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고등학교 야구부

2016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강원&인천
(전반기 / 후반기)
강릉고등학교50px강원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설악고등학교
원주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제물포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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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고등학교 야구부
(Inchon High School)
창단1917년
소속 리그인천·강원권
감독계기범
연고구단SK 와이번스
우승 기록[1]5회

대회우승준우승4강
대통령배1회(2004)1회(1985)5회(1973, 78, 79, 94, 2003)
청룡기2회(1953, 54)3회(1955, 57, 58)1회(1985)
황금사자기2회(1954, 89)3회(1955, 77, 79)-
봉황대기-2회(1979, 96)2회(1976, 90)
협회장기---
1953년, 1954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상업중등학교[2]인천고등학교동산고등학교
1954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남중등학교[3]인천고등학교경남고등학교
198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동산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충암고등학교
2004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대구고등학교인천고등학교동성고등학교

1 연혁

인천야구의 맏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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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인천상업

일제시대인 1917년에 창단해서 전신격인 인천상업학교가 고시엔에도 출전했을 정도로 일제시대 한국 야구를 선도했던 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1950년대 인천야구의 전성 시대에 그대로 폭발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재개된 1953년 청룡기에서 인천이 배출한 최고의 에이스 서동준을 앞세워 우승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인천고는 1954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모두 석권하면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부산에서 열린 쌍룡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쉬울 정도의 성적이었다. 이는 당시 최고의 투수였던 서동준과 훗날 인천야구의 대부 소리를 듣는 유격수 김진영의 활약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1955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우승에 도전하지만, 1955년 청룡기에서는 동향의 라이벌 동산고에게 패하면서 무릎을 꿇었고, 황금사자기에서는 경남고에 지면서 모두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 때를 기점으로 동산고의 전성기가 열려 동산고의 청룡기 3연패를 지켜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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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균

그리고 동산고와 함께 사이좋게 30년 간 우승 없이 망했다(...) 그래도 동산고보다는 사정이 좀 나아서 1970년대 간간히 4강에 오르기도 하고, 결승전에도 올라가기도 했다. 훗날 삼미 슈퍼스타스의 주축이 되는 임호균,양승관 ,최계훈 같은 선수가 바로 인천고 출신이다. 그나마 가장 정상에 가까웠던 시절은 1979년으로 에이스 최계훈의 역투를 앞세워 정상에 도전했지만, 대통령배 4강과 대붕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전국체전 모두 준우승하는 그야말로 콩라인의 전설을 쓰고 말았다.

인천고가 다시 정상을 차지한 것은 1989년으로 에이스 허호석[5]최상덕을 앞세워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다. 사실 1989년 인천고는 봉황대기에서 초반 탈락할 정도로 그리 강한 팀은 아니었지만, 동산고가 인천 지역 대표가 아니라 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황금사자기에 출전해서 인천 지역 대표로 운 좋게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극적으로 우승에 성공하며 35년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복귀했다.

1996년 이근용[6] 김수경을 앞세워 봉황대기 결승에 올랐지만 정대현의 군산상고에 패한 후, 2000년대 초반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하며 고교무대의 정상에 다시 올랐다. 2004년 2학년 배터리 김성훈-이재원을 앞세워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한 것. 여세를 몰아 투수 3인방(김성훈-김용태-김영롱)과 포수 이재원, 내야수 김남형, 외야수 이명기 등 정말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고, 당시 고교 팀을 전력을 다해 경기를 벌였던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우승하며, 2005년을 인천고의 해로 만드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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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지만, 대통령배 8강에서 대회 준우승팀 신일고에게 패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황금사자기에서 김광현 한 사람에게 무너지면서 안산공고에게 지며 1회전 탈락하고 만다. 최후의 기회였던 봉황대기에서 대회 우승팀 유신고에게 지면서 인천고 최고의 전성기가 될 것 같았던 2005년이 다소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 뒤로 끝나지 않는 암흑기
4강 이상의 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다.

2 최근 근황

인천고등학교의 전통중 하나가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경기가 있으면 학교 등교가 아닌 야구장 등교로 하여 전교생이 모두 관람을 하는 것이었는데, 특목고의 남발로 인해 일반고인 인천고의 대학 진학 질이 감소하자 왕중왕전 4강부터만 구경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우승을 했던 2004년 이후로 진출을 하지 못해서 전통이 무색해지고 있다. 그나마 미추홀기 야구대회가 있던 시절에는 우승을 하면서 그 시기에 학교에서도 단체로 숭의야구장에 응원을 나갔던 적이 있긴 하지만, 주말리그 이후에는 그저 안습. 이제 야구장 가는 일이 거의 없이 그대로 졸업하고 있다.(...)

