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천하의 개쌍놈.
1888년에 대구에서 출생했고 관립한성보통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 법률과를 졸업했다. 대한제국 학부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간뒤 돌아와서 일제하에서 관료생활을 시작했다.
3.1운동을 본 그의 소감은 한마디로 추악한 뻘짓이라는 것이었고 이런 뻘짓을 막기위해 일생을 일제에 충성하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1917년에 경기도 김포군수에 임명되어 재직하다가 1920년 병에 걸려 군수직을 사임했다.
한동안 요양하다가 1921년 다시 조선총독부로 복귀한뒤 본격적으로 황민화 운동에 앞장섰다. 각종 강연과 칼럼을 통해서 충실한 황민이 되는것만이 조선인이 살길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최고의 친일행각은 1937년 황국신민서사를 만든 일로, 일본인이 만든게 아니라 조선인인 그가 직접 펜을 들고 쓴것이었다. 그가 만든 황국신민서사는 수많은 조선인들을 동남아와 태평양에서 죽게 만든것이나 다름없으니 실로 펜대를 굴려서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학살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각종 직책을 지내면서 황국신민서사를 쓴 사람 답게 각종 강연을 다니며 징용,징병에 나갈것을 독려했다. 아마 그에겐 일본이 패망하거나 조선이 독립한다는건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면서 이각종의 인생도 쫑이 났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황국신민서사의 저자인 그를 기소한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재판 과정에서 일본 패망에 큰 충격을 받아멘붕으로 정신이상이 되었다는 판정을 받아 석방되었다. 물론 오카와 슈메이처럼 정신이상을 연기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1968년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에서 발표한 친일파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고려대학교의 일제잔재청산위원회도 친일파 동문 10인의 행적을 발표한데에도 포함되었다. 장하다 이각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