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연대표

년도항 목명 칭적용/발명자국 적비고
1500(?)좀 더 구체적인 구상 등장-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이탈
리아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Codex Atlanticus)[1]
1790최초의 자전거셀레리페르
(celerifere)
콩트 드 시브락
(Conte de Sivrac)
프랑스드라이지네와 최초의 자리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817최초의 조향계 부착드라이지네
(Draisienne)[2]
카를 폰 드라이스
(Baron Karl von Drais)
독일
1839최초의 페달-커크패트릭 맥밀런
(Kirkpatrick MacMillan)
스코틀랜드페달-크랭크구동[3]
1860크랭크 구동벨로시페드
(velocipede)[4]
피에리 미쇼
(Pierre Michaux)
프랑스55~60년[5]
1866나무안장 개선브룩스 안장존 볼트비 브룩스
(John Boultbee Brooks)
영국최초는 아닐 듯[6]
1866금속프레임[7]-에드워드 쿠퍼영국
1868고무타이어-클레망 아데르
(Clement Ader)
프랑스그냥 나무 바퀴에 고무만 씌운 형태이다.
1868크랭크-체인-에두아르트 마이어
(Eduard Meyer)
앙드레 길메
(Andre Guilmet)
독일,
프랑스
[8]
1869변속기 개발뒷 드레일러에드먼드 호킨스영국3단
1869볼베어링 특허-쥘 피에르 쉬리르
(Jules Pierre Suriray)[9]
프랑스자전거 적용 특허 획득
1869볼베어링 양산-프리드리히 피셔
(Friedrich Fischer)
독일쉬리르의 특허사용
1870하이 휠 등장하이 휠
(High-Wheel)[10]
-영국속도경쟁으로 인한 결과[11]
1870하이 휠에리얼
(Ariel)[12]
제임스 스탈리
(James Starley)
월리엄 힐먼
(William Hilman)
영국제조특허획득
1870스포크 개량탄젠트스포크
(Tangent Spoke)
제임스 스탈리
(James Starley)
영국이전까진 래디얼[13]
1876브레이크 개선캘리퍼 브레이크브로웻, 해리슨
(Browett, Harrison)
영국당연 싱글피벗
1878하이 휠컬럼비아
(Columbia)
앨버트 어거스터스 포프
(Albert Augustus Pope)
미국미국 독점 생산
1877크랭크-체인캥거루
(Kangaroo)
윌리엄 힐먼
(William Hillman)[14]
영국멀티플라이기어
1885크랭크-체인로버 세이프티
(ROVER Safety)
존 켐프 스탈리
(John Kemp Starley)
월리엄 힐먼
(William Hillman)[15]
영국현대식 자전거의 완성[16]
1885가황고무발견가황고무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미국알다시피 굿이어는 발명만 했다.[17]
1885제조사비앙키
(Bianchi)
에두아르도 비앙키
(Eduardo Bianchi)
이탈
리아
첼레스테 그린이 정말 이쁘다.
1886프레임 생산기술 개선-만네스만
(Mannessman)
독일파이프[18]
1888제조사랄레이
(Raleigh)[19]
프랭크 보든
(Frank Bowden)
영국퀵실버에 나오는 그 자전거들[20]
1888튜브 타이어던롭
Dunlop)
존 보이드 던롭
(John Boyd Dunlop)
영국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엉덩이가 편해졌다.[21]
1891로드경기보르도-파리
(Bordeaux-Paris)
빌로 스포
(Veloce Sport)[22]
프랑스당일치기 가장 긴 경기[23]
1891클린처 등장미쉐린
(Michelin)
에두아르, 앙드레 미슐랭
(Edouard, Andre Michelin)
프랑스형제[24]
1892협회ICA
(International Cycling Association)
-국제
기구
최초의 협회[25]
1896프리휠 적용-에른스트 삭스
(Ernst Sachs)
독일이후 스램에 인수
1896로드경기파리-루베
(Paris-Roubaix)
-프랑스[26]
1896-자전거 도입고희성(高羲誠)[27]조선[28]
1899프레임 혁신페데르센 자전거[29]미카엘 페데르센
(Mikael Pedersen)
영국[30]
1899제조사슈윈 앤 컴퍼니[31]이그나스 슈윈
(Ignaz Schwinn),
아돌프 아놀드
(Adolph Arnold)
미국아름다운 비치크루저가 탄생한다.
1903로드경기투르 드 프랑스
(le Tour de France)
로뚜
(L'Auto)[32]
프랑스프랑스 일주경기[33]
1900협회UCI[34]-국제기구[35]
1909로드경기지로 디탈리아
(Giro d'Italia)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La Gazzetta dello Sport)[36]
이탈
리아
이탈리아 일주경기[37]
1910변속기뒤 디레일러폴 드 비비
(Paul de Vivie)
프랑스이 경우에도 불편함을 인식하여 개발[38]
1913로드경기론드 판 플란데렌
(Ronde van Vlaanderen)[39]
-독일파리-루베와 라이벌 같은 관계이다.[40]
1915접이식경보병용 접이식[41]에두아르도 비앙키
(Eduardo Bianchi)
이탈
리아
군용[42]
1928변속기생플렉스
(Simplex)
루시앵 쥐
(Lucian Juy)
프랑스풀리와 플레이트 일체형.[* 오스기어처럼 페달을 앞으로 계속 밟으면서 변속가능)
1920경기경성시민대운동회엄복동(嚴福童)조선링크참조
1930변속기상피옹 드 프랑스
(Champion de France)
루시앵 쥐
(Lucian Juy)
프랑스기성품 개량[43]
1930리컴번트벨로카
(Velocar)[44]
찰스 모셰
(Charles Mochet)
프랑스벨로카는 네바퀴 자전거라는 뜻.[45]
1931변속기비토리아
(Vittoria)
카발리에 우피키알레 안토니오 니에두
(Gavaliere Ufficiale Antonia Neiddu)
이탈
리아
3단변속[46]
1933벌룬 타이어슈윈 엔 컴퍼니이그나스 슈윈
(Ignaz Schwinn),
아돌프 아놀드
(Adolph Arnold)
미국MTB의 모태
1933프레임엑셀시어
(Excelsior)
슈윈
(Swchwinn)
미국MTB 프레임의 모태[47]
1933[48]퀵릴리즈퀵릴리즈
(Quick Release)
제튤리오 캄파뇰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
리아
캄파뇰로 설립[49]
1934변속기오스기어
(Osgear)
쉬페르 샹피옹
(Super Champion)[50]
이탈
리아
4단[51]
1935변속기비토리아 마르게리타
(Vittoria Margherita)
카발리에 우피키알레 안토니오 니에두
(Gavaliere Ufficiale Antonia Neiddu)
이탈
리아
3단변속[52]
1935로드경기부엘타 에스파냐
(Vuelta a España)
후안 푸홀
(Juan Pujol)[53]
에스
파냐
에스파냐 일주경기[54]
1936변속기캄비오 코로사
(Cambio Corosa)[55]
제튤리오 캄파뇰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
리아
비토리아 개조수준
1938프레임엑셀시어
(Excelsior)
슈윈
(Swchwinn)
미국스프링포크 도입[56]
1946변속기캄비오 코로사
(Cambio Corosa)[57]
제튤리오 캄파뇰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
리아
본격 개발
1949변속기파리-루베
(Paris-Roubaix)[58]
제튤리오 캄파뇰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
리아
코로사 개조수준
1949변속기허큘레즈 허레일러
(Hercules Heraileur)
???영국인덱스 방식[59]
1951변속기그랑/수페르 스포르트
(Gran/Super Sport)[60]
제튤리오 캄파뇰로(Getullio Campagnolos)이탈
리아
현대식 드레일러의 등장[61]
1959변속기앞 드레일러제튤리오 캄파뇰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
리아
평형사변형 방식[62]
1961제조사몰튼
(Moulten)
알렉스 몰튼
(Alex Moulton)
영국고성능 미니벨로[63]
1963BMX[64]스팅레이
(Stingray)[65]
