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

사상이 아닌 정치 현상으로서의 무정부에 대해서는 무정부 상태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영어:No gods, no masters[1]
프랑스어:Ni dieu ni maître![2]
신도, 주인도 없다.[3]

아나키스트들을 대표하는 슬로건

아나키즘의 대표적 상징인 Circle-A


1 정의

아나키즘(Anarchism)은 an+arch+ism로 구성된 조어로 αν(없는)와 ἀρχός(지도자)[4]가 합성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ἄναρχος)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정부상태'를 뜻하는 아나키(Anarchy)에서 연상해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나, 어원만 같고 의미는 전혀 다르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아나키는 지배자가 없는 상태, 아나키즘은 지배(권위)가 없는 상태로 탈권위주의반강권주의, 비권력주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아나키즘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권력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정부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지, 정부의 권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이 부정하는 권력은 정부 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자본, 문화단체 등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권력에도 해당될 수 있다.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정부가 필요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 정도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극좌 사상이라고 언급되지만, 후술된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 우파적 아니키즘도 분명히 존재한다. 쉽게 말해 보수 중에서도 독재나 권위주의를 추종하는 극우 계열이 아닌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계열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아나키즘적 성향이 내재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언제 그걸 의식적으로 자각하느냐의 차이일 뿐 즉, 아니키즘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나타날 수 있다. 전체주의가 흔히 극우사상이라고 불리지만 공산국가에서도 나타났듯이 말이다. 다만, 전통적인 관점에선 전체주의를 극우로, 아나키즘을 극좌로 보기도 한다. 민족주의가 좌우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선 우익사상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경우다.

프루동 때는 집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하는 '혼돈+주의자+놈들(아나키스트)'라는 비난에 대한 "그래 우리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러라.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식의 반항과 도발의 의미로 처음 쓰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때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반혁명주의자들'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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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formas cambian, los sometidos somos siempre los mismos
형태만 변할 뿐이지, 우리를 핍박하는 건 변치 않는다


Mismo perro - Distinto collar
변해도 개새끼개새끼

아나키스트들이 가지는 다른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인식과 비판을 한방에 깔끔하게 표현한 짤방. 해당 이미지는 전국 노동 연맹 소속의 한 스페인 네티즌이 편집한 것이다.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적 억압의 문제는 권위주의적 체제 자체의 문제이지, 입으로 우리 당은 민주주의, 저쪽 당은 공산주의 따위 갑론을박은 지배 계급 내의 무의미한 부차적인 차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한자 역어인 '무정부주의'라는 단어가 얼핏 보면 무질서를 숭배하며 정부를 없애 세상이 혼돈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상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완벽한 오해다.

진정한(주류) 아나키즘은 개인이 권력, 권위, 통제기관으로부터 억압되지 않고 상호부조와 상호이해로 무장하게 되면 대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사상이다. 일견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체주의, 자본주의, 권위주의, 공산주의 등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꿈꾸던 인간들을 핍박할 때 그들의 위안이 되고 방패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 아나키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된 다수의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절,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후 공산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와 그로 인한 반공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냉전 시절에도 여러 곳에서 반핵반전 운동을 지원했다. 굳이 무정부주의라고 표현한다면 그들이 말한 무정부는 그들의 정부가 나쁘기에 전체든 일부든 나쁜 점을 없애야된다고 주장한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은 상당히 '열린' 개념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아나키즘이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 그 어떤 기관, 조직도 용납 안된다(다 개인을 억압, 착취하게 되므로)
  • 개인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자치기관, 조직은 괜찮다
  • 다 필요없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등의 견해가 갈린다. 이에 따라 아나키즘은 사회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대별되며 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쿠닌, 프루동, 크로폿킨,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고드윈, 슈티르너, 터커 등이다. 대개 전자는 유럽에서, 후자는 미국에서 많이 나타났다. 어쨌든 그 어떤 아나키즘이라도 국가, 관료제, 시장 등에 의해 억압받지 않는 자유지상적인 사회를 목표로 한다는 점은 공통된다. 또는 블란델-고스초크 모델의 정치 성향 관계도에서는 사민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참고]

또 아나키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게 자발적 가입과 탈퇴인데 국가를 포함해 모든 조직은 자발적 의사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워야하며 모든 제도가 중앙집권보단 분산된 형태로 운용되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념적 지향성과 철학적 기반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체주의, 국가주의권위주의에서 파생 된 이념과 상극이고, 같은 좌파라고 쉴드쳐주고 하는거 얄짤 없이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이즘 같은 국가주의적 좌파 사상 또한 국가자본주의 체제[5] 라고 부르며, 권위주의적인 수직적 권력 구조에 혁명의 기치를 걸었던 것 자체가 인식적 오류라며 비판적이다.

전제군주정, 신정국가, 파시즘 같은 노골적인 반동적 사상들과는 말 할 것도 없이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이며, 사민주의민주사회주의 같은 온건 좌파 노선과도 프롤레타리아의 자발적인 혁명적 역량을 (근본 자체가 결국 착취적이며 권력의 생존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국가란 수직적 권력 체계가 "옛다 먹어라" 하며 던져주는 사탕발림으로 말살하려고 드는 이념이라며 회의적으로 본다. 좋게 말하면 지금까지 실존해 왔던 주류 정치 이데올로기 전반의 한계를 비판하며 이를 뛰어 넘는 차원의 시민-노동 사회 조직을 요구해 왔고, 반대로 아나키스트들에게 까인 진영,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 현실사회주의 계통에게서는 막상 지들이 역사적 순간에 중요한 일은 해 본적이 없으면서 입만 산 모두까기 인형이란 식으로 질시 받는다. 하지만 이런 현실사회주의권의 비판은 사실 러시아든, 스페인이든, 쿠바든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서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레닌주의 계통 조직들이 공존했던 곳에서는 크론슈타트 봉기에서든, 마흐노 자유령과 바르셀로나 5월 사태에서의 통수짓이든 레닌주의 진영에서 좌파 내 지분 독점을 위해 통수 치고 오히려 우익 반동들이 눈 앞에 시퍼런데도 제 살 깎아가며 아나키스트들 부터 때려잡으려고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좌파 진영에서 할 말은 아니다.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아나키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군대, 경찰과 같은 기관들의 역할과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건 결코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다. 이것은 허무주의자들이 바라는 것. 주의할 점은 허무주의자들이 결코 혼란을 원하는 것을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 혹은 진리가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허무주의이지만, 지향성에 따라 수용적이냐 능동적이냐로 나뉘는데, 수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모든 것은 헛된 일임으로 어떤 가치를 세우거나 욕구에 지배를 받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 이야기 하지만, 능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어떠한 본질 선악도 없으므로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아나키즘도 조화로운 질서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참된 질서는 소공동체의 자치적 질서이지 국가권력, 시장이 강요하는 질서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민중을 착취하는 질서이므로 이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은 소국과민을 주장한 노자의 사상과도 매우 유사하다. 사실 도가사상 중에서도 장자의 사상은 아나키즘과 거의 흡사하다고 봐도 좋고. 다만 노자의 사상은 완벽한 아나키즘 사상과는 좀 다르다. 이런 점에서 장자와 노자를 같은 도가로 묶는데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튼 돌아와서 보자면 이런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사상은 동서양, 고중근현대를 막론하고 있어온 보편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도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중을 착취하는 세력으로 국가만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적 혼란과 외국, 외적 등 대외적 요인도 든다. 일반적인 정치학에서는 이런 점을 들어 경찰이나 군대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아나키즘은 현실에서 경찰과 군대를 위에서 설명된 '집중된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와 착취세력의 권력유지수단으로 보니 아나키스트의 주장에 앞뒤 모순되는 점이 있다. 물론 아나키스트들에 따라 경찰은 되지만, 군대는 안된다는 경우도 있고(훨씬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으니깐) 의견은 다양하다. 군대 무용론 참고. 이런 류의 아나키스트들 다수의 의견은 주로 특정 사회 내에선 자체적인 치안 유지 수단(자경단, 민병대 등)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민병대로 외국 정규군을 막을 순 없으니 전시 체제에서만 군대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고, 실례로 코스타리카 같은 몇몇 국가들의 경우엔 평시 군대가 폐지된 상태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전시엔 역시 군대가 필요하고 또 현실의 군사 분쟁 지역 등에선 자경단이나 민병대 같은 중앙 통제가 없는 물리력이 폐해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아나키스트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는 비판도 있는 바, 궁극적 아나키스트들은 기존 억압들의 혁파를 세계규모급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필수요소로 주장하는 '사회 혁명' 개념이 등장한다. 단순히 기존 정부를 없앤다고 사회 구성원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누리는 진정한 아나키즘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위에서 강요되는 질서를 거부하고 상호부조 정신으로 무장하는 내부적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의 설명에 따르면 소말리아이라크는 사회 변화가 없이 정치 체제의 공백만 발생했으므로 혼란과 갈등, 폭력이 지배하는 악성 사회가 되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인류급 사상개조하자는 것 따라서 중앙 권력이 없어도 사회가 구성원의 자율적 합의에 기반하여 유지되려면 기존의 사회 구조와 의식 자체가 변화해야 하며 이 핵심적인 변화를 단순히 윗사람들이 바뀌는 것일 뿐인 정치적 혁명(political revolution)보다 차원 높은 혁명인 사회 혁명(social revolution)이라 부른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의식개조를 집단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전복주의자라고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이지 전세계 인류급은 고사하고 아나키즘을 기치로 내건 소규모급의 국가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태니... 아직까지 현실은 시궁창인 셈.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한낱 짐승에 불과했던 인류가 도구를 쓰고 말을 하고 윤리를 정립하면서 인간으로 거듭나고, 부족과 국가를 설립하기 시작한 석기-청동기 시대처럼 의식변화를 맞이함으로써 다시 한번 단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로선 조선시대 사람이 지금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듯 허황되게 들리겠지만.


