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의 시, 군 | ||||||||
시 | 청진시 | 김책시 | 회령시 | |||||
군 | 경성군 | 길주군 | 명간군 | 명천군 | ||||
무산군 | 부령군 | 경원군 | 어랑군 | |||||
연사군 | 온성군 | 경흥군 | 화대군 | |||||
청진시의 행정구역 | |||||||||
구역 | 라남구역 | 부윤구역 | 송평구역 | 수남구역 | |||||
신암구역 | 청암구역 | 포항구역 |
주의. 이곳은 여행금지 국가·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 또는 기타 법률에 의해 출입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해외 여행 시 반드시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에 대해 정보를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淸津市 / Chŏngjin City
청진시 淸津市 / Chŏngjin City | |
국가 | 북한 |
광복 당시 면적 | 1855㎢ |
광역시도 | 함경북도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82동 16리 |
행정구역 | 7구역 |
시간대 | UTC+8:30 |
수성천(輸城川) 가의 모습. 청진은 수성천 하구에 발달한 도시이다.
목차
1 개요
(現) 함경북도의 도청 소재지.
(現) 현 북한 함경북도 도인민위원회 소재지.
시당소재지는 청암구역이다.
면적 1,855km2 (8.15 광복 당시 275km2).
인구 667,929명(2008년 인구조사, 출처는 여기). 인구 및 도시규모 면에서 북한에서 평양직할시, 함흥시 다음 가는 제 3의 도시(인구 67만 - 2008년 통계)이다. 제철제강이 유명한 도시로 일명 "북방의 대야금기지[1]".
함경북도의 3대 도시이자 3대 항구(청진, 김책시(성진시), 라선특별시(나진))중 하나이다.
서울에서 동북쪽으로 직선상 530km[2], 철도로는 약 760km 거리에 있다.
2 역사
원래는 부령군 관할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1908년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3] 시가지가 형성되고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1910년 부령군 전체가 청진부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청진부의 영역을 개항장 일대로 축소시키고, 나머지 면 지역을 다시 부령군으로 분리시켰다.
원래는 동쪽 고말(高抹)반도에서 도시가 발달하여, 점차 서쪽 수성평야로 도시가 확장되는 양상을 띄었다. 1940년에 경성군 나남읍, 용성면 및 부령군 일부를 편입하여 면적이 275km2(당시 평양의 면적과 맞먹었다)로 늘어났고, 인구 규모면에서도 20만에 육박해 전국 5대 도시(인천, 대구와 맞먹었음)로 발돋움하였다.[4] 원래 함경북도의 도청이 있던 경성군(鏡城郡) 나남읍이 청진에 흡수된 것도 이 때로, 이로써 청진은 함북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함경북도의 해안선 중앙에 위치하여 전쟁에서의 주요 목표가 된 일이 많다. 태평양 전쟁말기 소련이 만주를 침공하면서(만주 작전) 부수적으로 함경북도에 군대를 보냈는데, 광복 전까지 소련군이 당도한 최남단 지역이었으며, 6.25 전쟁당시 국군이 가장 북쪽으로 진격해서 점령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광복 이후 북한에서의 행정구역 변화가 심한 지역중 하나. 한때 청진직할시(1960~1967, 1977~1985)였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일반시이다.[5] 이처럼 직할시 승격과 일반시 격하가 반복된 근본적인 이유는 현지지도에 기반한 즉흥적인 정책 결정에 있었다. 즉, 김일성이 현지지도와 교시를 통해 후방 제철기지인 청진에 대한 후방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하면 직할시로 승격시켰다가[6], 명색이 직할시인데 정작 중앙에서의 지원은 지지부진하고 더불어 직할시당과 도당 간의 알력 다툼까지 벌어지면[7] 결국 직할시를 일반시로 격하시키는 사태가 되풀이 된 것이다.
