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구 유고 연방 축구클럽 Big 4
50px50px50px50px
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파르티잔
(Partizan)
하이두크 스플리트
(Hajduk Split)
200px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F.K. Crvena Zvezda
정식 명칭Фудбалски клуб Црвена звезда Београд
창단1945년 3월 4일
소속 리그세르비아 수페르리가(Serbian SuperLiga)
연고지베오그라드(Belgrade)
홈 구장스타디온 츠르베나 즈베즈다(Stadion Crvena Zvezda)
(55,538명 수용)
구단주드라간 자이치 (Dragan Džajić)
감독슬라비차 스토야노비치(Slaviša Stojanović)
애칭Crveno-beli (적과 백), Zvezda(별들)
공식 홈페이지[1]
우승 기록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19회, 최다 우승)
1950-51, 1952-53, 1955-56, 1956-57, 1958-59, 1959-60, 1963-64, 1967-68, 1968-69, 1969-70, 1972-73, 1976-77, 1979-80, 1980-81, 1983-84, 1987-88, 1989-90, 1990-91, 1991-92
유고슬라비아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1부 리그
(5회)
1994-95, 1999-00, 2000-01, 2003-04, 2005-06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2회)
2006-07, 2013-14
유고슬라브 컵
(12회)
1947-48, 1948-49, 1949-50, 1957-58, 1958-59, 1963-64, 1967-68, 1969-70, 1970-71, 1981-82, 1984-85, 1989-90
유고슬라비아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컵
(9회)
1992-93, 1994-95,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1-02, 2003-04, 2005-06
세르비안 컵
(2회)
2006-07, 2009-10
UEFA 챔피언스 리그
(1회)
1990-91
인터컨티넨탈 컵
(1회)
1991
미트로파 컵
(2회)
1958, 1968
클럽 기록
최다 출장드라간 자이치 (Dragan Džajić), 615경기(1963~1975, 1977~1978)
최다 득점드라간 자이치(Dragan Džajić), 370골(1963~1975, 1977~1978)
영구결번12[1]

동유럽 구단 최후로 빅 이어를 들어올린 명문 [2]

전성기의 절정을 맛봐야 할 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갑작스레 몰락해버린 비운의 팀.

1 개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Фудбалски клуб Црвена звезда Београд)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이며 종합 스포츠 클럽인 SD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한 일부분이다.[3]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붉은 별”이란 뜻으로 나라마다 달리 불리는데, Red Star(영어), ​​Étoile Rouge(프랑스어), Roter Stern(독일어), Stella Rossa(이탈리아어), Estrella Roja(스페인어)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특히 FK 파르티잔과 세르비아 축구를 양분하며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 가장 성공한 세르비아 클럽이며 리그 우승 25회, 컵 우승 12회를 기록하며 세르비아 팀 중 통산 최다 우승팀이기도 하다.

동유럽 클럽 중에서는 FC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더불어 둘밖에 없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클럽이다.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이 발표한 20세기 클럽 랭킹에서 네덜란드페예노르트와 더불어 27위에 랭크되었다.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5년 3월 4일, 레드 스타 반파시즘을 표방하는 청년 집단에 의하여 내무부 소속의 종합 문화 클럽으로 창단되었다. 전쟁이 종결 된 후에 재개된 1946-47시즌부터는 대략 3년동안 FK 파르티잔, GNK 디나모 자그레브, 하이두크 스플리트, FK 사라예보 등등 쟁쟁한 경쟁 상대들이 많았기에 부침이 있었지만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1951년, 1953년에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였고 1956년에도 챔피언이 되어 1956-57시즌 유로피언 컵에 처녀 출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준결승까지 진출하지만 피오렌티나에게 밀려 결승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만다. 그 다음 시즌엔 8강에 진출하지만 버즈비의 맨유에게 종합 4-5로 밀려 탈락하는데, 이와중에 맨유가 뮌헨 참사를 당하였다. 그 후 1970-71시즌 유로피언 컵에서 한번 더 준결승에 오른것 외에는 1991년까지 기대 이하의 성적만 걷었다. 1978-79시즌 UEFA 컵(현 유로파 리그)에는 결승에 올랐다가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1-1, 0-1로 밀려 준우승을 했으며, 1990-91 유로피언 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때는 츠르베나 즈베즈다 역사상 최고의 1991 유로피언 제너레이션을 이루며 특히 아래와 같은 미드필더 황금 사중주를 이루었다.