2014년에는 청룡기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였다.

2015년 6월 25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황금사자기 경기에서 12:4로 광주 진흥고를 이겼다. 경기 후에 광주진흥고의 한 선수에게 인천고 선수가 얼굴을 맞았다.

3 지역 학교와의 라이벌리

3.1 vs 동산고등학교

인천고 야구부가 인천에서 최초로 학생 야구단을 창단했고 해방 직후 동산고가 인천에서 두 번째로 학생 야구단을 창단했다. 두 학교는 60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공존했고 1982년 제물포고가 팀을 창단하기 전까지는 인천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유이한 야구부였기 때문에 강력한 지역 라이벌로 성장했다.

특히 1950년대 고교야구 초창기 시절에는 두 학교가 한국 고교야구의 중심이었다. 1953년부터 인천고가 청룡기 2연패를 먼저 했고, 1955년 인천고의 3연패 시도를 동산고가 저지했다. 동산고는 1955년부터 청룡기에서 3연속 우승하면서 청룡기를 영구보존하게 됐다. 인천고 입장에서는 청룡기를 영구보존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얻었지만 하필이면 지역 라이벌인 동산고가 이를 저지하고 청룡기를 영구보존했기 때문에 동산고가 불구대천의 원쑤가 된 셈.

이후에도 라이벌 의식은 강해졌다. 특히 메이저 전국대회에 인천 대표(1981년 직할시 승격 이전에는 경기도 대표)로 참가하려면 지역예선을 거쳐야 하는데 지역예선에서 맞붙는 팀은 항상 인천고와 동산고였다.[8] 이러한 환경 탓에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강력한 라이벌리가 형성됐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라이벌리의 정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꽤 어두운 흑역사도 있었다. 1975년 5월 23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경기도 예선에서 두 학교가 맞붙었는데 경기 도중 집단 난투극이 일어났다.

사연인즉슨... 이날 경기는 6회까지 동산고가 인천고에 7대0으로 크게 앞서다가 6회말 인천고가 7점을 따라잡으며 7대7 동점을 이뤘다. 그러자 동산고는 일몰 서스펜디드 게임을 노리기 위해 지연 작전으로 경기를 끌고 갔다. 당시는 일몰 이후에는 경기를 중단하고 다음날 경기를 재개하는 서스펜디드 게임이 빈번했던 시절이었다.[9]

동산고의 지연 작전은 이러하다. 투수가 1루수를 향해 무제한 견제구(...)를 던지는가 하면, 야수들이 번갈아서 타임을 걸고 스파이크 끈을 풀었다 다시 매기도 했고, 포수가 난데없이 덕아웃으로 들어가서 프로텍터를 고쳐 입기도(...) 했다.

동산고의 지연 작전에 빡친 인천고 응원단은 그라운드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고 일부는 유리병과 돌을 그라운드로 던졌다. 문제는 당시 심판들인데 동산고의 이러한 지연 작전에 구두 경고만 보냈을 뿐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결국 인천고의 한 재학생이 동산고 선수들을 향해 욕을 퍼부으며 그라운드로 난입(...)했고 동산고 선수들은 이 학생을 집단 구타했다. 그러자 학우의 구타에 빡친 인천고 응원단이 그라운드로 뛰어들었고 이에 질세라 동산고 응원단도 난입해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중앙 일간지에 기사도 났다.당시 인천고 재학생이셨던 분의 증언도 있다. 7분 55초부터 들어보자.

결국 이 싸움의 여파로 두 학교는 청룡기 대회 출전을 포기했고 이 해의 청룡기 대회는 경기도 대표가 출전하지 않은 채 열렸다. 1975년 5월 30일 동아일보 기사 '인천야구 자성의 금족령'

이후에도 인천고와 동산고는 암묵적으로 강력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으며 숭의야구장에서 전국대회 지역예선이 열리던 날에는 양교 모두 1, 2학년 학생들을 응원단으로 총동원해 응원전을 펼치기도 한다. 특히 지역예선은 재학생은 물론 나이 지긋한 선배 졸업생들도 와서 응원을 하곤 했다.

