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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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인호봉
생년월일1958년 03월 0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인천광역시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소속팀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4)
청보 핀토스 (1985)

1 야구선수 시절

한국프로야구 선수. 1982년 시즌 전설의 꼴찌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에이스. 인천고 시절 1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고 40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있었지만 정작 프로에서는 삼진보다는 기교파 투수로 스타일을 바꿔 플레이 하였다.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야구 한국전력 야구팀을 거쳐 1982년 연고팀 삼미에 입단했는데, 팀의 첫 경기이자 자신의 데뷔전인 3월 28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전에 선발 등판하여 삼성의 강타선을 3실점으로 틀어막으며 5대 3으로 완투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당시 능지처참 수준의 마운드 사정으로 인해 나름 팀의 에이스였음에도 그 전날 완투하고 다음 날 중간 계투로도 나갔을 정도로 혹사당했다. 그 해 팀 경기의 거의 절반인 38경기에 등판하여 무려 133이닝을 던지며 분투했으나 5승[1] 10패 2세이브, 평균자책 6.03으로 처참하게 털렸다(...). 지못미

에이스 답게 팀의 전체 승리의 3분의 1을 거두었지만... 이 해 삼미의 종합 성적은 15승 65패(승률 0.188) 이었다.

이듬해인 1983년, 삼미는 장명부임호균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지만 정작 인호봉은 전해의 혹사 탓이었는지 겨우 10경기에 출장하여 1승 2패, 평균자책 4.26에 그쳤다.[2]

그 이후 점점 등판횟수가 줄어들면서 팀에서의 입지도 좁아졌고, 결국 1985년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통산 성적은 4시즌 60게임 등판에 194이닝, 6승 12패 2세이브, 평균자책 6.03.

2 은퇴 후

은퇴후 팀 동료이던 장정기의 소개로 인천 제일유리에 입사, 현재 사장직을 맡고 있다.[3][4] 우량 중소기업인으로 업계에서도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아들 인진교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야구를 하고 있다. 2012년 인천고 졸업 후 제주국제대로 진학.

3 기타

마구마구2 카카오에서는 인호이란 가명으로 등장.삼미덱에선 82/83/84 선발로 나오나 썩 뛰어난 능력치는 아닌데다 기교파라는 부분이 무색하게 체력만 뛰어나게 나온다.정작 이 기교파가 두드러지는건 청보덱으로 옮겨와서부터인데 릴리프로 보직변경이 된데다 모든 릴리프중 가장 컨트롤이 높다! 만랩만 찍어놔도 94이기때문에 컨트롤 장비 조금만 덧대어놓거나 청보덱 플러스효과를 쓰면 100 넘는것도 매우 쉬운편.청보덱의 불펜진은 노멀이상이 없기 때문에 이게 매우 두드러져 보인다.

단지 구위가 정말 약한데다 체력이 심각하게 약해서 1이닝 이상 운용이 힘들기때문에 마무리로 되어있는 곽경운[5]과 함께 더블스토퍼로 운용하거나 필승조 셋업맨으로 운용하면 엄청나게 빈약한 청보 덱에서 그나마 나쁘지 않은 편.

인호랑은 아무 관계가 없다(...).

동료였던 감사용을 다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류승수가 그를 분했다.

3.1 통산 기록

연도소속팀경기이닝평균자책점자책점피안타피홈런사사구탈삼진
1982삼미 슈퍼스타즈381336.569751021491911541
198310384.26181203661814
1984817⅔5.6011000142184
연도소속팀경기이닝평균자책점자책점피안타피홈런사사구탈삼진
1985청보 핀토스45⅓6.75400010111
KBO통산
(4시즌)
601946.0313061222092815260
  1. 그래도 팀 최다승 기록이었다(...).
  2. 그래도 38이닝이나 던졌다. 1게임당 3~4이닝은 마운드를 책임졌다는 얘기.
  3. 제일유리는 과거 한국실업야구에 참가한 실업팀을 운영하기도 했다. 실업야구가 해체한 2003년에 팀도 해체되었다.
  4. 장정기는 같은회사 전무로 재직중.
  5. 마구마구2 카카오에서 사용되는 김기태(재일교포)의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