현재는 일반시지만 그래도 함경북도 최대의 도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북한의 대도시이다. 또 공업과 항구도시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고 인구도 많이 때문에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실제로 2002년 기준으로 도와 동급인 평양, 남포, 라선을 제외하고 인민위원회에 처급 부서가 편성되어 있는 일반시는 청진시가 유일하다.[8]
3 지리
북한에서도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북한한류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비교적 시원하여 30도 이상 올라가는 날이 드물다. 또한 높은 위도에 비해 겨울에는 그다지 춥지 않은 편이다. 물론 남한에 비해서는 춥다.
또한 이 일대는 혜산시와 함께 남북한을 통틀어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지역 가운데 하나인데 연 강수량이 623.4mm에 불과하다. 이는 연평균 강수량이 가장 많은 거제시 2007.3mm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06년에는 324.2mm의 기록적인 수준의 낮은 연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4 경제
풍부한 지하광물을 통한 공업이 일제강점기부터 크게 발달했고 무역도 많아 지방에서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은 도시이다. 대중교통수단도 잘 발달되어 있고 큰 기업소도 여럿 있으며 대학도 많은 편. 부자들이나 당원들도 많이 사는 편.# 김정일이 1980년대 초반 중국 후야오방의 설득으로 일시적으로 개방을 시도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 하에서 지방 개발이 미약한 북한 치고는 국영공장·기업소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9] 북한 최대의 제철소인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이른바 '김철', 구 청진제철)가 있으며, 이곳은 김책시의 성진제강연합기업소(성강)과 함께 북한의 가장 큰 제철소 가운데 하나이다. 김철에서는 주로 무산광산의 철광석을 이용하며 무산에서 청진까지는 이른바 '3화수송'이라 불리는 수송관이 설치되어 있다. 그 외에 청진조선소, 청진화학섬유공장, 나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청진철도공장, 청진버스공장 등 산업시설이 많은 공업도시이다. 어뢰를 생산하는 군수시설인 129호 공장(추정), 나남제약공장[10] 등 군수시설도 있다. 다만 대부분의 민간국영기업소들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인해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민간자본이 국영공장의 설비나 공간을 임대하는 형식의 사업이 제법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그것도 2009년의 삽질을 전후해 타격이 적지 않은 듯.
부동항을 가지고 있어, 나진과 함께 길림성을 포함한 동만주지역의 외항 역할을 한다. 2006년 만경봉호의 일본 입항이 금지되면서 원산이 대일 수출입 기지로서의 위상을 상실한 반면 청진항은 적은 양이나마 꾸준히 대일교역이 이어지고 있다. 주로 일본산 중고 차량 등을 수입하여 중국에 재수출하는 중계무역이 이뤄진다. 수산업기지로서의 위상도 크다.
청진 수성시장은 역사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시장으로 평양 통일거리시장, 신의주 채하시장, 평성시장, 사리원시장과 함께 북한의 주요 도매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의주가 단둥의 대규모 트럭 행렬로 대변되는 합법적 형태의 교역이 주류를 이룬다면, 청진은 온성, 회령, 혜산 등을 통해 합법과 비합법을 가리지 않고 무수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온 온갖 소비재들을 취급한다. 그런만큼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에서 단천시 다음으로 아사자가 많은 도시가 되는 등의 타격을 받았다.
특이하게 패션에서 상당히 개방된 도시이다. 보통 북한은 사회주의 생활앙식에 맞는 의복을 권장하고 악세서리나 노출이 있는 옷, 과하게 화려한 옷은 금기시한다. 그러나 청진은 미니스커트! 를 입고 다니는 패션에서 개방적인 도시이다. 청진은 평양보다 훨씬 수입물품이 많기 때문에 평양에서 오히려 물건을 떼어갈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청진의 젊은이들은 오래전부터 청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5 교통
청진에는 궤도전차(電車)가 다니는데, 1999년 남청진~봉천 간 6km 구간이 개통되었고, 2000년에는 부윤~남청진 구간이 개통되면서 총연장은 13km이다.
