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rgio Perlasca
전향한 파시스트 헝가리판 오스카 쉰들러
191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파시스트로, 젊었을 땐 파시스트 편에 서서 열심히 싸웠으며, 특히 스페인 내전 때 무공을 세워, 프란시스코 프랑코로부터, 비록 귀하는 이탈리아인이지만, 언제든지 스페인 공관에 와서 도와달라고 하면 발벗고 도와주겠다는 허가증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나이가 먹어 초창기의 파시즘 빠 기질이 사라지게 되고, 점차 파시즘에 대한 환멸을 갖게 되던 차에, 이탈리아가 전쟁에서 GG치게 된다. 조르지오는 파시즘에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나치측에서 이탈리아인이었던 조르지오 펠라스카를 잡아 가두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기회를 잡아 스페인 대사관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조르지오 펠라스카는 예전에 프랑코가 준 허가증으로 호르헤 펠라스카가 되었고, 스페인 대사관의 대리대사였던 앙헬 산스브리스는 조르지오에게 유태인을 중립국으로 빼돌리자고 제안하였다. 이를 받아들인 조르지오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산스브리스로부터 스페인 대사관 직원 신분증을 받고, 유태인을 구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가 맡은 임무는 스페인 대사관이 제공한 보호문서를 가진 유태인들이 험한 일 당하기 전에 보호 가옥을 만들거나, 중립국으로 유태인을 호송하는 일이었다.
1944년, 소련이 부다페스트 근처에 진주하자, 프랑코는 자기네 외교관이 소련에 넘어가는 걸 싫어하여 스위스로 다 빼버렸으며, 대리대사였던 산스브리스는 조르지오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지만, 조르지오 펠라스카는 계속 부다페스트에 남아있었다. 스페인 외교관들이 철수한 후 헝가리 나치였던 화살십자당이 들이닥치자, 산스브리스는 곧 올 거고, 난 산스브리스가 임명한 대리인이다! 라고 뻥을 치고, 화살십자당 당수에게 약 일천만 원의 뇌물을 건넸다. 심지어 유대인의 체포를 지시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바로 앞에서 유대인을 빼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1945년 1월 16일, 소련군이 부다페스트를 해방시킬 때까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은 호르헤 펠라스카의 노력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1949년 5월 29일, 조르지오는 이탈리아로 가기로 하고, 부다페스트 동부의 기차역에서 지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런 글을 받았다.
당신이 우리를 살려주고 노약자들을 보살펴주었던 그 친절함에 바칠 수 없을만한 찬사는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야훼께서 당신을 돌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쟁이 끝난 후 조르지오 펠라스카는 가족에게까지 이때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7년에 도움을 받은 유태인들이 그를 추적하여 찾아내었으며, 이 사람의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선 그에게 세계의 의인이란 칭호를 주었으며,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에선 그에게 훈장을 추서했다. 또한 자국에선 그를 기리는 《Perlasca, un Eroe Italiano》란 영화가 2002년 개봉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