뿐 만 아니라 공격수와 수비수에도 월드클래스를 각각 한명씩 두어 미드필드진의 화려한 지원과 수비가담을 통해 공수로도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화려한 중원과 최고의 골결정력을 지닌 스트라이커, 동유럽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를 앞세운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1라운드에서 스위스의 명문 그라스호퍼를 종합 5-2, 2라운드에서 스코틀랜드의 명문 레인저스를 종합 4-1, 8강에서 동독의 강호 디나모 드레스덴을 종합 6-0[4], 그리고 준결승에서 독일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까지 종합 4-3으로 격파하면서 무패로 결승전까지 진출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결승 상대가 당대만 해도 유럽 최강의 선수진을 보유하고 있었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빅 이어가 걸린 경기답게 치열한 접전이 연장전까지 이어졌다. 연장 후반까지 스코어는 끝내 0-0이였으며, 결국 승부차기 끝에 마르세유를 5-3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sp-bari.jpg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즈베즈다의 선수들

1991년에는 인터컨티넨탈 컵(도요타 컵)에서도 남미 챔피언 콜로 콜로(칠레)를 3-0으로 이겨 연이은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다만 UEFA 슈퍼컵에서는 1990-91 UEFA 컵 위너스 컵(역시 현재 유로파 리그 전신 중 하나) 우승팀인 맨유에게 0-1로 패해 준우승했다.

그러나 몇 년간은 이어질 줄 알았던 전성기가 1년도 안 되어 갑자기 막이 내리게 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1991-92 시즌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터진 거라 정신적인 부담이 컸음에도 시즌은 계속 진행되었고, 그 여파인지 유로피언 컵에서 만치니삼프도리아에게 밀려 아깝게 결승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유고 리그는 1997-1998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핵심 선수들은 해외로 떠났고, 유고 리그는 5개 리그로 분열되었으며 조국은 내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정치적, 경제적, 치안적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현실적으로 빅 이어를 노리기 힘든 구단이 되었다.

3 현재

전성기가 막을 내린 이후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동네북이 된 지 오래이다. 전술했듯 유고슬라비아 리그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로 각각 찢어지면서 리그 규모가 큰 타격을 받았고, 내전으로 인해 90년대 중후반엔 유고 리그 상위권 팀들이 유럽 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었다. 결국 핵심 선수들은 전부 해외로 뜨는 바람에 챔피언스 리그에선 32강만 가도 본전인 수준으로 추락, FC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와 똑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자국 리그에서는 여전히 강호로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2000년대 재정 악화로 무려 4부 리그까지 강등당했다가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해 1부 리그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라이벌 파르티잔이 리그를 독식해 앞서 있던 리그 우승 횟수를 거의 따라잡혔다.

2013-14 시즌엔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거뒀으나, 리그 재정 문제 및 UEFA 규정 위반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 자격이 박탈되어 2위인 라이벌 파르티잔이 대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2014-15 시즌은 파르티잔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컵 대회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다.

4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스타(Star)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창단 직후 50여년의 역사 동안 활약한 5명과 1991 유로피언 제너레이션에게 각각 별[5]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 첫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 라이코 미티치 (Rajko Mitić)

unnamed(4).jpg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주장으로서 팀의 첫번째 전성기를 연 인물.

  • 두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 드라고슬라프 셰쿨라라츠 (Dragoslav Šekularac)

지능적이고 창의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인기를 얻었으며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 1996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의 감독을 지냈다.

  • 세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 드라간 자이치 (Dragan Džajić)

dzajic.jpg

츠르베나 즈베즈다 역사상 통산 득점 1위, 통산 경기 출전 1위

  • 네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피죤" ( Vladimir Petrović "Pižon")

파일:VLYszQJ.jpg

츠르베나 즈베즈다 주장으로서 최초로 유럽 대항전 결승[6]으로 팀을 이끌어냄

  • 다섯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픽시" (Dragan Stojković "Piksi")

Dragan+Pixie+Stojkovic+Panini+Etoile+Rouge+de+Belgrade+1990.png

즈베즈다의 주장으로서 오랜 시간을 뛰었고 유고슬라비아와 세르비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간주되던 선수. 유고슬라비아의 미셸 플라티니

  • 여섯번째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별 : 1991년 유로피언 컵 우승 세대 (The 1991 European Cup Winner Generation)

등번호 순으로 설명하자면

No.2 블라디미르 유고비치, No.3 슬로보단 마로비치, No.4 레픽 사바나조비치, No.5 미오드라그 벨로데디치, No.6 일리야 나이도스키, No.7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No.8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No.9 다르코 판체프, No.10 데얀 사비체비치, No.11 드라기샤 비니치

그외에 골키퍼 No.1 스테판 스토야노비치가 있다.