슈윈
(Swchwinn)
미국세로운 프레임[66]
1964변속기선투어 그랑프리
(SunTour Gran-Prix)[67]
오자키 노부오
(尾崎 信夫(?), 선투어)[68]
일본캠피의 그랑 스포르트보다 우월
1970년 초MTB[69]클링커
(Clunker)[70]
켈리포니아 마린 카운티미국산에서 경주시작[71]
1974그룹셋듀라에이스
(Dura-Ace)[72]
시마노
(Shimano)
일본로드용[[* 변속기는 여전히 더듬이. STI는 약 10년 이후 선보임. 선투어와 함께 일본의 공업부품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된다. 게다가 이 시절부터 역시 선투어와 함께 신나게 유럽의 쟁쟁한 회사들을 케발라버리는 시발점이 되는 그룹셋이기도 하다. 초창기의 그룹셋에 대한 카탈로그 등은 쉘던 브라운(Sheldon Brown)옹의 Dura-Ace Timeline에 잘 나와있다.[br]]]
1974제조사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마이크 신야드
(Mike Sinyard)
미국부품으로 시작[73]
1976MTB 경기리팩
(Repack)[74]
마린 카운티 벨로클럽미국최초의 산악경기[75]
1977MTB브리저
(Breezer)
조 브리즈
(Joe Breeze)
미국MTB 기초를 다짐[76]
1979제조사마운틴 바이크
(Mountain Bike)
게리 피셔, 찰스 케니미국MTB 전문회사[77]
1980년 초BMX프레임밥 하로
(Bob Haro)
미국BMX 전용 프레임[78]
1981MTB스텀점퍼
(Stumpumper)
스페셜라이즈드
(Specialized)
미국MTB 본격양산[79]
1983BMX협회발족미국 프리스타일 연합
(American Freestyle Association)
미국정식경기개최[80]
1983제조사게리피셔
(Garyfisher)
게리피셔
(Garyfisher)
미국상호변경[81]
1989변속기레피드 파이어
(Rapidfire)
시마노
(Shimano)
일본STI의 시초[82]
1989변속기레코드 OR
(Record-OR)[83]
캄파뇰로
(Campagnolo)[84]
이탈
리아
MTB용
1990변속기STI[85]시마노
(Shimano)
일본통합레버 등장[86]
1992변속기에르고 파워
(Ergo Power)
캄파뇰로
(Getullio Campagnolos)
이탈
리아
STI와 유사[87]
2012인 물몰튼
(Moulten)
알렉스 몰튼
(Alex Moulton)
영국운명[88]
1920.04.09.
2012.12.09.
  1. 사기성이 있긴 하지만, 워낙 다빈치가 엄친아라...
  2. 독일어는 Laufmaschine. 달리는 기계라는 뜻
  3. 앞 바퀴 쪽 페달을 밟으면 양쪽에 달린 긴 봉을 통해 뒷바퀴의 크랭크를 구동하는 방식. 구조가 복잡하고 쉽게 고장나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4. 프레임과 휠이 철제였기 때문에 당시 자갈길 수준의 저급한 포장도로를 달리면 뼈를 뒤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한다. 영국은 자존심 때문에이를 비하하는 의미로 본쉐이커(Boneshaker)라고 불렀다.
  5. 아들인 에르네스 미쇼(Ernest Michaux)와 함께 지속적으로 개량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벨로시페드는 몇 안되는데, 이는 프러시아 전쟁과 1차 세계대전 와중 철의 부족으로 모조리 압류, 용광로에 들어가 총을 만드는데 쓰였다.
  6. 이전부터 안장에는 여러가지 소재를 사용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브룩스의 경우 19세 때 구한 자전거의 나무안장이 너무나도 불편한 나머지 아버지의 승마용 안장에서 착안, 자전거에서도 편안한 안장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한다. 진정한 덕업일치.
  7. 당시까지 자전거를 제작하는데 사용된 소재는 대부분 목재였다
  8.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발발로 두 사람의 협력이 끝났고 약 20년 후 스타일리가 관련 기술을 독점했다.
  9. 프랑스 Parisian bicycle의 기계공.
  10. High Wheel. 페니파싱(Penny-farthing), 오디너리(Ordinary) 등으로 불림. 1870~1890년대 표준 자전거였으나 속도와 형상에 따른 사고 위험성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었다. 런던 시내에서는 오디너리를 타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여성은 보다 안전한 세발, 네발 자전거(tricycles, quadracycles)를 선호했다.
  11. 당시 자전거에는 아직 기어는 커녕 체인 드라이브 개념조차 적용되지 않았고, 요즘 애들 타는 세발 자전거처럼 앞바퀴에 페달이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앞바퀴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엔진은 열외. 한편 이 자전거가 크게 유행하면서 영국의 자전거 산업이 크게 성장 및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가격은 당시 일반 노동자의 6개월치 월급 정도였다.
  12. 천왕성.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속도와 안정성을 향상시켜 일반적인 자전거라는 뜻의 오디너리(Ordinary)라 불리게 되었다.
  13. 허브의 중심 축에서 림까지 지름 축선을 타고 직선으로 스포크를 배열하는 방식이 래디얼이다. 래디알 방식은 측면에서 가해지는 응력에는 강하나 허브 축에서 자전거의 진행방향/역방향으로 가해지는 힘에 대한 비틀림에는 약하며, 힘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를 개선한 것이 허브 축으로 부터 약 90˚ 정도의 측면에서 림으로 뻗는 크로스방식으로, 뒷 바퀴의 구동축(거의 대부분 오른 쪽)과 디스크 브레이크를 사용할 경우 디스크브레이크 측에서 사용하는 스포크 배열이다. 정식 명칭은 탄젠트 배열(Tangential lacing pattern)이나 스포크끼리 겹치기 때문에 크로스 방식이라 흔히 부른다. 크로스되는 스포크 수에 따라 2크로스, 3크로스 등으로 부른다.
  14. 제임스 스탈리(James Starley)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음
  15. 제임스 스탈리의 조카. 당시 재봉틀 공장 운영. 동업자인 조슈아 터너(Joshiah Turner)가 끌고온 벨로시페드를 보고 힐먼과 같이 아리엘을 만듬.
  16. 산업혁명 발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남과 겹치는 등 일종의 사회적 변화까지 몰고오는 계기가 된다. 그동안 오디너리 등 기존의 자전거가 중, 상류층의 오락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세이프티 이후 저렴한 가격으로 노동자로부터 주부에 이르기 까지 누구나 소유할 수 있으며, 특히 여성의 패션-빅토리아시대때는 풍성한 치마류를 입었기 때문에 위에 나오는 세발, 네발 자전거를 탈 수 밖에 없었음-에도 스커트 리프터(스커트를 한쪽으로 당겨 고정하는 끈달린 클립. 치마가 체인에 말리는 것을 방지), 클로트(Culottes, 치마바지. 원래는 승마용. 자전거용으로는 더 폭이 좁고 바지에 가깝다. 자전거 탈 때는 별도로 각반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고, 산업화에 뒤따른 도시화로 노동자들이 주말에 시골을 찾아 하이킹을 하거나 아예 사회계층을 넘나드는 클럽 모임 등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된다. 자전거가 일종의 사회적 혁명까지 일으킨 셈.
  17. 별 상관 없긴 하지만, 타이어(Tire)는 굿이어의 아들인 찰스 굿이어 주니어의 딸(즉 손녀다...)이 자동차에 부착된 고무를 보고 피곤하다(tire)말한 것이 그냥 이름이 되어버렸다는 썰이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는 민간어원설.