3 탄생 배경과 영향

그 탄생 배경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반민족주의 심지어 자본주의(머리 로스바드, 라이산더 스푸너 등을 필두로 한 북미 오스트리아 학파) 등의 사상 집단과 활동을 함께 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며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4 허무주의와 다른 점

물론 정말로 무질서와 혼돈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을 벌인 아나키스트들도 있지만 그것은 정확히 아나키즘이 아닌 허무주의라고 불리며 허무주의는 단순한 파괴와 신체제 건설의 허무를 말하고 있지만 아나키즘은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아나키스트들을 마치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오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또 다른 용어 리버테리언

가끔씩 아나키스트들은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리버테리언 소셜리즘' 또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을 아나키즘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하며, 아나키즘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나키즘의 목적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모든 권위적 체계, 사회적 기관, 사회 관계를 끝내는 것인 이상, 이러한 용법이 특이한건 아니다.

현대적 용례와는 다르게 70년대 이전까지 레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자본주의 지지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으나, 70년대 이후 미국을 기점으로 의미 변형이 발생하였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머레이 북친은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현대 미국 우익 프로프라이테리언[6]이 아니라, 19세기 유럽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었다."[7]

최초로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아나키스트 저널은 Le Libertaire, Journal du Mouvement Social[8][9]이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것은 미국 뉴욕에서 1858년 설립되어 1861년 까지 프랑스 아나코-코뮤니스트[10][11]조셉 데쟉크[12]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용어에 대한 다음 기록은 유럽에 나타났다. 프랑스 르 아브르 지역 아나키스트 의회에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이라는 형태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1880년, 11월 16-22일). 다음해 1월 프랑스어 선언문 "Libertarian or Anarchist Communism" 이 발간 되었다. 마침내 1895년, 주요한 아나키스트인 세바스티앙 포르[13]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Le Libertaire가 프랑스에 출판되었다.[14]

네틀라우[15]의 책이 1932년에 쓰여져 1934년에 수정된 것에 유의해야 한다. 조지 우드콕[16]은 그의 저서에서 데쟉크와 포르에 관련하여 동일한 사실을 보고 했다. [17] 중요한 것은, 우드콕의 저술은 1962년이 쓰여졌지만 우익이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 최근에, 로버트 그레이엄[18]은 데쟉크의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저술 했다. "그는 최초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아나키스트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한 인물이였다. 그동안 포르와 미셸은 아나키스트의 동의어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대중화 했다." [19]

무슨 말이냐면, 루이즈 미셸은 아나키스트들이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또다른 용어로 사용하도록 연관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우리의 상징이 되는 검은 깃발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깃발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대중화 됐다. 포르는 이후 1903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미국에서의 용례를 보자면 벤자민 터커[20](Benjamin Tucker, 주요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가 1897년 2월에 논의한 토지 사용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해결책[21]"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역시 자본주의자(즉 우익 리버테리언)를 공격한다.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토지 독점권"이다. 좀더 이후로 가면 "토지 보유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원칙[22]" 이 있다. 여기에도 아나키스트의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게 적용되어 있다. [Liberty[23], no. 350, p. 5]

1920년대 아나코 코뮤니스트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주장에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사회주의자이다. 다른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I.W.W[24]가 사회주의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단한가지 주요한 차이는 그들이 권위주의자인 반면 우리는 리버테리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국가와 정부를 믿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Nicola Sacco and Bartolomeo Vanzetti, The Letters of Sacco and Vanzetti, p. 274]

흥미롭게도 루돌프 로커[25]가 1949년 LA에서 출간한 책에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스테판 P. 앤드류스[26]가 "가장 대재다능하고 중요한 리버테리언 소셜리즘의 주창자" 라고 저술되어 있다.[27] 이것은[28] 1909년 영어로 변역된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서에서도 등장한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나키즘의 원칙... 그것은 기원했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의 행위에 안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여 있다. "오늘날의 리버테리언 역시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29]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의 가장 유명한 사용,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아나키스트 운동은, 스페인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 CNT에 의한 것이였다. 1919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목적을 선언한 이후, CNT는 1936년 5월 사라고사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했고, 여기에는 982개의 노동조합과 55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649명의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결의된 것중 한가지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연방에 대한 개념[30]" 이였다. 이것은 Isaac Puente을 중심으로 4년 전에 출판 되어, 여러 언어로 널리 번역 되고 재간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동명의 팜플릿]과 관련된 결의안 이였다. 그 팜플릿이 발간된 해, 즉 1932년 Federacion Iberica de Juventudes Libertarias(Iberian Federation of libertarian Youth, 이베리아 리버테리언 청년 연합)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설립되었는데, 여기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 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단지 아나키스트를 자처 하는 사람들 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리베테리언이라고 묘사하는 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아나키즘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모리스 브린톤[31]와 그가 멤버로 소속되어 있던 Solidarity이라는 그룹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리버테리언으로 설명했으며, 그들이 주장한 사회주의의 형태인 분산화와 자주관리는 아나키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가 아나키즘보다 더욱 방대한 용례로 사용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춘 좌파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었다.

