 알았으나 PK에서 등장. 그런데 능력치가 엄청나게 버프되어 나왔다. 전작에서 28, 31이던 무력과 지력이 70대로 올라갔을 뿐더러 정치 또한 23으로 올라갔다. 능력치 평균이 전작보다 무려 3배 가까이 올라갔다. 특기도 많은 편이라 그런대로 쓸만하다. 전법은 공성강화로 백도어용으로 쓸만하다.대단한 출세다! 일러스트도 평범한 살찐 폭군이던 전작들에 비하면 묘하게 멋있어졌다(...). 무력은 조금 오버하게 버프한 것으로 보여도 지력은 위에 일화들과 같이 군주로서의 자질은 마이너스지만 개인은 상당히 똑똑한 면모를 보여준 것을 볼때 적절한 고증에 가깝다. 사실 무력과 정치 또한 권신에 휘둘려 막장테크를 타던 오나라에서 토목공사 등 정책을 실천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으며, 호족세력 등이 어마어마한 집권구조에서 암살당하지 않고 통치했다는 걸 보면 이해할만한 수치다. 그럼 폭군보단 차라리 암군이 낫다는 예시를 보여준 유선은? 촉의 정부 실세는 황호가 뒤에서 다 장악했고 그 황호가 유선 후빨 쩔어주니 별일 없이 걍 넘어간 듯
4.2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공명전에서 오나라의 뒤치기로 공명이 북벌중단 후 복귀하고서 강릉으로 공격해 들어갈 때 원군으로 등장한다. 강유와 일기토가 있고 일기토를 볼 경우 사로잡힌 뒤 촉한과 오가 화친하면서 석방된다.잠깐 그 쯤되면 몇 살이야?[13] 삼국지 공명전 GBA판에서는 손호가 손등으로 교체됐다.
4.3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손화의 시첩 하희에게 안겨있는 모습으로 첫 등장. 개 같은 성격 때문에 개로 패러디되었고, 작가 공인으로 개놈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눈가의 점 등으로 보아 바우와우의 바우로 추정되었고, 영안 전투(3)에서 성장한 모습이 나오며 확정되었다.[14] 해당 편의 마지막 컷에서 아니면... 어쩌면... 흠... 에이 설마 아니겠지.하고 떡밥을 던지기도.[15]
황제 노릇을 16년동안 한 이유가 백성과 소호족에게 강했으나 대호족과 서진에게 눈치를 보고있었다고[16], 최훈은 아예 원래는 손오가 270년에 사마준, 양호 등이 대오전선으로 전진 배치되어 서진한테 망할거였는데 독발수기능의 난으로 인해 10여년 더 숨이 붙었다고 기술한다. 작중에선 내추럴 본 폭군으로만 묘사되며[17] 아예 멍군으로 불린다. 폭군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인지 상어이빨이 특징이다.- ↑ 손화는 손권의 노망 탓에(…) 황태자 자리에서 쫓겨나 장사왕으로 봉해져 유배를 갔으며, 나중에 제갈각이 주살당할 때 제갈각의 조카가 손화의 아내라는 점 때문에 손준에게 살해당했다.
- ↑ 삼국시대의 형주 강하에 속했다.
- ↑ 손호의 옛 친구였음에도 죽였다.
뭘 황제 만들어준 둘도 죽였는데. - ↑ 장굉의 손자다.
- ↑ 汝자를 넣어서 부르는 노래.
-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여가가 너를 넣어서 부르는 노래다.
- ↑ 한가지 예로 그가 기록한 고귀향공기에 조모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리 꼭두각시 황제였어도 어떻게 죽었는지 사인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 ↑ 오 멸망 후 거둔 전리품에 실제로 5천명의 궁녀가 있었으며, 이들은 고스란히 사마염이 흡수해 거대 하렘을 건설했다고 분명히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 ↑ 손화가 죽었을 때 손호 나이 만 11세.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는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나이니 이로 인해 성격이 삐뚤어졌을 가능성이 없진 않다.
- ↑ 유선은 환관이자 간신인 황호와 친해지게 되면서 말년에 그에게 정치적인 권한을 주어 정치적으로 막장이 되며 암군이 됐지 그 이전까지 무능함과 별개로 어느정도 자신의 일을 하였고 암군이 됐을 시에도 손호처럼 신하들을 죽이지도 않았다.
- ↑ 손휴 사망 직후, 교주에서의 폭정에 못 견딘 사람들이 봉기하여 진나라로 교주 땅을 넘겼다. 이후 오나라가 다시 어찌어찌 탈환했으나, 279년에 곽마라는 인물이 교주에서 난을 일으킨다. 교주에서의 이러한 정세 변화가 간접적으로 오의 멸망을 앞당기게 하였다.
- ↑ 모두 불발로 끝났다. 역모의 뉘앙스로 보기도 어려운 게, 육개는 죽을 때까지도 나라 걱정이었으며, 정봉은 흉신 손침을 축출한 핵심 인물이었다.
- ↑ 234년 공명의 6차 북벌 직후의 이벤트로 다뤄진다. 즉, 손호는 원래대로라면 이 시기엔 태어나지도 않았어야 한다.
- ↑ 손호의 등장으로 삼국전투기는 오나라가 망할 때까지(280년) 그린다는 게 확실해졌다.
- ↑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인 손화의 복수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오나라에 대한 최고의 복수. 해당 화 베댓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 ↑ 다만 손호의 재위 기간에도 서진에게 시비는 많이 틀었고, 위의 이여가에 대한 일화나 교주를 두고 다툰 점을 미루어 볼 때 서진에 대한 것은 다소 애매하다.
- ↑ 물론 최훈도 미심적은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긴 하지만 작중 묘사는 그냥 폭군의 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