3.2 vs 제물포고등학교

인천고와 제물포고는 지역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다. 운동부 때문에 생긴 라이벌이 아니라 학교 자체 간의 자존심 싸움이다.[10]

원래 제물포고의 뿌리는 1945년 개교한 인천중학교다.[11] 인천중학교가 인천의 일류 대표 중학교로 명성을 날리자 인천고는 맞불 형식으로 1960년 병설 중학교를 만드는데 이것이 인천중학교다. 상인천중학교의 개교 당시 소재지가 상인천 지역[12]이었기 때문에 상인천이라는 교명이 붙었다는 설과 당시 일류 중학교였던 인천중학교보다 앞서겠다[13]는 취지에서 상인천이라는 교명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인천중학교가 1972년 정부의 중학교 입시 폐지와 평준화 정책 영향으로 폐교되자 두 학교의 자존심 싸움은 고등학교로 넘어갔다. 인천의 대표 명문으로 명성을 날리던 인천고와 제물포고는 한 때 "누가 서울대를 더 많이 보냈느냐?"를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했다.[14]

그러다가 1982년 제물포고가 인천고에 대항하기 위한 방안으로 야구부를 창단했다. 자연스럽게 자존심 싸움의 현장은 야구장으로 넘어왔다. 문제는 신생팀인 제물포고의 실력이 인천고에 한참 못미쳤다는 점. 일제 강점기 때부터 야구부를 운영한 학교와 1980년대에 창단한 학교가 비교의 대상이 될 리는 없었다. 그래도 인천의 진짜 명문이 누구냐를 두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었던지라 양 교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물론 10번 경기를 하면 8~9번은 인천고가 이기는 형국. 그것도 콜드게임(...). 제물포고 안습

두 학교 대결의 백미는 1991년부터 시작된 양교 정기전. 매년 5~6월에 열리는 인천고-제물포고 정기전은 야구, 배구, 농구 등의 종목에서 우열을 가리고 있다. 이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단연 야구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인천고가 제물포고에 한참 앞섰지만 제물포고 동문회가 야구부에 공격적인 후원을 단행하면서 제물포고의 성적이 많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 정기전은 2014년 이후로 단 한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현재는 서로 엇비슷한 전력을 두고 있다.

국가대표 축구에 비유하면 제물포고는 중국, 인천고는 일본, 동산고는 한국에 비유하면 얼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15]

4 출신 선수[16]