잘 알려져 있고 잘 문서화 되어 있는 '리버테리언' 이라는 단어의 사용례는 본래 아나키스트들(그리고 좌파에 가까운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고, 현대와는 달리 기록에 의하면 70년대 이전까지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이명에 가까웠다.활

요약하자면 우리의 정치적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를 볼때 아나키스트들이 150여년이 넘도록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현실 정치, 운동판에서도 스페인이나 그리스 같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주류 정치권의 관점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 상당한 세력을 유지 하고 있는 곳에 가면 거리낌 없이 '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이란 단어를 번갈아 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쎄네띠스따나[32] 아테네의 엑사르케이아의 아나키스트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친자본주의적 리버테리언들의 존재를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저 미국에서 자본가애들도 리버테리언이라고 부르는거 어떻게 생각하심?'하고 물어보면 친절하고도 간단하게 "미국 친구들이 먹은 햄버거 중 몇개가 상해서 뇌까지 파고 든거겠지"(...)라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자기들은 저작권법에 지적재산이라고 더럽게 따지면서 지들이 남의 상표 도명해 가는 건 괜찮다는거지. 자본가들 다운 발상이잖아?"라는 식의 대답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미국측에서 원래 유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던 단어를 도용해갔다고 하기도 뭣한게, 현대 거대 자본주의 세계제국의 맹주인 미국을 보면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20세기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아나키즘 세력이 강성했던 나라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반 미국 급진 노동운동계를 주도했던 IWW만 하더라도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성향 혁명 노동조합이었고, 엠마 골드먼, 알렉산드르 베르크만, 루돌프 로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유수의 아나키스트 지식인, 혁명가들이 미국을 거점으로 두고 활동했으며, 헤이마켓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 처럼 미국 노동운동사의 굶직한 노동 쟁의 사건의 중심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상당수가 아예 유럽에서 나고 자라다가 망명, 이민의 형태로 미국으로 온 경우였거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나키스트들도 저런 이민자 사회의 노동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졌기 때문에 이 당시 아나키즘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조금 나중에 CNT를 통한 커넥션이 생긴후 스페인과 중남미까지 오가며 상당히 유기적인 국제적 발전을 보였다. 다만 이 와중에 미국의 아나키즘 조류 중에는 전통적인 좌파적 관점의 노동 문제보다 윤리 철학적, 사회학적,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의 가능성에 집중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벤자민 터커등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긴 했는데, 이들도 딱히 저런 계급, 경제적 의미의 좌파로서 아나키즘을 딱히 배격한 것도 아니다.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원래 반권위주의 좌파진영의 단어에서 영미 자본주의 지식인들이 호칭이 되는건 60년대~70년대 미국의 우파 경제학, 정치학 지식인들 중 머레이 로스바드를 필두로 한 자유주의적 인사들이 비록 기원은 좌파이긴 하나 굶직한 혁명적 역사를 남긴, 이 시점에서는 이미 2차대전과 냉전의 피바람을 겪은 후 세력이 현격하게 줄어든 한세대 이전의 리버테리언들을 주목하고, 이들의 혁명적 자유주의를 자유시장과 접목하려는 중에서 의미가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나코-자본주의의 대부격인 인물이며 저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변화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머레이 로스바드의 경우 실재로 정치적인 이념과는 별개로 반전, 반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동시대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과 전세대 혁명가들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며, 체게바라가 죽었을때도 미하일 바쿠닌 이후 가장 순수했던 혁명가이자 양키 제국주의에 맞선 위대한 영웅이 죽었다며 조문을 표하기도 했다. 현대 미국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리버테리언이란 단어가 굳은건 이렇게 경제적으로는 좌우익 스펙트럼 양쪽에 분포하던 급진적, 혁명적 자유주의 전통 중에서 원래 주류였던 좌파가 2차대전, 메카시즘, 냉전, 신자유주의를 연달아 겪으며 대중 정치판에서 싸그리 쓸려 나가면서 애초에 주로 학계나 지식인 사회에서만 활동하던 우익의 버전만이 남아 생긴 현상이다.

이 문단은 영국의 아나키스트 저널 Freedom press의 vol. 69, No. 23-4 부분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5.1 미국의 리버테리언과 아나키즘

HOST : Lianna Brease on our Facebook page asks "I'm finding myself more distant from government involvement in general. Is it healthy to think like an anarchist? or what are your views on anarchy?"

RON PAUL : I think if somebody is an anarchist and they totally believe in no government, and they don't use force at the moment to go and start shooting up the government so we don't have any government, that would be wrong, but to be an anarchist and assume responsibility for yourself, I think this is a great idea. And there's a lot of people, there's a lot of very close friends of mine who think political action is terrible and worthless. I happen to be one that believes that education is probably paramount. But political action can be very helpful. And sometimes political action, my elections and things and galvanizing interest is a measurement of our success on our ideas. So I think this is very important. But anarchy is not harmful to me, as long as you especially if you are true libertarian, you've rejected the use of force, I don't have to worry about you.

If you don't want to, your biggest problem of being an anarchist in the government that doesn't agree with you is that when I want to opt out they are going to come with guns. But you know, we do have instances where some people do get to opt out. When you think about the Amish and the Mennonites, I think they get exempt and ... they like to … Just think, those groups, why couldn't all of us have that opportunity? Look, we voluntarily want to get out and we want to take care of ourselves. Either an individual should be allowed to do that and get no benefits from the government, or a group can do this.

A libertarian society actually gives full permission for socialism. Voluntary socialism. You know, if you want to get together, and there's been experiments with that in our history, you can have voluntary socialism. If you go together and you agree and we are running this community - large, small whatever - on a socialist scheme, you should be allowed to. But we should be allowed to stay out of that. But the problem is: it is so inefficient. That the socialists know their system is going to fail, so they have to use the force of the government gun to take money from the people who aren't socialists in order to subsidize their programs. Libertarianism gives full legal protection of anybody who wants to have voluntary socialism. But socialists never will endorse the idea of you having your personal liberty where you can take care of yourself and not ask for nothing from anybody else.
사회자 : 리아나 브리스는 우리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대개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키스트처럼 생각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인가요? 혹은 아나키에 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론 폴 : 만약 어떤 사람이 아나키스트라면, 그들은 정부를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한다면, 나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는(비침해성의 공리-NAP를 말함) 아나키스트가 되려고 하는 경우, 내 생각에 이는 매우 훌륭하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아나키즘을 믿고 있죠. 그리고 나와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아나키스트들이 많은데, 그들은 대개 정치적 행동이 끔찍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행동은 사람들을 교육시키는데 상당히 도움이 돼요. 나의 선거를 비롯한 몇가지 정치적 행동들에 관한 강한 관심은 정치적 행동을 통해 우리 사상을 성공적으로 알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정치적 행동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이 정치적 행동을 꺼림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스트들은 나에게 해롭지 않습니다. 특히나 만약 당신이 진실된 자유지상주의자라면, 당신은 폭력을 쓰는 것을 거부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아나키스트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각설하고, 당신의 큰 걱정은 정부 체제에서 아나키스트로 살아갈 경우, 즉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할때 정부가 무력을 행사할텐데 그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라는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할 사실이 있어요. 우리는 정부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허가해준 역사적인 사례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예시는 외부와의 교류를 거부하며 자신들만의 소규모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기독교 종파인 아미시와 메노나이트입니다. 나는 그들이 정부로부터 통제에서 벗어나는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우리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러한 기회, 혹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번 봅시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떠나고 스스로를 돌보기를 원하죠. 개인은 이렇게 행동하기를 허가받아야 하며, 동시에 정부로부터 이득을 봐서도 안됩니다. 아니면 그 집단에서 이렇게 조치를 취해야겠죠. 이것이 자유지상주의 사회입니다.
이러한 자유지상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를 완벽하게 허가해야 합니다. 물론 자발적인 의사에 의거한 사회주의 집단을 말하는 것이구요.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다만 이러한 자발적 사회주의 공동체는 미국 역사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쨌건 만약 당신이 사회주의 공동체(그것이 크든 작든 어떻던 간에)에 참여하기로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반드시 허가되어야겠지요. 정부는 당신이 제도권 공동체에서 빠지는 것을 원하는 것에 대해 허가해야한다 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시스템은 굉장히 비효율적이며,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마 사회주의자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에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을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자들에게서 마련하기 위해 정부의 무력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자유지상주의는 자발적 사회주의자들에게까지도 완벽한 법적 보호를 제공해줍니다. 그들이 실패하건 어떻건 상관없이 말이죠.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당신의 개인적 자유와 사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서 어떠한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33]