  18. 당시 프레임은 두들겨 만들었다. 만네스만 형재는 요즘의 방식인 파이프-러그를 사용할 수 있는 파이프를 개발하였고 이를 자전거 제조사들이 적용하면서 자전거가 더 가벼워졌다. 그래봤자 20kg대 한편, 만네스만은 수도파이프부터 자동차 변속기까지 철강재가 들어가는 부문은 다 다루는 회사.
  19. Raleigh Bicycle Company
  20.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 중 하나.
  21. 던롭의 외아들이 당시 금속으로 된 휠로 만든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다 넘어져 크게 다치는 바람에 개발하게 되었다고. 이전까지 오디너리든 세이프티든 달고 나오는 휠들은 내부에 튜브가 들어있어 공기 주입이 가능한 현대의 타이어와 달리 그냥 통짜 고무가 붙어있었었다. 이 때 개발된 것은 타이어-튜브-휠 일체형이였다. 튜브 일체형 타이어를 휠에 본드로 부착한 것. 요즘으로 따지면 튜블러의 원조 쯤 된다.
  22. 보르도 지역의 자전거 클럽 첫 경기 때 대략 600km를 밤 새도록 달렸다 한다. 첫 우승자 조지 필킹턴 밀스(George Pilkington Mills)의 기록은 26시간 36분 25초...ㅎㄷㄷ 후원사는 르 쁘띠 쥬흐날(Le Petit Journal).
  23. 경주거리가 무려 560km나 된다. 서울-부산 거리보다 멀다. 게다가 이걸 그냥 하루만에 달린다. 대략 24시간 쯤 달리는 듯...이런 짐승들 워낙 힘든 경기이다보니 초창기에는 텐덤(2인용 자전거)이나 일반 자전거의 뒤에서 슬립스트림을 이용한 페이싱(Pacing)을, 1931년 이후 오토바이 혹은 자동차를 이용한 페이싱을 허용했다. 페이싱 거리는 전체 경기의 반 정도였다고. 너무 가혹한 경기이고, 그래도 이 경기를 하다 선수들이 맛이 간다든지, 부엘타 에스파냐, 지로 디탈리아랑 경기시즌이 겹치는 등의 문제로 1988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은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프로-암 장거리대회 형식으로 남아 있ㄷ.
  24. 던롭 타이어 수리가 매우 어려워 개발하게 되었다. 당시 던롭의 타이어는 구멍난 타이어를 휠셋에서 떼어 수리한 다음 다음 휠셋에 다시 접착제를 도포하고 타이어를 부착한 후 마를 때 까지 하루가 넘게 기다려야 했다. 구멍 막는데 하루 걸린다!! 사실은 요즘 튜블러도 실런트로 때울 수 없을 정도로 큰 구멍은 타이어 채로 갈아야 된다. 그리고 접착제 마르는데도 몇 시간이 필요하니 1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담으로 유명한 미쉐린맨 비벤덤은 1898년에 첫 등장한다.
  25. 1883년 영국의 NCU(National Cyclist's Union) 등 각 국가단위의 협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경기 기록을 서로 인정하지 않았다(사실 룰이 나라마다 다 달랐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이후 올림픽의 활성화 등으로 국가 간 아마추어리즘, 스포츠맨쉽 등이 19세기 말 스포츠계에 주요 이슈가 되었고, 자전거 경기에서도 국제표준 규정이 필요함에 따라 발족된다. 1892년 11월, 영국 NCU의 헨리 스터미(Henry Sturmey)와 W.M.애플턴(W.M.Appletone), 프랑스의 유니옹 데 쏘시에떼 프랑세 드 스포트 아뜰레띠끄(Union des Societes Francaises de Sports Athletiques, 프랑스 체육회 연합)의 A.E.캉플랑(A.E.Kemplen), 독일 자전거인협회의 하인리히 클라이어(Heinrich Kleyer), 네덜란드 자전거인협회의 프란츠 네처(Franz Netcher), 이탈리아의 자전거인협회 G.보네티(G.Bonetti), 벨기에 자전거인협회의 A 코이지(A.Choisy), 캐나다 자전거인협회의 P.E.둘리틀(Dr P.E.Doolittle)이 영국 런던의 농업회관(Agricultural Hall)에 모여 만들었다.

    근데, 실제로 프랑스의 정식 자전거 협회는 위 단체가 아니라 유니옹 벨로시페디끄 프랑세(Union Velocipedique Francaise, 프랑스 자전거인 연합)였다.뭐야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는 협회의 특성과 앞서 말했듯 프랑스의 정식 자전거협회가 참여한 국제 협의체가 아닌 점, 영국의 주도로 국제대회를 개최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의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와 브리튼 두 팀이 각 국가 자격으로 출전하듯, ICA에서 실질적으로 영국이 가지고 있는 표도 여럿(실제 England와 United Kingdom 두 표를 가졌었다. 이런 식이면 미국은 50개 표를 행사해야 될 판. 다만 영국 각 지방은 지방색이 매우 강해 다른 나라 수준에 가깝기도 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이고, 국제대회에 나오는 팀도 여러 팀이고, 여러모로 병크를 많이 터뜨렸다. 때문에 프랑스는 삐져서 여기에 반대해 결국 아래에 나오는 UCI를 만들고야 만다.(여기서는 영국은 한팀만 출전하도록 제한) 결국 1900년 형평성과 공정성이 강한 UCI에 밀ㄹ 없어짐.
  26. 처음에는 파리에서 출발, 루베에서 끝났으나 1966에는 파리 북쪽 50km정도 떨어진 샹띠이(Chantilly)에서, 1977년 부터는 80km 떨어진 꽁삐에뉴(Compiegne)에서 시작, 대략 260km 정도 되는 경기. 우승 트로피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돌덩어리. 대충 금칠은 한 듯. 이 돌은 파리-루베 간 도로에 사용된 그 악명높은 도로포장용 돌(Cobble, Pave. 자갈이라 번역하는데, 이거 도로포장용 돌인지라 한손으로 들기 좀 벅찬 정도 크기의 돌이다)를 뽑아낸거다. 어떤 것은 아마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사실은 2차대전 이후 만신창이가 된 도로를 복구하면서 돌로 포장해 놓은 것)여튼, 레이싱 코스 보존할려고 일부러 아스팔트로 포장을 안 한다. 문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 중의 하나. 이것 때문에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한가지가 더 유명한데, 그지같은험난한 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예전 그 도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코스가 꽤 많기 때문에 도로폭이 매우 좁다든지, 비만 오면(경기 시즌이 프랑스 북부 우기와 겹친다!!) 진창이 된다든지, 그나마 포장된 곳은 가로 x 세로 x 높이 20cm 정도 되는 주춧돌 수준의 포장석을 박아 포장한 도로라 진동이 장난 아니다. 경기코스 별 짧게는 200m, 길게는 3.7km에 이르는 그런 포장도로가 도합 약 52km인 총길이 260km를 달려야 된다. 그래서 타이어는 기본적으로 25c처럼 내구성 좋고 쿠션 좋은 굵직한 놈으로 달고 핸들바에 바테입은 무려 두 겹, 드랍 부분은 세 겹으로 두르고 나오는 선수들도 있다. 당연 자전거의 기계적 트러블도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이게 또 거의 순수하게 힘으로만 달리는 경기다보니 여기에서 우승한 선수는 누구라도 최고 수준의 클래식 전문가로 등극한다. (2000년대 들어 다승에 성공한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탐 부넨, 파비안 칸첼라라 등... 장난이 아니다.) 경기 내내 평균속도가 43 ~ 45km/h 정도에 달한다. 순간속도 아니다. 250km 정도 달린 평균 속도가 이정도. 이런 짐승들을 봤나 원데이 클래식 경기로는 아래의 론드 판 플란데렌(영국식으로는 투어 오브 플랜더스)와 함께 최고이자 최악의 경기로 불린다. (오죽하면 l'enfer du Nord(The Hell of the North), A Sunday in Hell 같은 식의 별명이 붙었다. 가끔은 순례(Pilgrimage)라고도 불린다.)
