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온 라푸슈나누 (Ion Lăpuşneanu) |
생년월일 | 1908년 12월 8일 |
사망년월일 | 1992년 2월 24일 |
국적 | 루마니아 |
출신지 | 부쿠레슈티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불명 |
등번호 | -[1] |
소속팀 | 비너스 부쿠레슈티(1926-1928) 바나툴 티미쉬아라(1928-1929) 스포르툴 스투덴체스크(1929-1930) 비너스 부쿠레슈티(1931-1935) FC CFR 부쿠레슈티(1935-1936) FC 라피드 부쿠레슈티(1936-1937) 글로리아 CFR 갈라치(1937-1938) |
국가대표 | 10경기 / 0골(1929-1932) |
감독 | 루마니아(1942-1943) 스포르팅 클럽 피테슈티(1946-1947) 테사토리아 루마니아 피테슈티(1947-1948) 폴리 티미쇼아라(1948-1949) FC 알제슈(1953) FC 알제슈(1955-1956) FC 알제슈(1958-1959) |
1 생애
1.1 선수 생활
라푸쉬나누는 1926년, 비너스 부쿠레슈티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바나툴에서 루마니아 풋볼 챔피언십 4강에 올라갔는데 여기에서 자신의 지분을 만들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활약으로 1929년에는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도 발탁이 되는 영광을 누렸고 초대 월드컵에도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국가대표팀에는 총 10경기에 출전하였는데 1932년 폴란드에게 5대 0으로 참패한 이후에는 다시 소집되지 못했다.
그의 전성기는 비너스 부쿠레슈티에서 찾아왔는데 이곳에서 그는 2차례의 디비자 1[2] 우승을 맛보았다. 하지만 1934년 이후에는 출전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팀을 나오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디비자 2의 글로리아 갈라치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였다.
1.2 감독
라푸쉬나누는 1942년, 전 대표팀 동료 에메리히 포글의 뒤를 이어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였다. 하지만 전쟁중이라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고, 잠시 디비자 B의 테샤토리아 피테스티 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감독으로서의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2 뒷이야기
- 라푸쉬나누는 법률가와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육체 단련 교육과 운동, 골키퍼에 관한 책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