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본햄

John Henry Bon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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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의 영원한 드러머이자 영혼의 드러머.
존 보냄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많으나 이름의 실제 발음은 존 보넘에 가깝다. Beckham을 벡햄이라고 하지 않잖아.

1 소개

지미 헨드릭스라는 천재가 오늘날의 기타 사운드를 정립했다면 드럼에는 존 본햄이 있었다. 그의 드러밍은 드럼 소리를 표현할 때 흔히 표기되는 '쿵 - 빡'을 가장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음악 최초로 컴비네이션 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범인은 키스 문과 진저 베이커 거대한 투베이스 드럼세트를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것일 뿐 드럼 연주에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본적인 드럼세트만 있어도 모든 리듬을 표현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컴비네이션을 폭넓게 사용한 드럼 솔로로 입증했다.

2 생애

존 본햄은 1948년 잉글랜드 우스터셔 주 레디치에서 조안과 잭 본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엌의 냄비와 팬을 두드리길 좋아했고, 다섯 살 때는 빈 통과 커피 깡통으로 첫 번째 드럼 키트를 만들기도 했다. 열 살쯤에는 진짜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열 다섯 살에는 아버지의 선물로 중고 드럼 키트를 갖게 되었다.

3 레드 제플린

존 본햄은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에 합류한 구성원이다. 밴드 오브 조이에서 함께 활동했던 로버트 플랜트가 새로 가입한 밴드에서 드러머로 그를 추천하였으나, 처음에는 합류하기를 주저했다. 플랜트는 본햄을 설득하기 위해 본햄의 단골 술집인 'Three Men in a Boat'로 8통의 전보를 보냈으며, 이어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40통의 전보를 보냈다. 당시 본햄은 여러 밴드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그 중에서 음악이 가장 마음에 든 뉴 야드버즈(레드 제플린의 전신)를 선택했다.

레드 제플린은 1968년 12월에 바닐라 퍼지의 오프닝 밴드로 미국 공연을 시작했다. 본햄은 이때 친분을 맺은 바닐라 퍼지의 드럼 연주자 카마인 어피스의 권유로 드럼을 루딕으로 바꾸고, 이후 평생 동안 루딕 드럼을 사용했다.드럼 연주자로는 드물게 공연에서 일상적으로 30분 이상을 솔로로 연주하였으며, 《Led Zeppelin II》에는 드럼 중심의 연주곡 〈Moby Dick〉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4 죽음

존 본햄은 1980년 9월 25일, 지미 페이지의 저택에서 사망하였다. 밴드의 말기,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의 계속되는 친목질에 지친 존 폴 존스가 탈퇴하는 등, 긴장감 넘치는 밴드의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했던 존 본햄은 원래 술이 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술을 찾기 시작했고 1980년 9월 24일 리허설을 하기 위해 지미 페이지의 저택에 온 본햄은 아침부터 하루 내내 서른 잔이 넘는 보드카를 마셨고 결국 자정이 넘어서 존 폴 존스와 다른 한 사람이 만취한 그를 침대로 옮겼는데 25일 오후 1시 45분, 존스가 본햄이 숨을 쉬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검 결과 본햄은 수면 중 구토로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10월 4일, 우스터셔의 교회에 묻혔고 이후 레드 제플린은 12월 4일 성명을 내고 해체를 선언했다.

5 영혼의 드러머

말이 필요 없다. 보면 안다.

지식채널ⓔ <심장의 고동> 편에 존 본햄이 소개되었다. 지식채널에서 락 뮤지션이 소개된 건 지미 헨드릭스 이후 두번째였다.