  27. 당시 예조시랑
  28. 정확한 연대는 불명이며 1898년 서재필 박사가 처음 탔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1898년 윤치호가 하와이에서 자전거를 들여온 것과 1903년 가을에 정부에서 조정의 관리들을 위해 백여대의 자전거를 도입한 일이다.
  29. 더즐리-페데르센 자전거사(Dursley-Pedersen Cycle Co.)
  30. 위플-머피(Whipple-Murphy) 다리의 트러스 구조에서 프레임 형상을 차용.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알루미늄 프레임과 휠셋을 도입하여 가볍고 편안한 자전거를 만들었다. 이 이후 자전거들이 대부분 다이아몬드 프레임이라 부르는 최소화된 트러스 구조를 갖게 된다. 실제 다이아몬드 프레임의 형상은 로버 세이프티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페데르센 자전거에서 거의 완성을 보게 된다.
  31. Arnold, Schwinn & Company
  32. 르 뀌프(l'Equipe)의 전신. 스포츠 신문.
  33. 3대 그랑 투르(Grand Tour, 투르 드 프랑스, 아래 나오는 지로 디탈리아, 부엘타 에스파냐)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대회 시초는 프랑스 스포츠 신문사인 로토(L'Auto)의 편집장 앙리 데그랑주(Henri Desgrange)가 신문 발행부수를 늘려 보려고 고민하고 있을 때 지오(=조르주 George) 르페브르(Geo Lefevre)가 마드리드 카페(Cafe de Madrid)에서 보르도-파리 경기(르 쁘띠 쥬흐날(Le Petit Journal) 신문사가 후원)를 보고 영감을 얻어 앙리 데그랑주와 만들었다. 첫 구상은 프랑스 전역을 일주하는 무려 5주짜리 경기로 1903년 1월 19일 로토에 발표했으나 참가자가 무려 15명밖에 안되자 19일 짜리 경기로 급 수정, 최종적으로 60명이 참가하여 첫 대회를 치렀다. 현재는 보통 21~25일 정도로 경기 중 2일 정도 휴식기간을 갖고 총 3,200km를 달린다. 가장 많이 달린 기록으론 1926년 총거리 5745km 코스. 유명한 코스로는 산악구간인 몽 방투(Mont Ventoux, 방투 산. 2000년 여기서 열린 투르 드 프랑스 20 스테이지에서 마르코 판타니와 랜스의 경기로 유명하다. 골 5km 정도를 남기고 벌어지는 랜스의 무한댄싱, 골 직전 랜스의 양보(팀 서포트 거의 없이 계속 선두를 유지한 것에 대한 존중의 의미 겸 당시 판타니가 종합순위와는 격차가 있었던 점을 감안한 GC 선두의 배려로 TDF에서는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러나 마르코 판타니가 관중들이 어설픈 이탈리아어로 "빈체레(Vincere, 이겨라 쯤 됨.)"라고 한 것을 "비테세(Vitesse, 빨리 달려)" 라고 잘못 알아들어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골 직전 양보는 랜스가 자신을 비웃은 것으로 오해, 이후 둘 사이가 매우 나빠지는 등 각종 드라마가 펼쳐지는 명장면 중의 하나다.여기참조. 랜스의 댄싱을 보고 있자면 실로손발리 오그라진다.), 랄프 듀에즈(L'Alpe d'Huez 우에즈 산. 랄프 듀에즈의 위엄과 2001년 랜스 암스트롱과 얀 울리히의 대결을 보고싶은 사람은 여기 클릭.)

    각 기록부문별 최고의 선수가 입는 옷의 특징으로 각 선수의 상태를 알 수 있고, 이 시스템은 3대 그랑투르에서 색만 살짝 바뀌어 거의 유사하게 적용 중이다. 경기 진행 전체 기록에서 제일 빠른 선수가 입는 마이요 존느(Maillot Jaune, 노란색 운동복. 로토의 신문 종이 색이 노란색이라서 우승자에게는 이 색상의 저지를 입혔고, 이게 또 하고보니 뛰어난 시스템이였다. 우승이니 종합우승이니 하는 것보다 노란색 저지를 입었다고 하면 경기 중에 선수들이 몰려 지나가더라도 눈에 확 들어온다.), 각 포인트 구간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한 선수가 입는 마이요 베르(Maillot Vert, 초록색 저지. 최고의 스프린터가 착용한다.), 마이요 아 푸아 루주(Maillot a Pois Rouges, 혹은 마이요 그랑페르(Maillot Grimpeur)로 흰 바탕에 빨간색 무늬의 운동복. 최고의 클라이머에게 주어진다.), 마이요 블랑(Maillot Blanc, 흰색 운동복. 25세 이하의 선수 중 가장 빠른 선수에게 준다. 판타니가 한때 입었다가 나중에 다리 부상으로 좌절했다. 이후 결국 재활에 성공하고 1998년 지로에서 말리아 로자(Maglia Rosa), 곧이어 같은 해 마이요 존느를 입는 기염을 토한다.)

    참고로, 에디 먹스(Eddy Merckx)는 1969, 1970, 1971, 1972, 1974년 TDF 다섯 번 우승, 1973년 부엘타 에스파냐 우승, 1968, 1970, 1972, 1973, 1974년 지로 디탈리아 우승을 모두 거머쥐는 무지막지한 기록을 세운 인간이다. 그래서 별명이 식인종. 혼자 다 쳐먹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니다. TDF 사상 최다 스테이지 우승자의 영예도 갖고 있다. 도합 34회 우승. 한 해에 여덟 개의 스테이지를 우승한 인간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그것도 1970, 1974년 두 번 씩이나.(동일한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는 2명인데, 둘 다 한해 기록이다) 이미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ㅅ-;;; 한편, 랜스는 투르 드 프랑스에만 참가했고, 1999년부터 2006년까지 혼자 다 해먹었다. 이 중 최고수(?)로 항상 언급되는 아저씨가 바로 에디 먹스. 지로 디탈리아와 투르 드 프랑스의 경기 간격이 거의 한 달 밖에 안되기 때문(보통 TDF 한 경기를 위해서 1년동안 차근차근히 휴식과 훈련을 병행해야 한다. 랜스가 그런 케이스.). 3대 그랑 투르는 초대받는 것 자체만으로 선수에게는 가문의 영광인 경기이고, 거기서 한 스테이지를 따는 것조차 대를 물려 자랑할 만한 것이다. 하물며 저지 중 하나만 입어도 가보가 될 수준이지만 이들에게는 예외)

    지오 르페브르의 아이디어는 대박을 치고 1903년 2만 5천 부 발행하던 신문이 담해에 6만 5천부 발행으로 100% 성장률을 기록하더니 1908년에는 25만 부로 열 배를 돌파, 1923년에는 50만부로 스무 배, 1933년에는 85만부를 돌파했다. 로토가 완전 로또맞은 케이스.
  34. Union Cycliste Internationale, 영어는 International Cycling Union
  35. 스위스 에글(Aigle) 소재. ICA에서 보여준 영국의 행태에 프랑스가 실망하여 1900년 4월 14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그리고 의외로 미국이 모여 설립되었다. 앞서 설명했듯 ICA는 이후 완전히 묻힌다(ICA는 1900년을 기점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영국은 한 팀으로 출전(협회 투표권도 한 표)하거나, 아니면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세 팀으로 나눠서 출전하도록 제한되었다. 나름 자전거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이런저런 멍청한 짓(프레임 형상에 대한 극단적인 제한, 리컴번트는 자전거도 아니라는 주장 등.)으로 유명해 애증이 교차하는 협회. 1965년에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의 압력으로 아마추어 협회(Federation Internationale Amateur de Cyclisme/FIAC)와 프로 협회(Federation Internationale de Cyclisme Professionnel/FICP)로 갈라졌다가 UCI나 FICP보다 FIAC가 매우 커지는 바람에 위기를 느낀(응?) UCI가 1992년 다시 합쳐버렸다. 참고로 FIAC는 이탈리아 로마(Rome)에, FLCP는 룩셈부르크(Luxemburg)에, UCI는 스위스 제네바(Geneva)에 위치하고 있었고, 합친 후에는 IOC가 있는 스위스 로잔(Lausanne)과 가까운 스위스의 에글(Aigle)로 옮겼다.