북한의 도소재지들 중 유독 수도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다른 지방과의 연결은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청진의 장거리 노선버스는 함흥이 최대 진출선이었다. 청진-함흥 구간만 해도 거리가 400km가 넘어가는(!) 장거리 구간인 데다가 도로 상태도 엉망이라 소요시간 또한 족히 하루가 걸릴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철도는 이미 박살나서 1주일에 한 대나 다닐까 말까 한 상태라.... 그런데 2010년대가 되면서 평성 등 함흥 이남지방으로 가는 노선버스도 생겼다. 그 외에 회령 등 함북 주요 도시로 수시로 버스와 단거리 서비차가 다닌다.
이웃한 라선과도 당연히 교류가 많아서 수시로 버스가 다닌다. 그런데 청진 버스는 라선에, 라선 버스는 청진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삼해와 관해 사이에 보위부 검문소가 있어서, 버스가 매일같이 검문 받는 것도 귀찮으니 아예 이 검문소까지만 운행하고 승객들은 검문소에서 환승한다나....뭐하는 지거리야
북한에서 버스 운행은 주로 개인 돈주들이 버스를 사서 기관이나 기업소에 등록해놓고 운행하는 형태인데, 2011년까지 청진 버스는 이를 인민무력부 산하에 등록된 울림운송회사에서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인민무력부의 비호를 받는 회사이니만큼 농촌지원전투 기간이라 버스 운행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단독으로 운행을 하거나, 기름값 인상을 이유로 가격을 높여 폭리를 취하는 등의 행태로 꽤 원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래놓고 상급기관인 인민무력부에 상납금을 제대로 바치지 못해 2011년 4월 해체됐다. 왜 사니
청진공항은 이 시의 명칭을 딴 공항이긴 하나, 청진시에서 약 44.5km 남쪽에 위치해 있고, 행정구역상으로도 어랑군 어랑읍, 어랑역에 위치해 있어 사실상 따로 놀고있는 공항이다. 남한으로 친다면 김포공항이나 김해공항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수있겠다. 라선과 가까운 삼해동에 공항을 지을 계획이 있다고 한다.
6 교통편
철도 | 평라선 | 라남역 남강덕역송평역 수남역 청진역 청암역 금바위역 련진역 사구역 부거역 삼해역 관해역 락산역 방진역 |
함북선 | 청진역 청암역 수성역 | |
강덕선 | 남강덕역강덕역 삼립역 근동역 수성역 | |
청진항선 | 청진역 청진항역 | |
도로 | 7번 국도 | 온성군 - 라진시 - 락산동 - 관해동 - 삼해동 - 부거리 - 사구동 - 련진동 - 교원리 - 직하리 - 반죽동 - 청진시 중심부 - 라흥동 - 평화동 - 경성군 - 부산광역시 |
83번 국도 | 온성군 - 부령군 - 근동리 - 월포리 - 강덕동 - 라남동 |
7 통일 뒤?
지금도 북한에서 평양, 함흥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이고, 북한에서 그나마 공업이 발전한 편이고, 항구가 들어서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통일 뒤 라선과 더불어 빠르게 성장할 곳으로 여겨진다.
통일 뒤 발전하여 인구가 늘어나면 부령군[11]과 엮이어 도농통합된 후 광역시로 승격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오오 그곳은 청진광역시
8 인근 행정구역
무산군 | 부령군 | 회령시 | 은덕군 | 라진구역 |
청진시 | 동 해 | |||
경성군 | 동 해 |
9 북한 기준 행정구역
청진시의 행정구역 | |||||||||
구역 | 라남구역 | 부윤구역 | 송평구역 | 수남구역 | |||||
신암구역 | 청암구역 | 포항구역 |
청진시의 경우 북한 제 3의 도시이기도 하며, 함북의 종주도시니만큼 7개구역이 있다.
이외에 노동자구는 없으며 함흥시처럼 구역이 폐지되거나 구역을 통합해 서로 분리되고 다시붙거나 여러번 변경되는등 크게 유동적이지 않다.
다만 여러번 경계 조절을 한 적은 있다. 각각의 항목 참조.
