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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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 서울특별시 출생. 한국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어쩌면 가장 유명한 사람. 프랑스에 사는 한국 출신 중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하나만으로 체류 허가를 받은 것을 언론에 공개한 최초의 난민이다.[1] 이전에도 병역거부를 이유로 망명에 성공한 사례는 있었으나 유독 그가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사회인식에서 동성애 같은 난민으로 납득받을만한 사유가 있는게 것이 아닌[2]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생각인 정치적 망명이라는 선택을 했다는 점. 즉 보편적인 인식으로 군대 아니면 교도소 밖에 없고 교도소에 가서 출소후 범죄자로 낙인찍히며 사느니 차라리 군대간다는 선택권의 병역의무에 대한 상식의 틀을 완전히 부쉈다는 것을 했다는 점과, 군대 그 자체만을 사유로 난민 신청에 성공했다는 점[3]과 의외로 평범하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20대 초반의 민간인이었다는 점[4],언론에 공개된 시기가 탈조선 신드롬과 겹쳤다는 점. 그리고 지상파 언론까지 출연하였으며, 일본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면서까지 언론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선 점[5]이 크게 작용한다.

2 반응과 여파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 민감한 사유로 인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언론에 공개된 2014년 이후 반응이 분노와 인정으로 극단적으로 갈렸었는데 '애국심도 없는 조국의 배신자', '조용히 살 것이지 남의 나라에 관심을 왜 가지며 정치질이냐?', ' 기자회견으로 일을 키우느냐'는 비난 반응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군대 관련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면서 '군대에 관한 사회 인식의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거나 '정부가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압력에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호의적인 반응도 얻긴 했다. 심지어 '예비군은 망명 못가나...' 같은 반응도 있을정도. 물론 아직까진 그와 관련된 게시물과 유튜브 비디오를 보면 여전히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망명 이후 주기적으로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연락이 오고 있으며 2016년 초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약 10명 정도가 난민으로 인정받으려고 실제로 프랑스를 포함한 난민수용국으로 떠났으며 실제로는 그의 연락없이도 떠난 사람을 가정하면 훨씬 더 많은 것이 그 증거이다. 시간이 지나 하나둘씩 인정받는 사례가 나오면서 망명은 더욱 더 가속화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의 신분이 어딜봐도 지극히 평범하고 가진돈 70만원 수준의 무일푼으로 일반인이 도전해서 성공했다는 점 때문에 인식이 "나도 저사람처럼 무일푼의 평범한 일반인도 몸만 가면 사유만 있는 그대로만 적어서 심사받아도 시간이 되서 받아줄것이다"고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Game changer 인 셈.

3 계기

병역을 거부하게 된 계기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에서 생명에 대해 깨닫고 '어째서 내가 타인의 목숨을 죽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였으며, 입대하기 전에 대한민국 국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저서나 국방부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군대는 안간다고 생각한 처음엔 교도소행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갔다가는 그저 수감자의 수 +1만 늘어나고 사회에는 아무런 영향도 달라지는것도 없을 것[6]이라고 판단하여 차라리 나라를 떠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는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후 언론에 보도되면서 헬조선 신드롬까지 겹쳐져 이때까지 종교+정치적 목적의 병역거부자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긍정적,부정적인 반응 전부 포함)을 받게 된것을 보면 그의 정치적 계산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그의 결정에 아이러니하게도 직업군인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계급이 대령(!!)이었던 그의 아버지와 누나는 별 말이 없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가 감옥 가는것도 충격을 먹었는데("어떻게든 군대 가! 그냥 가!" 라고 들었다고 한다.) 망명한다니 더더욱 충격을 받았으며 (감옥을 가면 출소 후 볼 수 있겠지만 난민으로 살면 언제 볼 수 있겠냐며) 극렬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결국 어머니에게 단돈 70만 원만 받아들고 프랑스에 관광 명목으로 들어가서 하루 지난 다음날 난민구호소에 접수하여 11개월(신청절차 4개월, 판정 7개월)의 기다림 끝에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본인의 언급으로는 난민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고 한다. 징병만으로 난민이 된 사례가 없었기에(그리고 추가 사례도 2016년까지 나오지 않았다) 굉장히 불안했다고 한다. 자긴 '동성애자도 아니고 종교적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 전례가 없는 상황인데 과연 받아줄까?'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었다고.

