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사화

丁未士禍

조선 시대의 사화(士禍). 일명 벽서의 옥(壁書獄)이라 한다.
을사사화의 뒤치닥꺼리. 1547년 일어난 사화로서, 윤원형의 소윤이 대윤 일파를 숙청하기 위해 만든 사건이다.

사실 조선 4대 사화인 을사사화보다도 연루된 자들이 더 많고 여파가 컸던 사건이다. 종친 봉성군, 송인수, 이약빙, 이언적, 노수신, 정황, 유희춘, 권응정, 이천제, 권벌, 백인걸 등이 처벌받거나 처형되었다. 을사사화가 소윤이 대윤을 몰아내기 위한 시작점이었다면, 이 사건이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을사사화의 일부로 보기 때문에 한국사와 관련해서 잘 다뤄지진 않는다.

명종 8년이던 1553년 이후도 그 폐단은 가시지 않았다. 명종은 이제까지의 악정을 시정하기 위하여 명종비 인순왕후 심씨의 아버지인 이량을 이조판서로 그 외 인사를 등용하였으나
이들은 명종의 신임을 믿고 파벌을 조성하여 세도를 부리기 까지 하였다.

1565년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신진사류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면서 귀양갔던 노수신 등이 요직을 차지하고 재야 신진사류가 등용되어 정계는 사림 중심으로 재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