    예전까진 여기저기 돌면서 그랑 투르를 같이 주최했었는데, 현재는 그랑 투르가 협회로부터 모두 독립하게 되면서 새 된 상황. 그래도 여전히 선수들에 대한 등록과 도핑 판정, 주요 대회 개최(남/녀 원데이 프로경기(Man's/Woman's World Cycling Champion), 사이클로크로스(Cyclo-cross), BMX(UCI BMX Supercorss, UCI World Championships), MTB(UCI Mountain Bike & Trial World Championships), 실내경기인 UCI 인도어 사이클링 챔피언십인 아티스틱 사이클(Artistic Cycling, 자전거 체조 쯤)과 사이클 볼(Cycle Ball, 자전거 축구) 등의 국제대회를 주관한다.) 가끔 국제대회에서 무지개 테를 두른 저지나 헬멧을 쓰고 나오는 사람이 보인다면 이 UCI 월드 챔피언이라는 뜻이다. 우승 저지가 가슴에 가로로 무지개를 두른 무지개 져지(Rainbow Jersey)이기 때문. 투르 드 프랑스 명장면들을 보면 판타니나 랜스와 붙다가 발리는 역으로 이 옷을 입은 미겔 인두라인을 볼 수 있다. 현 회장은 아일랜드(Ireland)의 팻 맥퀘이드(Pat McQuaid)
  36. 로토가 TDF로 재미를 톡톡히 보자 이탈리아의 스포츠 신문사 중 하나인 델로 스포르트가 자극받아 만든 것.
  37. 첫 경기는 1909년 5월 13일 개최. 동기는 역시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의 편집자인 에밀리오 카밀로 코스타마냐(Emilio Camillo Costamagna)가 로토의 성공을 보고 시작.

    밀란(Milan)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전역을 일주하고 다시 돌아오는 8개 스테이지에 총 거리 2448km로 그 첫 시합을 개최, 127명이 출발해서 49명만 최종적으로 골인했다. 출발과 골인지점이 밀란인 이유는 순전히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가 있는 곳이기 때문 1960년 이후 종종 코스와 종착지가 바뀌었고, 100주년 기념 경기 종착지는 로마였다.

    우승저지의 색은 TDF와 마찬가지로 당시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신문의 색이었던 분홍색, 말리아 로자(Maglia Rosa. TDF의 경우 노란 저지인 마이요 존느). 최다 포인트 득점자는 말리아 로소 파시오네(Maglia Rosso Passione. 빨간색 저지. TDF의 경우 녹색 저지인 마이요 베르), 산악왕은 말리아 베르데(Maglia Verde, 녹색 저지. TDF는 흰색 바탕에 붉은 무늬가 들어간 마이요 아 푸아 루주), 젊은 최우수 라이더는 말리아 비앙카(Maglia Bianca, 흰색 저지. TDF의 마이요 블랑과 동일한 색이다.)
  38. 원래 비비는 섬유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국 방문 당시 자전거를 보고 감명받아 프랑스 셍에띠엔느 지역에서 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산악지형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 힘들었고, 결국 변속기를 개발하게 된다.
  39. 플랜더스의 개가 뛰어놀던 그 플랜더스 맞다. 네들란드의 플란데렌(Volaanderen)를 프랑스에스는 플랑드르(Flandres)라고 쓰고 영어권에서는 플랜더스(Flanders)라 쓰고 읽는다.
  40. 개최된 시기도 그렇고, 도로사정도 그렇고, 어쩌면 경사도가 높은 고개가 끼어 있어서 파리-루베보다 더 힘들 수도...2008년 즈음 칸첼라라가 이 경기에서 오르막 오르다가 무려 체인이 끊어진 적이 있다!! 돌로 포장된 열악한 도로환경이 유지되는 이유 파리-루베와 동일하다.
  41. 이탈리아 베리살리에르(Bersaglier, 경보병)
  42. 프런트 포크에 샥이 달린, 굳이 따져보면 MTB의 할아버지뻘 되는 자전거. 물론 게리 피셔가 신나게 타고 다니던 시절의 미국 자전거는 무려 샥이 없었다!!
  43. 초기 변속기 중 가장 현대적인 변속기에 근접한 놈. 풀리는 하나. 암, 풀리 플레이트 일체형. 플리에 연결된 스프링을 조절해서 변속하는 방식으로, 현대의 풀리-암(너클)이 같이 움직이는 방식과는 살짝 다르지만 거의 근접한 모델.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나 판매량은 TDF 공식 지정 변속기였던 쉬페르 샹피옹에 밀렸다고. '35년에는 생플렉스 상피옹 뒤 몽드(어째 버젼 업 되면서 점점 길어진다능...)가 나오고 TDF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그 후속모델인 투르 드 프랑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44. 1933년 스위스의 오스카 에그(Oscar Egg)가 20년간 보유하고 있던 시속 44.247Km의 기록을 45.055Km으로 갈아 치운다. 여기에 놀란 UCI는 리컴번트는 반칙!이라 지랄하면서 속도기록 인정은 클래식 자전거를 탄 상태로 측정한 것으로 한정하게 된다. 현재도 UCI는 자전거의 형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프레임의 크기, 비율, 지상고 등등을 매우 세밀하게 정의해 두고 있다. 세세한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당시 클래식 자전거업체의 로비가 가장 컸다. 요즘에야 뭐 안전성 어쩌구 하면서 둘러대지만, 당시 자전거는 익스트림스포츠였었다. 게다가 안전성, 안정성은 리컴번트가 더 뛰어나다. 최고의 성능(평지 한정)을 가진 비운의 자전거이다. 여담이지만, 영국의 무려 스포츠카 제조사인 로투스에서 만든 자전거 Type 108의 경우 클래식 규격을 만족했었지만...결국엔 금지당했다. 궁금한 자덕요기 참조.
  45. 원래 던롭처럼 아들네미가 조금 더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만들었는데, 만들어주고보니 이넘이 너무 잘 나가서 개조를 했다고. 바퀴 네개 짜리가 고속 코너링이 힘들어 세개, 두개로 줄이고 약간만 손봤는데, 욜나 빠르더라능.
  46. 크랭크축 쪽의 래버를 원하는 쪽으로 밀면서 뒷쪽으로 크랭크질하면 바뀐다고.
  47. 차채 즉 프레임 자체가 매우 튼튼했다고 한다. 그래서 배달의 기수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현대의 다이아몬드 프레임 중 탑 튜브쪽에 보강용 튜브가 하나 더 있다. 이 튜브의 형상이 이후에 싯스테이까지 둥글게 연장된 형태가 전체적으로 다이아몬드 프레임+아치구조를 갖도록 만들어 매우 우수한 강성을 띄도록 개선되었고, 이 형상에서 조금 더 발전하여 비치크루져와 같은 아름다운 자전거까지 나오게 된다.
  48. 특허등록은 1930
  49. 경기 중 제툴리오 캄파뇰로가 다 이긴 경기를 빵꾸난 타이어 교환한다고 시간까먹다가 놓치고 빡쳐서 QR 개발. 이후 캄파뇰로는 드레일러, 쉬프터, 브레이크, 휠셋 등등 대략 150여개의 자전거용 부품을 발명 또는 개선을 하게된다. 이후 자동차 부품까지 만드는데, 람보르기니 에스페다(Lamborghini Espada)의 마그내슘 휠이 바로 캄파뇰로에서 만든 것.