Estrela+Vermelha+1991ok.PNG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있어서 처음으로 빅 이어라는 우승컵을 들었던 영광의 시절.

5 서포터즈

델리예(Delije)라는 이름이 있다. 세르비아어로 '영웅들'이란 뜻.

세르비아 국내에서는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세르비아의 축구 팬 중 절반 정도가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응원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같은 베오그라드를 연고지로 하는 라이벌인 FK 파르티잔과의 더비 매치는 특히 고조를 보이곤 하는데, 2009년 4월에는 파르티잔과의 경기 도중 서포터가 경찰과 충돌하여 95명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던 '아르칸' 젤리코 라즈나토비치(1952~2000)[7]가 이 서포터 그룹을 장악하고 준군사집단으로 키워놔 내전에 참여했는데, 이 당시 이들의 전술인 '크로아티아 도시에 잠입, 로켓 포 폭격 후 빠지기'는 당시 크로아티아계들이 이를 갈기에 충분했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벌인 약탈, 학살, 강간은 하도 사례가 많아 정확한 조사,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서포터즈의 흑역사라 할 만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이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인면수심. 하지만 우습게도 이 팀 구단주가 되려고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베오그라드에 연고지를 둔 오빌리치 베오그라드(이름부터가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기사인 오빌리치에서 착안) 구단주가 되면서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테러를 가했다. 이로서 그를 지지하던 극우 즈베즈다 서포터들도 아르칸은 오로지 본인의 이득을 위해 우리를 써먹은 것이었다고 치를 떨게 된다. 이제 알았냐? 아르칸은 오빌리치 서포터들에게 츠르베나 즈베즈다나 파르티잔의 서포터들을 총기로 쏴버리라는 엽기적 명령까지 내렸으며, 심지어 상대방 팀 주전들을 납치하여 감금하기까지 했다.

250px-%C5%BDeljko_Ra%C5%BEnatovi%C4%87.jpg
아기 호랑이를 들고 있는 사람이 젤리코 라즈나토비치. 저 호랑이는 그가 애완용으로 키우던 호랑이였다고. 보다시피 이런 게 구단주이고, 위에 복면하던 것들이 나중에 서포터라는 이름으로 행패를 부렸다. 세르비아 극우 정치인으로서 터키어인 아르칸이란 별명으로 악명이 자자하던 젤리코 라즈나토비치는 코소보 전쟁 당시 알바니아 여성들을 강간하라는 명령까지 휘하 민병대에게 내려서 코소보의 강간마 히틀러라는 악명까지 얻었으나, 세르비아 극우들에게는 인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정적들에게 훌리건, 아니 부하들을 고용하여 테러를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테러 및 상대 주전 납치 감금같은 화려한 노력으로(?) 오빌리치는 1997~98 시즌 세르비아 리그(당시 이름은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우승도 차지하며 98-9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바이에른 뮌헨에겐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없어서인지 안방에서 1-1로 비기고 원정에서 0-4로 패해 탈락했다.그리고 이런 범법 행위들이 드러나서 오빌리치에 대한 승점 삭감 및 벌금형이 내려졌고, 팀은 리그에서 중하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르칸은 2000년 1월 15일 호텔에서 눈과 얼굴에 총알을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범인은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았다.

2657-1-1.2.jpg
아내인 체카. 1973년생으로 아르칸과 나이 차가 21살이나 되었다.

