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禍[1]
1 개요
조선 시대의 4대 사화 | ||||
무오사화 | 갑자사화 | 기묘사화 | 을사사화 |
일반적으론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4번의 사화를 4대 사화라 칭하며, 그 외에도 정미사화(을사사화 시즌2), 기사사화(기사환국), 신임옥사[2] 등의 사화가 있으나, 정식표현은 아니다.
대립의 주축은 조선 건국 100여 년 후, 구 정치권력을 대변하는 훈구파와 성종 이후 신진세력으로서 삼사에 등용된 대간을 주축으로한 사림파.[3] 참고로 훗날 사림이 집권한 뒤 학풍에 따라 갈라진 파벌간 다툼인 붕당과는 개념이 다르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를 때,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세조를 도운 관료와 학자들은 공신에 책봉되며 막대한 토지와 정치권력을 얻었다. 이들은 국가적 서적편찬작업 등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으로 변모한다. 이들이 바로 훈구파이다.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훈구파와 사림파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정치적 갈등관계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종이 대신 내의 공신세력을 견제를 위해 김종직 등 재야에 파묻혀 지내던 학자들을 등용하면서 양측은 서서히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급기야 양측의 갈등은 1498년 훈구파가 사림을 공격하며 무오사화로 비화했고, 이후 세차례에 걸친 사화를 거치며 사림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2 사화 이후
선조 대에 이르러 사림이 정국을 장악하면서 훈구파는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사림은 학풍에 따라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며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