    캄파뇰로의 역사와 타임라인은 각각 Campy Only! HistoryCampy Only! Time Line을 참조할 것. 역시 덕후들이 원래 회사보다 더 잘알고 있다. ㅎㄷㄷ...
  50. 리컴번트기록에 발린 그 오스카 에그(Oscar Egg)가 소유하고 있던 회사.
  51. 비토리아의 가드에서 조금 발전한 정도 수준이였는데, 디레일러가 체인링 쪽에서 뒷쪽 코그로 이동시켜 초기에는 비토리아처럼 변속하기 위해서는 크랭크를 뒤로 돌려야 했지만, 개량으로 계속 전진하면서 변속이 가능해졌다. 덕택에 1934년 한해만 4만 5천개가 넘게 팔렸다고. 자세한 사항은 요기 참조
  52. 그냥 개량수준. 지노 비탈리(Gino Bartali)가 이거 달고 1983년 TDF 우승먹음.
  53. 일간지 인포르마시오네스(Informaciones)의 편집장. 이 경우 역시 신문 좀 팔아보자는 순수한(응?) 마음에 시작했다. 당연히 지로와 TDF의 후원사인 로뚜와 라 가제따 델로 스뽀르트가 욜나 잘나가는 거 보고 필받은 것임.
  54. 에스파냐 전역을 3주간 총 3411km에 걸쳐 달리는 경기. 1935년 첫 경기를 가졌으나 에스파냐의 다사다난한 어른의 사정(1937~1940 내전, 1943~1944 WWII)으로 인해 좀 띄엄띄엄 개최되다가 1955년 이후에서야 매년 개최되었다. 그나마도 가끔 경기위원회 재정사정으로 간당간당 했다고. 처음에는 봄에 열렸으나 지로가 역시 3월에 열리는 관계로 1995년 이후 9월에 열린다. 코스 중 알토 데 엘 앙글리루(Alto de El Angliru)라고 왠지 이름부터 뭔가 심상찮은 곳이 하나 있는데, 기대를 저 버리지 않고 코스 중간에 꾸에냐 레스 까브레스(Cueña les Cabres)라고 높이가 1,538m, 코스길이 12.9km의 23.6% 짜리 경사 슈발, 이게 경사냐 벽이지 를 포함하고 있다. 그랑투르 중에서도 가장 강열한 경사도를 자랑한다. 1999년 이 코스를 집어넣은 인간은 미겔 프리에또(Miguel Prieto)라고. 지로나 TDF에서 펼쳐지는 업힐대결에서 또 뭔가 필 받았던 듯. 그렇지만, 사실 에스빠냐 자체가 산악지형이 많아, 다채로운 경기양상을 보인다. 산악구간이 아니더라도 경사가 꽤 되는 많은 만큼 다양한 작전의 구사가 가능하기 때문. 다만, 그랑뚜르 중 다른 두 경기와 시즌이 겹치기도 하고 산악구간을 꽤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대회를 준비하는 프로선수들이 기피하는 경향도 있어서 다소 에스파냐 지역경기적인 특색이 강하다. 1995년 이후 9월로 옮겨 그랑뜨루랑 겹치는 것을 피해 참가하는 선수가 늘기는 했으나 타 대회, 특히 세계선수권대회와 준비기간이 겹치는 문제가 발생...이로 인해 2010년 현재 최대 우승국은 에스파냐로 우승횟수는 29회. 2위인 프랑스는 9회...산악지형이 많아 의외로 힘든 경기이기 때문에 역사에 비해 종합우승을 다승으로 기록한 선수는 드문데, 스위스의 토니 로민게르(Tony Rominger...이거 어케 읽는거냐?), 에스파냐의 로베르토 에라스(Roberto Heras)가 각각 3승인거 말고는 2승이 6명 나왔을 뿐이다.

    종합우승 져지는 마이요뜨 아마리요(Maillot Amarillo, 노란색 져지. 그런데 TDF의 노란색과 달리 살짝 붉은 기가 돌기 때문에 자존심도 새울 겸 헤르세이 데 오로(Jersey de Oro), 황금색 져지라고 불렀었다.)였었는데, 이게 경기 개최하는 연도의 스폰따라 그때그때 달랐다고. 처음엔 오렌지색이였다가 1941년 흰색, 1942년엔 다시 오랜지, 2차 세계대전으로 쉬었다가 1945년엔 빨간색, 1946년부터 1950년가지는 또 흰색, 1955년부터 2009년까지 중 1977년 한해 오렌지색을 제외하고는 앞서 말한 황금색으로 통일되어서 거의 전통으로 내려왔었다. 그러다가 2010년 부터는 종합우승의 경우 마이요뜨 로호(Maillot Rojo, 빨간 저지)로 하고 다른 부분은 TDF와 헷갈릴 요소가 많아 TDF랑 유사하게 통일해 버렸다. 포인트 구간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면 마이요뜨 뿐또스(Maillot Puntos, 포인트 져지. 녹색), 산악왕에게 수여하는 마이요뜨 몬따냐(Maillot Montana, 산악 져지. 파란색 땡땡이 져지. 이 땡땡이는 각 지역의 스폰이 달라지면 땡땡이 색이 달라지는 경우가 꽤 있다.) 이래저래 복잡한 경기.

    TDF에서 다른 프로팀들이 종종 팀복의 색이 변하는 것에 비해 항상 강열한 오랜지색 져지를 입고 있는 유스칼텔 유스카디(Euskaltel Euskadi) 팀이 바로 에스파냐 국적. 근데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일단은 에스파냐긴 한데, 유스카 통신(Euskaltel. ^^;)의 스폰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유스카텔의 이미지색상인 오랜지색 져지를 입고 있기도 하지만, 바로 에스파냐의 ?바스크 지방 국가대표이기도 하기 때문에 바스크의 국기를 같이 사용한다. Euskadi라는 말 자체가 바스크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 축구의 어슬레틱 빌바오와 마찬가지로, 바스크 태생이거나 적어도 바스크 지역/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없으면 입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wiki:분리주의 항목 참조.
  55. 초기에는 이름이 없었다가 10년 후 정식으로 TDF에 승인을 받고 경기에 본격 적용함.
  56. 실질적인 MTB의 모태. 최초의 샥은 아니지만, 앞 샥을 도입하어 거친 지형에서도 잘 달릴 수 있었다. 물론 엔진이 받쳐줘야 된다.
  57. 정식승인된 그놈. 생김세는 요기 참조.
  58. 캄비오 코로사 개량. 생김세는 역시 요기 참조.
  59. 당시까지 모든 드레일러는 잔차질 하는 놈이 알아서 적절히 기어가 변속되는 범위를 찾아 조정해야 했지만, 인덱스드 방식은 기어변환이 정해진 곳에서 변속레버가 멈추는 방식을 취한다. 아직 클래식 자전거에 사용되는 더듬이 쉬프터 중에서도 일반 쉬프터와 인덱스드 방식 두가지를 다 쓰고 있다.
  60. 이후 누보(Nuovo), 발렌티노(Valentino)...등등 클래식 캠피시리즈가 줄줄이 나온다.
  61. 평형사변형 방식(Parallelogram)의 암을 사용한 현대적인 방식. 이로 인해 변속기 시장을 석권한다. 그러나 이후 역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안이함에 빠진건지 바로 아래에서 발린다. 선투어에서 나온 것 처럼 기어의 단차에 의한 각을 주지 않고 정면에서 볼 때 허브축과 수직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현대의 뒷변속기 처럼 변속이 원활하지는 못하다.