여기서 론 폴은 1935년생이며, 공화당 하원의원 출신으로 공화당내 자유지상주의자들을 대표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세에 밀려 당선되진 못했지만. 랜드 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유지상주의라는 사상이 아나키즘과 100% 동의어라고 보긴 애매하고[34], 실제로 흔히 리버테리어니즘(자유지상주의)의 본고장으로서 간주되는 미국의 대다수 리버테리언들도 로버트 노직이나 하이에크 등을 필두로 한 (흔히 우익 성향으로 간주되는) 최소국가주의자이기는 하나, 원론적 혹은 이론적 측면에서 미국의 리버테리어니즘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아나키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상술한 벤자민 터커가 있으며, 미국 리버테리어니즘의 아버지인 [라이샌더 스푸너] 또한 강도국가론(...)을 주장한 전형적인 아나키스트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아나코 캐피탈리즘 부분 참고.


6 상징

6.1 서클 A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심볼인 서클 A가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고전 아나키스트 그룹이 사용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20세기에 탄생한 심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확실한 이미지로서 남아있는 기록은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한 종군기자 게르다 타로(gerda taro)[35][36]가 남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게르다 타로(1910~1937)기록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서클A[37][38]

이후 1956년 1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결성된 아나키스트 그룹 AOA[39]가 사용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64년 프랑스의 단체 '리버테리언 청년'[40] 이 문서에 사용한 기록이 있고 1968년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탄생한 펑크문화는 서클A가 전세계로 퍼지는데 기여한다.

A와 O가 결합된 이 심볼은 일반적으로 프루동이 남긴 말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진다. 그의 저서인 '어느 혁명가의 고백'[41]에 기록된, "Anarchy is Order Without Power"(아나키[42]는 권력없는 질서다.) 혹은 "anarchy is the mother of order"(아나키[43]는 질서의 어머니이다.)가 이 심볼의 의미라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유럽언어에서 Anarchy는 A로 시작하는 단어로, Order는 O로 시작되는 단어로 번역된다. 아나키의 A와 오더의 O가 결합된 모노그램인 이 심볼은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것은 아나키즘이 말하는 것은 결코 무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촘스키는 아나키는 결코 무질서한 사회가 아닌 가능한 작은 통치와 제어로 작동되는 잘 조직된 사회에 대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6.2 검은 깃발

왜 우리의 깃발은 검은색인가? 이것은 거부라는 그림자의 색이다.[44] 검은 깃발은 모든 깃발에 대한 거부이다. 이것은 인류의 화합을 가로막고 대립 시키는 국민성에 대한 거부이다. 검은색은 국가와 집단에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분노이자 울분이다. 이것은 가식과 위선, 그리고 정부의 비열한 속임수에 은밀하게 모욕되는 인간 지성의 분노이자 울분이다. 검은색은 또한 비탄이다. 검은 깃발은 안정과 위대한 영광을 위해 기꺼이 피를 마신 조국에 대한 거부이며, 국가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전쟁에서 살해된 샐 수 없는 희생자들의 비탄이다. 이것은 노동의 결과가 강탈되어, 또 다른 인간을 도살하고 억압하는데 쓰이게 되는 현실에 대한 비탄이다. 이것은 폭압적인 계층 사회 안에서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병들어 버린 현실에 대한 비탄이며, 세계를 밝힐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꺼져버린 수많은 이성의 눈물이다. 이것은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의 색이다.
"Why the Black Flag?", Howard Ehrlich (ed.), Reinventing Anarchy, Again, pp. 31-2

아울러 아나키스트들은 검은색을 자신들의 고유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둠에 다크 이는 오랫동안 검은색이 노동을 상징했고 국가들의 국기가 화려한 색들로 채워진 반면 이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검은 깃발은 19세기 후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쓰였다. 그리고 항복에 대한 반대, 깃발 자체에 대한 반대의 의미에서도 검은 깃발은 널리 쓰였다. 실제로 검은 깃발은 과거 산업사회 이전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조직화된 노동자로서 존재해 왔던 집단은 다름아닌 광산광부들인데 이들이 종종 검은 깃발을 광산 표식으로 쓰곤 했다.

덧붙여 프랑스 혁명 이후 붉은 깃발이 혁명을 상징했고 붉은 깃발이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자 19세기 중엽부터 사회주의와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아나키스트들은 붉은 깃발을 사용하기 좀 뭐한 감이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붉은 깃발도 자주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계열과는 다른 상징을 필요로 하게 되자 아나키스트들이 검은 깃발을 사용하는 빈도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이때 굳이 혁명의 상징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끝까지 붉은 깃발을 사용한 표트르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도 있었다.

  • Le Monde illustré지의 사건에 대한 삽화[* 흑백 [원본]에 채색한 버전이다.

검은 깃발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최초로 등장했는지는 불명확하나, 아나키스트들이 어째서 그것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유명한 참가자였던 루이즈 미셸[45][46]이 아나키스트들에게 검은 깃발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1882년 3월 18일 파리 코뮌을 기념하기 위한 공개 회의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붉은 깃발은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 고통의 검은 깃발을 들어 올리자."[47] 다음 해 그녀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아나키스트 역사가 조지 우드콕[48]에 따르면 1883년 3월 9일 프랑스 파리 실업자들의 시위에서 그녀는 검은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실업자들의 야외 시위는 500여명의 규모였고, 미셸은 검은 깃발을 들고 "빵과 일이 아니면 총알을!"[49] 이라고 외치며 생제르망 도로를 시위대의 가장 앞에 서서 행진했다. 그리고 군중은 경찰에게 공격 당하기 전에 3개의 빵집을 공격했다. 그녀는 구속되어 6년의 독방 감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공공의 압력에 의해 곧 사면 되었다.[50] 같은 해 8월 출판된 리옹 지역 아나키스트 신문 Le Drapeau Noir[51]은 검은 깃발은 아나키스트 그룹 사이에서 유명한 심볼이 되었다고 보고 했다.[52]

한편 러시아에서는 1905년 Chernoe Znamia[53] 무브먼트가 등장하기 이전 까지는 검은 깃발이 쓰이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 해의 혁명이 좌절된 이후 아나키즘은 또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 가야 했다. 1917년의 혁명 동안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은 재등장하게 되었다. 그 해 2월, 페트로그라드의 차리즘 타도 시위에서 아나키스트들은 검은 깃발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새기고서 참여했다. "권위와 자본주의를 타도하자!" 활동의 일환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임시정부의 반혁명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 무장 분견대를 결성했고 이들은 '검은 수비대'[54]로 불렸다. 그리고 조금 암울한 기록이 있는데, 1921년 2월에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이 소련에 나타났다. 그 달엔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렸었다. 2만여명의 참석자들이 그의 명예를 위해 검은 깃발을 들고서 행진 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련 아나키즘 최후의] [기록들]

Where there is authority, there is no freedom.
권위가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으로 부터 '고작' 2주만이 지나서 [크론시타트 반란][이 실패]로 돌아갔고, 아나키즘은 소련에서 삭제 되었다.[55]

일제강점기의 한국 아나키스트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검은 깃발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나키스트 단체들은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검은색을 자신들의 단체의 이름이나 상징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제하 한국 아나키스트 단체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흑기동맹, 흑색공포단, 흑풍회 등이 되었다. 무슨 무협영화가 떠오르긴 하지만


6.3 졸리 로저

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의 깃발[56][57]네스토르 마흐노,[58] 1888년 10월 26일~ 1934년 7월 6일

아나키스트들은 해적을 상징하는 졸리 로저를 자신들의 심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해적기의 바탕이 검은색 이기도 하고, 해적 이라는 용어가 현대 정보화 시대에 벌어지는 특정한 사이버 운동과도 연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59]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적백내전 당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영향이 크다.

