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image/001/2004/07/29/kp1 2040729w1433.jpg
바르셀로나를 무릎꿇린 사나이
이름 | 조란 우르모브 (Zoran Urumov / Зоран Урумов) |
생년월일 | 1977년 8월 30일 |
국적 | 세르비아 |
출신지 | 베오그라드 |
포지션 | 미드필더 |
신장 | 176cm / 68kg |
유스팀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선수시절 소속팀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5~1999) 밀리치오나르 (임대) (1997~1998) 부산 아이콘스 (1999~2003)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2004) FK 라드 (2005~2006) 트라시보울로스 FC (2006) FK 바나트 즈레냐닌 (2007~2008) 신젤리치 (임대) (2008) FK 루다르 플레블라 (2008~2009) 바나트 즈레냐닌 (2009~2010) |
구 유고연방 출신의 전 축구선수.
1999~2003년까지 K리그의 부산 아이파크, 2003~2004년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했다. K리그 통산 기록은 134경기 출장 19골 20도움이다.
1995년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1999년 다사다난한 시즌을 보내던[1]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적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K리그 입성 과정은 여느선수와는 전혀 달랐는데, 1999년 부산이 유고 출신 라임 감독을 모국으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우르모브를 영입, 흔히 볼 수 없는 감독과 선수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그해 부산 구단은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지만 팀을 이끌어간것은 테리우스 안정환과 삼손 김주성이었고 우르모브는 이들에 가려 눈에 띄지 않았다.
이는 그 다음 시즌인 200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비수였지만 수비력이 떨어져 베스트 멤버로 쓰기에는 무리가 많았고 풀백으로썬 준수한 3골 2도움을 기록했지만 이정로는 교체 출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대로 서브멤버로 끝날것만 같던 그의 K리그 경력에 서광이 비친것은 2001년 부터였다. 2000시즌 종료후 동계기간 동안 수비력을 강화한 우르모브는 공수겸장의 선수로 거듭났다.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는 장신 스트라이커 우성용의 머리에서 빛을 발했고 마니산이라 불린 외국인 공격수 마니치까지 더해져 부산은 막강한 공격 트로이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해 우르모브는 시즌 막판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33경기 3골 11도움을 기록하며 신태용(현 성남일화 감독)을 제치고 도움왕 타이틀을 획득했고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우르모브는 2002년에도 변함없는 활약을 기대받았으나 아디다스컵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한 이후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새로 들어온 용병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부상과 퇴장으로 출전이 들쭉날쭉해지면서 좀처럼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우르모브는 3골 3도움이라는 불만족스런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소속팀 부산 역시 아디다스컵 최하위, 리그 9위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김호곤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03년 새롭게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부임했고 잔류에 성공한 우르모브는 시즌 개막전 벌어진 한중일 프로축구 친선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시즌 개막전 이후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지난해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 포메이션이 공격적으로 바뀌면서 윙백에서 윙어로 전환한 우르모브는 수비 부담에서 벗어나 공격 본능을 맘껏 펼쳤고 전반기에만 7골을 넣으며 맹활약했다.[2]
그러나 전반기가 끝난후 우르모브의 약한 수비력에 불만을 갖고 있던 포터필드 감독은 우르모브를 자유계약으로 방출시켰다.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갈 뻔했던 우르모브는 수원 삼성과의 계약에 성공하며 한국에 남을 수 있었다.[3] 그러나 수원에서 보낸 후반기에는 겨우 1도움에 그치며 전반기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2004 시즌 부상으로 전반기 결장했던 우르모브는 7월 팀에 복귀했고 대망의 7월 29일 모든 K리그 팬들이 그를 기억하게 만든 FC 바르셀로나전에 나섰다.
호나우딩요, 라르손, 사비, 이니에스타, 푸욜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총출동시켜 화려한 개인기와 조직력을 선보이던 바르셀로나는 수원의 견고한 수비벽에 후반 중반까지 골을 기록하지 못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후반 32분, 역공에 나선 수원은 골문에서 30m떨어진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다소 먼거리였지만 키커로 나선 우르모브는 망설임없이 슈팅을 날렸고 볼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골문 구석에 정확하게 꽂혀 들어갔다.1분 27초부터 이 골은 그날의 결승골이 되었고 이 경기는 극렬 해축빠들에게 한없는 절망을 언론과 국대팬들의 홀대에 신음해온 K리그 팬들에게 더없는 자부심을 안겨주었다.[4]
이어진 후반기에서 우르모브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백을 넘나들며 1골 3도움을 기록해 조커로서 쏠쏠한 활약을 했으며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었던 포항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선 팀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 멋지게 성공시켰다.[5]
이후 수원은 우르모브의 재계약을 포기했고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간 우르모브는 최근 은퇴해 에이전트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 ↑ 감독이 3번이나 바뀌고 당시 모기업인 대우그룹이 부도로 채권단의 손엔 넘어갔다.
- ↑ 오프시즌 동안 벌어진 페예노르트와의 경기(2002년 월드컵 이후 송종국을 이적시킨 부산은 아시아 투어에 나선 페예노르트와 친선 경기를 벌였다.)에서 2골을 터뜨리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 ↑ 수원 이적 전날 부산 홈페이지에 “부산아이콘스 출신의 명예를 위해 뛰겠다”는 글을 남겨 부산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했으며 귀화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 ↑ 한국 팀이 외국 팀과의 경기에서 멋지게 이기고도 그렇게 많이 욕을 얻어먹은 적도 다시 없을것이다.
- ↑ 이후 포항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슈팅을 이운재가 막아내면서 수원은 챔피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