  62. TDF 운영위원회의 안이한 운영방식에 의해 프랑스는 드레일러의 기술개발이 멈춰진 상태였다. 이 때 혁신적인 변속방식이 제툴리오 캄파뇰로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발명, 발전을 하게된다. 물론...이 혁신, 최첨단, 최고의 기술을 달리던 캄파뇰로가 이후에는 듣보잡 선투어에게 함 발리고(Aslant-parallelogram), 낚시 릴이나 만들던 시마노에게 또 케발리게 된다.(Shimano Total Integration system, STI=Dual control lever.) 게다가 최근에는 또 오토바이 부품이나 캄파뇰로에서는 시마노에게 발리고 나서 손을 앙예 대지도 읺고 있던 MTB 부품이나 만들던 듣보잡 No. II이던 스램한테 높은 신뢰성과 경량화의 장점에 의해 신나게 발리고 있다. 이제는 휠셋이나 만들어 팔아야 할 기세...(휠셋 분야에서도 뭐 마빅이나 집, 최근에는 라잇웨잇과 매드파이버에게 최고급 시장이 발리는 분위기지만...)
  63. 미니벨로의 개념은 훨씬 오래전 부터 나왔으나 몰튼이 만든 것 처럼 성능과 승차감을 겸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였다. 원래 자동차 서스팬션을 만들었던 지라 자전거에도 적용을 해 봤는데, 이게 그냥 단순히 스프링을 단 것이 아니라 엘라스토머를(뭐...그냥 고무다. 그런데, 이게 승차감과 성능에 따라 몇가지 종류로 나뉜다. 딱딱한 쪽은 승차감이 나쁜 대신 바빙(아래 위로 흔들림)이 적어 패달을 밟는 힘을 적절히 뒷 바퀴로 전달해 주고, 말랑한 놈은 그 반대이다.) 이용한 것이라 보다 유연한 대처가 가능했다. 게다가 투어링을 위해서 앞/뒤에 케리어를 달 수 있게 하는 등 지금봐도 개념만빵의 미니벨로. 최근 나오는 놈은 단순한 프레임과 와이어로 트러스 구조로 설계해서 초기 몰튼의 디지안을 살리면서 원래 취지인 승차감과 성능 양쪽으로 모두 만족하는 매우 우수한 미니벨로를 만든다. 다만 가격은 안드로메다급. 무슨 미벨로가 카본로드 가격이랑 맞짱을 뜨냐

    추가적으로 업라이트형(전형적인 자전거 방식) 인력구동으로 최고속도기록을 갖고 있는 놈이 바로 이 몰튼에서 나온 Liner II로 82.53km/h. 상세한 내용은 요기 참조. 인력으로 가장 빠른 자전거는 당연 리컴번트로, 역시 200m 기록이 132.50km/h. Sam Whittingham가 2008년에 세운 기록.
    몰튼 자전거 홈페이지 : Moulton Bicycle
  64. Bicycle Motocorss. 초창기에는 패달크로스라 불리었다가 이후 BMX로 고정되었다. 어원은 아마 오토바이로 달리는 모터크로스인 듯.
  65. BMX의 원조. 아래 각주에 설명된 대로 매우 튼튼한 프레임을 갖고 앞/뒤 바퀴가 각각 16/20인치의 작은 바퀴를 사용하여 큰 토크를 전달 가능하게 만들었다. 슈윈의 엑셀시어가 MTB의 시초가 되었다면 스팅레이는 BMX의 시초가 된다. 순수히 빨리 달리기 위한 것에서 발전한 유럽의 저전거 문화와 대비되는 미국만의 자전거 문화를 연 회사가 바로 슈윈이다. 뭐...이 문화의 차이로 미국의 우수한 레이싱 선수들이 80년대 이후에 나오게 되는 윈인이 되기도 하고, 90년 말 랜스에 의해 로드레이싱의 붐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미국은 여러모로 자전거 발전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나 회사가가 많다.
  66. 기존의 다이아몬드 프레임에서 벗어나 엑셀시어의 프레임을 이어받았고, 안장은 길게 늘여 드랍아웃에서 연결한 수직의 보강대 겸 등받이를 설치, 후에 포크에 스프링커 쇽업쇼바를 달고, 핸들바는 길게 뽑아 마치 초퍼 바이커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 편안한 라이딩이 가능하도록 했다. 매우 튼튼하면서도 아름 다운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다만...지금 본다면 애들 자전거 같이 보이긴 한다. -ㅅ-; 그렇지만, 이 디자인과 편안한 승차감, 튼튼한 차체로 일반 자전거시장을 20년 가까이 발라먹었다고.
  67. 최초의 슬란트형(slant-parallelogram) 뒷 변속장치 앞 주석에도 잠깐 설명 했듯이, 페러럴그럼만 가지고는 원활한 변속이 불가능하다. 드레일러의 풀리가 자연스럽게 스프라켓의 코그들의 선을 따라 움직여 줘야 하는데, 그냥 직선으로만 움직이면 이게 당연 힘들어지게 된다. 선투어에서는 페러럴그램이 포함된 이 너클 부분을 허브 축 기준 약 45도 정도 바깥쪽으로 돌려 달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 게다가 특허를 획득해서 캄파뇰로가 이 이후 20년간 손가락 빨게되는 불상사가 생겨버린다. 이후에 캄파뇰로는 시마노 한테 함 발리고, 최근에는 스램한테까지 발리고 있다. 참고로, DISRAELI GEARS에 가 보면 온갖 종류의 드레일러를 다 볼 수 있다.
  68. 1912년 마에다 공업(前田工業, Maeda Iron Works Company)으로 자전거의 프리휠과 스프라켓 제조사로 설립. 이후 현재까지 기타 자전거 부품을 꾸준히 만들어옴. 상세한 역사는 요기 참조.
  69. MTB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역사는 Museum of Mountain Bike Art & Technology 참조. MTB 역사에 대한 모든 것이 나와있다. 특히 각 제조사 별 역사정리는 각 제조사보다 오히려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을 정도.
  70. 덜커덩...낡은 기계라는 뜻. 다음 주석에도 나오듯 엑셀시어 프레임 + 벌룬 타이어 + 코스터 브레이크를 장착했고, 다들 나름대로 스스로가 여기저기 손을 많이 대는 관계로 생김세 자체가 썩 아름답지는 못했기 때문. 게다가 경기라도 한번 치른다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71.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의 젊은이들이 산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것을 대체로 MTB의 기원으로 본다. 멀쩡한 길 놔두고 무슨 짓들이냐! 이 때 타던 자전거의 프레임은 엑셀시어, 거친 비포장길을 달리는 관계로 타이어는 벌룬 타이어를 사용했다.
  72. 시마노 로드용 최고급 그룹셋
  73. 그 이름으로 30%는 먹고 들어간다는 스페셜라이즈드 사 설립, MTB 본격 생산 시작. 이전까지는 거의 수제작에 의존하던 관계로 MTB 자전거 자체가 매우 비쌌으나 스페셜라이즈드가 대량생산함에 따라 본격 MTB 보급이 이루어졌다.
  74. 당시 MTB(물론 MTB라는 개념도 없었을 시절이지만)들에서 사용하던 뒤로 밟으면 제동이 걸리는 코스터 브레이크에 들어있는 오일이 경기 함 끝내고 나면 다 타버려서 오일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고 경기 이름이 없을 때 부터 그 경기를 지칭하던 말이 경기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변화된 것.
  75. 물론 비슷한 유형의 산악경기는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다양하게 벌어졌었지만, 이 경기를 대체로 공식 경기의 시작으로 본다. 우승자는 알란 본즈, 그양반 타던 자전거는 엑셀시어 + 벌룬 + 이것저것 지가 개조해서 붙임. 물론 쇽업쇼바니 뭐니 이딴건 없는거다. 아, 원래 달려있던 안장용 스프링은 있었다.