"승리 혹은 죽음. 이것이 역사의 순간에서 우크라이나 농민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애라는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수많은 승리가 결국에는 새로운 주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맞김으로써 끝나게 된 위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부여잡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우리 자신의 진리에 따라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Manifesto of the Makhnovists, written in 1918 by Nestor Makhno][60]

1918년 초 새로운 볼셰비키 정부는 동맹국[61]과의 정전을 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한다. 그러나 거기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파르티잔이 결성되었고, 독일제국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네스토르 마흐노가 결성한 '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 즉 '검은 군대'는 가장 주요한 파르티잔 이였다. '검은 군대'는 남부 우크라이나에 권위를 부과 하려는 모든 세력과 맞섰다. 즉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62] 내셔널리스트들, 조약으로 들어온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점령자들, 친독 보수파의 헤트만 국가[63], 포그롬[64] 그리고 러시아 제국 잔존세력의 '하얀 군대'와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 아타만[65]이 이끄는 작은 군벌 세력들까지 모두에 맞섰다. 검은 군대가 다른 모든 세력들과 대립했던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은 1918-1921년 동안 '자유구역'[66]이 만들어졌다.[67]이곳에선 'Nabat' 이라는 이름 아래에 최초로 열린 아나키스트 그룹의 회의에서 회자된 5가지 요소가 적용되었다.
1. 모든 정당 중지
2. 모든 독재 거부
3. 모든 국가적 개념 부정
4. 모든 '일시적 기간[68]프롤레타리아 독재 부정
5. '자유 소비에트'에 의한 노동자 자주관리[69]
자유구역의 거주민들은[70] 숙고집회를[71] 열어 국가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자유 소비에트[72]와, 리버테리언 코뮌[73]을 만들었다. 토지와 공장은 몰수되어 노동자 자주관리가[74] 구현되었고, 크로포트킨의 이론에 따라 농촌과 도시간의 자유 교역[75]에 기반을 둔 경제가 형성 되었다.[76]

자유구역은 1920년 까지 제국의 남부 러시아 정부[77]와 안톤 데니킨[78]이 이끄는 하얀 군대와 대치 했으나, 1920년 11월 검은 군대와 붉은 군대가 동맹하여 최종적으로 하얀 군대를 격퇴했다.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 정부는 처음에는 자유구역의 독립을 약속으로 동맹을 맺었다.[79] 그러나 볼셰비키는 성장하는 검은 군대와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확대 되는 것을 우려했다.[80] 볼셰비키는 자유구역은 마흐노가 군벌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거짓 선전를 하기 시작 했다.[81] 볼셰비키 신문은 자유지구의 지도자들은 민주적이 아니라 마흐노의 군벌에 의해 선출 되었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철도원과 전신 기사에게 음식 제공을 거부했고, 마흐노 헌법엔 체제를 위한 특별한 부분이 있어 고문과 비밀 처형이 자행 된다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마흐노의 군은 보급을 위해 붉은 군대의 호송대를 약탈했고, 브랸스크에서 장갑차를 강탈했다고 선전했다. 또한 Nabat은 잔혹한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82] 결과적으로 볼셰비키는 협정을 파기하고 1920년 11월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대규모 군사 점령이 감행 되었다. 마흐노비스트와 비볼셰비키 그룹의 활동은 억제되었고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 되었다. 마흐노는 1921년 8월 루마니아의 국경을 넘어 파리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목수로 일하다가 1934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6.4 Bisected Flag

[83] 응?

아나키즘은 어느 사상보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한데 이 다양한 분파들이 서로 자신들의 사상을 잘 나타내기 위해 아나키즘에는 Bisected Flag라고 불리는 2등분 깃발이 존재한다.

[아나키스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깃발들].

워낙 다양해서 설명하기 복잡한데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 흑적기는 아나코 공산주의(무권위 공산주의)이나 아나코 생디칼리즘(혁명적 조합주의)[84][85]을 상징한다.
  • 흑황기는 아나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아나키즘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크고 아름답고 넓어서 소위 말하는 무정부 자본주의까지 존재한다! 물론 이들이 여타 혁명적 아나키스트들과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 흑녹기는 녹색 아나키즘 [86]이나 아나코 프리미티비즘을 상징한다.
  • 흑자기는 아나코 페미니즘을 상징한다.
  • 흑분홍기는 아나코 퀴어라 불리는 동성애자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사용된다.[87]
  • 흑백기는 아나코 평화주의을 상징한다.
  • 흑주황기는 상호부조 아나키즘을 상징한다.
  • 흑회기는 아고리즘[88]을 상징한다.


그 외에 다양한 2등분 깃발에 대해 추가바람.


7 아나키즘의 분파들

아나키즘의 분파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흔히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좌익들로부터 '기회주의자'라거나 '모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곤 하며[90] 심지어는 '우익분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물론 우파 아나키스트들은 우익들로부터 '빨갱이'라고 까이곤 한다.

아나키즘/분파 문서 참조.


8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시기상으로 일제시대와 맞물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아나키즘 노선을 취한다.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의열단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집단으로 꼽히며, 의열단 지도자 약산 김원봉 역시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다. 한국사에 여러 의미로 큰 영향을 끼친 신채호 역시 민족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아나키스트로 전향했다.

천황 폭사 기도사건의 주인공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도 아나키스트였다.[91] 해당항목 참조.

광복 직전까지는 그래도 아나키즘이 비교적 접하기 쉬운 사상이었는지라 단주 유림 선생도 임시정부 요원이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환국할 때 함께 환국했었다. 이 계통은 한국 자주인 연맹으로 계승된다.

그 외 더 자세한 사례는 아나키스트 항목 참조.


9 비판

아나키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아나키스트라고 스스로를 밝히는 개인들 또한 다양한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을 하나로 정의하고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몇 가지 공통된 비판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특히 '아나키즘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사상일 수 있느냐' 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개진되어왔다.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지 못했던 이유를 단지 '권위주의자' 들의 억압으로 칭하기에 아나키즘 자체에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첫째로 아나키즘은 사유체계 자체가 '비과학적' 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상대주의적 사유를 많이 받아들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아나키즘의 역사는 매우 길기에 상대주의로부터 아나키즘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죽은 이성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을 강조하는 식의 낭만주의적 사고[92]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지적 권위에 대한 부정 역시 권위주의에 대한 부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왔다. 특히 60년대 이후 '부활' 했다고 볼 수 있는 아나키즘 조류들이 아나키즘이라는 이름하에 묶이는 것도 보통 상대주의 가치관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낭만주의, 상대주의 자체가 과학적 사유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며 수많은 사회주의자·과학자 ·철학자·역사학자 등이 상대주의적 사유체계의 한계를 지적해왔다.[93] 단순히 비판을 넘어 학문적으로도 이 낭만주의적, '반이성적' 사상적 태도가 아나키즘과 마르크스 등을 비롯한 다른 좌파 이론과 근본적으로 계보를 달리 하는 점이다.

