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1946년 정상진.png |
소군정 당시 소련 해군 장교시절 가족사진(1946년) |
정상진(鄭尙鎭, 유리 다닐로비치 1918년 ~ 2013년 6월 15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해군 태평양함대 예하 해군육전대 소속으로 한반도 상륙작전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지낸 대표적인 소련파 인물이다.
1 생애
1.1 독립운동 이전
19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1937년 8월 제빵공장의 노동자였던 부친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안전기관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그는 부친의 죽음 이후부터 소련의 체제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그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1940년에 크즐오르다주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크즐오르다주 잘라가 쉬구역의 중등학교에서 문학 교사로 지냈다.
1.2 한인 출신으로 한반도 상륙작전에 참전하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해군에 입대하여 웅진, 나진, 청진 등 상륙작전에서 활약하여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승전 후 소련군으로부터 석방권을 권한 받아 청진시의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1.3 해방 이후
파일:북한 문화사절단 대표.jpg |
1955년 해외순방 당시 정상진 |
해방 후 1945년 9월 19일에 소련 정치부의 지시로 원산항에 귀국하는 김일성을 마중했다. 그는 '김성주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김일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소련 정치부에 김일성은 없었다고 보고하면서 그가 김일성임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10월 19일에 있었던 소련군 환영대회는 소련의 각본이었으며, 1945년부터 1965년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모든 연설문은 소련에서 작성했다고 폭로하였다.
소련의 정책에 따라 김일성 종합대학 러시아 어문학과 학과장직과 문학 및 예술협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 병기총국 부국장을 지내다 1952년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57년에 숙청되었는데, 최승희, 홍명희 같은 인물들을 비호했다는 이유였다. 숙청되긴 했으나 소련 정부와의 연줄 덕에 살해되진 않고 소련으로 돌아갔다. 소련에서 타슈켄트의 고급당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61년 크즐오르다와 알마타의 레닌기치(고려일보) 편집부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소비에트 한인재단의 이사장, 1992년부터는 북한민주화 및 해방재단의 이사장직을 겸임했다. 1989년부터 여러 차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좌우대립 상황에서 소련의 정책, 김일성 관련 등을 폭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회원으로 참여 북한 민주화에 대해 자문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3년 6월 15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