  76. 찰리 켈리의 요청으로 니켈 프레임, 슈원 S-2림, 유니로열 너비 타이어, 레드라인 포크, 선투어 변속기, 켄틸레버 브레이크, 허브핸들 변속기, 부룩스 안장 등을 사용함. 거의 현대 MTB의 구성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프레임 자체는 기존 다이아몬드 프레임에 해드튜브에서 뒷바퀴를 고정시키는 드랍아웃까지 연결되는 보강용 파이프를 하나 더 추가한 형태로, 슈원의 엑셀시어와 그당시 10회에 이르는 경기우승경험을 녹여만든 자전거.
  77. 켄틸레버 브레이크, 벌룬 타이어 등 현대 MTB가 게리피셔옹에 의해 이 때 완성되었다.
  78. 하프파이프만 타다 재미 없어져서 프리스타일을 개발. 그러다 보니 뭔가 프리스타일 전용 자전거가 필요했고, 결국 지가 만듬. 원래 이쪽 방면에 덕업일치가 되는 케이스가 매우 많다. 굵닥굵닥한 인간만 봐도...캄파뇰로가 그렇고, 던롭, 미쉐린도, 조 브리즈, 게리피셔....
  79. 기존 MTB에서 품질 개선, 염가화를 위하여 일본생산 프레임 적용. 일본은 1970년대부터 선투어가 유럽에서의 선전으로 일본이 신뢰성있고 무려 캄파뇰로보다 훌륭한 물건을 만드는 곳이라는 인식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그당시의 장인들이 지금은 다 어디갔는지 정말 궁금하다. 뭐 공돌이 들이야 세상 어느 곳에서나 혹사받으면서 묵묵히 일하고 있긴 하겠지만. 예전엔 그나마 개발자 이름이나마 나왔는데 요즘은 애휴...(흐..흐흥, 이...이건 내가 공돌이라서 그러는게 절대 아니야.)
  80. 쿼터파이프와 평지에서 하는 경기였다고. 요즘처럼 다양한 경사면, 파이프, 블럭 등을 사용하는 경기에 비해 매우 밋밋했었다. 뭐...당연한건가?
  81. 찰스 케니와의 결별로 인해 게리피셔사로 독립
  82. MTB용이니깐 정확히는 SIS의 시초라 하는 게 옳겠지만. 여튼 인덱스타입의 다운튜브 쉬프터를 라쳇 등을 이용한 현재의 섬쉬프터와 비슷한 형식으로 쉬프터를 핸들바쪽으로 옮겨놓은 것.
  83. 시마노와 선투어에 신나게 케발림. 이후 MTB쪽 사업을 접음
  84. 제툴리오 캄파뇰로는 1983년 2월 3일 사망
  85. Shimano Total Integration. 우리말로 하면 시마노 총 총합...뭐야 이거 무서워...통상적으로 영어권에서는 STI레버라고는 잘 안부르고 조금 전문적으로는 듀얼컨트롤 레버(Dual Control Lever)라고 하지만 이제는 일반화되어 그냥 쉬프터(Shifter)라고만 하면 다 통합레버를 지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한국 한정으로 듀얼컨트롤레버에 대한 거의 일반명사화 되었지만, 양놈들은 살짝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STI는 시마노에서 나온 제품으로 한정. 이건 워낙 캄파뇰로가 많이 해 먹어서 그런 이유도 있다. 특히 캠피(Campy-캄파뇰로 애호인...이라기보다는 빠에 가깝지만)들은 철저히 구분한다.
  86. 브레이크 레버와 변속기를 하나의 레버 속에 뭉뚱그려 놓은 것. 경주에서 일분 일초가 아까운 판에 변속하기 위해 포지션을 흐뜨려야 하는 다운튜브 쉬프터에 비해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함을 제공해 준다. 특히 어텍칠 때 다른 라이더들이 제대로 눈치 채지 못한 순간 치고나갈 때 등 매우 유용하다. 단점으로는 기존의 다운튜브 쉬프터(더듬이)이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간다, 클래식 얄쌍한 크로몰리 프레임에는 살짝쿵 위화감이 든다 혹은 간지가 안난다 정도.
    STI 레버의 등장으로 로드경기는 훨씬 다이나믹해 졌으며, 결정적으로 캄파뇰로를 발라먹게 된다.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더듬이를 쓸 때 일본선수들이 시마노의 스폰을 받아 시험용이었던 STI 레버를 달고 나왔고.... 뭐 말할 것도 없이 충공깽1998년 랜스가 TDF 첨 먹을 때 트랙과 더불어 시마노 그룹셋을 사용한 관계로 사실상 미국시장은 시마노가 평정한 것과 다름없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2010년 TDF때에는 아스타나에서 래디오색(RadioShack)으로 이전하는 관계로 스램 쓰고 있다능...)
  87. 시마노 STI 레버에 대응하기 위해 결국 자존심을 꺾고 듀얼컨트롤레버에 합류한다. 실제 개발은 유사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하나 완성과 출시가 늦었다고. STI 레버와는 다르게 브레이크레버로 변속하지 않고 브레이크 뒷쪽의 작은레버와 후드 측면의 레버 두 가지로 조정한다. 이 방식은 호불호가 갈리이는 하지만, 대체로 캄파뇰로와 스램이 유사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처음 적응하기에는 브레이크 레버로 변속까지 하는 STI 레버에 비해 더 용히한 점이 있다.
    시마노의 STI 대비 우월한 점으로 항상 꼽히는 것은 레버질 한번으로 다단변속이 가능한 것, 시마노 소라와 유사하게 뒷 드레일러 쉬프트업 레버가 레버의 측면에 부착되어 있어도 드랍을 잡던 후드를 잡던 변속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손이 작든 크든 손에 착 감기는 감이 정말 좋다.(시마노의 경우 일본에서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식에 따라 동양인 손에는 뭔가 병맛인 레버가 꽤 된다. 손이 작은 사람이나 여자사람라이더의 경우 목이 너무 굵어서 레버를 잡기 곤란한 모델도 몇개 있다. 후드 포지션 한정. 다행이도 2010년 모델부터는 많이 양호해 졌다.) 특히 쉬프트업할 때 한번에 코그를 5단까지 변속가능해서 선수들이 스프린팅 포지션에 들어갈 때 유용하다고 한다.(동호인은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 말입니다.)
  88. 자전거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인 알렉스 몰튼(Dr. Alexander Eric Moulton CBE)이 2012년 12월 09일 향년 92세로 평생의 역작 몰튼을 끌고 머나먼 여행을 떠나갔다.
    고무산업을 하고 있던 스테판 몰튼(Stephen Moulton)의 증손자로 태어나 2차 대전 중 브리스톨 항공사(Bristol Aeroplane Company)의 엔진개발부서에 근무했었다.
    전후 가업인 스펜서 몰튼 고무회사에서 고무로된 자동차용 서스팬선을 개발했으며 에이븐 고무(Aven Rubber Co.)에 회사가 개털리고 난 후 자동차 서스펜션 개발을 위한 몰튼 개발 유한회사(Moulton Developments Limited)를 설립한다. 여기에서 그의 친구인 알레스 이시고니스(Sir Alec Issigonis)가 설계한 미니의 서스펜션을 개발, 설계했으며 이를 공급했다.
    1956년에 발생한 수에즈 운하 위기로 인해 발생한 오일쇼크로 본격 미니벨로 생산하기로 결심, 1962년 얼스코트(Earls Court) 자전거 전시회에 출품하여 몰튼 자전거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초기의 몰튼 Luxe I 시리즈는 1964 Moulton de Luxe 1st Series 참조.
    Golden Book of Cycling 71 번째로 등록되어 있으며, 산업계에 대한 공헌으로 1976년 CBE(Command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