그는 한국 국군의 파병이 권력자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사건이라 보았으며, 병들의 휴대전화 소지 불가(덤으로 육군의 전자기기 소지 불가[7]), 굉장히 제한적인 외박·외출·휴가, 사상이나 정치적인 행보 감시 등의 일과 후 자유 부재를 이야기했다. 이런 그의 인터뷰에 당시 난민 심사를 하던 사람이 이를 듣고 '(내가) South와 North를 잘못 봤나?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했을 정도라고…인권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던 고소득·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적어도 프랑스에선) 죄수보다 더 못한 인권 수준의 사병 생활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징병제가 사라지면 지금처럼 사람을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다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1991년에 태어났습니다. 현재 22세입니다. 2012년 7월, 20살이던 해에 징병에 가고 싶지 않아서 망명을 결심하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중략) 2013년 6월, 프랑스 정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징병 거부로 망명한 한국인은 있었지만, 징병제 자체가 망명의 이유로 인정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소수자나 종교를 이유로 징병을 갈 수 없다고 하여, 망명이 허용되었습니다. (중략)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체복무제도 없습니다.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1년 반 동안 수감됩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취직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징병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략)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에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프랑스에 망명한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8][9]

다른 망명자를 돕기 위해 연락도 받아준다. 망명 25시 그는 프랑스의 난민 관련 NGO인 'France Terre d'Asile'을 통해 난민 신청을 하였으며, 노숙도 해보고 난민기구에서 자원봉사로 나오는 밥도 먹고 살 정도로 힘든 부분을 겪었던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하는 터라 일본으로 가려 했지만 난민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서 접었고, 복지가 잘 되어있는 북유럽 국가로 가자니 추위가 싫어서 프랑스행을 택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하겠다면 난 독일을 추천하고 싶다.[10] 나는 독일이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폐지한 게 (난민 신청을 할 당시를 기준으로) 겨우 1년 전(2011년 7월)이라서 독일을 피했는데, 작년에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과 독일의 활동가·국회의원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의 비슷한 점을 들며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병역거부권에 호의적이었다. 심지어는 나에게 "독일로 난민 신청을 하러 올 생각을 안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가 돕지 못해서 부끄럽다"라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 - 출처
그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있거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것.
  1. 난민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수용국 입장에선 난민이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2. 이예다 이전에도 병역거부(+동성애)로 인한 난민이 있었으나 당시의 반응은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니까 난민으로 인정받을만한 해당사유가 없을거야"였다. 실제로 호주,캐나다 난민 허가 사유에서도 군대 자체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충분하지만 성소수자는 더더욱 위험한 신변의 위협에 처해있다. 고 명시되어 있었다. 사회인식도 군대에서 동성애자는 탄압받는다는 인식도 있어서 충격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3. 즉, 한국의 병역의무가 답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망명을 통해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뜻이다! 면접관이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라고 말했을 했을정도.
  4. 전문대 졸업후 PC방 알바를 하며 생활했을 정도
  5. 이런 식으로 망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변의 위협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그리고 유튜브나 게시글을 포함하여 그에게 비난을 직접적으로 들어먹을것이 뻔하다. 실제로도 그에게 SNS에서 직접적으로 욕설을 퍼부은 사람도 있었다.
  6. 실제로 정치적 목적의 병역거부자가 매년 한 자리 수 이내로 수감되고 있지만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7. 해군과 공군은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제외한 전자기기를 병이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육군의 경우는 육군참모총장 지시로 어떠한 개인 전자기기도 상황을 불문하고 사용하지 못한다.
  8. 현재 그는 10년(마다 갱신할 수 있는) 거주권을 가진 한국 국적 보유자이다. (자국인의 입국을 거절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귀국은 가능하지만 입국 즉시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 크리(…) 확정이니, 제7공화국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귀국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
  9. 유승준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여 지금은 엄연히 외국인이다. 그래서 귀국 한국 입국이 막힌 것이다.
  10. 유럽 연합은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에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 난민 인정률은 프랑스보다 독일이 더 높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