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학교 관련 정보, 전라북도의 고등학교 목록
이 문서는 개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또는 특수학교 및 유사한 교육 기관 관련 내용을 다룹니다.
다음에 해당되는 서술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에 위배되는 내용을 작성할 시 문서 훼손으로 제재될 수 있습니다.
- 학교간 우열이나 서열을 확정·조장하는 서술
- 학교 내 특정 임의 단체(급식, 매점 등)에 관한 서술
-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학교 관련 사건·사고에 관한 서술
- 학교 내의 교사 및 학생 등 비공인에 관한 서술
- 기타 편집지침에 어긋나는 불필요한 서술
20px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의 고등학교 | |||
양현고등학교 | 우석고등학교 | 전라고등학교 | 유일여자고등학교 |
전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 전북여자고등학교 | 전주공업고등학교 | |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 전주솔내고등학교 | 전주여자고등학교 |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 |
파일:NpAOUn6.png | |
교명 | 전라고등학교 |
한자 | 全羅高等學校 |
영문 | Jeolla High School |
개교 | 1968년 |
유형 | 일반계 고등학교 |
성별 | 남자 |
운영형태 | 공립 |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
홈페이지 | [1] |
1 개요
전라고등학교(全羅高等學校)는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2 개교
1968년 3월 28일 개교했다.
3 연혁
- 1967년 12월 29일 전라고등학교 설립 인가
- 1968년 3월 28일 전라고등학교 개교
- 1970년 1월 20일 전라중고 분리
- 1974년 6월 18일 인후동 교사(校舍)로 이전
- 1984년 2월 10일 現 송천동교사(校舍)로 이전
- 2015년 2월 6일 제 45회 졸업식(졸업생: 376명)
4 교훈
교훈: 자율(自律), 단결(團結), 정진(精進)
5 교가
6 학교 상징
교목: 소나무
교화: 국화
교조: 독수리
7 역사
1967년 전라중고등학교로 인가를 받고 이듬해 3월 28일 개교했다. 1970년 중고를 분리하였고, 1974년 인후동 교사(校舍)로 이전하였다가 1984년 다시 現 송천동교사로 이전[1]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2015년 45회 졸업생들이 졸업하였고, 누적 졸업생은 19,295명을 배출했다.
8 출신 인물
9 기타
9.1 엄격한 규율
매우 엄격한 규율로 유명했다. 공립학교라 주기적으로 선생님들이 교체 되는데도 이러한 기풍이 오래도록 유지 되어왔다. 흠좀무 여기만 오시면 선생님들이 각성을 하시나 야간자습을 비롯한 수업 및 자습이 엄격히 통제되었고, 체벌도 강했다. 보통 하키채로 발바닥을 때렸다. 휴대폰을 비롯한 통신기기 사용은 당연히 금지였다. 휴대폰 사용을 제대로 제재[2] 한다고, 신문에 나오기 까지 했다. 그야말로 학부모들이 좋아할 만한 학교였다.학생들은 공부밖에 할게 없었다.
오죽하면 교장 선생님은 교도소장, 선생님은 간수, 학생은 죄수라는 푸념까지 있었다. 사실 그 시절 남고가 다 그랬다. 특히 두발 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20세기에는 무려 9mm가 기준이었다고 한다. 그냥 말그대로 빡빡이. 두발 검사는 배드민턴 채를 머리에 올려서 머리카락이 튀어나오면 안된다 하는 수준이었으니 말다했다. 21세기 들어 규정이 좀 완화되었다는게 옆, 위, 뒷머리 1~2Cm, 앞머리 4cm였다. 네이버 지식인으로 미루어 볼 때 2011년도에도 두발 검사가 매우 심했음을 알 수 있다.정 궁금하면 홈피 들어가서 포토갤러리 과거 사진 보면 된다. 이 후 4Cm까지 풀려서 스포츠 형태를 띠다가 요즘은 특별히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조
9.2 이세종 열사 추모비
교내에 이세종(8회) 열사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민주열사 이세종 추모비'라고 적힌 이 비석은 전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 농학과에 진학했던 故이세종 열사를 기리는 비석이다. 이세종 열사는 1980년 5월 17일 호남대학총연합회 소속 연락책임자를 자임하며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에서 집회에서 나눠줄 유인물을 등사를 마치고 자정 즈음에 기숙사로 귀가하던 중 M16과 곤봉으로 무장한 공수부대원들한테 피습당했다. 그 후 18일 오전 1시께 학생회관 옆 바닥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타살 정황이 뚜렸했으나 경찰과 정부는 단순 추락사로 발표해버렸다. 그러나 부검 과정에서 추락전 이미 심하게 구타 당했음이 밝혀 졌다. 이 후 시신은 생가인 김제시 연정동의 개인 묘역에 안치됐다가 1998년 10월 광주민주화관련 보상심의회의 결정으로 명예가 회복되면서 이듬해 4월 5.18묘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록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5.18민주화운동 첫 번째[3] 희생자였던 이세종 열사를 기억하기 위해 모교인 전북대학교와 전라고등학교 교정에 추모비[4]가 세워져 그 뜻을 기리고 있다.- ↑ 인후동 교사에는 전라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 ↑ 3無정책이라고 학교폭력, 흡연, 휴대폰 없는 학교인데 휴대폰이 가장 처벌이 쎄다. 우선 휴대폰은 압수고 부모님 소환에 휴대폰 해지 확인서까지 떼고 물론 학생은 몇주간 교내봉사를 해야 한다. 또한 휴대폰을 압수할 시 그걸로 끝나지 않고 해당 휴대폰에 등록 되어 있는 연락처를 뒤져서 전라고 학생이 있는지 추적하여 추가적으로 적발하는 행위도 했다고 한다.
-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5월 18일 오후에 공수부대원에 의해 구타당해 사망한 故김경철, 故김안부 이다.
- ↑ 2015년 5월 15일 이세종 열사의 고향인 김제시에도 추모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