10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함경북도의 하위행정구역 (이북5도위원회) | |||||
시 | 청진시 | 성진시 | 나진시 | ||
군 | 경성군 | 명천군 | 길주군 | 학성군 | |
부령군 | 무산군 | 회령군 | 종성군 | ||
경흥군 | 경원군 | 온성군 |
이북5도위원회에서는 청진시에 5개의 행정동을 설정하였으며, 명예동장이 임명되어 있다.
- 나남동(羅南洞)
관할 법정동은 나북동(羅北洞)·미길동(美吉洞)·본동(本洞)모토·본정동혼마치·봉암동(鳳巖洞)·수북동(水北洞)·신흥동(新興洞)·용암동(龍巖洞)·이곡동(梨谷洞)이다.
- 신암동(新巖洞)
관할 법정동은 북선동·서수라동(西水羅洞)·신암동(新巖洞)·신진동(新進洞)·영동(榮洞)사카에·천마동(天馬洞)·해안동이다.
- 용성동(龍城洞)
관할 법정동은 강덕동(康德洞)·농포동(農圃洞)·서항동(西港洞)·소정동·송림동(松林洞)·송평동(松平洞)마츠다이라·수남동(水南洞)·수성동(輸城洞)·어항동(漁港洞)·용향동(龍鄕洞)·용호동(龍湖洞)이다.
- 청암동(靑岩洞)
관할 법정동은 반죽동(班竹洞)·수원동(水源洞)미나모토·월포동(月浦洞)·인곡동(仁谷洞)·직하동(稷下洞)·토막동(土幕洞)·창평동(蒼坪洞)이다.
- 포항동(浦項洞)
관할 법정동은 교동(橋洞)·근화동(槿花洞)·낙양동(洛陽洞)·민주동(民主洞)·서동(曙洞)아케보노·서흥동(西興洞)·역전동(驛前洞)·정산동(亭山洞)·중앙동(中央洞)·포항동(浦項洞)·해방동(解放洞)이다.
10.1 광복 당시 행정구역
광복 당시의 청진부는 32정 18동을 관할하였다. 거의 다 일본식 지명이다
아래는 1914년 당시의 청진부를 구성하였던 정(町)이다.
- 고사정(高沙町)
타카사고 - 교립정(橋立町)
하시다테 - 길천정(吉川町)
요시카와 또는 킷카와 - 대화정(大和町)
야마토 - 명치정(明治町)
메이지 - 목하전정(目賀田町)
메가타[12] - 미생정(彌生町)
야요이 - 보정(寶町)
타카라 - 복천정(福泉町)
후쿠이즈미 - 부귀정(富貴町)
- 부도정(敷島町)
시키시마 - 북성정(北星町)
호쿠세이 - 상반정(常盤町)
토키와 - 상생정(相生町)
아이오이 - 서정(曙町)
아케보노 - 송도정(松島町)
마츠시마 - 수정(壽町)
코토부키 - 신암정(新巖町) - 1가~4가로 구성되었으며 시청이 1가에 있었다. 1943년에 동(洞)에서 정(町)으로 개편되었다.
- 영정(榮町)
사카에 - 일출정(日出町)
- 입선정(入船町)
이리후네 - 조일정(朝日町)
아사히 - 축정(祝町)
이와이 - 파정(巴町)
토모에 - 포항정(浦項町) - 1943년에 동(洞)에서 정(町)으로 개편되었다.
- 행정(幸町)
사이와이
아래는 1939년 부령군 청암면에서 편입한 곳이다.
- 수남정(水南町) - 1943년에 동(洞)에서 정(町)으로 개편되었다.
아래는 1943년 경성군 나남읍에서 편입한 곳이다. 나남읍은 전체가 청진부에 편입되었다.
- 나남정(羅南町) - 함경북도청 소재지(나남본동으로 알려져 있다).
- 나북정(羅北町)
- 미길정(美吉町)
- 생구정(生駒町)
이코마 - 초뢰정(初賴町)
아래는 1943년 경성군 경성면에서 편입한 곳이다.
- 회향동(檜鄕洞)
아래는 1943년 경성군 용성면에서 편입한 곳이다. 용성면은 전체가 청진부에 편입되었다.