한편 아르칸이 죽자 아르칸의 아내였던 체카(CECA)라는 여인이 남편이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며 구단주가 되었다. 이 여자는 옛날 유고 연방 시기 세르비아에서 인기 여가수로 뛰어난 가창력과 댄스 실력으로 꽤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1995년, 22살에 43살이던 아르칸과 결혼했으며 상당한 재력을 갖춘 범죄자 남편을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횡령과 부정부패, 비리 등을 저질렀다. 그러나 남편과 달리 구단 운영 능력은 형편없어서, 팀은 2005년부터 '강등-강등-강등-강등-잔류-강등-강등' 테크를 타고 몰락했다. 게다가 자금 횡령 및 이사들과의 대립까지 일어났고, 아르칸에 충성을 다하던 서포터들조차 무능에 치를 떨며 그녀를 배제하여 결국 체카는 구단주에서 반강제로 쫓겨난 뒤 횡령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인과응보

이젠 츠르베나 즈베즈다 서포터들은 극단적인 극우가 아닌 한, 아르칸을 비난하고 싫어한다.

6 기타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풋볼 매니저를 접하면서 어쩌다 챔스 우승 목록을 보다 보면, 왜 이런 팀이 우승을 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푸마는 독일의 스포츠 용품 회사이지만 푸마의 스폰서 구단중에 동유럽의 유고슬라비아를 연고로 했던 츠르베나 즈베즈다만이 유일하게 푸마의 저지를 입고 챔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가 있다.[8] 다만 우승직후 유니폼 스폰서가 험멜로 바뀌었고 디아도라, 카파, 아디다스, 나이키, 레게아를 거쳤다가 2013-14시즌에 다시 푸마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2013-14 시즌 세르비아 쉬페르리가에서 7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0년에 푸마와 유니폼 스폰서를 체결한 후 1991년까지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컵 우승 그리고 챔스 우승까지 이뤄낸후, 유니폼 스폰서가 바뀐 후에는 성적이 추락하다가 푸마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을 보면 푸마와는 천생연분인듯 하다 .

어떤 팔이 없는선수가 데뷔한 팀이기도 하다.

7 같이 보기

순서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국가첫 우승연도우승 횟수
1Madrid.png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40px1956년11회
260px벤피카
(Benfica)
40px1961년2회
3Milan I of Serbia.png밀란
(Milan)
40px1963년7회
450px인테르나치오날레
(Internazionale)
40px1964년3회
548px셀틱
(Celtic)
40px1967년1회
650px맨유
(Manchester Utd.)
40px1968년3회
750px페예노르트
(Feyernoord)
40px1970년1회
854px아약스
(Ajax)
40px1971년4회
9Bayern.png바이에른 뮌헨
(Bayern)
40px1974년5회
10Liverpool.png리버풀
(Liverpool)
40px1977년5회
1135px노팅엄 포레스트
(Nottingham Forrest)
40px1979년2회
1240px애스턴 빌라
(Aston Villa)
40px1982년1회
1350px함부르크
(Hamburg)
40px1983년1회
1437px유벤투스
(Juventus)
40px1985년2회
1544px스테아우아
(Steaua)
40px1986년1회
1640px포르투
(Porto)
40px1987년2회
1750pxPSV
(Eindhoven)
40px1988년1회
1840px츠르베나 즈베즈다
(Crvena Zvezda)
40px1991년1회
19Barcelona.png바르셀로나
(Barcelona)
40px1992년5회
2050px마르세유
(Marseille)
40px1993년1회
2150px도르트문트
(Dortmund)
40px1997년1회
22Chelsea.png첼시
(Chelsea)
40px2012년1회
  1. '델리예(Delije)'라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공식 서포터즈를 위해 12번을 영구결번
  2. 현재 축구계의 흐름으로 보아 러시아 리그 외에는 동유럽의 모든 팀들이 하향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최후라고 볼 수 있다.
  3. 농구팀 역시 세르비아의 강호로 KK 파르티잔과 라이벌리를 형성중이다.
  4. 디나모 드레스덴과의 1차전은 3-0 승리, 2차전에선 78분경까지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2-1 리드로 가다가 디나모 드레스덴 팬들의 난동으로 인해 경기는 중단되고 UEFA는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3-0 몰수승을 선언한다.
  5. 세르비아어로 즈베즈다(звезда)
  6. 1978-79 UEFA 컵
  7. 정작 아르칸이란 이름은 터키식이다(....)
  8. AS 모나코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각각 2004년, 2013년 챔스 결승에서 푸마 저지를 사용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