이름포지션프로입단경력
김진영투수-육군 경리단-교통부-철도청
김무관내야수,외야수1982년 원년 멤버건국대-삼미/청보(1982~1985)
이철성내야수1982년 원년 멤버인하대-삼미/청보(1982~1986)
임호균투수1983년 1차 지명동아대-삼미(1983)-롯데(1984~1986)-청보/태평양(1987~1990)
김진우포수1983년 1차 지명인하대-삼미/청보/태평양(1983~1988)-MBC(1989)
양승관외야수1982년 원년 멤버인하대-삼미/청보/태평양(1982~1989)-LG(1990)
인호봉투수1982년 원년 멤버한국전력-삼미(1982~1985)
최계훈투수1984년 1차 지명인하대-삼미/청보/태평양(1984~1986, 1990)
김동기포수1986년 1차 지명인하대-청보/태평양/헌대(1986~1996)
김경기내야수1990년 1차 지명고려대-태평양/현대(1990~2000)-SK(2000~2001)
권명철투수1992년 2차 1라운드인하대-OB(1992~1998)-해태(1999)-SK(2000~2002)-두산(2003~2004)
장원진내야수1992년 2차 4라운드인하대-OB/두산(1992~2008)
김홍집투수1993년 1차 지명단국대-태평양/현대(1993~2001)-한화(2002~2003)
최상덕투수1994년 1차 지명홍익대-태평양(1994~1995)-해태/KIA(1996~2005)-LG(2006)-SK(2007~2008)
-한화(2009)
서한규내야수1998년 2차 2라운드홍익대-상무(1996~1998)-롯데(1998~2002)-현대(2002~2007)
정경배내야수1996년 2차 6라운드홍익대-삼성(1996~2001)-SK(2002~2009)
최원호투수1996년 1차 지명단국대-현대(1996~1999)-LG(2000~2010)
김우석내야수2002년 2차 1라운드홍익대-포스틸 야구단(1998~1999)-상무(2000~2001)-LG(2002~2007)-삼성(2008)
윤재국외야수1998년 2차 1라운드경남대-쌍방울(1998~1999)-SK(2000~2002)-롯데(2002~2003)-두산(2004~2007)
-한화(2008~2009)-SK(2009)
박진만내야수1996년 고졸우선 지명현대(1996~2004)-삼성(2005~2010)-SK(2011~2015)
김수경투수1998년 고졸 우선지명현대(1998~2007)-넥센(2008~2012)-고양 원더스(2014)
정재복투수1999년 2차 6라운드인하대-LG(2003~2013)-넥센(2014~2015)
김광수투수2000년 2차 2라운드LG(2000~2011)-한화(2011~2015)-KIA(2015~ )
이한진투수2002년 1차 10라운드건국대-SK(2006~2015)
김성훈투수2006년 2차 1라운드SK(2006~2007)-삼성(2011)-한화(2014)
이명기외야수2006년 2차 6라운드SK(2006~ )
이재원포수2006년 1차 지명SK(2006~ )
김남형외야수2007년 2차 3라운드현대(2007)-넥센(2008~2014)
명재철투수2011년 신고선수한양대-삼성(2011~2012)-한화(2013)
박윤내야수,외야수2007년 2차 5라운드SK(2007~2015)-넥센(2016~)
김재환내야수2008년 2차 1라운드두산(2008~ )
국해성외야수2008년 신고선수두산(2008~ )
최금강투수2012년 신고선수 입단인하대-NC(2012~)
강지광외야수 2009년 2차 3라운드LG(2009~2013)-넥센(2014~)
허정협외야수2015년 육성선수 입단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넥센(2015~)
김훈영내야수2013년 신고선수 입단강릉영동대-LG(2013~)
박민호투수2014년 2차 3라운드인하대-SK(2014~ )
양원혁내야수2014년 육성선수 입단인하대-LG(2014~)
이창진내야수2014년 2차 6라운드건국대-롯데(2014~2015)-kt(2015~)
문경찬투수2015년 2차 2라운드건국대-KIA(2015~)
윤대경투수2013년 2차 7라운드삼성(2013~ )
장시윤내야수2013년 7라운드넥센(2013~ )
박한길투수2014년 2차 4라운드한화(2014~2015)-롯데(2016~)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2. 1950년 우승팀으로 1951년과 1952년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미개최
  3. 1949년 우승팀으로 1950년~1953년 대회는 한국전쟁으로 미개최
  4. 한국야구 사상 통틀어서도 가장 오래된 야구부 중 한 팀이기도 하다.
  5. 프로가 아니라 실업야구로 진출해서 프로무대 기록은 없다.
  6. 현대97년 지명
  7.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대회 상대팀이 부산고였는데 사진에서 보듯 부산고의 라인업도 화려했다. 그 당시 1번타자 손광민이 바로 오늘의 손아섭. 손용석도 라인업에 있다.
  8.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인천고등학교와 인천체육고등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했지만 이 팀들의 실력은 두 학교에 절대적으로 밀렸다. 결국 동인천고와 인천체고의 야구부는 얼마 못 가 해체됐다.
  9. 숭의야구장에 야간 조명 시설이 설치된 것은 프로야구가 창설되던 1982년이었다. 물론 프로야구만을 위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숭의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보조경기장이었다. 결국 세계대회 개최를 위해 조명탑을 세운 셈이다.
  10. 물론 두 학교 모두 관립과 인천부립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현재도 공립 학교다.
  11. 현재 인천 연수동에 있는 그 인천중학교다. 폐교 전에는 제물포고와 같이 있었다.
  12. 과거 인천고와 상인천중은 과거 상인천이라고 불리던 배다리철교 앞에 있었다가 1970년대에 현재의 주안동과 간석동으로 분리 이전했다. 인천고와 상인천중이 떠난 자리에는 인천정보산업고등학교가 들어섰다.
  13. 인천중학교보다 위에서 노는 학교라서 상인천중학교(...)
  14. 고교 평준화 이전 시절 두 학교의 수준은 인천에서도 최상위 톱클래스에 속했다.
  15. 제물포고(중국)과 인천고(일본)는 야구(축구) 말고 외적인 면(지역 명문학교로서의 라이벌리) (정치, 역사)에서 더 크다는 점. 그리고 동산고(한국)와 인천고(일본)은 야구(축구)로 따져봐도 수십년간 치열한 라이벌이었다는 점. 그래도 미세하나마 동산고(한국)쪽이 더 커리어가 좋다는 점, 그리고 동산고(한국)이 지리적으로도 다른 두 학교(국가) 사이에 끼어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제물포고(중국)이 학교역사(역사, 국력)면에서는 큰 족적을 남겼지만 야구(축구)에서는 별볼일 없었다는것도 공통점이라 하겠다. 그러면 정민태차범근이고 류현진박지성이 되려나 이재원카가와 신지??
  16. 나무위키에 등록된 선수 한정. 졸업 연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