마르크스에서 비롯된 주류 좌파 이론은 현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척을 지었어도 지적 계보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통한 궁극을 향한 인간 본성의 개선이란 측면에서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경제학과 같은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손이다. 반면에 아나키즘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 능력 자체를 회의하고 순간순간의 역사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행동 개체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계몽주의가 아니라 비코와 헤르더, 쇼펜하우어 등의 사상과 통하고 있다.[94]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반계몽주의 철학에서 비롯 된 다른 아주 악질의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바로 파시즘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즘과 달리 철학적 기반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지만 정치적 이상은 보편인권, (직접) 민주주의, 사회 정의 등 계몽주의의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에 파시스트들과 달리 존재 자체가 그 해당 사회의 독약이 되는 암적인 성격은 없고, 오히려 저런 가치관들의 존립과 존엄함이 걸린 역사적 순간에서 이를 위해 투신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성에 대한 신봉에 기반하여 철저한 통제, 소위 군기를 중시하는 이념과 집단들 보다 충동적이고, 작위적인 성격이 두드러질 때가 종종 있다[95]. 20세기 초반 유럽 대륙과 남북아메리카에서 아나키스트 단체들이 분명히 인민 대중 중 많은 수의 지지를 받으며 큰 네트워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많은 수가 고립된 막가파식 반정부 무장 테러 노선을 고집하다가 집중적으로 때려 잡혀 망한 사례도 이런 성격과 상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와중에서 우크라이나 자유령 혁명이나 스페인 내전 당시 CNT 주도 혁명이 국제 아나키즘 역사에서 가장 비중이 큰 굶직한 사례로 자리 잡은 것도 저 두 역사적 사례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 이전의 행동적 작위성을 극복하고 하나의 체계적인 조직을 만들며 일반 정치론적 관점에서는 '권력'이라 부를 만한 영향력을 유지했기 때문에 고평가 받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반이성적'이란 서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는 당장 프루동, 고드윈 같은 초창기 아나키스트들부터 공산주의적 아나키즘 전성기의 레클뤼 형제, 크로포트킨, 에스꾸엘라 모데르나 계열의 교육학자, 역사학자들, 현대의 아나키스트 사회학자들 까지 아나키즘이란 기치를 내걸고 각자 해당 분야에서 학계 내부 관점에서도 높게 평가 받는 성과를 이룩한 지식인 전통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아나키스트 이념과 지향점은 이들의 연구와 성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사자들은 서로 인정하기 싫은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관점에 따라 2차대전 이후 미국 경제학계 중심으로 이루어진 우파 아나키즘 담론의 형성 또한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반권위주의적 자유조합 사상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론에 접목 시킨 결과라 평가 할 수도 있다[96]. 이렇듯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방식, 방향으로든 아나키스트 사상과 이념을 '합리적, 이성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며 다른 이데올로기들과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포기한 적은 결코 없다. 다만 그 발전의 방향이 대표적 라이벌 이념 마르크스주의에 비해 개개인 아나키스트 사상가에 따라 다방면으로 튀며 한 이론이나 논쟁에 집중 된 적이 없고, 아나키즘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정치 세력이 국가 단위의 권력을 장기적으로 잡아 본 적이 없으니 국제정세를 비롯한 이데올로기 외적 관점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굶직한 담론과도 동떨어진 역사를 가지게 된 점이 큰 차이를 낳은 것이다.

둘째로 아나키즘은 종종 생각보다 더 영웅주의·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옘마 골드만은 "대중은 어리석다", "개인은 대중에서 벗어나야 한다" 는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대중이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다고 봤기 때문이다.[97]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골드만의 주장은 '깨어난 개인' 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사회 변화의 주체를 개인으로 설정한 것이며 이처럼 개인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결과적으로 영웅주의적·엘리트주의적 사관에 빠지기 쉽다. 골드만 이전·후의 많은 아나키스트들 또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대중을 아직 깨어나지 못한 계몽의 대상이나 소시민으로서 파악하는데 이는 사회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진보적 변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관점이라 지적할 수 있다.[98] 이러한 측면은 아나키즘이-적어도 주류인 좌파 아나키즘에 한하여-생산 수단의 공유라는 경제적 측면 못지 않게, 인습, 체제, 법률, 등의 억압적 기구에서 해방 된 개인주의적 성향 또한 그만큼 강조하기 때문에 생각난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개개인 아나키스트들은 사상적으로 각성 된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충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여기에 위에 언급 된 낭만주의적 태도 까지 겹쳐 이론적으로 아나키즘은 극단적인 대중 기반의 공동체 형성을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미하일 바쿠닌, 네스토르 마흐노, 사코와 반제티,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등의 몇몇 서사시적인 영웅적 인물들을 지나치게 우러러 보며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다른 좌파들이 현수막에 내거는 인물들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마오쩌둥 등 아예 전업 이론가였던가, 아니면 적어도 이론에도 큰 기여를 했던 인물들인 반면 아나키스트들이 내세우는 영웅들은 반대로 바쿠닌처럼 이론적 활동은 걍 부업이었던가, 아예 관심 자체도 없이 전업 혁명가로 활동했거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혁명가보다 순교자로서 더 유명한 점도 눈여길 만한 부분.

셋째로 '개인' 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삼는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류학의 연구성과들이 냉담하게 보여주듯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99]이 지적하듯이 공동체는 구성원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타자와 끊임없이 경계 지으려 시도한다. 친족 공동체가 여성을 주고 받으며 남성간의 공동체적 연대를 강고히 해왔다는 연구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타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들은 타자들에 대한 공포와 질투가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고통의 전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또한 한국의 공동체 운동들의 험난한 역사가 말해주듯 공동체는 보통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꺼려하는 시장·국가 등과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그 존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배가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버리듯 공동체가 사회 구조의 흐름에 좌초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적 이상이 전사회적 구성요소로 등장하기 이전에 공동체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적 사상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사회의 모습은 결코 폐쇄적인 공동체가 무슨 짓이든 그 공동체 안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작은 사회가 아닌데, 아직까지 주요 아나키트스트 사상들은 위의 사회학적 연구의 성과들과 묶어서 본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결론은 작은 사회 아니면 아나키즘이 극도로 혐오하는, 저 멀리 있는 국가든, 교회든 누군가가 나서서 간섭을 하는 사회 공학 둘 중 하나로 밖에 나지 않는다. 이 또한 사상적 기원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는데, 그 지향점은 계몽주의에 기반한 보편 인권, (직접) 민주주의 등을 추구하다 보니 생겨나는 모순이다.

넷째로 아나키즘과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구체적 방식이나 그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특히 문화적인 도구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선호하며 '조직적 운동' 보다는 '네트워크적 운동' 을 펼쳐나가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이들이 다들 사회운동에 어느 정도 단련된 이들로서 충분한 책임감과 지식,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 네트워크 운동은 쉽게 무너진다. 더 나아가 문화적 운동의 경우 그 파급력은 클 수 있으나 영향력은 단기간에 일부분에 걸쳐서만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나키즘적 문화운동이 국가나 시장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라도 소위 일부 '프레카리아트' 를 넘어선 노동자대중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68혁명과 러시아 혁명을 되돌아보며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문화적 전위들은 존재했고 아나키스트들은 많았지만 혁명(대중)의 권위는 이들을 최소한으로 억제했다고 기술한 바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다섯째로 아나키스트들의 체계 없음과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 오히려 몇몇 아나키스트들이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권위를 넘어섰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을 은연중에 휘두르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들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며 상당한 일반화를 거친 것이다. 아나키즘은 아나키즘들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구체적인 비판은 개개인의 사유체계나 사상적 조류 각각을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아나키즘을 접하는 이라면 비록 일반적인 비판일지언정 이와 같은 지적들을 고심해본다면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나키스트 진영 내부의 담론의 발전 또한 이러한 비판들과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진보해왔다.