- 강덕동(康德洞)
- 근동(芹洞)
- 농포동(農圃洞)
- 봉암동(鳳岩洞)
- 송동(松洞)
- 송정동(松亭洞)
- 수남동(水南洞)
- 수북동(水北洞)
- 수성동(數城洞)
- 용암동(龍岩洞)
- 용향동(龍鄕洞)
- 회암동(回岩洞)
아래는 1943년 부령군 청암면에서 편입한 곳이다.
- 반죽동(班竹洞)
- 월포동(月浦洞)
- 자작동(自作洞)
응? - 직하동(稷下洞)
- 창평동(蒼坪洞)
11 기타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는 이 곳에 영사관을 두고 있다.
수성역 인근에 청진 수용소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두 문서를 참조할 것.
현재 한국의 탈북 새터민들 중 청진 출신인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 이유는, 함경북도가 두만강을 끼고 있어 탈북이 쉬운데 청진은 그 함경북도에서 가장 큰 중심도시이자 북한에서도 대도시에 속하는 만큼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함경북도는 험준한 산지를 끼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내륙지방의 인구가 매우 적다. 하지만 청진은 북한 최대 공업도시이자 무역항도시 중 하나이고 해안 평야지대에 위치에 있어 사람이 많은 것이다.- ↑ 김책제철소가 여기에 있다.
- ↑ 시모노세키, 후쿠오카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 ↑ 오히려 성진(1899년)보다도 개항이 늦었다. 정작 이 이후부터는 성진보다 청진이 더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지만…
- ↑ 참고로 이 지역은 서울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직선거리 530km 정도로 제주도보다도 한참 멀다.
- ↑ 이 당시 부령군, 경성군, 무산군까지 청진직할시에 편입되어 함경북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적이 있다.
- ↑ 일반시와 직할시는 주민 대우가 달라지는데, 일례로 식량 배급시 일반시에서는 입쌀:강냉이 비율이 3:7인데 비해 직할시에서는 7:3이며 소채류를 무조건 공급해주도록 되어 있다.
- ↑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도청이 광역시 내에 있는 경우 이런 사례가 종종 보인다. 일례로 호남고속선 분기역 선정 당시 충남도청은 천안아산역 분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도청이 하필 대전광역시에 있다보니 사방이 대전역 분기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일을 추진할 공무원들조차 대전 사람들인(...) 안습한 사태가 벌어졌다.
- ↑ 북한의 행정기구 부서의 위계는 국-처-부-과 순으로 나가며 일반적으로 시도급 인민위원회에서는 국이, 일반시군에서는 부가 최상위 부서이다. 즉 청진시는 일반시군 중에서는 함흥시조차 누리지 못하는 최상위급의 대우를 받는 중.
- ↑ 북한의 기업들은 주로 종업원 수를 기준으로 특급~6급까지 분류한다. 이 중 특급~3급까지만이 국영기업소, 그 이하는 지방공장·기업소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지방 소도시나 군 단위에 국영기업소는 3급 정도가 고작이다.
- ↑ 비공식적인 의혹 중 하나로, 함흥의 흥남제약공장과 함께 북한의 3대 수출 자금원 중 하나인 마약을 생산제조한다는 설이 있다.(나머지는 일명 '슈퍼노트'라 불리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와 가짜 담배다.) 여기서 찍어낸 마약은 매우 품질이 높은 고순도 제품인지라 국제마약범죄조직에서 주로 취급하며, 이들이 유통시킨 마약이 돌고 돌아 국내 유흥가에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서도 이 사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정해진 수출 목표액을 초과 달성한다든지 하면 백도라지 영웅 칭호(!!!)까지 부여한다고.
국가 단위로 그냥 조직깡패 수준이다 - ↑ 사실 1914년 분리, 1960년 편입 1985년 재분리 이런식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에 역사성을 따져 청진시에 편입 될 가능성이 높다.
- ↑ 참고로 '메가타'(目賀田)는 일본이 강압적으로 제1차 한일협약을 맺을 때 파견되어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한 재정 고문의 이름이다(...).
천하의 개쌍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