10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

역사적으로 보면 사상적, 이념적 폭과 깊이는 넓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기원상 사촌이나 배다른 형제격인 공산주의에게 안습하게 밀린다.[100][101] 권위주의의 정점인 국가나 정부, 기타 단체를 부정하기만 하면 다 아나키즘으로 포섭되지만 그 개념의 광범위함 때문에 다양한 세력이 다시 아나키즘의 이름하에서 백가쟁명하다 보니 서로간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102]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가 착근에 성공한 경우는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가 이끌던 우크라이나 자유령과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노조 전국 노동 연맹[103]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의 쿠데타를 막으며 역혁명을 일으켜 카탈로니아 지역에 세운 해방지 정도 뿐이다. 둘 다 한때 성공하는 듯 했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큰 타격을 입었다[104]. 하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중국 혁명 때도 공산당보다 먼저 들어와 많은 혁명가들을 배출하며 손문의 이념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가 보여주듯 서구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사회생태주의(생태계 보존을 위해선 궁극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회체제, 즉 국가의 지배, 시장의 지배를 타파하고 소공동체의 자연친화적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 반전사상, 징집거부 운동, 대안학교 운동, 소비조합 생산조합 운동, 농촌공동체 운동 등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공산주의도 궁극적으론 아나키즘을 지향하는데 마르크스 본인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가 궁극적으로 완성되면 군대도 국가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공산주의는 아나키 단계에 이르기 전엔 반혁명세력을 격퇴하고 인민을 이념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아나키스트들과 대립하게 된다.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를 비판하며 한시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결국 권력의 생명연장본능 때문에 영구독재화되고 그로 인해 반대세력을 탄압하며 민중을 말살하는 괴물로 변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역사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나타난 모습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결국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가 현재와 같은 모습(평준화된 대학 등)을 갖게 된 것도 아나키즘의 영향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68혁명 혹은 5월 혁명(정식 명칭: Revolution de Mai)을 찾아보기 바란다. , 국내 자료를 찾기보다 영어로 구글링하기를 바란다. 혹은 지식채널e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니 그쪽을 찾아보길 바란다.


11 관련 문서

12 관련 문학 작품

  1. 국가를 넣는 바리에이션도 많이 쓰인다. 이경우 국가는 실체화된 권력을 의미한다. No Gods, No County No Masters.(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2. 1880년 프랑스 사회주의자 블랑키( Louis Auguste Blanqui)의 동명의 저널를 통해 첫 등장.
  3. 각각 정신적 해방, 물질적 해방
  4. 그리스어 동사 ἄρχω는 '통치하다' 라는 뜻을 갖는다. 때문에 '군주제' 는 혼자(μόνος) 통치하는 형태로 'μοναρχία(monarchia)' 라고 부른다.
  5. 깔쌈하게 말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했지,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이란 구조 자체가 지니는 기득권과 권력자들을 비호할 수 밖에 없는 본능 때문에 당이 인민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 처럼 착취하고, 결국 국가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효율성은 다 빼먹은 체) 자본주의 체제 하의 사기업 처럼 작동한다라는 현실사회주의권에 대한 비판이다
  6. proprietarian, proprietary + -an
  7. [The Ecology of Freedom, p. 57]
  8. [살펴볼 수 있는 곳]
  9. [위키피디아]
  10. 다른 말로 코뮤니스트-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 리버테리언 코뮤니스트
  11. 아나키스트들은 이 기다란 용어들어 짧게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Libertarian communism은 줄여서 Libcom으로, 마찬가지로 Anarcho-communism은 Ancom으로, Anarcho-capitalism은 Ancap으로 축약된다.
  12. Joseph Dejacque
  13. Sebastien Faure
  14. [Max Nettlau, A Short History of Anarchism, pp. 75-6, p. 145 and p. 162]
  15. Nettlau
  16. George Woodcock
  17. [Anarchism: A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and movements, p. 233]
  18. Robert Graham
  19. [Robert Graham (Ed.), Anarchism: A Documentary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p. 60 and p. 231]
  20. 저 아래에 언급된, 자유시장 아나키즘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21. libertarian solutions
  22. the libertarian principle to the tenure of land
  23. 벤자민 터커가 간행한 아나키스트 주간지
  24.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25. Rudolf Rocker
  26. Stephan P. Andrews
  27. [Pioneers of American Freedom, p. 85]
  28. 즉 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을 동일시 하는 것
  29. [The Great French Revolution, vol. 1, p. 204 and p. 206]
  30. The Confederal Conception of Libertarian Communism
  31. Maurice Brinton
  32. cenetista, 즉 CNT 소속 노동운동가
  33. 출처: [[1]]
  34. 특히 경제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좌측 성향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아나키즘과 대비되는 점이 있다. 그래서 우파 아나키즘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35. 최초의 종군 여기자라 여겨지며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했다.
  36. 똑같이 종군기자였던 로버트 카파의 연인이었다.
  37. 공화파측의 병사다.[[2]] 영상의 53분 25초 쯤에서도 나온다.
  38. 영상에서 해당 병사의 투구를 자세히 보면 어두운색으로 FAI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 Iberian Anarchist Federation)의 약자이다. 그 오른쪽에 있는 병사의 모자에는 CNT라고 쓰여진게 보인다.
  39. Alliance Ouvriere Anarchiste
  40. Jeunesse Libertaire, Libertarian Youth
  41. The Confessions of a Revolutionary
  42. 아나키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무질서 내지는 무정부지만, 아나키즘을 줄인 표현이기도 하다.
  43. 아나키즘적 의미에서 저항 내지는 불복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저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것
  44. 왜냐하면 누군가 자랑스럽게 어떤 국가나, 조직의 깃발을 치켜든다면, 찬란한 태양빛을 받아 펄럭이는 깃발 뒤엔, '검은 깃발의 그림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깃발일지라도 마찬가지다.
  45. Louise Michel, 가명 클레망스(Clémence)
  46. '몽마르뜨의 붉은 처녀'(the red virgin of Montmartre)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47. [Edith Thomas, Louise Michel, p. 191]
  48. George Woodcock
  49. Bread, work, or lead
  50. [Anarchism, pp. 251-2]
  51. The Black Flag
  52. , Bulletin du CIRA, no. 62, p. 2
  53. black banner
  54. Black Guards
  55. [Paul Avrich, The Russian Anarchists], p. 44, p. 124, p. 183 and p. 227
  56. Revolutionary Insurrectionary Army of Ukraine, 마흐노비스트 Makhnovists , 마흐노프시나 Makhnovshchina , '검은 군대'로 불리기도 한다.
  57. 우크라이나어:Смерть всім, хто стоїть на перешкоді здобуття вільності трудовому люду!,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두에게 죽음을! 큰 글씨가 '죽음' 부분이다.
  58. 영어:Nestor Ivanovych Makhno, 우크라이나어: Нестор Іванович Махно, 러시아어:Не́стор Ива́нович Махно́
  59. 특히 어나니머스나 핵티비즘과(hacktivism) 관련된 아나키스트들이 쓰는 경우가 많다.
  60. [[3]]
  61. 1차 대전 당시 독일, 오스만, 오스트리아의 연합을 말함
  62. Ukrainian People's Republic
  63. Hetmanate Republic, Ukrainian State
  64. pogrom, 선동에 의한 제노사이드, 동유럽에서는 주로 유대인 학살를 의미했다.
  65. Ataman, 카자크의 지도자를 말함
  66. Free Territory
  67. Peter Marshall, Demanding the Impossible, PM Press (2010), p. 473
  68. 오늘의 사슬은 내일의 자유를 위해... 이런걸 말함
  69. [[4]]
  70. 자유구역의 인구는 700만 가량이었다
  71. Deliberative assembly
  72. free soviets
  73. libertarian communes
  74. workers' self-management, [참고]
  75. free exchange
  76. http://www.nestormakhno.info/english/cohnbendit.htm
  77. South Russian Government
  78. Anton Denikin
  79. [[5]]
  80.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6
  81.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8
  82. [[6]]
  83. 대각선이 반대로 그어지기도 한다.
  84. 이는 19세기 후반 사회주의 정당이 의회주의와 타협노선을 걷게 되자 노동조합을 혁명의 주체로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상인데 출발부터 아나키즘적 색채가 강했다. 쉽게 말하면 다른 노동운동과 달리 정당의 지도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정치투쟁을 배제한 총파업으로 혁명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어느 사상들보다 더 급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모험주의나 기회주의로 평가된 바도 없지 않아 있고 훗날 파시즘에 의해 중요한 부분은 빼버리고 산업조합/자본가조합/친자본노동조합에 의한 전체주의 국가 건설에 협력하는 조합주의(앞서 말한 생디칼리즘을 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은 혼동을 막기 위해 협동주의(corporatism)라고도 부른다)의 모태가 되기도 하는 좀 안습한 결과를 낳기도 하다. 내가 호랭이 새끼를 키웠어
  85. 이런 이유에 의해 스페인의 CNT는 흑적기를 사용한다. 흑적기를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단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86. 흔히들 환경운동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진 녹색당의 그 녹색 맞다.
  87. 아나키스트인데 동성애자인 경우가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 때 지참하는 것으로 보인다.
  88. agorism
  89. 영어 위키백과의 리버테리언-트랜스휴머니즘을 말하는게 아니다. [참고] [2] [3]
  90. 특히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며 줄창 깠다.
  91. 후미코는 옥사했고 박열은 감옥에서 우익으로 전향하여 22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해방 후 풀려난다. 해방 후엔 민단 단장을 맡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한국전쟁 중 납북된다. 북한에서 1974년 사망한다. 참고로 조소앙, 김약수(역시 아나키스트였다가 훗날 사회주의로 전향) 등도 같은 단체에서 활동을 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숙청되거나 산간 오지로 추방된데 비해 박열은 죽을 때까지 회장을 맡은 것으로 봐서 북한 당국의 눈에 날 짓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일부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서 "저 사람은 원래 무정부주의자라 말이 안 통한다"며 왕따를 당했다는 안습한 이야기도 있다.(...)
  92.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적 사고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었음을 상기해볼 때 낭만주의가 합리주의를 배격하는 사상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93. 고전적 아나키스트라 할 수 있는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에 대해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으로 반박한 일은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94. 영국의 지식사학자 이사야 벌린이 '반계몽주의' 라 칭한 그 사상 체계 맞다.
  95. 물론 위의 철학적인 기원은 사상적 계보의 차원에서만 파시즘과 모태를 공유한다는 거지, 실제로 저렇다고 해서 현실의 아나키스트들 면전에서 아나키즘이 파시즘과 연관 있다 따위 드립 치면 영혼이 분자 단위로 분해 될 때 까지 까일 것이다. 애초에 각각 아나키즘과 파시즘의 모태가 되는 좌파 반계몽주의와 우파 반계몽주의의 분화는 19세기 초중반에 조속하게 이루어졌고, 이후 역사적 아나키스트들은 오히려 전체주의가 고개를 처드는 곳 어떤 곳에서든 이에 대항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내던진 투사들을 대거 배출했다. 심지어 입만 열면 반파시즘, 대조국전쟁 선전하기 바쁜 소련의 정통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들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늑약으로 나치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때도 아나키스트들은 코민테른의 지령 따위 들은 척도 안하고 대파시즘 투쟁에 몰두했다
  96. 물론 전통적인 좌파 아나키스트적 관점에서는 이는 '자유조합주의'적 측면이 기존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먹혀 버린 결과라 비판 할 수도 있지만, 어쨋든 사상사의 계보에서 이런 관계성은 존재 한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97. 이 구절만으로는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움직일 때와 군중으로서 행동할 때 확연히 다른 행동패턴을 보인다. 이는 여러 사회 실험에서도 나타나며 화이트의 '집단의 도덕성은 집단의 구성원의 도덕성보다 떨어진다' 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이 경우 깨어있는 개인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로서 주변의 의사에 휘둘리지 말고 행동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앞뒤 문맥 추가바람.
  98. 더욱 자세한 논지는 최세진의 『내가 춤 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중 사이버 공간의 아나키즘 부분 참고. 아나키즘이 지닌 소영웅주의·엘리트주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비판받고 있다.
  99. 『액체근대』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의 사회학 고전으로 꼽힌다.
  100. 혁명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자유령과 스페인 내전 당시의 카탈로니아 아나키스트들은 미하일 바쿠닌(1차 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와 크게 싸운 뒤 독립해서 아나키스트 사상을 정립하였음)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으나 결국 이들은 실패했고 공산주의는 어쨌든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그들의 위성국가를 만들어내면서 그들 이념을 실현시킨 셈이니까... 뭐 공산주의도 현재 시점에서 결국은 다 망했지만
  101. 소련 초기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이 활동했으나, 아무런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답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여 축출당했다.
  102. 대신 이념적으로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프루동, 바쿠닌 같은 핵심적인 아나키스트 이론가가 어떤 주장을 했던간에 교조적으로 이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유연성은 장점. 현대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라 보아도 무방하지만 아나키스트라고 해서 바쿠닌주의자, 크로폿킨주의자는 아니다.
  103.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공산당 소속 CCOO, 사회주의 노동자당 소속 UGT에 다음가는 3번째로 큰 노조이다.
  104. CNT 자체의 군사조직이야 바르셀로나 5월 사건 이후로 점차적으로 공화국 정부군 전체 조직에 통합되어 갔지만 아라곤과 카탈루냐, 그리고 카스티야 라 누에바 지방의 자치 공동체들은 많으 수가 국가군에게 함락 될 때 까지 조직을 유지했으니 뒷통수 맞아서 바로 '망했다'라는 건 틀린 표현이다. 아무리 소련이란 물주를 등 뒤에 두고 있어도 스페인 공산당은 자생적 거대 정당으로서 급진 혁명파와 온건 사민주의 계열 모두를 포용했던 사회주의 노동당과 대중적 기반이 굳건했던 CNT를 아예 민간 사회 차원에서 때려 잡을 만큼의 세력이 없었다. CNT가 좌파 진영 내부에서든, 스페인 국가 전체에서든 대중적인 규모의 독자적인 영향력을 상실한건 프랑코 시대의 탄압에서 그 사후 민주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탄압과 내분을 여러 차례 거치며 점차적으로 약해진 것이다. 그리고 CNT의 비중과 규모가 크게 줄어든 건 맞지만 스페인 내에서 아나키즘 전체가 이제 죽어 없는 역사의 유물로 처분 하기에는 200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 이후 다시 스페인 정국을 뒤흔들며 부상하는 좌파 세력 내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영향력도 여전히 상당하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유사회주의의 어필이 죽었다기 보다는 굳이 CNT 같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서도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보는게 맞다
  105. 의외지만 아나키즘이 식민지 민족과 만난다면 되려 민족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으로 사상적 지평을 넒힌 단주 유림, 하기락, 신채호 등의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첨언으로 이런 식민 치하 조선의 민족주의적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국제 아나키스트들의 평가는 '식민지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입장' VS '동기야 어쨋든 권력 체계와 이의 근간인 민족주의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체 아나키즘의 탈을 썼던 다른 좌파 민족주의의 유형' 두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106. 주인공 브이의 상징이 Circle-A를 뒤집은 것이다.
  107.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권력을 가진 일진과 교사들이 악행을 저지르면서까지 그 권력과 조직을 유지하려고 벌이는 추태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아나키즘의 다른 이름이 탈강권주의, 반권력주의인걱을 생각해보면 아나키즘적인 학교를 추구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